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군 휘 한로 부친의 휘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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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7-04-03 15:50 조회2,082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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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군 휘 한로(漢老)는 낭장공 휘 규(珪)의 후손으로
고려 우왕 9년(1383) 계해방(癸亥榜), 을과(乙科)에 장원급제하였다.
-당시 지공거(知貢擧 고시관)는 문하평리(門下評理) 우현보(禹玄寶)와
동지정당문학(同知政堂文學) 이인민(李仁敏)이었다-
아버지는 공민왕 17년(1368) 송산친시방(松山親試榜) -幸九齋親試- 에 급제한
증 좌찬성 휘 자빈(子贇)이며
兄은 안성군수를 지낸 휘 소우(蘇雨)이다.
정묘대보, 병자대보, 기묘대보, 한성대보와 대종회 홈페이지 분파도에
광산군 휘 한로 부친의 諱를 빈(贇)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오류이므로
낭장공파종중에서는 앞으로 보첩을 수보할 때 문헌에 의하여 휘를 子贇(빈)으로 정정하기로
했으며 또 형의 휘 소(蘇)는 정묘대보에 의하여 휘 소우(蘇雨)로 바로잡기로 하였다.
휘 한로 부친의 휘를 자빈(子贇)으로 기록한 문헌
* 동문선(東文選) 제 103권 근사제일고 발(近思齊逸藁 跋)
< .... 光山 金子贇 仲彬 .... > (仲彬은 字)
* 조종운저 씨족원류(氏族源流) 1991년 초판본 201면
*국조방목(國朝榜目) -규장각소장본을 1971년에 국회도서관에서 축소영인 발행 -
부록 <高麗朝科擧事蹟> - 麗季各年文科榜目-
위 책 521면 공민왕조 戊申松山親試榜 김자빈 급제기록 <.... 金子贇 光州人 .... >
위 책 528면 禑王朝 癸亥榜 김한로 급제기록 <... 金漢老 光山人 父 子贇 ... >
* 광산김씨사 1권 180면 < 金子贇 ...>
그 외 전고대방, 문헌비고, 국조문과방목 등.
*휘 한로 부친의 휘 子贇의 발음은 “예쁠 빈, 또는 예쁠 윤" 인바
낭장공파종중에서 (한글)음을 자빈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타파애서도 자빈으로 표기해야 한다.
댓글목록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贇"자의 음은 빈,또는 윤이 맞다고 여긴다.
전 충남대 柳正基 교수 감수의<康熙大玉篇> (1978년 11월 民晶社 간행) 295면에
"贇" 의 한글음을 "빈"으로 기록하고 예쁠빈 (美好貌)이라 하였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에서 펴낸
<韓國漢字語辭典 > ( 단국대학교출판부 1997.12.01) 4권 3150면
(자번 27335) 贇 : 一 빈 (篇 . 玉篇 즉 字典) 音 賓 (bin)
二 윤 (廣 .廣韻) 於倫切 眞(yun)
同字 貝斌 一 사람이름 빈(人名) - 資治通鑑 (漢 建安 12)黃巾殺濟南王 贇
二 예쁠 윤(美好) 아름답다 ,또는 그 모양 (廣隕)
(자번 2336) 貝斌 : 빈 贇(27335)과 同字
<大漢韓辭典> (敎學社 1998, 9,10) 李家源, 安炳周 監修 (漢韓辭典編纂室 編)231면
贇 : 예쁠 빈(윤)
[ 贇 빈과 ] 문과와 무과를 아울러서 실시하는 과거.<조선효종실록 4, 원년 6월 丁未>
淑能參奉陳翊聖上疏 請設贇科 廟堂以爲不可創設 上從之(贇科者 文武備具之謂也)
[贇之 윤지] 朝鮮 趙邦彦의 字
"贇"자를 "빈"으로 발음한 例
金贇吉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태조, 정종, 태종, 세종실록)에 22건이 나오는데
김빈길로 국역하고 있으며
樂安金氏족보에 金贇吉을 "빈"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북 진안군 안촌면 백화리 하이촌(下梨村)에 있는 華川祠에서 음력 2월 15일에
金贇吉 장군의 제향이 있는데 이 때 김빈길 장군으로 발음하고 있다.
국역본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樂安郡편에
궁실】 .... 고을 사람으로 절제사(節制使)가 된 김빈길(金贇吉)이
부민(部民)들을 거느리고 토성(土城)을 쌓았고,
인물】. . . .본조 김빈길(金贇吉) 재력(材力)이 사람 중에 뛰어나 병졸에서 일어나 여러 벼슬을 거쳐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에 이르렀으며 왜군과 여러 번 싸워 이겨서 벼슬이
검교정승(檢校政丞)에 이르렀다. 시호는 양혜(襄惠)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6권 (국역본)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우거】 본조 김빈길(金贇吉) 현의 서쪽 7리 남짓한 곳에 묘비가 있다.
순천시 樂安邑城(사적 제 320호) 소개편에도 김빈길로 표기하고 있다.
** 金贇吉장군운 낙안김씨측에서는 김빈길로 고성김씨측에서는 김윤길로 발음하고 있다.
(낙안김씨측과 고성김씨측에서는 김빈길 장군이 서로 자기 집안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견해입니다.
강희자전(康熙字典)을 비롯한
<廣韻><集韻><類韻><龍龕手鑑>등의 책에는
'美好貌'의 뜻에는 모두 "於倫切"로 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명(明)나라 때 매응조(梅膺祚)가 지은 자신인
<字彙貝部>에 "贇, 卑民切, 音賓. 美好貌. 又人名." 이라고 나오며,
명나라 때 장자열(張自烈)이 짓고 청(淸)나라의 요문영(寥文英)이 편집, 간행한 <正字通, 貝部>에
"補京切, 音賓. 美好貌. 又人名."이라고 나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자서인 정조(正祖)때 편찬된 <全韻玉篇>에
"(빈) 美好貌"라고 나오며,
1915년 최남선(崔南善) 등이 편찬한 최초의 근대 자서인 <新字典>에
"(빈) 美好貌"라고 나옵니다.
이를 근거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빈'으로 통용되어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자의 음을 정할 때, 기본적으로 중국의 운서(韻書)를 토대로 하고 있으나,
어떤 경우에는 한국의 통용음과 괴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류가 분명한 경우에는 사전을 편찬할 때 바로잡아 수록하게 되지만,
때로 오랫동안 통용되어 이미 일상어로 쓰이게 된 경우에는 통용음으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명나라의 학자 매응조(梅膺祚)가 편찬한 자서(字書), ≪자휘(字彙)≫ 에
『贇 卑民切 音賓 美好貌 又 人名 後唐死節傳 有程福贇
(贇은 卑(비)와 民(민)의 반절이다. 음은 ‘빈’으로 ‘아름다운 모양’이다.
또 ‘사람이름’으로, 후당〈사절전〉에 ‘정복빈’이란 자가 있다.』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