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족보

본문

3.광산김씨의 대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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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문자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오백만년에서 칠백만년이라고 한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적응을 위한 진화과정을 거치고 생존을 위한 수많은 투쟁을 통하여 오늘날의 찬란한 인류문명을 꽃피우고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류 문명사의 최고최대의 역사적 쾌거는 문자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의 역사는 약7,000년에서 8,000년 전의 신석기 시기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며 본격적인 문자사용은 약 3,500년에서 3,700년 전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문자가 없어 2,000년 전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중국 한자를 사용하였고, 신라 때 한자를 차용하여 이두를 만들었으나 널리 사용되지 못하였고, 조선조 세종때 순수 우리글인 한글을 창제하였으나, 이 한글 역시 개화기 이후부터 국어로 널리 통용되었다.

 

 

 ② 우리나라 성씨의 기록

 

문자가 생기면서부터 역사는 기록될 수 있었고, 이러한 역사의 기록도 군주제하에서 지배층의 통치행위인 정치군사에 치중되었다. 성씨 기록으로는 백제가 처음으로 근초고왕(346~375), 고구려는 장수왕(413~491), 신라는 진흥왕(540~576)때부터이고 씨족사가 체계적으로 기록된 것은 이보다 훨씬 이후인 고려중엽 의종(1147~1170)때 김관의의 왕대실록 임경숙의 선원록이 효시라 하겠으나 왕실 위주의 기록에 불과하였고

 

사가에서 족보를 처음 만든 것은 안동권씨의 성화보(1476)라고 하나 서문만 전해 내려오고 있고 족보체계가 처음으로 갖춘 것은 문화유씨의 가정보(1562)를 시작으로 숙종조(1661~1720)이후에야 모든 성씨들의 족보편찬작업이 시작되었다.

 

2000년도 인구 총조사에 의한 성씨 분포도를 살펴보면, 김씨가 전체 인구의 21.59%, 이씨가 14.78%, 박씨가 8.47%, 최씨가 4.72%로 4대성이 총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순위 22위 안에 드는 성이 80%를 차지하고 38여개 성이 90%, 100여개의 성이 전체의 99.13%를 차지하여,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에는 288개 성 중에 100여 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나머지 188여개 성은 총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데 심지어 망절(網切), 증(增), 삼(杉), 빙(氷), 우(宇)씨 등은 전국을 통하여 1가구 밖에 되지 않는다.

 

 

 ③ 광산김씨 대동보

 

우리 광산김씨 족보 역사는 문헌상으로는 최초로 경상감사를 지낸 용계공 김지남이 편찬한 필사본 두 권이 있었는데 실전되었고, 그 후 영남종인과 외손인 송희업이 편수하였다는데 내용과 연대는 미상이다. 문원공 사계 김장생선생의 족보서문이 지금에 전해지고 있으나 족보내용은 언급된 기록이 없고 서문의 직함이 형조참판임을 보아 1628년경으로 추정된다.

 

1677년에 문충공 김만기가 용계보와 희업보를 보완하여 서석보를 발간하니 광산김씨 최초의 대동보이다. 10년 후 1687년에 김만기의 차남인 진규가 서석보를 보수하여 8권을 발간하니 바로 죽천보이다. 두 번째 정묘년 1747년에 문충공 김만기의 종질인 지추공 김진동이 죽천보를 증수하여 17권을 펴내니 이것이 현존하는 족보로서는 가장 오래된 정묘대보이다.

 

1780년 경자년에 계속하여 대보를 편수하다가 사변을 만나서 거의 없어진 것을 또 3년을 지나 1782년 임인년에 임인보 12권을 만드니 이것이 경자보의 중간이며 정묘보의 속편이다. 93년 후 고종 갑술년(1876)에 미서 김재현과 경대 김상현 두 분이 정묘보에 의거하여 수정하여 분편, 추편, 별편으로 29권을 만드니 이것이 병자대보이다.

 

일제 침략하인 1939년 기묘년에 김완수, 김긍수에 의해 장성대보 48권이 발간되었고 1957년 정유년에 김용성, 김완수에 의해 한성대보 35권이 발간되었다 2016년 광산김씨 대종중에서 수보위원회를 구성하고 평장대보 5권을 발간하니 이러써 광산김씨의 대동보는 모두 11차례에 걸쳐 출간되었다.

 

 

 ④ 광산김씨의 족보

 

광산김씨 족보는 위 ‘광산김씨의 대동보'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10회에 걸쳐 발간한 바 있으나 현존하는 대동보는 정유, 병자, 장성, 한성보가 있고 정유, 병자, 장성보는 판각본이고 한성보는 활자본이다. 이외에도 정묘보이전의 필사본의 족보가 있으나 대동보라고 부를 수가 없고 각파 대소종중에서 파보를 발간했다. 합하여 350여 회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⑤ 族譜 刊行 年代表

 ○안의 숫자는 전보 발행과의 연차임.

년 대

간지

족보명칭

비 고

年代未詳

 

용계보(龍溪譜)

若時 7세손으로 止男(號 龍溪)이 발간

(失傳)

年代未詳

 

희업보(熙業譜)

光金 外孫 송희업이 영남宗人들과 발간함

(失傳)

1628추정

 

사계보(沙溪譜)

족보는 失傳, 序文만 전해 옴

1677

丁巳

서석보(瑞石譜)

光城府院君 萬基(號 瑞石)가 위족보를 보완하여 발간(숙종 3년)-광산김씨의 최초의 대동보

1687

丁卯

죽천보(竹泉譜)

만기의 아들 문청공 鎭圭가 서석보를 증보(전8권) (숙종 13년)

1747

丁卯

정묘대보(丁卯大譜)

(지추보(知樞譜))

지추공 鎭東이 본편 17 별편 12 계29권

(영조 23년)

1782

壬寅

임인보

(壬寅譜)

정조6년 12권, 1780년 庚子年에 편수하다가 사변으로 중단

1876

丙子

병자대보

(丙子大譜)

在顯, 尙鉉이 (當年의 歲次)를 발간 29권

(고종 13년)

1939

己卯

장성대보

(長城大譜)

일제침략기(48권)

琓洙, 競洙

1957

丁酉

한성대보

(漢城大譜)

6.25 사변 이후(35권) 容聲, 琓洙

2016(59)

丙申

평장대보

(平章大譜)

5권 시조공-30세손 까지 수록 善述. 斗漢

 

편집자 주

① 광산현제영시서 : - 1307년에 황대전고공(김이)지음

② 충정공(의원) 묘지문 ; - 1153년 에 김광중이 작성 - 1910년에 발간 - 757년간 지하에 보존

③ 지문이 서문보다 154년 전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