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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元命과 金續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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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 작성일07-01-05 09:26 조회1,27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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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 신돈에 등장하는 선조님이시죠.....


<김원명(金元命)>

?∼1370(공민왕 19). 고려 말기의 공신. 본관은 화평(化平). 중찬(中贊) 지숙(之淑)의 손자이며, 찬성사(贊成事) 인연(仁沇)의 아들이고, 속명(續命)의 형이다.
1355년(공민왕 4) 감찰집의(監察執義)를 거쳐, 이듬해 상장군이 되어 반역을 일으킨 기철(奇轍)·권겸(權謙)·노책(盧?) 등을 제거한 공으로 1359년 주기철이등공신(誅奇轍二等功臣)에 서훈되었다.
1361년 홍건적이 쳐들어와 개경을 점령하였을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로서 왕을 모시고 복주(福州:지금의 안동)까지 호종하였으며, 다시 상장군으로서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 수복경성일등공신(收復京城一等功臣)과 신축호종이등공신(辛丑扈從二等功臣)에 책록되었다.
그리고 그가 천거하였던 신돈(辛旽)이 왕의 총애를 받자 1365년 삼사좌사응양군상호군(三司左使鷹揚軍上護軍)에 제수되어 8위(八衛) 42도부(四二都府)의 병권을 장악하였다. 뒤에 오인택(吳仁澤) 등과 함께 신돈을 제거하려는 모의를 하였으나, 발각되어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신돈의 당류(黨類)인 손연(孫演)에 의하여 장살(杖殺)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百氏通譜. 〈朴天植〉

<김속명(金續命)>
?∼1386(우왕 12).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화평(化平). 첨의중찬(僉議中贊) 김지숙(金之淑)의 손자.
공민왕초에 감찰집의(監察執義)가 되어 감찰대부(監察大夫) 원의(元의)와 감찰지평(監察持平) 홍원로(洪元老)와 함께 부정을 규탄하고 법을 집행하며 새로 임명되는 관리도 허물이 있으면 서경(署經)을 거부했으므로 나인과 환자(宦者)들의 미움을 사 파면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어 좌부대언(左副代言)이 되었다.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복주(福州:지금 安東)로 피난할 때 호종한 공으로 신축호종이등공신(辛丑扈從二等功臣)에 녹훈되고 감찰대부에 제수되었다가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다.
1364년에 서북면체찰사(西北面體察使)에서 다시 경상도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어 진해현에 침입한 왜구 3천여명을 물리쳤다. 그 공로로 1365년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제수되고 단성규의보리공신(湍誠揆義輔理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그해 다시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다.
1367년에 평양도도순문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나, 찬성사(贊成事) 최영(崔瑩)의 경상·전라·양광도도순문사의 보직이 불가함을 논하다가 파면되었으나, 우왕초에 삼사우사(三司右使)에 복직되었다.
명덕태후(明德太后:忠肅王妃)의 인척으로서 궁중의 일을 도맡았으며, 또 성품이 청렴하고 강직하여 거리낌 없이 말을 함으로써 주위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하였다.
때마침 반야(般若)의 사건이 일어나 이를 변론하는 자리에서 왕에 대해 불경한 말을 했다고 하여 이인임(李仁任) 등의 탄핵을 받아 처형될 뻔하였으나, 명덕태후의 구원으로 감형되어 1376년(우왕 12)에 문의현(文義縣:충청북도 淸原郡에 있던 옛 지명)으로 귀양가서 죽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閔丙河〉


댓글목록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성봉 (2006-04-22 13:35:39) 
 
종종 좋은 자료를 올려주는

정암일가님! 반갑습니다.

근무지가 지금도 땅끝인가요?

언제 한번 만나도록 합시다. / 성봉.

정암님의 댓글

정암 작성일

정암 (2006-04-23 19:39:13) 
 
반갑습니다.
머얼리서 일가님의 열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현일가님이랑 뵈올날 기다리겠습니다
해남에는 1~2년 정도 더 머물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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