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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여행 25(諱 士元 舊名 元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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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 작성일07-01-04 21:40 조회1,6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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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충렬왕 19년(1293) 1월
계미(癸未)에 경상도 안렴사(慶尙道按廉使) 유호(劉顥)가 정리(丁吏) 임대(林大)에게 피살(被殺)되었다. 유호(劉顥)가 일찍이 임대(林大)의 백금(白金) 2근(斤)을 몰입(沒入)하였더니 임대(林大)가 심히 원망하였고 유호(劉顥)가 또 영고(營庫)를 검열(檢閱)코자 하니 영리(營吏) 허반(許頒)과 김언(金彦)이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임대(林大)에게 보고하고 말로써 낚아서[餌] 밤을 타서 찔러 죽이게 한 것이다. 총랑(摠郞) 김원구(金元具)를 보내 가서 국문(鞠問)케 하였더니 김언(金彦)은 김원구(金元具)의 예전부터 아는 이속(吏屬)인지라 김원구(金元具)가 가만히 김언(金彦)을 끌어 화(禍)와 복(福)으로서 달래니 김언(金彦)이 실정(實情)으로써 보고하거늘 이에 임대(林大)와 김언(金彦)과 허반(許頒) 등을 베었다.
癸未, 慶尙道按廉使劉顥, 爲丁吏林大所殺, 顥, 嘗沒入林大白金二斤, 大甚怨之, 顥又欲檢閱營庫, 營吏許頒·金彦, 恐獲罪, 告於林大, 餌之以言, 令乘夜刺殺之, 遣摠郞金元具, 往鞠, 彦, 元具舊識吏也, 元具, 密引彦, 誘以禍福, 彦, 以實告, 於是, 斬大·彦·頒等.

충렬왕 34년(1308) 5월
병술(丙戌)에 이혼(李混), 최균(崔鈞), 김원구(金元具)가 승지(承旨) 권준(權準)과 더불어 심양왕(瀋陽王)의 정한 바 관제(官制)와 비판(批判)을 가지고 원나라로부터 돌아오니 계자(階資)를 뛰[超]고 차서(次序)를 넘은 자는 모두 근행(近幸)과 권세로서 세신(世臣)과 구관(舊官)은 모두 한직(閑職)에 물러섰다.
丙戌, 李混·崔鈞·金元具, 與承旨權準, ?陽王, 所定官制, 及批判, 還自元, 超資越序者, 皆近幸權勢, 世臣舊官, 俱退閑.

충선왕 복위년(1308) 10월
기축(己丑)에 방(榜)을 부치기를,
“왕륜사(王輪寺) 주지(住持) 인조(仁照) 용암사(龍岩寺) 주지(住持) 용선(用宣) 선암사(仙巖寺) 주지(住持) 약굉(若宏) 및 최단(崔湍), 권한공(權漢功), 김지겸(金之兼), 김사원(金士元), 최성지(崔誠之), 환이(桓?), 오현량(吳玄良), 강방언(姜邦彦), 이진(李珍), 강융(姜融), 조통(趙通), 조적(曹힒), 조석(曹碩), 최현(崔玄), 정자우(鄭子羽), 최중공(崔仲公), 문점(文?), 이백겸(李伯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특별한 소환이 있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한다.”
己丑, 貼榜中門曰, 除王輪住持仁照·龍岩住持用宣·仙巖住持若宏, 及崔湍·權漢功·金之兼·金士元·崔誠之·桓?·吳玄良·郭邦彦·李珍·姜融·趙通·曹힒·曹碩·崔玄·鄭子羽·崔仲公·文?·李伯謙外, 餘人, 非特召, 不得入, 又飯僧于壽寧宮. 謁高陵, 以卜地不吉, 囚相地者密直副使致仕姜軒·故?成事, 伍允孚, 壻姜美, 及外孫二人于巡軍, 遂如新陵, 賜酒護作官, 及工徒, 勞之. 始令五部, 點戶.

충선왕 3년(1311) 4월
임술(壬戌)에 조련(趙璉)으로 첨의 평리(僉議評理)를 삼고 채우(蔡禑)로 밀직사(密直使)를 삼고 권한공(權漢功) 권준(權準)으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삼고 박려(朴侶) 이사아(李思雅) 최성지(崔誠之)로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삼고 김지겸(金之兼) 김이(金怡)로 밀직 부사(密直副使)를 삼고 김사원(金士元)으로 평양 윤(平壤尹)을 삼았다.
壬戌, 以趙璉, 爲僉議評理, 蔡禑, 爲密直使, 權漢功·權準, 知密直司事, 朴侶·李思雅·崔誠之, 同知密直司事, 金之兼·金怡, 爲密直副使, 金士元, 爲平壤尹.

충숙왕 5년(1318) 1월
계유(癸酉)에 첨의 찬성사(僉議贊成事) 김사원(金士元)에게 명령하여 온천(溫泉)에서 잡은 새로 대묘(大廟)에서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
癸酉, 命僉議찬成事金士元, 以溫泉所獲禽, 薦于太廟.

충숙왕 6년(1319) 1월
임술(壬戌)에 첨의 찬성사(僉議贊成事) 김사원(金士元)이 죽었다.
壬戌, 僉議贊成事金士元, 卒.

[고려사(高麗史) 지(志)] 충숙왕(忠肅王)

5년(五年) 정월(正月) 계유(癸酉)에 왕이 첨의 찬성사(僉議贊成事) 김사원(金士元)에게 명(命)하여 온천(溫泉)에서 잡은 새짐승을 태묘(太廟)에 천향(薦饗)코자 하는데 사선(司膳)과 전의(典儀)가 이르지 않고 규정(糾正)이 뒤에 이른지라 사원(士元)이 아뢰었더니 왕이 말하기를,
“제사를 먼저함은 근본(根本)에 보답하는 소이(所以)라 내가 몸소 잡은 새짐승을 올리고자하는데 유사(有司)가 그럴 수 있을까보냐.”
라고 하였다. 이 제사에 내수(內竪) 박인평(朴仁平)이 그 새짐승을 훔쳐가고 그 집의 여윈 고기로 대신 하였으나 왕이 능히 죄주지 못하였다.
五年正月癸酉, 王, 命僉議贊成事金士元, 以溫泉所獲禽, 薦于太廟, 司膳·典儀不至, 糾正後至, 士元以聞, 王曰, 祭先, 所以報本, 予躬獲禽以獻, 而有司, 乃爾耶, 是祭也, 內竪朴仁平, 竊其禽, 代以其家瘠肉, 王不能罪.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이대순(李大順)]

이대순(李大順)은 소태현인(蘇泰縣人)이다. 원(元) 나라에 들어가서 총애(寵愛)를 얻어 권세를 부리게 되니 충선왕(忠宣王)이 소태(蘇泰)를 태안군(泰安郡)으로 승격시키고 이대순을 태안 부원군(泰安府院君)에 봉(封)하였다. 일찍이 위득유(韋得儒)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그의 처가 영평궁(永平宮)의 노비(奴婢) 문제로 다투었다. 황제에게 아뢰었더니 하제(下制)하여 언부(쵌部)로 하여금 이를 결정(決定)케 하였다. 이 때에 전서(典書) 김사원(金士元)과 산랑(散郞) 이광시(李光時)가 이 안건을 맡아 위씨(韋氏)를 돕지 않았다. 이대순이 노하여 팔찰(八?) 등으로 시켜 황제의 명이라 칭하고 김사원 등에게 매쳐서 귀양보냈다
李大順, 蘇泰縣人, 入元得幸用事, 忠宣, 陞蘇泰爲泰安郡, 封大順, 泰安府院君, 嘗娶韋得儒女, 與永平宮, 爭奴婢, 白于帝, 下制令쵌部, 決之, 時典書金士元·散郞李光時, 主其案, 不與韋氏, 大順, 怒, 使八콳等, 稱制杖流土元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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