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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議公派譜次序 (1938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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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7-07-17 09:26 조회1,6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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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생략]


옛적에 곽숭도(郭崇?)가 곽자의 (郭子儀)의 묘소를 돌보고 적추밀공(狄樞密公)이 양공(梁公)을 조상으로 하지 않은것은 그 당시의 문헌이 믿을수 없어 의심이 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전신(傳信)하는 것은 천고에 불멸하는 전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김씨가 광산을 본관으로 한 이후에 혁혁한 동방대성으로 단연 갑족이라 칭하였는데 홀로 우리파가 중간에 영체되어 능주에 사는 일가를 알지 못하여 근백년동안 사람을 대함에 어디서 온 김씨인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비극이 아닐수 없다

다행히 우리 집에 200년전 호적이 있으니 호적은 원래 추호도 허위로 작성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능주 호적지를 찾아가 보니 옛노인들 의 전설로 300년전의 초빈골 산막 정자터등 고적이 소상한 것이 불을 본것 같으니 만일 당세에 덕이 있고 명망이 있는 가문이 아니면 어찌 이와같이 역력히 전하여 올것인가!

지난번에 족숙 창수(昌洙)씨가 나에게 300년전 호적과 지주의 필적을 보였는데 모두 우리 선조의 관작 함자등 유사(遺事)를 기록한 것이 고로(古老)의 전설과 서로 합치하니 우리 선조의 신령이 가만이 명명(冥冥)한 가운데 도와 주신 것이 아닌가? 하여 기쁜 생각에 눈물이 글썽하였다

세게(世系)를 서술하고 문자를 수합하여 파보를 한 것이 해가 있었는데 거년 겨울에 족조 찬현(燦鉉) 씨가 와서 대동보 이야기를 하기에 내가 일어나서 능주에 갔던 일을 보고하니 족조께서 듣고 감탄하여 마지 못하였다

곧 강추위를 꺼리지않고 같이 능주에 가서 고적을 시찰하고 기뻐서 이르되 이제는 우리 선조의 사적을 알만하다고 하셨다

구보를 살펴보니 우리 파족이 적지 않은데 동서로 흐터져 그 얼마인 줄을 알지 못하고 이제 이러한 잔문 고족(孤族)으로 불가불 선대를 빛내고 후손을 유복하게 하여야 되겠는데 대동보는 할 수없으나 파보를 하는 것이 옳다 하고 곧 수단을 받어 종족을 수합하여 보니 호수는 30호 미만이고 인구는 70명 미만이니 아- 슬프도다 인쇠에 부쳐 수월이 못되어 완성하니 제종의 적극적인 근로에 의하여 쉽게 이루어 진 것이다

바라건데 제족은 종족을 돈목하는 의초와 선조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선조의 아름다운 사적을 떨어뜨리지 말 것이다

여기 그 전말을 써서 후일에 이어서 수보하기를 기다린다

찬현(燦鉉)씨는 우리 조부님과 유복 지친으로 그 조부 문우(文祐) 씨가 직장공파로 출계하였으나 비록 파는 다르나 근본은 잊지 않는 성심으로 이일을 감독하였으므로 끝에 써서 그 성의를 알린다.

옥사(日政)후 29년 무인(戊寅) 사월(四月) 하순(1938년)

불초 후손 용주 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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