왕자대 왕조대

본문

2. 왕자대(王子臺)와 평장동(平章洞) 문헌기록(獻記錄)

back.gif

 

(가) 대동지지 광주 산수 조

평장동: 광주의 서북 30리에 있으며, 신무왕 후손이 이곳에 살았는데 대대로 평장사가 됨으로 인하여 얻은 이름이다.

平章洞:「西北 三十里 神武王後孫 居于此 世爲平章 故名」

 

왕자대: 광주의 서남 45리에 있으며, 신라왕자가 진중에 머물던 곳으로 성대를 쌓았던 터가 있다.

 

○살피건대, 신라의 신무왕이 미력한 때 화를 피하여 청해진대사 장보고 에게로 가서 의탁하고 무주도독 김양 과 더불어 함께 기병을 모의하여 환란을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誅亂反正)하니 여기가 곧 신무왕이 진중에 머물던 곳이다.

 

王子臺:「西南 四十五里 新羅王子留陳之所 有築城臺址

○按 新羅神武王 微時避禍往依 淸海鎭大使張保皐 與武州都督金陽 合謀起兵 誅亂反正 此卽 神武王留陳之處」

 

(나) 연경재전집 -나여유민 전

평장동 : 신라왕자 김흥광이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알고 광주로 피하여 백성이 되니 자손이 이로 인하여 관적으로 삼았다. 고려조에 벼슬하여 8세를 상전하여 평장사가 되니 동호를 평장동이라 하였다

平章洞 :「新羅王子金興光 知國將亡 遁于光州爲民 子孫因籍焉 仕麗朝 八世相傳爲平章事 洞號平章」

 

(다) 성해응 연경재전집외집 44권 지리류 동수경

왕자대: 극락평에서 극락강이 되어 왕자대에 이르러 지석강이 동쪽으로부터 와서 만난다. 왕자대에서 상류쪽으로 대천이 둘이니 장성 백암산의 황룡천과 장성노령의 가천이 칠천으로 들어온다.

王子臺:「由極樂之坪 爲極樂江 至王子臺 砥石江自東來會 由王子臺以上大川二 長城白岩山之 黃龍川 長城蘆嶺之可川入漆川」

 

(라) 여지도서/  남읍지

남평천: 광주의 서쪽 45리에 있으며, 화순과 능주에서 발원하여 남평을 지나 왕자대 아래에 이르러 극락강과 합류한다.

南平川:「在州西四十五里 自和順 綾州發源 歷南平 至王子臺下 與極樂合」<與地圖書>

南平川:「在州西四十五里 自和順 綾州發源 歷於南平 至王子臺下 合極樂」<湖南邑誌>

 

(마) 여지도서 광주목(光州牧) 고적(古跡) 조

왕자대: 광주의 서쪽 45리 큰강 위에 있으며, 속전(俗傳)하길, 삼국 때 왕자가 유진하던 곳으로 전하며, 아직도 축성하였던 기지가 있다.

평장동: 신라왕자 김흥광이 이곳에 와서 살았는데, 자손에서 9대에 평장사를 배출하니 이로 인해 동호가 되었다.

 

與地圖書 光州牧 '古跡' 條

王子臺 :「在州西四十五里 大江上 俗傳 三國時 王子留陳地所 尙有 築城基址」

平章洞 : 新羅王子金興光 來居于此 子孫有九代平章 仍以爲號」

 

(바) 대동지지 견훤대/ 왕조대

견훤대: 광주의 북·쪽 15리에 있으며 견훤이 군사를 겨루던 곳이다.

왕조대: 광주의 서쪽 삼십리로 고려태조가 진중에 머물던 곳이다.

- 태봉왕 궁예가 서기903年 3月에 왕건을 보내어 금성(羅州) 등 10여 군현(郡 縣)을 공취(攻取)했을 때 왕건의 진소(陣所)로 推考 -

 

大東地志  甄萱臺/ 王祖臺.  

甄萱臺 :「北十五里 甄萱較兵之地」

王祖臺 : 「西三十里 高麗太祖 留陳之所」

 

(사) 호남읍지 광주 고적 조

왕자대: 광주의 서쪽 40리에 있으며, 삼국 때 왕자가 진중에 머물던 곳으로 아직도 성대를 쌓아둔 터가 있다.

평장동: 신라왕자 김흥광이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지하고 나와서 서인이 되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자손에서 8대에 평장사를 배출하니 이로 인해 동호를 삼았으며, 유허지에 비가 있으니 김진상이 음기를 지었다.

 

湖南邑誌 光州 '古跡' 條 王子臺/ 平章洞  

王子臺 :「在 州西四十里 三國時 王子留陳之所 尙有築城臺址」

平章洞 :「新羅王子金興光 知國將亂出爲庶人 卜居于此 子孫有八代平章事 因以爲號 有遺墟碑金鎭商撰陰記」

* 王祖臺· 甄萱臺 등도 기록되어 있는데 大東地志와 같다.

 

(아) 광주읍지

왕자대: 광주의 서쪽 사십리에 있으며, 삼국 때 왕자가 진중에 머물던 곳으로 아직도 성대를 쌓았던 터가 있다.

평장동: 신라왕자 김흥광이 장차 난리가 있을 것을 예지하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자손에서 팔대에 평장사를 배출하니 이로 인해서 얻은 동호이다. 안심사 인월암 조계정 관덕정 강례헌 관대정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폐허가 되어 그 유지만 남아있다.

 

光州邑誌

王子臺 :「在 州西四十里 三國時 王子 留陳之所 尙有築城基址」

平章洞 :「新羅王子金興光 知國將亂出爲庶人 卜居于此 子孫有 八代平章事因以爲號洞 有安心寺 引月庵 棗溪亭 觀德亭 講禮軒 冠帶亭 今皆廢遺趾尙在」

 

(자) 증보문헌비고

왕자대: 광주의 서쪽 45리에 있으며, 世傳하는바 삼국 때 왕자가 진중에 머물던 곳이다.

王子臺 :「在西四十五里 俗傳 三國時 王子留陳地所」

            (增補文獻備考 卷22, 與地考, 山川 條, 光州)

* 왕조대· 견훤대 기록은 없으나 왕자대 기록은 있다.

 

(차) 대동지지

사호강: 남평의 지석강과 광주의 황룡천이 왕자대 아래에서 합하여 서쪽으로 흘러 나주의 동쪽 5리에서 광탄이 된다.

沙湖江: 南平之砥石江 光州之黃龍川合于王子臺下 西流至州東5里爲廣灘

 

지석강: 능주의 여점에서 발원하여 (-중략-) 남평현의 동쪽 7리에서 지석강이 된다.  

다시 남평현의 북쪽 3리에서 성탄이 되어 서류하다 왕자대 왼쪽에서 어천을 합류하여 나주 영산강 상류가 된다.

 

砥石江: 源出綾州之呂岾 (中略) 縣東7里爲砥石江 縣北3里爲城灘 西流之王子臺左過魚川至羅州界 爲榮山江上流

(大東地志 羅州 山川/ 南平縣 條)

 

(카) 광주군사(光州郡史)

- (日本人) 기타무라 유이찌로(北村友一郞) 著/

광주군교육회(光州郡敎育會) 1919년 간행-[註 1]

왕자대: 현재 나주군 노안면 학산리 로써 1914년 이전에는 광주군 마곡면 천동(泉洞) 즉 지금의 동곡면 평산리에 있다.

광주군읍지에 실린 기록을 적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주치(州治)의 서쪽 45리인 대강상(大江上) 위에 있다. 역시 축성의 터가 있다.

2) 남평현은 주치의 서쪽45리에 있다. 화순 능주에서 발원(發源)하여 남평을 지나 왕자대에 이르러 극락강과 합쳐진다.

 

부기(附記)

극락강(極樂江)이란 장성(長城)에서 내려오는 황룡강(黃龍江)과 담양(潭陽) 창평(昌平)에서 내려오는 칠천(漆川)이 합쳐진 것을 말한다.

 

현상(現狀)

고(標高)가 약 200척(尺) 전후되는 구릉(丘陵)으로써 정상(頂上)은 약 180평쯤 되는 평면(平面)이다. 약간 내려와서 언덕을 둘러싸고 축조된(築造) 토축(土築)의 성벽(城壁)이 있다. 높이는 평균 4척(尺)이고, 그 둘레는 800곡척(曲尺)[註 2] 내외(內外)이다.

 

부기(附記)

1)<광주읍지>의 기록에는‘속전(俗傳)하길 삼국시대에 왕자가 유진(留陣)하였던 곳이다’ 라고 되어 있다.

2)현재 그 지방 고로(古老)들은 <왕자대>라는 이름은 알고 있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저 진산(陣山=留陣山)으로 일컬을 뿐으로 그 연혁(沿革)은 모르고 있는것 같다.  

3)그 축조 연대 및 왕자의 이름은 실전되어 지금은 상고하지 못하고 있다.

 

(타) 용산 천동마을 묘비(墓碑)

용산마을 왕자대 아래 서산유씨(瑞山柳氏) 유연한(柳年漢) 묘 개립비(改立碑)에 “維 錦城治 老安坊 泉洞後麓 王子臺 柏老巖蒼之原” 이라 하였다.

*坊은 조선시대 행정조직의 단위구역(單位區域)임을 감안 할 때 조선조에 세웠던 비문을 후대에 다시 개립한 것으로 보인다.

 

(파)나주목지

(丁潤國 著 1989년 刊行)

왕자대 터: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봉호마을 뒤 해발 52m 봉우리로 비정(比定)하였다.

 

(하) 기타

*나주시 노안면 용산마을 동각에는 근래 붙인 ‘王子臺亭’ 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 용산마을 전 왕자계 총무 신태현(63) 증언에 의하면 용산 천동(泉洞))마을에는 예전에 <왕자계(王子契)>가 있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왕자대 표시지점은 동여도(東輿圖:‘彩色筆寫本, 奎章閣 소장)에 유등곡(柳等谷)이라 표시되었으며, 왕자대는 신원역(新院驛) 옆에 표시되었다.

 

 

 

 

[註 1] 일제강점기 “光州文獻集”은 원본과 국역본을 합철 하였다.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 편집 /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 (2004. 12. 20) 간행

[註 2] 800곡척은 약 240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