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문숙공파조 諱 주정이하 7世位 壇所와 追遠齊

페이지 정보

작성자 금학 김용휴 작성일06-12-19 10:18 조회1,684회 댓글5건

본문

▼ 문숙공파조 諱 주정이하 7世位 壇所와 追遠齊
111-1.gif

▼ 추운재:전남 보성군 보성읍 옥암리 산 48번지(星谷)


222-1.gif

파조 周鼎(주정, 1228-1290)은 광산김씨 14世로 고려 고종 15년에 조청대부 금오대장군 金鏡亮(김경량)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의 초명은 之淑(지숙)이다. 한편 장남 須(수)는 문정공파 파조 台鉉(태현)의 아버지가 된다.

주정은 문과 장원급제로 출사하여 원나라에서 고려에 원병을 청할 때 행종도감사로 왕을 호종하고 원나라에 들어가 반군을 평정시켜 좌부승지에 기용되고, 그 뒤 몽고군이 고려를 쳐들어오자 명을 받고 출정하여 물리쳤는가 하면 충렬왕 때 우리 역사상 최초로 일본을 치러가다 바다에서 갑자기 돌풍을 만나 많은 병사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계책을 세워 큰 참변을 막기도 한 그는 김방경이 공을 세우고도 유배되는 것에 상소하여 풀려나게 하였다.

그는 평소 공명정대한 벗이 아니면 사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의에 야합하지 않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였다. 벼슬은 상장군, 보문각 태학사, 판삼사사에 올라 문무를 겸전한 광주(광산)인이다.

文肅(문숙)이라 시호가 내려졌던 그를 후 손들이 파조로 섬겨 문숙공파가 형성되었다. 슬하에 충숙공 深(심)과 시중공 流(류)와 2남 2녀를 두어 류는 시중공파조로 갈린다..

여기서 잠시 ‘고려 때 문숙공파가 왜 광주를 빛냈는가’ 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이렇다. 주정의 장남 深(심)과 심의 장남 石堅(석견)이 化平府院君(화평부원군), 석견의 장남 粹(수)는 海陽君(해양군)으로 봉작을 받았다. 화평이란 광주가 화평부, 해양은 해양현이었다. 그러니 3대가 광주 고호로 봉작을 받았으니 그 어찌 가문만의 빛이겠는가.
봉작이란 단지 개인만이, 가문만의 영예가 아닌 고을의 영예다. 그것은 국가의 충에 대한 척도의 표징이기에 더 그렇다. 그것도 국란 공신이다. 그래 ‘충신 집안에 충신 난다’는 말이 나왔던가. 문숙공도 국란공신, 자손들도 국란에서 공을 세워 광주 고호로 봉작을 받았으니 고려시대에 광주를 빛낸 가문 중에 가문, 광산김씨 문숙공파가 아닐 수 없다. 나라에는 공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공록은 후손들이 무한으로 누린다. 그렇지만 조상의 잘못은 천추에 미친다. 그래서 백성이 공이 있으면 상과 품계의 예우는 항상 따른다. 그래서 살아 최상은 봉작이요, 사후의 우러름은 시호다. 봉작과 시호는 후손들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그 손들이 잘못하면 도리어 조상에게 욕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하는 우리 조상님들의 깊은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에 가장 큰 욕이 조상을 욕 먹히는 것이 제일 큰 불효라 하였다. 그래서 언행과 공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결행하지 않는 것이 명문가 자손들의 불문율이었다.

살아서 경대부나 귀인을 公(공)이라 하고, 뚜렷한 공신에게는 君(군), 공이 크고 왕의 친신에게는 府院君(부원군)에 봉하여 그의 초상을 그려 벽에 걸어 문무백관의 우러름을 받게 하였던 벽상공신이다..

벽상공신이 화평부원군 부자가 나왔다. 그 어찌 광주만이 빛이겠는가. 고려 吏典(이전, 관리의 법)에 부원군을 책록 받을 자는 ‘서자나 장리의 손은 안된다’고 명문 되었다. 서자는 첩의 아들이요, 장리는 나라 돈을 훔쳐 먹는 관리다, 장리의 손에겐 봉작도 못주게 하였던 것은 무엇을 의미함인가. 참으로 오늘날과는 너무나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단면이다.

그래도 우리 조상님들을 폄하시킬 사람들이 있는가. 이 공신에도 국란과 정란으로 구분된다. 국란은 나라의 사직이 위태로운 변란이 닥쳤을 때, 정란은 왕을 추대하기 위한 일이나 정권 보호차원의 거사. 그러니 광주5. 18민주화 운동 때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살상을 감행했던 핵심들에게 주어졌던 직과 훈장과도 같은 일과 더러는 폐정과 폭군 등을 몰아내기 위한 거사이지만 그 의미는 전적으로 다르다.

댓글목록

종정님의 댓글

종정 작성일

종정 (2005-06-17 15:02:39) 
 
문숙공 휘 주정 선조님에 관한 값진 글 잘 읽었습니다.

김용휴님은 현재 화순군 동면에 거주하고 있으며
시인이며 문인협회 회원이고 향토사학자 입니다

금학님의 댓글

금학 작성일

금학 (2005-06-19 02:07:42) 
 
글이란 한번 게재되면 누가 볼지 모르는 것이다.
말 또한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사실 우리 조상님들이 立身입신하실 당시는 정작 자신이 입을 잘 못 놀리면
애비는 물론 조상까지 욕을 먹힌다 하여 세치 혀를 함부러 놀리지 않는 것이 사댜부가의 기본.
그러니 감히 상것들이 어찌 양반을 입에 올렸으리요.

거기다 문숙공파 장자로 내리 3대가 봉작을 받은 임금의 친신으로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발없는 말이 천리 가는 세상에. 그것도 관직도 근거없는 손들이라면 허무맹랑하다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같이 변호살 사면 면죄가 되는 세상이라면 몰라도 그 전에는 분명하게 그렇질 않았다
올바른 가문이라면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려드는 자 있겠는가.
만약 있다면 그는 분명 그 손이 아니리. 하다못해 상것이라 할지락도 그리하겠는가....

그런데 하물며 양반이라 하면서 자신의 직접 조부가 아니라고 욕이 되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과연 양반손이겠는가. 그 손들이겠는가.
자신이 조상들보다 더 훌륭하였더라도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은 부끄러울 일 아닌가.

우리 다시 조상님에게 욕되게 하지 말았으면 어떨까 덧붙인다.

시중공파의 무한한 발젼을 기원합니다.

孤巖/準一님의 댓글

孤巖/準一 작성일

孤巖/準一 (2005-06-19 21:08:25) 
 
운영자님께 부탁말씀 드립니다.
문숙공은 시조공의 13세손이 아니고 14세손 입니다.
대종회 모든 유인물이 14세손으로 수록되어 있고 화평부원군파보에도 14세손으로 수록되어 있으니
14세손으로 교정해 주시기를 부탁 합니다.
또 오타가 있어 교정을 부탁 드리옵는것은 충령왕이 아니고 충렬왕으로 고쳐주시고 경량의 차남 주정 이라고 수록하였으므로 장자 수 라고 하지말고 장남 수 라고 교정을 부탁 드리고 문숙공 이하 7대단소 사진도 월간 광산뉴스에 사진 아니면 화평부원군파보에 문숙공이하 7대단소사진 또 그렇지 않으면 화평부원군파 성곡지에있는 문숙공이하 7대 산소를 수록해야지 사진이 옛날 사진을 이용되어있어 보기에 좋지 않고 선조님께 불경 스러울뿐입니다. 교정을 부탁 드립니다.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운영자 (2005-06-19 23:20:18) 
 
금학 김용휴 일가님의 요청에 의해 오타 정정 되었습니다.
또한 사진은 화평부원군파보에 문숙공이하 7대 단소사진을 조만간 입수하는되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孤巖/準一(님의 댓글

孤巖/準一( 작성일

孤巖/準一 (2005-06-20 14:37:37)

용휴 일가님 안녕하세요.
좋은글 올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글 올려 주세요.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소원 성취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보학자료 목록

Total 438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