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자랑스러운 명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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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7-01-05 09:31 조회2,96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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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열사의 가계

조부 金聖贍(譜名 應淇)(1824-1892)
조모 玄風郭氏(父 履復)
조모 安聖恩(1859-1940):우리나라 최초 여전도사.

부 金允邦(譜名 彦淳)(1851-1894)
모 金夢恩(茂長人)(1842-1905)

숙부 金允五(보명 容淳)(1853- ):안창호, 이동휘, 박은식, 이갑, 최재학, 유동열과 서북학회의 전신인 서우학회창립(총무), 독립운동, 김구, 안창호, 신채호, 노백린, 이갑, 이동휘, 촤창옥 제씨와 교분.
("백범일지" 172면과 윤경로 著 "안창호 일대기"에 수록됨)
숙모 金敬愛(茂長金氏 父 致瑞)

숙부 金允烈(1891년 卒):장원급제하여 돌아오던 중 장티푸스로 사망.

숙부 金弼淳(1878-1919):우리나라 최초 양의사, 치치하얼 조선인 이상촌 건설과
무관학교 자금조달을 통해 독립군 양성. 안창호와 결의형제.
독립유공자.
숙모 鄭경순(延日鄭氏)

고모 金求禮: 독립운동가.(子 - 독립유공자 서재현, 孫- 서경석 목사)
고모부 徐丙浩(1885-1972):신한청년당 당수, 상해임시정부 내무위원, 대한적십자사 창설,
독립유공자.

고모 金路得
고모부 梁應需:광주 향사리교회 목사, 신사참배 거부.

고모 金淳愛(1886-1996):신한청년당이사, 상해 대한애국부인회 대표,
대한애국부인회 재건대회 주석. 독립유공자.
고모부 金奎植(1881-1950):상해임시정부 초대 외무총장,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
중경임시정부 부주석. 좌우합작운동, 독립유공자.

고모 金弼禮(1891-1983): 정신여학교 교장, 한국YWCA 창설. 신사참배 거부.
고모부 崔永旭(1891-1950):세브란스 卒, 광주 제중병원장, 나환자와 빈민치료에 앞장.
전남도지사(美軍政 下), 호남신문사장.

언니 金函羅(1887 - ):수피아여학교 교사를 역임하고 후에 남대문교회 여전도회를 창설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
형부 南宮赫(1882년생): 전남 광주에서 김철과 함께 독립운동,한국최초 신학박사,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

언니 金美艶 (1889 - ):정신여학교졸.정신여학교 사감.
형부 方合信:세브란스 卒, 醫師.

본인 김마리아(金常眞 1892-1944): 정신여학교졸, 동경여자학원졸, 중국금능대 수학, 미 파크대졸, 시카고대 수학, 뉴욕 콜럼비아대 대학원졸, 뉴욕 신학대졸, 3.1운동과 2.8독립선언 주도,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독립유공자

사촌 金德龍(숙부 允五의 長子):보첩에는 없으나 이기서著 "교육의 길 신앙의 길 김필례 그 사랑과 실천"
P.63 에 있음.

사촌 金世羅(女1885- 1971.숙부 允五의 女)(夫 高明宇: 세브란스 卒, 醫師.):일본 명치대졸.
子 -元永, 女- 鳳京, 鳳凰(서울여대 이사장 역임)

사촌 金一鉉(允邦의 繼子, 숙부 允五의 子)

사촌 金德雲(보명 雲鉉 1911 - .숙부 允五의 子))

사촌 金德鳳(김영, 보명 鳳鉉 1902-1937 숙부 필순의 子):남경의대 卒, 제창병원장.(子 潤國, 鍾國, 泳國 미국居住, 子 成國(1937년생 홍대교수역임), 女 潤玉(1931년생 夫 朴勝燁, 女 박규원)

사촌 金德虎(김억, 보명 虎鉉 1908-1983 숙부 필순의 子):치치하얼 의사. 항일운동. (자손 중국거주).

사촌 金德麟(金焰, 보명 麟鉉 1910-1983 숙부 필순의 子):중국 영화 황제.상하이 영화제작소 부주임,
상하이 인민대표대회 대표, 중국영화작가협회 이사, 항일 독립운동. (자손 중국거주).

사촌 金德象(김강, 보명 象鉉(1911-1984 숙부 필순의 子):미국 정착(자손 미국거주).

사촌 金德弘(1914-1936 숙부 필순의 子): 항일운동을 하다 병을 얻어 22세에 고모부인 김규식씨 상하이 댁에서 졸.

사촌 金우명(김위. 女 1915- ? 숙부 필순의 女):항일운동, 북한에서 번역국 차장.(자소 북한거주).

사촌 金효봉(김로. 女 1919- 현존.숙부 필순의 女): 항일운동, 연안조선군정학교 교수, (현재 북경거주).

고종사촌 徐재현(1906-1999 구례 고모의 子):상해 한인청년당 창당. 독립유공자.

김마리아 열사의 가계를 보면 대한민국정부에서 독립유굥자로 서훈받은 분이 여섯명이며
숙부를 비롯하여 고모 및 사촌형제들이 모두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김덕봉씨의 3남 성국씨 가계에 관한 글이 한국일보에 실렸었으니 다음과 같다.

[홍대 김성국교수 집안] 가족史가 항일투쟁史

[한국일보 2001-02-28]

우리나라에 '명문가'라고 할만한 집안이 있을까. 근.현세사에 이름이 오르내린
세칭 명문거벌들이라고 해야 대부분 친일의 오점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돈 많은 재벌가들이 고작.

그런 면에서 항일투사 김필순(1878~1919)박사를 비롯, 독립운동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홍익대 김성국(63.건축학.김박사의 손자)교수의 집안이야 말로 한국의
대표적 명문가로 손색이 없다는게 사계의 평가다.

■조부 김필순박사
'105인사건' 만주피신 병원 열어 독립군 군자금 기부 日에 독살

세브란스 의학교 1회 졸업생인 김박사는 1905년 형 김윤오와 함께
서울 복숭아골(현 서울역 앞)에 '김형제 상회'를 개설, 의형제인
도산 안창호, 단재 신채호 등에게 비밀회합장소로 제공하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섰다.

김박사는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돼 쫓기게 되자, 일본 유학중인
여동생 김필례(1891~1983)에게 편지를 보내 "속히 돌아와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교육을 맡으라"고 당부한 뒤 만주 서간도 지역으로 피신했다.

그는 이곳에 병원을 세워 모든 수익금을 조선독립군의 군자금으로 기부하며
항일투쟁에 헌신하다, 3.1운동이 나던 해인 1919년 의사로 가장한 일본관동군
특무요원이 건넨 독극물이 든 우유를 마시고 41세로 생을 마감했다.


■김박사 집안의 여성들

조카 김마리아 독립운동 대모

김규식선생등 매제들도 항일


1907년 강제해산된 조선군 부상병동을 치료하면서 민족주의에 눈을 뜬 김필례는
이후 한국 YWCA를 창설, 근대여성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8년 이후 김활란이 주도한 한국 YWCA가 친일로 변질됐을 때도, 그는 끝내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대모격인 김마리아(1891~1944)는 김 박사의 조카.

1919년 도쿄 2.8독립운동과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치른뒤,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및 미국 근화회 회장등으로 활동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3월 순국했다.

김 박사의 매제들도 집안의 가풍을 그대로 따랐다.

여동생 김구례의 남편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인 '소례교회' 서경조목사의
아들 서병호(1885~1972)로 1920년대 상하이에서 교육.기독교 운동을 펼친 공으로
80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또 다른 여동생 김순애의 남편은 다름아닌 임시정부 외무총장과 부주석을 지낸
우사 김규식 선생이다.

■김박사 자녀들

삼남 김덕린 반일영화 주연

큰딸 김위 '임정 외무총장'

김 박사의 삼남 김덕린(1910~1983)은 1930년대 상하이의 '영화황제 김염'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 집안의 반대를 꺾고 배우가 됐지만 피를 속일 수는 없었던 듯,
'대로' '장지릉운' '장공만리'등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반일영화였다.

김 박사의 큰 딸 김위(1915~?)도 조선의용대원을 거쳐 임정의 외무총장을 역임했다.

연세대 박형우 교수는 "애국.애족의 표상이 되는 대표적 가문"이라고 평가했다.


댓글목록

일가님의 댓글

일가 작성일

일가 (2006-07-04 11:36:01) 
 
암담했던 일제암흑기에 신학문을 받아드리고

나라의 자주권을 찾기위해 온 집안이 용기있게

앞장섰던 근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 입니다.

일제의 회유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변절,부일했던

지식인들이 허다했는데 이 가문이야 말로 차별화된 참된 지식인의 표상이라 할것입니다.

우리 집안에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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