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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김씨와 가락김씨가 동족이라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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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宗正 작성일06-12-19 10:05 조회2,1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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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김씨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는 기록은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아들인 金仁問의 묘비문에 있으며 삼국사기를 지은 金富軾은 "新羅古事에 金櫃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金氏로 姓을 삼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신라인은 스스로 少昊金天氏의 後孫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을 김씨라고 한 것이다"고 했으며 김유신의 비문에도 "김유신이 軒轅之裔요 少昊之胤이라"고 하였으며 "南伽倻 始祖 首露는 新羅와 同姓"이라고 하였다. 또 김부식은 "김유신은 王京人이다. 12代祖인 首露는 何許人인지 알 수 없다. 後漢 建武 18년 壬寅(AD 42)에 龜旨峰에 올라 駕洛九村을 바라보고 그 땅에 開國하여 국호를 伽耶라 " 했다고 하였다.

점필제 김종직은 김알지가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으며 혹은 스스로 소호금천의 후손이라고 하였다고 했으며 新羅古誌에 이르기를 김알지도 금관국 수로왕의 후요 소호금천의 후손이므로 성을 김씨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文定昌박사는 그의 저서 <伽倻史>에서 "동방의 김씨는 모두 소호금천씨의 후손이요 金日제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김유신은 김수로왕 후손인데 그 묘비문에 "少昊之胤 則南伽倻始祖 首露與新羅 同姓也"라 하였으며 김수로왕의 외손인 문무왕의 능비문에
"枝載生 - - - 侯 祭天之胤 傳七葉"이라 했으니 侯자 앞에는 투자가 있었을 것이니 곧 투후 김일제의 후손은 7대에 걸쳐 영화를 누렸다는 뜻이다. 김알지는 김수로 보다 24년 뒤에 낳았으니 그 일족일 것이다" 라고 하였다.

소호금천씨의 후손은 祭天金人 즉 金으로 사람을 만들어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후손이 漢나라에서 영달하더니 金王莽이 쿠테타로 漢을 멸하고 新國을 세웠다가 17년 뒤 劉秀에게 패망하였다.(서기 25년) 이에 그 일족의 일부가 김해지방으로 왔고 김해에 정착한 김수로왕의 부친은 김해군 장유면 태정리 부근에 살면서 김수로왕을 비롯한 6형제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김수로는 서기 42년에 출생) 태정리 부근 胎峰에는 胎臺가 있는데 이것은 김수로왕의 胎를 묻은 곳이라 한다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 발견된 중국 왕망시대의 貨泉은 김수로왕의 선친 또는 김수로왕 자신이 왕망의 新帝國 출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傍證이 될 수 있다. 또 김해부근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과 중국화페인 五銖錢등도 그 방증이 된다. 김수로왕의 이름이 靑裔인 것은 소호의 후손임을 암시한다. 소호금천씨의 호가 靑陽이기 때문이다. 또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尊號가 普州皇太王과, 普州皇太后인 점은 중국의 普州와 어떤 聯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漢鏡, 龍鳳環頭大刀등이 유적지에서 발굴되고 있는 점, 그리고 殷나라 사람들 처럼 좌지왕때 卜師가 점을 쳐서 卦辭를 얻은 점 등은 중국과의 연관을 암시해 준다고 하겠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3대 弩禮王의 왕비는 辭要王의 딸 김씨이고 제 6대 지마왕의 왕비는 愛禮夫人金氏로 摩帝國王의 딸이고 9대 벌휴왕의 모친 只珍禮夫人도 김씨이고 조분왕과 점해왕의 어머니 옥모부인인 김구도 갈문왕의 따님인 김씨이니 신라의 김씨는 미추왕이 등극하기 전에도 계속하여 왕비족으로 세력을 갖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김알지가 왕위에 올랐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
<三國志 韓傳>과 <後漢書 韓傳>의 蘇馬시는 우리말로 쇠말치니 치, 支, 智는
인칭대명사로 금알지요 곧 김알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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