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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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기타 문화재 자료

(12) 문경공 김예몽 신도비 (文敬公 金禮蒙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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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산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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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태종 6)~1469(예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字는 경보(敬甫), 호는 만사(晩沙), 아버지는 성균관 사 성 소(遡)이다. 1429년(세종 11) 생원시를 거쳐 143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집현전 정자에 제수 되었다.

 

그 뒤 저작랑을 거쳐 감찰에 제수되고, 1440년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과거(科擧)의 시관이 되어 많은 인재를 등용시켰다. 1477년 집현전 교리로 승진하고, 문종이 즉위하자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가 되었다. 단종 때에는 집의·집현전 부제학을 지내고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에 책 록되고 호조참의에 올랐다.

 

그 뒤 1460년(세조 6)에는 인순부윤으로서 사은정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되 고,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겸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이때 후학들에 대한 교육에 힘써 자주 시험을 보고 제술이 우수한 자에게는 반드시 포상하여 학문을 권장하였다. 그 뒤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1466년 발영시에 아들 성원과 급제하여 한때 조야의 선망을 받았다.

 

이어 1468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 시관이 되어 뽑은 인재가 거의 뒷날 조정의 현직을 차지하여 빙감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성품이 온아하고 청렴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사부에도 능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