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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평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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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현 작성일06-12-19 10:15 조회2,4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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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평장사(平章事)

고려시대에 있어서 정치의 중심이 된 기구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처음 이름은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이었고 이곳을 상층부를 이루는 재부(宰府)에는 종從 1품品의 중서령中書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 그리고 종從 2품品의 제평장사諸平章事와 종從 2품品의 참자정사參知政事, 정당문학政堂文學,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등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 중 평정사직平章事職에 대해 살펴봅니다.

성종成宗 1년(982)

문종文宗

충렬왕忠烈王

24년(1298)

34년(1308)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첨의부(僉議府)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
내사시랑(內史侍郞)

내사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
(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중서시랑(中書侍郞)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중서시랑동평장사(中書侍郞同平章事)

첨의시랑찬성사
(僉議侍郞贊成事)

도첨의시랑찬성사
(都僉議侍郞贊成事)

혁파(革罷) 얼마 후 복구

중호(中護)

첨의중호(僉議中護)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문하시랑(門下侍郞)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문하시랑(門下侍郞)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약칭 : 평장사(平章事)

평장사(平章事)

찬성사(贊成事)

찬성사(贊成事)

중호(中護)

정원 : 4명(정2품)

4명

4명

4명

3명

충선왕忠宣王 1년(1309)

공민왕恭愍王 5년

9년(1360)

11년(1362)

18년(1369)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도첨의부都僉議府

문하부(門下府)

첨의찬성사
(僉議贊成事)

도첨의찬성사
(都僉議贊成事)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도첨의찬성사
(都僉議贊成事)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

문하평장정사(門下平章政事)

평장사(平章事)

평장사(平章事)

찬성사(贊成事)

찬성사(贊成事)

4명

4명

◆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시랑侍郞 :차관직次官職, 평장사平章事 : 재상宰相)
평장사직平章事職의 공식적 명칭이라 할 수 있으며 기타 중서시랑中書侍郞, 문하시랑門下侍郞 및 평장사平章事, 평장平章, 그리고 식화지食貨志에 보이는 중서평장中書平章, 문하평장門下平章 등의 명칭은 그리 비중 있는 용어로 보기는 어렵고 약칭에 속한다 하겠다.

◆ 중서시랑동중서문하시랑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侍郞平章事(내사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 전기에 많이 쓰임.
본래 동중서문하시랑평장사同中書門下侍郞平章事는 중국에서 단순히 재상직宰相職임을 나타내는 말로 붙이던 용어나 고려에서는 독립직獨立職으로서 중서성中書省과 문하성門下省의 두 평장사平章事를 겸임하고 있었음을 표시하는 것으로 본다. 중서시랑동평장사中書侍郞同平章事,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는 약칭이며 동평장사同平章事들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라 표기되기도 하고 그냥 평장사平章事라고도 한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고는 동평장사同平章事도 넓은 의미로 평장사平章事로 쓰나 두 칭호는 엄연히 구분되는 관직이다.

◆ 변화 양상
무신정권기에도 기본 틀이 그대로 유지되어 약칭 사용빈도가 많이 늘어난 것 외에 거의 같은 양상이다. 그러다 충열왕忠烈王 1년에 첨의부僉議府가 발족하면서 첨의부시랑찬성사僉議府侍郞贊成事와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단순화되어 얼마 동안 그 약칭인 찬성사贊成事와 함께 쓰였다. 그 후 충렬왕 24년에 충선왕忠宣王에 의하여 잠시 혁파되기도 하고 충렬왕忠烈王 34년에 다시 충선왕忠宣王에 의해 일시 첨의중호僉議中護로 개칭, 충선왕忠宣王 1년경에 그전으로 돌아가는 등 심한 변동을 겪거니와 이후에는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하나만 남아 줄곧 사용된다. 그 뒤 공민왕(恭愍王)의 반원개혁정책反元改革政策으로 구제舊制로 돌아가기도 하고 문하부門下府로 바뀜에 따라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불리기도 하면서 찬성사제贊成事制는 그대로 이어진다.

◆ 정원定員
평장사平章事의 정원定員은 충렬왕忠烈王 34년에 충선왕忠宣王이 그 명칭을 첨의부僉議府로 바꾸면서 3명으로 줄였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4명이었다. 그러나 4개의 평장사 직에 고루 4명이 임명된 것이 아니라 하나 또는 두세 직호에 단수, 혹은 복수로 제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4직職 4명의 범위 안에서 적절히 조절해 가는 제도였던 듯 하다.

◆ 서열序列
성종成宗과 목종조穆宗朝의 얼마 동안까지는 내사문하평장사內史門下平章事(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중에 전자가 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목종穆宗 후반에 양자간 차서次序가 바뀌는데 이는 승진사례나 공식 기록에 후자가 먼저 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평장사平章事와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중에서는 후자가 앞선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승진양상을 보인다.

- 전체 서열 :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첨의시랑찬성사僉議侍郞贊成事와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중에서는 전자前者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 직능과 위상
다른 재상과 함께 직접 국왕과 국정을 논의하거나 자신들의 논의한 사항을 국왕에게 건의하는 의정기능議政機能이 가장 기본적이며 다른 하나는 상서육부尙書六部의 판사判事를 맡아 국무를 총괄하였으며 궐위闕位 되는 때가 많아 그와 함께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직하여 수상首相, 총재?宰의 기능도 하며 비상시에 군사 지휘권을 맡기도 하고 외교사절로서 기능하기도 하며 기타 고위직을 겸직하였다. 제 2의 재상宰相인 만큼 그에 따라 경제적 대우 등에 있어서 언제나 문하시중門下侍中 다음 대우를 받았고 이들에게 正1品 명예직인 삼사三師 삼공직三公職이 흔히 수여되었다.

◆ 고려전기 (성종成宗 1년, 982~의종毅宗 24년, 1170) 평장사직平章事職의 운영실태
총 131명이 확인되었고 대체적으로 위와 같은 직능과 위상을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진급한 인원은 25명으로 1/5에 불과했다.

◆ 무신집권기武臣執權期(명종明宗 1년, 1171~원종元宗 15년, 1274) 평장사직平章事職의 운영실태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에 무인집정武人執政으로 인해 관제官制의 운영이 예전 같지 않았으나 나름대로의 기본적 틀은 유지되었다. 이 기간에 평장사平章事는 87명이나 임명되어 전보관계轉補關係 역시 전대와 비슷하게 주로 50사례로 참지정사參知政事의 승진자리가 되었다.

◆ 고려 후~말기(충렬왕忠烈王 1년, 1275~공양왕恭讓王 4년, 1392) 평장사平章事(찬성사贊成事)직職 운영실태
이 시기는 원元의 간섭기로 국내 정정政情의 불안으로 관제官制에도 심한 변화가 있던 시기다. 찬성사贊成事를 제수받은 이는 211명이나 되나 이것은 관제의 문란과 관련 깊어 보이고 요직에의 겸직사례도 매우 적다. 전보관계轉補關係는 참리參理, 평리評理(참지정사參知政事)로부터의 승진이 비율은 적어졌어도 주류를 이룬다. 상서성尙書省이 오랫동안 폐지되었던 상황을 반영하여 좌복야左僕射에서 승진한 사례는 2사례 뿐이고 대신 지위가 크게 상승한 삼사좌三司左우사右使와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등에서 승진하였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꽤 많아진 것이 특기할 사항이다.

첨의중찬僉議中贊(정승政丞, 시중侍中)로 임명된 찬성사贊成事의 사례가 47사례로 대폭 늘어났다, 또한 찬성사贊成事의 지위가 높아져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승진하고 있는 현상도 이전과 다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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