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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사문연원록의 문안공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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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7-01-05 01:34 조회1,9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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耘谷 원천석 總斷, 伏厓 범세동 編輯의 <華海師全> 마지막에 <東方斯文淵源錄>이 있는데

이 "동방사문연원록"에 문안공(휘 양감)에 관한 글이 있다.(광산김씨사 1권 113- 114면에도 있음)

이 글에 "문안공께서 宋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程子의 문하에서 친히 배웠다" 고 하였다.
그러나 이 기록은 후세인의 부회로 보인다.

원천석과 범세동은 문안공 시대로 부터 300년 이상 후세의 사람들이다.

문안공은 1025년경에 출생한 분으로 1032년생인 明道 程顥와 1033년생인 伊川 程이 보다
7. 8년 선배였고 문안공께서 宋나라에 가셨던 1073년 당시 정명도와 정이천은 40대 초반의 관인으로
정명도는 변방의 外職에 있었으며 정이천은 京職에 있었으나 스승인 朱敦이가 이 해에 卒하여
服喪中이었다.

문안공께서 1073년 8월 16일 開京을 떠나 12월에 산동성 登州를 거쳐 開封府에 이른 다음
大相國寺, 興國寺, 啓聖寺, 泗州普照王寺, 杭州天竺寺, 潤州金山寺 등에서
宋나라 神宗皇帝를 위해 祝聖의 齋(불교식 제사)를 올렸고

절강성 항주에 이르러 이 때에 항주통판으로 재직중인 소동파를 만나 교유하고
다음 해 정월 황도로 가서 27일에 황제를 알현하여 의약 및 畵塑工의 지원과
宋臣使의 항로변경을 주청하여 허락을 받고 바로 귀국하였으니
<이 때에 程門에서 수업 하였다>함은 사리에 맞지 않는 설이다.

다만 천하를 周遊하면서 性理의 學風을 體得하고 經傳(경전과 그 해설서)을 求得하여
귀국하신 것으로 여긴다.

참고문헌: 宋 大詔令集 237. 政事 90, 4裔10 高麗.
海東繹史 卷 12. 世紀 12.
中國人名辭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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