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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사 김경현

이사회 의장 김용규

보사연구위원회 위원장 김장윤

도올 김용옥

고문 김영호

대종회 상임고문 김윤중

전남대학교 성씨보학동문회장 김선발

문정공파종중 도유사 김선만

문숙공파종중 도유사 김용수

양간공파종중 도유사 김광수

광절공파종중 도유사 김용단

대종중전자족보 편집위원장

문숙공후 예조판서공 후손 재성

 

 

발행사 축사

본문

생명력은 옳고 바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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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장 김연택

광산김씨가 대종중에서 마침내 큰일을 해냈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과 전자족보를 구축한 것입니다. 전자 정보와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흐름에 동행한 것입니다. 천지 만물의 이치와 자연의 법칙은 시류에 순응하지 못한 조직은 낙오와 도태가 필연이었습니다. 개혁이 없는 종사는 발전이 없습니다.

 

작금의 세태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의 관행이 오늘 도덕적으로 비난 받습니다. 唯我獨尊(유아독존)과 眼下無人(안하무인)의 군림은 낡은 유산입니다. 獨也靑靑(독야청청)의 高高然(고고연)도 매한가지입니다. 철이 지난 상품은 팔리지 않습니다. 흘러간 물은 다시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합니다. 옳고 바름이 생명력입니다. 도덕적 우위만이 생존하는 길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부계를 중심으로 한 성씨를 갖고 있습니다. 성씨는 자기가 취득한 성과물이 아니고 조상으로부터 대물림 받은 것입니다. 성씨는 씨족끼리 일체감 속에 자기를 귀속 확인시켜 안정감을 갖게 하고 사명의식을 고취 시켜줍니다. 따라서 개인의 업적이나 명예가 결국은 성씨에 귀착됩니다. 성씨 문화는 족보를 통해 업적과 유훈을 남기고 종사를 통해 미풍과 예속을 전승합니다.

 

우리나라 성씨 사용은 중국과 왕래한 이후부터입니다. 일반인의 성씨 사용은 고려 문종 과거제도 1047 이후부터이고, 전 국민의 성씨 사용은 조선 순종 3년 1909년 민적법 시행 이후부터입니다. 인류가 존재하고 성씨가 있는 한 족보의 수보도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 종족의 역사는 대략 1200년으로 추정합니다. 우리 족보의 역사는 현존하는 대동보가 300년 전쯤 됩니다. 900년의 구전을 현대적 기준으로 사실에 입각하여 사심 없이 공정하게의 기록은 불가합니다. 그리하여 족보의 발간을 수보라고 합니다.

 

문원공 사계(장생)선생은 용계공(지남)과 외손 송공(희업)이 만든 양보를 보완 편수하였고 明而正之(명이정지)라 하였습니다. 문충공(만기)은 인경왕후 선원보에서 충정공(의원) 이상은 皆失其名(개실기명)이라 하였습니다. 서석공(만기)과 창주(익희)공은 양간공(연)과 제안공 (이)을 형제라 하고 충정공(의원)과 대정공 (주영)의 사이를 竝疑闕誤(병의궐오)라고 하였습니다. 양간공 군기감사공 문경공 허주공 파의 제 족보에는 대정공(주영)이 비서감공(광중) 내급사동정공(대균) 주부동정공(대용)의 아들인지 손자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정공(주영)을 정묘 병자 양보에서는 충정공(의원)의 아들로 장성보와 한성보에서는 증손자로 편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관련된 곳에 子字를 쓰지 못하였습니다. 이 모두 [광산현 제영시서] (이)와 김광중의 부인 이씨 묘지명과 반합니다.

한성보 이후 경간공(元義), 정헌공(李頲), 비서감공(光中)배 이씨부인, 문민공(光轍)의 묘지명이 출현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평장사공(元義)가 위(位)의 장자(長子)이고, 문안공(양감)의 아들은 소경공(義英), 사정공(義文/若溫), 충정공(義元) 3인이고, 비서감공(광중)의 아들은 고려사에 나오는 현령공(체) 외아들이 아니고 叢(총).瀳(천).通奧(통오).蒂(체) 4인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광산김씨 대연구위원회]에서 석학과 보학자 들에 의해 우리의 系譜(계보)와 世數變更(세수변경)이 필요함을 논문과 연구보고서로 제시되었습니다.

 

대동지지, 대동여지도, 호남읍지, 광주목지, 광산읍지에는 평장동을 신라 신무왕의 후예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였고, 대종중 도유사 대종회 회장을 겸직한 양수 길수 회장과 대종회가 주관했던 [광산 김씨 선대 연구위원회] 노수, 용섭 박사와 보학자들은 우리의 시조공은 신무왕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근거하여 대종중에서 평장대보를 발행하였습니다. 골격의 대체는 바로 하였으나 30세까지만 한정하고 제 자손을 모두 등재하지 못함으로써 완성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이번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전자족보를 구축하여 연구의 성과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 광산김씨의 족보가 첨단시대에 걸맞게 전자화 된 것입니다.

 

언어와 문장에 文 史 哲이 있어야 함은 보편적 가치입니다. 인격에 色香味(색향미)가 있어야 함은 우리의 所以然(소이연)입니다. 우리 광산 김씨의 色은 三韓甲族(삼한갑족)이요 香은 名門華閥(명문화벌)이요 味는 禮文宗家(예문종가)입니다. 이제 이를 다듬어 가꾸어야 함은 미래의 몫입니다.

 

과업의 완수는 실로 지난한 일이었습니다. 경현 도유사님의 훌륭한 리더십 아래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정을 함께 다 바쳤습니다. 그 공적은 우리 종중사에 빛날 것입니다. 많은 일가 여러분이 성금을 보내주고 후원해 주시었습니다. 그리고 보사 연구위원 장윤, 철영님과 정현 일가의 도움이 컸었습니다. 특히 성봉 선생님과 록천 전도유사님의 노고는 우리 광산 김씨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2019 12 30.

광산김씨 대종중 전자족보 편집위원장  김 연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