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시중공파 계축보 서문(19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7-07-28 16:35 조회1,704회 댓글0건

본문

百世를 이으고 九族을 친히함은 족보의 간행이 으뜸이다.

무릇 人物의 태어남이 물로 보면 一源에 百派요 나무에 비하면 한 뿌리에 만 가지다.

족보가 아니라면 宗派와支派가 문란해지기 쉽고 昭穆이 차례를 잃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제 윤기가 무너지고 의리가 망가져서 禽獸(금수)와 다를 바가 거의 없게 되었으니 世道를 살펴볼때 통탄스럽고 슬픈 시대이다. 우리 光金의 씨족은 王子公으로부터 후손이 번창하여 벼슬이 잇달아 찬란하고 도덕있고 經論을 갖춘 분이 가끔 배출되어 東國의 으뜸이 되었다.

중세에 이르러 文肅公의 높은 行義와 위대하신 업적이 고려사에 실렸고 五世를 지나 弘文應敎公이 羅州西外로 오시어 사니 그 후예가 大玉이나 天球 같은 보배마냥 문장과 經學으로 上庠(상상)에 오르기도 하고 조정에서 날리기도 하여 열 손가락으로 세어도 한 두 번만 꼽았다 펼 정도가 아니다. 가위 문창성의 府庫(부고)라 할 수 있으나 나주 西外의 名門으로 유명하다.

흥망과 성쇠는 天理이니 무엇을 恨하리오.
지난 乙亥년의(1875)의 京鄕合譜는 질책이 방대하여 너무 疏略(소략)했던 感이 없지 않았고 癸巳년(1893) 봄에는 내가 編校에 참여하여 諸族(제족)의 논의를 수합해서 世譜 약간편을 만들었는데 그 역시 세밀함을 다하지 못하였다.

지난해 秋享을 지낸뒤에 族弟 泳懿(영의)가 修譜를 맨 먼저 提唱하면서 筆削(필삭)을 春秋筆法으로 하여 영원한 후대에 전하고 근원을 더듬어 올라 派類를 밝히고 처음부터 신중히 하여 끝을 잘 마치자고 했다 이는 모두가 그사람의 혈성이 激(격)하여 입으로나온것이다.

그러자 공론이 합하여져 고루한 나에게 교정의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나이가 七十이 되어 神魂이 어지러우니 일을 잘 살피지 못할까 두렵다.

그러나 혹시 그전 교정이 잘못되고 뒷교정이 잘되었다면 지금의 得으로 전의 失을 相殺할수 있을런지? 나를 죄할자도 譜中人이요 나를 알아줄자도 譜中人이리라.

바라건대 우리 宗族은 더욱 힘을써 지금으로 부터는 蘇老泉의 譜序처럼 孝悌의 마음이 油然하게 나오고 范文正公의 祖宗이 보면 똑같은 자손이란 교훈을 생각하여 맹세코 규범이 되어 후손의 앞을 열어주고 前人들의 공보다 많은 공을 세웠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錦西의 淸族이 어찌 沮土(저토)(周의故居地)에 爪?(조질)의 신령한 복조마냥 家聲을 昌大하지 않겠는가! 이것으로 거듭 당부하는 바이다.

後孫 斗三 謹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보학자료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