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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태조대왕납능비명 찬자(撰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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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8-02-07 23:45 조회2,6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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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태조대왕납능비명의 찬자(駕洛國太祖大王納陵碑銘 撰者)

일연국사(一然 國師)가 고려 충렬왕 7년(1281)에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文廟朝 大康年間金官知州事文人所撰也 今略而載之'라고 하였다.
(고려)문종조 大康년간(遼 道宗 1075-1084 年號)에 금관(김해) 지주사(부사)인 文人이 찬한것을 여기에 초략하여 싣는다' 그 후

조선조 성종12년(1481)에 편수된 <동국여지승람>에 납능비명"찬자에 대하여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의 내용데로 '고려 문종 때 지주사가 납능비명을 찬하였다'고 하였으며

문정공 허목(文正公 許穆 1595-1682)이 찬(撰)한 <수로왕납능비음기(首露王納陵碑陰記)>와
(조선)숙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허적( 許積 1610-1680)이 경상도 관찰사겸 병마수군절도사로 있을 때 찬한 <가락태조왕능비음기(駕洛太祖王陵碑陰記>에도 위 가락국기를 인용한것 외에 납능비명찬자에 대한 새로운 기록은 없었다.

1884년(고종21)에 허부(許傅)가 찬(撰)한 <김해숭선전신도비문(金海崇善殿神道碑文)>에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납능비명에 아래 내용을 추가하였다.

'高麗文宗當 首露王御極之舊甲 壬寅特命 知金州事金良鎰 修陵園備因祀
事具載良鎰所撰碑文 文則尙存 碑則磨汭 可慨也."
'고려문종(1046-1083) 때에 수로왕이 등극하던 壬寅年을 당하여 지금주사(김해부사) 김양일에 특명하여 능원을 수축하고 봉사하는 일을 완비하도록 하였으니 사적은 (김)양일이 찬한 비문에 실려있다 비문은 지금에 전해지나 비석은 비에 마멸되었으니 개탄할 일이로다.'

허부(許傅)가 찬(撰)한 <김해숭선전신도비문(金海崇先殿神道碑文)>을 확인한 결과 찬자는 명백하게 김양일(金良鎰)로 음각되어 있었다. 그러하므로 김해김씨<용산보(龍山譜)>와 (김해인) 김태희 저(金泰希 敎授 著) <가락의 역사와 왕손(駕洛의 歷史와 王孫)>(1993년 진영문화사刊 全9권) 제1권 p206에서 김양일(金良鎰)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87년에 간행한 김해김씨 홍보용 책자인 이종기 저(李鍾琦 著)<가락국의 영광(駕洛國의 榮光)>(1987년간 總. 133면) p68에 "원본 가락국기도 후손 김양감(金良鑑)이 편찬했음"이라 하였으며 p110 에는 '나(저자)는 원본<가락국기>의 찬자인 김양감은 수로왕의 직손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직손이고 보니 외손(신라 문무왕)이 위선한 고마움이 이토록 절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저자 이종기가 허부(許傅)의 <김해숭선전신도비문(金海崇先殿神道碑文)>을 판독(判讀)할 때 김양일(金良鎰)을 김양감(金良鑑)으로 오판(誤判)하여 책자를 저술하면서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지 못한 광산김문(光山金門)에서는 여러 파보(派譜)와 1991년에 간행한 <광산김씨사>( 1권 p112)에 문안공 휘 양감 선조께서 <가락국태조대왕납능비명>을 찬제하였다는 주장하에 전문을 등재하는 妄斷을 범하였다. / 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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