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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절요" 와 "동국통감"의 신무왕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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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인 작성일07-01-05 01:20 조회1,7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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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 즉위한 해를 넘기지 못한 임금은 839년 윤정월에 즉위해서
그 해 7월에 죽은 45대 神武王 뿐이다.

그러므로 즉위년칭원법에 의해 각 왕대별 기사가 빨라도 二年부터 시작되지만,
신무왕을 빼놓고는 某王의 年紀 자체가 통째로 빠지는 임금은 원칙적으로 없다.

그러나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에서는 특별히 閔哀王조를 삭제하고, 그 대신 신무왕조를
그것도 '신무왕 원년'으로 상정해놓고 있다.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의 일반적인 서술형식에
위배되게 신무왕조를 상정하고 통일신라시기에 원칙적으로는 한 번도 없는 '원년'을 두고 있는 것은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다.

44대 민애왕 金明은 838년 정월 제 손으로 옹립한 43대 僖康王을 시해하고 自立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해 2월 바로 金陽이 金祐徵(神武王)을 받들어 왕위를 찬탈한 김명을 토벌하기위해서
청해진에서 군사를 일으켜 이듬해(839년) 윤정월 김명을 주살하고 김우징을 왕위에 세웠다.

그러므로 민애왕의 재위 기간은 838년 정월∼839년 윤정월로, 즉위한 해를 넘겼다.
따라서 "동국통감"이 지향하는 원칙적인 서술형식으로 따진다면 희강왕 3년(838) 다음에는
민애왕 2년(839)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국통감 신라기는 특별히 '원년'을 쓰는
變例를 사용하면서까지 신무왕의 기년을 쓰고 민애왕조를 삭제했다.
이는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이 민애왕에게 정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에 왕을 시해하고 등장한 임금이 민애왕 뿐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찬위한 임금들에게는
"왕을 시해했다" 하여 나름대로 일정한 폄출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이 일단 統緖하여 통일신라의
정통 군주로 형세가 굳어진 뒤에는 왕으로서의 정통을 뺏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다 王代가 설정되었으며, 죽음도 모두 '薨'이라 표현되었다.
그러나 유독 민애왕만은 찬위한 것이 해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통을 부여하지 않고
끝까지 叛臣의 형태로 서술한 것이다.

김부식은 사론에서 민애왕이 희강왕을 시해한 것이나 김양이 민애왕을 시해한 것이나
다 똑같은 것으로 취급하였지만 "동국통감"은 김부식의 이 사론 뒤에 다시 신사론을 달아
김양을 만고의 다시 없는 충신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이는 찬시한 임금이 바로 토벌되지 못하여
정통을 획득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찬시한 일 만큼은 철저히 비난하고
討誅를 촉구해야 한다는 의도를 바로 민애왕의 경우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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