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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제단비문(待中公 以下 四世祭壇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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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7-01-05 22:16 조회1,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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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世祭壇碑文

五宗在國中號稱多名門而其而高麗門下侍中修文殿太學士諱流爲中世著
오종재국중호칭다명문이기이고려문하시중수문전태학사휘유위중세저

祖者嘗爲名文之一後孫蕃衍殆遍湖西南諸省所以追遠報本者備矣獨以侍中
조자상위명문지일후손번연태편호서남제성소이추원보본자비의독이시중

公以下五世俱失其兆域每歲功旣成?尊先墓慨五世之不得歲一享也思所寓
공이하오세구실기조역매세공기성요존선묘개오세지불득세일향야사소우

慕非一日矣近俗??築壇而祭先祖爲其欲祭墓乎則無其地欲遂己乎則旣名
모비일일의근속왕왕축단이제선조위기욕제묘호칙무기지욕수기호칙기명

當世而澤流後世不可以無報己也於是義起而爲是象之焉雖非禮之常而求之
당세이택유후세불가이무보기야어시의기이위시상지언수비예지상이구지

神理人情鮮不合矣肆自其門之翹楚永達珪馹永鈺寅洙行洙胥倡于宗以勢戊
신리인정선불합의사자기문지교초영달규일영옥인수행수서창우종이세무

戌十月之朔就羅州內榮山進士公廷彦之壙南築土爲五壇自侍中公以及左贊
술십월지삭취나주내영산진사공정언지광남축토위오단자시중공이급좌찬

成諱仲幹大司憲諱德龍判書諱信佐應敎諱孝忠簡吉而次第祀之其壇之必於
성휘중간대사헌휘덕룡판서휘신좌응교휘효충간길이차제사지기단지필어

三榮阡者爲諸公之子孫世葬于此倣廟食之禮尊族葬之意事未可捨此而他之
삼영천자위제공지자손세장우차방묘식지예존족장지의사미가사차이타지

也諸公事蹟逸而不傳想其位登卿宰職歷淸要勞於王國蔭於家世者歷數代更
야제공사적일이불전상기위등경재직력청요노어왕국음어가세자역수대갱

鼎草而不衰故其綿綿衣纓延至久遠?今稱名門者歸之盖仁孝之風篤厚之意
정초이불쇠고기면면의영연지구원흘금칭명문자귀지개인효지풍독후지의
厥有所受來矣遠祖不忍無享?近者乎祭壇固將如在?墓乎使他人而聞之猶
궐유소수래의원조불인무향황근자호제단고장여재황묘호사타인이문지유

當油然感而歎其追十世之旣遠?文鈺?在傍裔者乎
당유연감이탄기추십세지기원황문옥첨재방예자호

[번역]
오종(吾宗)이 국중(國中)에서 명문(名門)이 많다고 칭(稱)하는데 그 중(中)에 고려문하대중수문원태학사(高麗門下待中修文願太學士) 휘(諱) 류(流)로 중조(中祖)를 삼는 파(派)가 또한 명문(名門)의 일(一)이 된다 .

후손(後孫)이 번연(蕃衍)하여 호서남제도(湖西南諸道)에 편재(遍在)하고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도(道)가 갖추어 있는데 다만 시중공이하오세(待中公以下五世)가 묘소(墓所)를 실전(失傳)하여 매년추(每年秋) 선영묘제시(先瑩墓祭時)에 오세(五世)의 향사(享祀)를 받들지 못하는 것을 개탄(慨歎)을 하여 추원보본(追遠報本)의 길을 생각한 것이 단시일(短時日)이 아니었다 .

근속(近俗)에 간간이 축단(築檀)하여 선조(先祖)를 향사(享祀)하는 일이 있으니 묘제(墓祭)를 하고 싶어도 묘(墓)가 없고 그만둔다면 이미 당세(當世)에 저명(著名)하고 후세(後世) 류택(流澤)하였는데 보본(報本)을 아니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손(子孫)의 도의(道義)로 이렇게 상징(象徵)을 삼는 것이니 비록 상례(常禮)는 아니지만 신이(神理)와 인정(人情)에 비추어 합당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기 그 문중(門中)의 중진 영달(永達) 규일(珪馹) 영옥(永鈺) , 인수(寅洙) .행수(行洙) 등(等)이 종중(宗中)에 제창(提倡)하여 무술년(戊戌年) 십월(十月) 일일(一日)에 나주내영산(羅州內榮山) 진사공정언(進士公廷彦)의 묘소(墓所) 남(南)편을 가려 오단(五檀)을 쌓아 시중공(待中公)으로부터 좌찬성(左贊成) 諱 중간(仲幹) 대사헌(大司憲) 諱 덕룡(德龍) , 판서(判書) 諱 신좌(信佐) , 응교(應敎) 諱 효충(孝忠)에 이르러 차제(次第)로 제사(祭祀)하니 그 단(檀)이 반드시 삼영천(三榮阡)에 있는것은 제공(諸公)의 자손(子孫)이 여기 세장(世葬)하고 있으므로 묘제(廟祭)의 예(禮)와 세장(世葬)의 뜻에 비추어 여기 말고 타지(他地)에 할 수 없는 것이다 .

제공(諸公)의 사적(事蹟)이 유실(遺失)되어 전(傳)하지 않지만 생각하건데 지위(地位)가 卿재(鄕宰)에 올라 청반(淸班)의 직책(職責)으로 국사(國事)에
현로(賢勞)하고 가세(家世)에 적음(積蔭)한 것이 수대(數代)를 지내고 세상이 바뀌어도 애잔(哀殘)하지 않으므로 면면(綿綿)한 관록(官綠)이 오래토록 계속되어 지금도 명문(名門)으로 칭(稱)하게 되니 대개 인효(仁孝)의 미풍(美風)과 독후(篤厚)한 뜻이 전수(傳受)한 바가 있는 것이다 .

원조(遠祖)도 참아 궐향(闕享)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근세(近世)의 조상(祖上)이랴 제단(祭壇)도 각별히 모시는데 하물며 묘소(墓所)이랴 . 타인(他人)이 들어도 의당(宜當) 십세추원(十世追遠)의 정성을 감탄(感歎)할 터인데 하물며 문옥(文鈺)이 방예(傍裔)가 되어 있음이랴 !

추기(追記) 서기(西紀) 一九七九年 乙未 十月 日 삽치(揷峙) 영모재전방(永慕齋前方)에 이단봉안(移檀奉安)하였다


찬(撰) : 방예(傍裔) 金 文 鈺

● 김문옥
상호군공(휘 승진) 후손으로 김문옥(金文鈺 1901~1960) 자는 성옥(聲玉), 호는 효당(曉堂)이다.

아버지 서천공(瑞川公) 기추(琪錘)께서 광주에 거주하다 경남 합천의 현풍곽씨에게 재취(再娶)하여 합천군 용주면(龍州面) 이사리(伊泗里) 일명 조동(釣洞 = 漁翁垂釣之形)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공을 낳았다.

14세부터 무산정사(武山精舍)의 율계 정기(栗溪 鄭琦)선생 문하에서 수학한 뒤 명망이 자자하니 당대의 洪命憙, 林海旅, 鄭寅普, 安在鴻, 卞榮晩 등이 공의 문장을 보고 交友하기를 청하엿다.

1933년 33세 때 양친을 여의고 이듬해인 1834년에 화순(和順) 절산리(節山里)로 옮겨와 祭閣(제각) 영사재(詠思齋)에 자리를 잡으니 사방에서 제자가 모여들었다.

1948년 48세 때 麗順 亂(여수, 순천 난)에 여러 제자를 대리고 김제(金堤) 와룡리(臥龍里)에 표박(漂泊)하여 거기서 강학(講學)하였다.

문집 16권 9책이 있으니 “효당집(曉堂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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