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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여행 16 (諱 石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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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 작성일07-01-04 21:16 조회1,7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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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충혜왕 후3년(1342) 6월
경자(庚子) 초하루에 하교(下敎)하기를,
“적신(賊臣) 조적(曹?)이 난(難)을 꾸민 뒤에 과인(寡人)이 <원나라의> 도(都)에 가매 국가(國家)가 근심하고 의심했으며 간신(奸臣)의 잔당(殘黨)이 거짓말을 날조(捏造)하여 난(亂)을 선동하기를 마지 아니하되 시종(侍從)하는 신하가 종시일절(終始一節)로 과인(寡人)의 몸을 협보(挾輔)하였으니 그 공(功)이 막대(莫大)하여 영원히 잊기 어렵도다.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석(尹碩), 정승(政丞) 채하중(蔡河中), 화평 부원군(化平府院君) 김석견(金石堅), 정승(政丞) 이능간(李凌幹), 이문(理問) 홍빈(洪彬),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 김영돈(金永旽), 서하군(西河君) 임자송(任子松), 찬성사(贊成事) 김인연(金仁沇),.....등으로 1등 공신(功臣)을 삼아 벽상(壁上)에 도형(圖形)하고 부모 처(妻)에게는 3등을 뛰어 봉작(封爵)하고 1자(子)에게는 7품(品)을 주고 아들이 없으면 질(姪)이나 생(甥)이나 여서(女壻)를 대(代)로 하여 8품(品)을 제수(除授)하고 전(田) 100결(結) 노비(奴婢) 10구(口)를 줄 것이며......
庚子朔, 下敎曰, 賊臣曹힒, 즤難之後, 寡人赴都, 國家虞疑, 奸臣餘黨, 捏合虛辭, 扇亂不已, 而侍從之臣, 終始一節, 來輔寡躬, 其功莫大, 帶礪難忘 以海平府院君尹碩·政丞蔡河中·化平府院君金石堅·政丞李凌幹·理問洪彬·上洛府院君金永旽·西河君任子松·?成事金仁沇...等, 爲一等功臣, 圖形壁上, 父母妻, 超三等封爵, 一子除七品, 無子, 代姪甥, 女壻除八品, 給田百結·奴婢十口......

충목왕 2년(1346) 6월
임오(壬午)에 화평 부원군(化平府院君) 김석견(金石堅)이 죽었다
壬午, 化平府院君金石堅, 卒.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김석견(金石堅)은 충숙조(忠肅朝)에 누전(累轉)하여 밀직 부사(密直副使)가 되었고 충혜왕(忠惠王) 때에 화평 부원군(化平府院君)을 봉하였으며 조적(曹?)의 난(亂)에 시종(侍從)하여 공로(功勞)가 있었으므로 공(功)을 책(策)하여 1등(等)을 삼고 그 부모 처자(妻子)에게는 작(爵)을 주었으며 전(田)과 노비(奴婢)를 사(賜)하였다. 왕이 민환(閔渙)의 말을 듣고 모든 호부가비(豪富家婢)로서 자색(姿色)있는 자를 구취(求取)할 때 주리(主吏)가 김석견의 집에 가서 비(婢)를 찾으니 김석견이 구타하여 쫓고 곧 왕궁(王宮)에 나아가니 왕이 맞아 말하기를,
“정승(政丞)이 장획의 일로 오지 않았느냐?”
하니 김석견이 말하기를,
“저의 집의 장획은 이미 다 자식에게 주었으니 주상이 만약 이를 찾으려면 신이 내일 아침에 원(元)에 가서 취해 오겠소이다.”
하였으니, 김석견의 서자(庶子) 완자첩목아(完者帖木兒)는 원(元)에 벼슬하여 총애가 있었으므로 인하여 써 왕을 위협함이라 왕이 말을 사(賜)하고 위유(慰諭)하기를,
“정승(政丞)은 노하지 말라 내가 장차 취하지 말게 하리라.”
하였다.

충목왕(忠穆王) 2년에 죽으니 완자첩목아는 원(元)에서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제수(除授)하였고 뒤에 환국(還國)하매 재추(宰樞) 및 종족(宗族)이 다투어 주연을 베풀고 맞이하였다. 때에 충혜왕(忠惠王)이 잡혀서 원(元)에 가니 정승(政丞) 채하중(蔡河中)이 말하기를,
“상서(尙書)가 이미 상국(上國)과 본국(本國)의 일을 아는데 무슨 연고로 이 변(變)이 있는고?”
하니 완자첩목아가 말하기를,
“왕이 견책(譴責)됨은 좌우(左右)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악한 일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리오마는 다만 왕의(王意)에 아부하고 왕지(王旨)에 순종하여 권위(權位)를 굳게 하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이에 이르리오?”
라고 하였다. 이어 소환을 받아 원(元)에 돌아갔다.

石堅, 忠肅朝, 累轉密直副使, 忠惠時, 封化平府院君, 曹힒之亂, 侍從有勞, 策功爲一等, 爵其父母妻子, 賜田臧獲, 王用閔渙言, 求取諸豪富家婢有姿色者, 主吏至石堅家, 索婢, 石堅歐逐之, 卽詣王宮, 王迎謂曰, 政丞得無以臧獲事來耶, 石堅曰, 臣家臧獲皆已與子, 上若索之, 臣欲明朝如元取來, 石堅庶子完者帖木兒, 仕元有寵故, 因以脅王, 王賜馬慰諭曰, 政丞毋怒, 予將勿取, 忠穆二年, 卒, 完者帖木兒, 元授禮部尙書, 後還國, 宰樞及宗族, 爭置酒邀宴, 時忠惠被執如元, 政丞蔡河中謂曰, 尙書旣知上國與本國事矣, 何故有是變乎, 完者帖木兒曰, 王之被譴, 由左右無其人, 誰不知惡之不可爲, 但阿意順旨, 以固權位耳, 不然, 何至此, 尋被徵, 還于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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