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고려사 여행 21(諱 仁沇)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암 작성일07-01-04 21:21 조회1,743회 댓글0건

본문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충숙왕 11년(1324) 4월
무인(戊寅)에 김인연(金仁沇)으로 지신사(知申事)를 삼고 경사만(慶斯萬) 이규(李揆)로 우·좌대언(右左代言)을 삼았다.
戊寅, 以金仁沇, 爲知申事, 慶斯萬·李揆, 爲右左代言.

충숙왕 11년(1324) 5월
병오(丙午)에 비를 빌었다. 이달에..... 김인연(金仁沇)으로 밀직 부사(密直副使)를 삼았다.
丙午, 禱雨. 是月, ..... 金仁沇, 爲密直副使.

충숙왕 11년(1324) 8월
갑자(甲子)에 상왕(上王)이 전지(傳旨)하기를
“판삼사사(判三司事) 박허중(朴虛中)은 나이 이미 80이로되 오히려 이록(移錄)을 생각하여 이 교구(交構)를 입었으며 한악(韓渥) 원선지(元善之) 김인연(金仁沇)도 또한 범한 바 있어 이미 벼슬하지 말게 하였는데 한악(韓渥)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공연히 일을 보고 있으니 신(臣)의 예(禮)가 없도다. 이제부터 모두 전지(前旨)를 좇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甲子, 上王傅旨曰, 判三司事朴虛中, 年已八十, 尙慕利祿, 被此交構, 韓渥·元善之·金仁沇, 又有所犯, 已令勿仕, 渥等, 略不疑懼, 公然視事, 殊無臣禮, 可自今, 一從前旨.

충숙왕 후1년(1332) 2월
갑자(甲子)에 원나라가 유수(劉守) 보수(寶守)와 전 이문 낭중(前理問郞中) 장백상(蔣伯祥) 등을 보내와 왕에게 명령하여 복위(復位)케 하였다. 왕이 채홍철(蔡洪哲) 임중연(林仲沇)으로 찬성사(贊成事)를 삼고 윤신걸(尹莘傑)로 평리(評理)를 삼고 김자(金資) 김인연(金仁沇)로 밀직사(密直使)를 삼고 ....
甲子, 元, 遣留守寶守, 前理問郞中蔣伯祥等來, 命王復位. 王以蔡洪哲·林仲沇爲贊成事, 尹莘傑爲評理, 金資·金仁沇爲密直使....

충혜왕 후즉위년(1339) 9월
정묘(丁卯)에 지진이 있었다. 정동성(征東省) 원외(員外) 한첩목아불화(韓帖木兒不花) 전 찬성사(前贊成事) 김인연(金仁沇) 전 낭장(前郞將) 노영서(盧英瑞)가 원나라에 가서 왕의 습위(襲位)를 요청하였다.
丁卯, 地震. 征東省員外韓帖木兒不花·前?成事金仁沇·前郞將盧英瑞, 如元, 請王襲位.

충혜왕 후1년(1340) 1월
신미(辛未)에 원나라가 왕을 형부(刑部)에 가두고 또 김인연(金仁沇), 김륜(金倫), 한종유(韓宗愈), 홍빈(洪彬), 이몽가(李蒙哥), 이엄(李儼), 노영서(盧英瑞), 안천길(安千吉), 손수경(孫守卿), 윤원우(尹元佑), 남궁신(南宮信)을 옥(獄)에 가두고 중서성(中書省) 추밀원(樞密院) 어사대(御史臺) 한림원(翰林院) 종정부(宗正府)에 명령하여 잡문(雜問)케 하였다.
辛未, 元囚王于刑部, 又繫金仁沇·金倫·韓宗愈·洪彬·李蒙哥·李儼·盧英瑞·安千吉·孫守卿·尹元佑·南宮信于獄, 命中書省·樞密院·御史臺·翰林院·宗正府, 雜問之

충혜왕 후3년(1342) 6월
○ 경자(庚子) 초하루에 하교(下敎)하기를,
“적신(賊臣) 조적(曹?)이 난(難)을 꾸민 뒤에 과인(寡人)이 <원나라의> 도(都)에 가매 국가(國家)가 근심하고 의심했으며 간신(奸臣)의 잔당(殘黨)이 거짓말을 날조(捏造)하여 난(亂)을 선동하기를 마지 아니하되 시종(侍從)하는 신하가 종시일절(終始一節)로 과인(寡人)의 몸을 협보(挾輔)하였으니 그 공(功)이 막대(莫大)하여 영원히 잊기 어렵도다.... 화평 부원군(化平府院君) 김석견(金石堅)........ 찬성사(贊成事) 김인연(金仁沇).......등으로 1등 공신(功臣)을 삼아 벽상(壁上)에 도형(圖形)하고 부모 처(妻)에게는 3등을 뛰어 봉작(封爵)하고 1자(子)에게는 7품(品)을 주고 아들이 없으면 질(姪)이나 생(甥)이나 여서(女壻)를 대(代)로 하여 8품(品)을 제수(除授)하고 전(田) 100결(結) 노비(奴婢) 10구(口)를 줄 것이며.....
庚子朔, 下敎曰, 賊臣曹?, 哭難之後, 寡人赴都, 國家虞疑, 奸臣餘黨, 捏合虛辭, 扇亂不已, 而侍從之臣, 終始一節, 來輔寡躬, 其功莫大, 帶礪難忘, ......化平府院君金石堅.....成事金仁沇....等, 爲一等功臣, 圖形壁上, 父母妻, 超三等封爵, 一子除七品, 無子, 代姪甥, 女壻除八品, 給田百結·奴婢十口.....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김인연(金仁沇)은 충숙왕조(忠肅王朝)에 호군(護軍)이 되었는데 때에 왕이 참소를 입고 원(元)에 머물렀는데 김인연(金仁沇)이 경사만(慶斯萬) 등과 더불어 왕의 환국을 청하니 심왕(瀋王) 왕호(王暠)의 당(黨)이 이를 미워하여 순군(巡軍)에 가두었다. 뒤에 지신사(知申事)를 배(拜)하고 이어 밀직 부사(密直副使)를 제수(除授)하고 또 찬성사(贊成事)를 더하였는데 왕이 훙(薨)하매 정동성 원외(征東省員外) 한첩목아불화(韓帖木兒不花)와 전 낭장(前郞將) 노영서(盧英瑞) 등과 더불어 원(元)에 가서 충선왕(忠宣王)이 습위(襲位)할 것을 청하였는데 원(元)이 충혜왕(忠惠王)을 형부(刑部)에 가둠에 미쳐서는 이에 김륜(金倫) 등과 더불어 옥(獄)에 갇혔다가 충혜왕(忠惠王)이 환국(還國)하매 공(功)을 녹(錄)하여 1등(等)을 삼고 광산군(光山君)을 봉(封)하였다. 충목왕(忠穆王)이 원자(元子)가 되어 원(元)에 있을 때 사부(師父)인 박인간(朴仁幹)이 졸(卒)하므로서 수서(手書)로 김인연(金仁沇) 및 부원군(府院君) 김영돈(金永旽)·함양군(咸陽君) 박충좌(朴忠佐) 등을 불러 입시(入侍)케 하였으나 재추(宰樞)가 허락치 않는 고(故)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공민왕(恭愍王)이 즉위하매 시종(侍從)한 공(功)을 추념(追念)하여 시(諡)를 증(贈)하고 자손(子孫)을 녹(錄)하였다. 아들은 김원명(金元命)·김속명(金續命)이니 스스로의 전(傳)이 있다.
仁沇, 忠肅朝, 爲護軍, 時王被쾂留元, 仁沇與慶斯萬等, 請王還國, 潘王暠之黨, 惡之, 囚巡軍, 後拜知申事, 尋除密直副使, 又加?成事, 王薨, 與征東省員外韓帖木兒不花·前郞將盧英瑞等, 如元, 請忠惠襲位, 及元囚忠惠于刑部, 乃與金倫等, 繫于獄, 忠惠還國, 錄功爲一等, 封光山君, 忠穆爲元子在元, 以師傅朴仁幹卒, 手書招仁沇及府院君金永旽·咸陽君朴忠佐等入侍, 宰樞不許, 故未赴, 恭愍卽位, 追念侍從功, 贈諡, 錄子孫, 子元命·續命, 自有傳.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보학자료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