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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공파 무진보 서문(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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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7-07-29 13:34 조회1,80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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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는 씨족의 역사이며 종족의 결합이다. 中古以前에는 종족의 수가 많지 않고 따라서 거주하는 지역이 국한되어 있거나 부락이 인접되어 있으므로 항시 聲氣가 상통하고 哀慶을 같이하였지만 中世以後로 그 수가 점점 번성하고 주거가 분산되어 親誼가 疏遠하게 되고 더욱이 근대에 와서는 산업의 발달에 따라 경향각지로 擴散(확산)되어 同祖의 자손이 거의 남남같이 되고 말았으니 痛歎할 일이 아니랴! 여기에 종족을 수합하고 돈목을 증진하고자 하는데 수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광산김씨와 같이 종족이 ?大하여 그 수가 不億인데는 全?의 수보가 불가능하며 수보한다 하더라도 다수의 闕漏를 免키어려운것이다.

우리 광김의 수보개력을 살펴보면 肅宗三年丁巳(1677)의 瑞石譜와 同十一年丁卯(1687)의 竹泉譜와 英祖二十三年(1747)의 丁卯大譜와 正祖六年(1782)의 壬寅譜와 高宗十三年(1876)의 丙子大譜와 己卯(1939)의 長城大譜가 있으며 辛卯(1831)辛亥(1851)丁巳(1917)己亥(1959)의 文肅公派譜가 있고 癸巳(1893)癸丑(1913)★甲午(1954)乙卯(1975)의 侍中公派譜가 있다.

그러나 대보는 물론이요 파보에 있어서도 매양 疏略된 사례가 不少하니 或은 周知不及으로 時期를 逸失하였거나 혹은 소파의 형성으로 합보를 不肯하거나 또는 스스로 脫落하는 등 완벽을 기한 보첩은 거의 볼수 없다.

그리고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인사의 변동이야 말할수 있으랴! 지난 乙卯修譜後 於焉十餘星霜을 지나는 동안 派譜續修의 논이 대두하여 오다가 지난 丙寅十月祭後公事에 族姪 正根 유수의 發議 滿場一致 可決되어 部署를 分定하고 翌年 丁卯二月에 光州市花亭洞에 譜所를 두고 신문 宗報각시도종친회를 통하여 수보의 요지를 통고하였던바 약반년여에 收單이 집합되어 무려 一萬八千餘單에 達하니 이는 前古 未曾有의 集大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前記十數次의 大譜 派譜를 一一이 蒐集?考(수집참고)하여 中世의 闕漏된 곳은 補完收錄하고 錯誤(착오)된 곳은 是正하며 자손을 정리하여 總五卷으로 편성하여 翌年 정월에 登梓(등재)하게 도었으니 이는 任員及派有司 各位의 적극적인 협조와 同譜諸宗의 열렬한 애족심이 일맥상통한것이다.

특히 總務 興洙 校正 正根 淵水의 헌신적인 노고에 哀心으로 감사하며 아울러 勉齋 時鉉 栗浦 權洙 두분의 滅私奉公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事?가 巨重하고 力量이 徵弱하여 編輯過程에 만전을 기하지 못할까 小心競競하였으나 만일의 錯誤가 있다면 諸宗의 諒解를 구하기 전에 깊이 죄책을 느끼는 바이다.

이제 同譜諸宗은 더욱 同祖의 同孫임을 실감하고 尊祖睦族의 정신을 加一層 發揚하여 전통적 吾門 淸族의 名聲을 다시 빛내도록 相互勉勵(상호면려)하기를 바라며 이로써 自警하는 바이다.


後孫 永載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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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  1957년의 정유대동보(일명 한성대보)와
    1783년에 간행한 문숙공파보인 계묘보(일명 공주보) 및
    1933년의 밀직사사공파 癸酉譜가 더 있습니다.

    무진보 서문에서 '前記十數次의 大譜 派譜를 一一이 蒐集?考하여'라고 했으나
    누보된 밀직사사공 자손만 무려 4천5백여명이며  심지어 1975년에 간행한 을묘보에
    등재되어 있는 자손들도 무진보에는  다수가 누보되어 있습니다.

 * 서문을 쓴 영재씨는 밀직사사공파 도유사로 족보편찬위원장이었는데
    1957년에  간행한 정유대동보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삼사공(휘 승사)파를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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