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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득성 연원(金氏 得姓 淵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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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8-02-04 20:18 조회2,5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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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득성 연원(金氏 得姓 淵源)

김알지 신화(金閼智 神話)

김알지 신화는 고려 인종23년(1145)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본기(新羅本紀) <탈해이사금조(脫解尼師今條)>와 미추이사금조(味鄒尼師今條)에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있으며

고려후기 충렬왕 7년(1281) 일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이(紀異) <김알지탈해왕대 (金閼智脫解王代) 條에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있다.

위 두 고서(古書)에서는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에 대해 부분적으로 조금 다르게 기술(記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본기(新羅本紀) <탈해이사금조(脫解尼師今條)>에서는 ‘탈해왕(脫解王) 9년 3월에 왕이 밤중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이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호공이 시림에 다다라 보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듣고 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 보니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 보낸 것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으니, 그 아이는 자라감에 따라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서 그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였다. 또, 금빛 궤짝에서 나옴을 연유로 하여 성을 김(金)씨라 부르고, 처음 발견되었던 장소인 시림을 고쳐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이로써 국호(國號)를 삼았다.’라고 적고 있다.

미추이사금조(味鄒尼師今條)에서는 왕의 선조 알지는 계림에서 나왔는데 탈해왕이 거두어 궁중에서 길러 뒤에 대보(大輔)로 임명하였다. 알지가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이 아도(阿道)를 낳고 아도가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가 욱보(郁甫)를 낳고 욱보가 구도(仇道)를 낳았으니 구도는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첨해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우니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차지한 처음이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해동금석원과 추사김정희의 해동비고에 있는 문무욍비문에 문무왕의 15대조를 성한왕(星漢王)이라 하였고 문무왕의 아우인 김인문의 비문에도 태조는 성한왕이라 하였으며 문무왕의 9대손인 흥덕왕 비편에도 태조 성한왕이 흥덕왕의 24대조라 하였다.

또한 신라김씨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아들인 金仁問의 묘비문에 있으며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金富軾)은 "신라고사(新羅古事)에 금궤(金櫃)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金氏로 姓을 삼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後孫)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을 김씨라고 한 것이다" 라고 했으며 김유신의 비문에도 "김유신이 헌원지예(軒轅之裔)요 소호지윤(少昊之胤)이라"고 하였으며 "남가야 시조 수로(南伽倻 始祖 首露)는 신라(新羅)와 同姓"이라고 하였다. 또 김부식은 "김유신은 왕경인(王京人)이다. 12代祖인 수로(首露)는 하허인(何許人)인지 알 수 없다. 후한 건무(後漢 建武) 18년 壬寅(AD 42)에 구지봉(龜旨峰)에 올라 가락9촌(駕洛九村)을 바라보고 그 땅에 개국(開國)하여 국호를 가야(伽耶)라 했다" 고 하였다.

점필제 김종직은 "김알지가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으며 혹은 스스로 소호금천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고 했으며 "신라고지(新羅古誌)에 이르기를 김알지도 금관국 수로왕의 후요 소호금천의 후손이므로 성을 김씨라고 하였다" 고 하였다.

문정창(文定昌)씨는 그의 저서 <伽倻史>에서 "동방의 김씨는 모두 소호금천씨의 후손이요 金日제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김유신은 김수로왕 후손인데 그 묘비문에 "소호지윤 칙남가야시조 수로여신라 동성야(少昊之胤 則南伽倻始祖 首露與新羅 同姓也)"라 하였으며
김수로왕의 외손인 문무왕의 능비문에 "지재생 - - - 후 제천지윤 전7엽(枝載生 - - - 侯 祭天之胤 傳七葉)"이라 했으니 후(侯)자 앞에는 투자가 있었을 것이니 곧 투후 김일제의 후손은 7대에 걸쳐 영화를 누렸다는 뜻이다. 김알지는 김수로 보다 24년 뒤에 낳았으니 그 일족일 것이다" 라고 하였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30대왕 김법민(金法敏), 즉 문무왕(文武王)의 능비(陵碑) 파편이 있는데 이 비문 중에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 하였으며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영(靈)이 선악(仙岳)에서 나왔다” 고 하였다.
侯 祭天之胤傳七葉」에서 (투)侯는 한무제(漢武帝)가 흉노와 싸울 때 청년 장군 곽거병(郭去病)에게 포로가 되었던 흉노왕 휴도(休屠)의 아들 金日제를 가리킨다.
金日제와 그 후손들의 생애는 전한서(前漢書)와 열전(列傳)에 있고 중국 서안(中國 西安)에 김일제(金日제)의 무덤이 있는바 실체가 분명한 김일제(金日제)를 문무왕의 비문에 『우리 조상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호금천씨의 후손은 제천금인(祭天金人) 즉 金으로 사람을 만들어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후손 김일제 일족이 漢나라에서 영달하더니 김왕망(金王莽)이 쿠테타로 한(漢)을 멸하고 신국(新國)을 세웠다가 17년 뒤 유수(劉秀)에게 패망하였다.(서기 25년)

이에 그 일족의 일부가 김해지방으로 왔고 김해에 정착한 김수로왕의 부친은 김해군 장유면 태정리 부근에 살면서 김수로왕을 비롯한 6형제 아들을 낳았다고 추찰된다. (김수로는 서기 42년에 출생) 태정리 부근 태봉(胎峰)에는 태대(胎臺)가 있는데 이것은 김수로왕의 태(胎)를 묻은 곳이라 한다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 발견된 중국 왕망시대의 화천(貨泉)은 김수로왕의 선친 또는 김수로왕 자신이 왕망의 신제국(新帝國) 출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방증(傍證)이 될 수 있다. 또 김해부근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과 중국화페인 오수전(五銖錢)등도 그 방증이 된다. 김수로왕의 이름이 청예(靑裔)인 것은 소호의 후손임을 암시한다. 소호금천씨의 호가 청양(靑陽)이기 때문이다.

또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존호(尊號)가 보주황태왕(普州皇太王)과, 보주황태후(普州皇太后)인 점은 중국의 보주(普州)와 어떤 연관(聯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경(漢鏡), 용봉환두대도(龍鳳環頭大刀)등이 유적지에서 발굴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은(殷)나라 사람들 처럼 좌지왕때 복사(卜師)가 점을 쳐서 괘사(卦辭)를 얻은 점 등은 연관을 암시해 준다고 하겠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는 동이족(東夷族)

소호금천씨의 本고장은 남만주 봉천 요동지방이었는데 그는 혈연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 겨려다. 소호금천씨는 일찌기 산동반도에 진출하여 중국역사의 始源的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산해경( 山海經)이라는 중국사서에 "소호(少昊)의 나라는 동해밖에 있는 나라" 라고 하였다.

중국의 사학자 당란(唐蘭)은 ‘소호금천씨의 나라가 산동성 곡부(曲阜)에 도읍하고 있었다’고 했으며 근년에 발굴된 ‘대문구문명 당시에 이미 소호(少昊) 나라가 있었으며 소호국은 산동성 곡부지방에 있었다’ 고 하였다.

여불위(呂不韋)가 지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그 날은 경신일(庚申日)이고 그 임금은 소호(少昊)다. 경신(庚申)은 금(金)의 날로 소호는 금덕(金德)으로 천하에 군림하였다. 그러므로 金天이라 하였다."
소호국의 국조 지(國祖 摯)가 등극한 날인 경신일(庚申日)은 우리의 민속에 이어오고 있으니 디딜방아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庚申年 庚申月 庚申日)이라고 기록하는 습관은 "이 방아도 소호씨가 왕위에 오른 날에 탄생했다."는 뜻이다.

소호의 나라는 고신씨(高辛氏)의 제(帝) 곡이 이어 받았는데 제곡은 은나라의 조상이다.
소호금천씨의 후손이 그 후 중국의 서북부 내몽고에 위치한 농서지방에서 흉노 모돈씨)(匈奴 冒頓氏의 한 후국(一候國)을 건설하였다. 기원전 120년 한나라의 포기장군 곽거병(郭去病)이 농서지방에 쳐들어갔을 때 휴도왕(休屠王)의 太子인 14세의 김일제가 그의 아우 윤(倫)과 함께 모친 알씨(閼氏)를 모시고 한나라에 포로가 되어 갔다. 휴도왕의 나라는 중국서북부에 위치한 지금의 무위군(武威郡)이다. 포로가 된 김일제는 부마도위 광록대부가 되었다. 김일제의 어머니 알씨가 두 아들을 법도 있게 가르쳤으므로 일제의 모친이 사망하매 무제가 알씨의 화상을 감천궁(甘泉宮)에 그려놓고 친필로 "흉노왕비 알씨(匈奴王妃 閼氏)"라 하였다.

한나라 무제는 김일제를 후(候)로 봉(封)하고 일제가 사망하매시호( 諡)號를 경후(敬候)라 하였고 아들 상(常)을 투후로 삼았다. 이리하여 김일제를 비롯하여 國, 安, 常, 欽, 當, 遵, 등 후손이 투후의 벼슬을 하였다. 김일제에게 常과 建 두 아들이 있었는데 소제(昭帝)와 나이가 비슷하므로 3인이 친하게 지냈으며 상이 소제의 봉거(奉車)가 되고 건이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었다. 소제가 제위 13년만에 下世하고 선제(宣帝)가 등극하자 상이 광록훈(光錄勳)이 되었으며 상이 죽고 國이 투후벼슬을 이어 받았고 국이 아들없이 죽으니 일제의 둘째 아들 건의 손자 當에게 투후를 제수하였으며 그 후 當의 아들 성(星)이 투후를 계승하였다. 전한서 기록에 의하면 투후 當의 모친 南은 곧 왕망의 生母였다.

전한서(前漢書)의 왕망 전(王莽 傳)에 의하면 효원황후의 生父와 그 兄弟가 모두 원제(元帝)와 성제(成帝)때에 후(候)가 되고 보국(輔國)의 位에 올랐으며 또한 김씨가(金氏家)에서 봉(封)을 받은 侯의 수가 9명에 달한다 하였다.

김일제의 아우인 윤(倫)의 아들 안상(安上)은 선제(宣帝)때 궐내(闕內)의 후(候)가 되어 황제의 신임을 받았으며 궁중과 부중의 실권을 장악했다. 안상에게 常, 岑, 敞, 明 등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중낭장(中郞將), 광록대부(光祿大夫), 기도위(騎都尉)가 되었다. 원제(元帝)가 8세에 태자(太子)가 되자 김창(金敞)이 중서자(中庶子 즉 太子師)가 되어 은총을 받았으며 원제(元帝)가 즉위할 때 김당(金當)의 딸을 왕비로 맞아드렸다.

김일제전에는 왕망과 김당이 다같이 그들의 모친인 남대부인(南大夫人)의 아들이라 했으며 효원왕후전에는 효원왕후를 김당의 딸이라 하였다. 원제가 즉위한 후부터 김씨일문의 권세가 더욱 커졌다.

김창(金敞)은 涉, 參, 饒, 세 아들을 두었는데 성제(成帝)때 모두 시중기도위(侍中騎都尉), 영삼보(領三輔), 호도위(胡越騎)가 되었다.섭(涉)에게 탕(湯), 융(融)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다 제조장대부(諸曹將大夫)가 되었으며 또 섭(涉)의 종부(從父) 흠(欽)의 아우 천(遷)이 상서령(尙書令)이 되니 이제 한(漢)나라 왕실(王室)은 金氏의 권력하(權力下)에 있게 되었다.

전한서(前漢書)에 왕망(王莽)의 군형제(群兄弟 즉 六寸)는 모두 장군(將軍) 겸 후(侯)가 되었는데 오직 망(莽)의 부친 만(蔓)은 일찍 사망하였다. 왕망의 백부(伯父) 대장군 봉(鳳)이 병으로 누우매 망(莽)이 극진히 시탕(侍湯)하니 봉鳳이 천거하여 망(莽)을 황문랑교위(荒門郞敎尉)로 삼았다. 왕망이 충성스럽고 근면하게 일하니 크게 발탁되어 대사마(大司馬)가 되었다. 38세의 망이 보정(輔政)을 맡았는데 얼마 후 원제(元帝)가 사망하고 성제(成帝)가 즉위하니 제(帝)의 생모 김씨(生母 金氏)를 황태후(皇太后)로 삼았다. 태후의 영향으로 자신의 친정형제 5人을 모두 후(候)로 봉(封)하였다.

평제(平帝)가 나이 9세에 등극하니 김태황후가 섭정하였다. 김태황후는 망(莽)에게 서정(庶政)을 맡겼으며 서기 3년에 망(莽)은 11세의 평제(平帝)에게 자기 딸을 주어 황후(皇后)로 삼았으나 4년만에 평제(平帝)가 사망하였다. 왕망은 선제의 현손중 가장 나이 어린 2세의 유영(劉영)을 제위(帝位)에 오르게 하고 자신은 섭 황제(攝 皇帝)가 되었으며 서기 9년에 쿠테타를 일으켜 신(新)나라를 건국(建國)하였다. 왕망(王莽)은 영특하여 대혁신정책을 단행하였다. 侯제도를 페지하고 토지를 국유화 하였으며 노예매매를 금하였고 평형물가제도를 실시하여 상인의 농간과 중간착취를 방지하였으며 화페를 개혁하였다.

그러나 동북방민족의 소요와 흉년이 계속되어 이로 인한 도적떼 등으로 민심이 흉흉한 중에 유수(劉秀)의 군대가 낙양(洛陽)을 공격하니 왕망의 시종 공손취(侍從 空孫就)가 왕망의 목을 베어 유수에게 바쳤다. 그 뒤 20여년간 전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일제의 후손이 한반도로 들어 왔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 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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