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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대사성 휘 찬(贊)의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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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8-03-04 14:46 조회1,9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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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공 휘 지남(止男) 가(家)에 전(傳)해지던 3人화상찬(畵象讚)에 있는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 보문서학사(寶文署學士) 휘(諱) (찬讚)의 詩를 소개합니다.

칠언배율(七言排律)
동녀시(童女詩) 김찬(金贊) (출전 : 동문선 제18권)

사해가 모두 따라서 한 집이 되니 / 四海遑遑枕一家
칙명으로 동토에서 궁녀를 바치라 한다 / 勅令東土進宮娥
워낙 규중에 은밀히 감추었던 몸이라 / 閨居恐未藏身密
더구나 관에서 선발할 제 여러 눈 어이 거칠꼬 / 官選那堪閱眼多
시름겨운 두 눈썹은 내리깐 채 푸르고 / 薄掃愁眉兩斂翠
억지로 쳐든 얼굴 부끄러워 홍당무 / 强擡羞面十分?
울며 나무를 하직하는 어리디 어린 꾀꼬리요 / 稚鶯欲?辭深樹
날아서 깃 떠나는 젖먹이 제비 새끼들 / 乳燕將飛失舊?
낭원(곤륜산(崑崙山)에 있는 신선의 화원)에
옮긴 꽃은 금시 활짝 핀다지 / ?苑移花開頃刻
월궁에 심은 계수는 무럭무럭 자라리 / 廣寒添桂養婆娑
가죽 수레에 실려서 천천히들 가거라 / 行須緩緩氈車載
준마들은 떠나려고 총총히 날뛰누나 / 欲發悤悤寶馬?
부모 나라 멀어지니 혼이 끊어지누나 / 父母國遙魂正斷
제왕성이 가까와도 눈물 그냥 흐르리 / 帝王城近淚猶?
붉은 사를 팔에 맨 두 은총 오롯하겠고 / 絳紗繫後專恩寵
동관을 주시거든 노래를 읊어야지 / ?管貽來合詠歌
아들 낳아 기러기 중천에 솟 듯하고 / 生子若敎鴻擧絶
후비도 되어 봉황의 울음에 화합하리 / 作妃當協鳳鳴和
하물며 지금은 황녀께서 하가 하니 / ?今下嫁周姬在
피차에 황손들이라 남이 아니리 / 彼此皇孫正匪他


*동녀시(童女詩) : 당시에 원 나라에서 우리 나라에 명령하여 양가(良家)집 딸을 뽑아 데려갔으니, 대개 옛날 종주국(宗主國)ㆍ번국(藩國) 시공녀(侍貢女)를 취(取)한 것이다.
*붉은 …… 오롯하겠고 : 진 무제(晉武帝)가 아름다운 처녀를 선택하여 붉은 비단으로 팔을 매어 표를 해서 곧 궁중으로 데려 왔다.
*아들 …… 듯하고 : 한(漢) 나라 고조(高祖)가 척부인(戚夫人)의 아들을 사랑하여 태자를 바꾸려 하였다가 상산(商山)의 사호(四皓)가 와서 태자를 보호하는 것을 보고 척부인에게 말하기를, “이제는 태자에게 우익(羽翼)이 생겼으니 움직이기 어렵다.” 하고 노래를 부르기를, “기러기가 높이 날았으니 그물을 칠 수 없네.” 하였다. 여기서는 우리 나라 처녀들이 원나라에 가서 아들을 낳아 태자가 되게 하라는 뜻이다.
*후비도 …… 화합하리 : 춘추(春秋)시대 때에 진경중(陳敬仲)이 제(齊) 나라에 망명하여 갔는데 의중(懿仲)이 그에게 딸을 주려고 점을 쳤더니 점괘에, “숫봉 암봉이 날아 화합하게 울음운다. 팔대(八代)를 지나면 더할 수 없이 높겠구나.” 하더니 과연 그 뒤에 그 자손이 제(齊) 나라 임금이 되었다.


칠언배율(七言排律)
차운(次韻) 김찬(金贊) (출전: 동문선 제18권)

종실과 양가를 모조리 찾아보아 / 閱窮宗室與良家
이 아리따운 열 애기를 얻었네 / 得此玲瓏二五娥
새외로 호송하여 가는 사자들 몇 사람 / 塞外護行歸客幾
궁중에 들어갈 제 시녀들도 많으리 / 禁中扶入侍兒多
물으심에 대답하기 말씨 아직 서툴고 / 欲應降問聲猶澁
옆에서들 보는데 얼굴 아니 붉을까 / 却愧傍觀色尙?
주문에서 구슬 기저귀에 자란 몸 / 養自朱門珠絡褓
자란을 깨고 나와 비단 둥우리에 살던 새 / 生從紫卵錦爲?
엄마 젖을 갓 떠난 조그만 붉은 입술 / ?離母乳丹唇小
궁장 아직 못 배워 나풀나풀 푸른 머리 / 未學宮粧綠髮娑
새 사랑을 금옥에서 혼자 차지하련만 / 新寵必專金屋貯
어린 몸이 수안에서 얼마나 고달플까 / 弱齡應困繡鞍?
사막으로 말이 달려 먼지 일어 뽀얀데 / 蹄飜沙漠飛塵暗
부모 생각에 애가 끊겨 눈물 줄줄 흐르리 / 腸斷庭?泣涕?
길가의 장승도 갈 길 재촉을 슬퍼하네 / 里?堪嗟催去意
송별연의 이별가를 차마 어찌 들을까 / 祖筵那忍聽離歌
번방에서 공물 바침 경지로서 좋은 일 / 海邦修貢瓊枝好
천궐에 은혜 입어 옥로 푸짐하리니 / 天闕承恩玉露和
이 보아 시인들 보답할 것을 똑똑히 기억하소 / 爲報時人須記取
우리들 태평 면식이 다른 덕택 아니로세 / 大平眠食不由他


*금옥(金屋) : 한 무제(漢武帝)가 어릴 적에 자기의 고종매(姑從妹)되는 진아교(陳阿嬌)와 함께 놀면서 매우 친애하였다. 고모가 묻기를, “아교를 배필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하니 무제가, “정말 아교와 배필이 된다면 금옥(金屋)에 감추어 두리라.” 하였다. 과연 진아교는 후일에 진황후(陳皇后)가 되었다.
*경지(瓊枝) : 귀족과 양가(良家)집 처녀를 구슬나무 가지에 비하였다.



휘 찬(贊)께서 위 시를 지으신 때는 고려가 元나라의 압제하에 있을 시대로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전의부령(典儀副令) 이곡(李穀)이 원(元) 나라에 가 있을 때 어사대(御史臺)에 진주(進奏)한
내용을 전재(轉載)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처녀를 구하는 것을 중지하여 줄 것을 청하고는, 그를 위해 대신 글월을 올리기를, “옛날 우리 세조황제(世祖皇帝)께서 천하를 다스릴 적에 인심을 얻기에 노력하셨으며, 특히 풍속이 다른 외국에 대해서는 지방의 풍습에 따라서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천하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여 북치고 춤추며, 여러 차례의 통역을 거쳐 들어와 조회하여 혹은 남보다 늦을까 오히려 걱정하였으니, 요ㆍ순의 정치도 이에 더할 수 없었습니다. 고려는 본래 해외에서 따로 한 국가를 형성하였으므로 중국에 성인이 있을 때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교통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 태종(唐太宗)의 위엄과 덕망으로도 두 번이나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였으나, 공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갔습니다. 국가(원 나라)가 처음 일어나자 제일 먼저 신복(臣服)하여, 왕실에 현저한 공훈을 세웠고, 세조 황제께서는 공주를 하가시켰으며, 인하여 조서를 보내어 장려하여 이르기를, '의복이나 예법은 선대의 풍습대로 지키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풍속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으며, 지금 천하에 임금과 신하가 있고, 백성과 사직이 보존되어 있는 곳은 오직 우리나라뿐입니다. 고려의 입장으로서는 마땅히 현명하신 조서의 뜻을 공경히 받들어 선조 때부터 행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서 정치와 교화를 닦고 밝히며, 조회와 문안을 제때에 행하여, 국가와 함께 아름다움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녀자와 환관의 무리들이 중국에 가서 자리를 잡고 그 무리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은혜와 사랑 받음을 믿고 도리어 본국을 잡아 흔들며, 심지어는 황제의 지시라고 허위로 칭탁하고 다투어 사자를 달려 보내어 해마다 처녀를 데려가는 자가 길에 잇닿았습니다. 대개 남의 딸을 데려다가 위에 잘 보여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 한 짓은 비록 고려가 자초한 일이지만, 황제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하니 어찌 나라에 누(累)가 되지 않겠습니까. 예로부터 제왕이 호령을 한 번 발하거나 명령을 한 번 시행하면, 온 천하가 그 덕망과 은택을 기쁜 마음으로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서나 지시를 가리켜 덕음(德音)이라 합니다. 그러니 지금 자주 특지를 내려 남의 처녀를 빼앗는 것은 매우 불가한 일입니다. 무릇 사람이 자식을 낳아 사랑하며 기르는 것은 그 자식에게 봉양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존귀한 사람이거나, 비천한 사람이거나, 중국이거나 이적(夷狄)이거나 차이가 없는 것이니, 그것은 천성이 다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희들 고려의 풍속은 차라리 사내 자식은 다른 집으로 내보내더라도 딸은 자기집에 두고 내보내지 아니하니, 진(秦) 나라 때의 데릴사위 제도와 비슷한 것입니다. 무릇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딸이 맡아서 하는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딸을 낳으면 은혜와 애정으로 수고를 다하면서 밤낮으로 그 딸이 자라서 능히 부모를 봉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조에 그 딸자식을 품 안에서 빼앗겨 4천 리 밖에 보내게 되고, 한 번 문 밖을 벗어나면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니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고려의 부녀 가운데 후비(后妃)의 반열에 끼어 있는 이도 있고, 왕후(王侯)의 귀한 짝이 된 이도 있어, 공경대신 중에는 고려의 외생(外甥) 출신이 많이 있사오나, 이것은 그 본국의 왕족이나 문벌 있는 부호의 집에서 특히 조지(詔旨)를 받았거나 혹은 자원하여 온 경우이며, 또한 중매의 예절을 갖춘 것이니, 진실로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익을 좋아하는 자들이 그것을 원용하여 예(例)로 삼고 있습니다. 대개 지금 그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자들은 모두가 아내나 첩을 얻으려 하고 있으며, 동녀를 데려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무릇 사방에 사신으로 가는 것은 황제의 은혜를 선포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보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시(詩)에, '두루 물어보고 두루 자문한다[周爰咨詢 周爰咨諏]' 하였는데, 지금은 외국에 사신으로 가면 곧 재물과 여자만을 탐내고 있으니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듣자오니, 고려 사람들은 딸을 낳으면 곧 감추고, 오직 그 비밀이 탄로날 것을 걱정하여 이웃 사람들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사신이 중국에서 그곳에 이를 때마다 곧 안색이 변하여 돌아보며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왔을까. 처녀를 잡으러 오지 않았을까. 아내와 첩을 데리러 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얼마 후에 군리(軍吏)가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 집집마다 뒤지고 찾는데, 만일 딸을 감춘 것을 알면 그 이웃까지도 연계하여 잡아들이고 그 친족을 구속하여 매질하고 고통을 주어 찾아내고야 맙니다. 그리하여 한 번 사신이 오면 나라 안이 소란하여, 닭이나 개까지도 편안할 수 없습니다. 처녀를 모아놓고 선발하는데,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에 상관없이 혹 사신에게 잘 대접하여 배불리 먹여주면 비록 아름다운 여자라도 놓아주고, 그 여자를 놓아주고는 또 다른 여자를 찾습니다. 이때에 한 여자를 데려갈 적마다 수백 집을 뒤지는데 오직 사신이 하자는 대로 할 뿐이요, 아무도 감히 그 영을 어기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황제의 지시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1년에 한두 번이나 혹은 2년에 한 번 있는데, 그 수가 많을 때는 40~50명에 이릅니다. 이미 그 선발에 뽑히게 되면 그 부모나 일가 친척들이 서로 모여 통곡하는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며, 국경에서 송별할 때에는 옷자락을 붙잡고 발을 구르며 넘어져서 길을 막고 울부짖다가 슬프고 원통하여 우물에 몸을 던져 죽는 자도 있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자도 있으며, 근심과 걱정으로 기절하는 자도 있고, 피눈물을 쏟아 눈이 먼 자도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신의 아내나 첩으로 데려가는 때는 비록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지라도 인정을 거스리고 원망을 사는 것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필부(匹夫)ㆍ필부(匹婦)가 자진하여 협력하지 않으면 임금의 사업도 성공할 수 없다' 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나라의 덕화(德化)가 미치는 곳마다 만물이 모두 이루어지는데, 고려 사람만이 유독 무슨 죄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옛날에 동해(東海) 지방에 원한 품은 여자가 있어 3년이나 크게 가물었다 하는데, 지금 고려에는 원한 품은 여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근년에 그 나라에는 홍수와 가뭄이 서로 연달아서 백성들 가운데 굶어 죽은 시체가 매우 많으니, 이는 아마도 그 원한과 한탄이 능히 순화한 기운을 해친 것인가 합니다. 지금 당당한 대국으로서 후궁으로 둘 사람이 모자라서 반드시 외국에서 데려와야만 합니까. 비록 조석으로 총애를 받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와 고향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간의 지극한 정성인데, 이에 궁궐 안에 방치된 채 젊음을 그냥 보내고 헛되이 늙으며, 때로는 혹 환관에게 시집 보낸다 하더라도, 마침내 잉태 한 번 못하는 자가 열에 대여섯 명은 되니, 그 원기(怨氣)가 화(和)를 손상함이 또한 어떻겠습니까. 일에 조그만 폐단이 있더라도 나라에 이로운 것이 간혹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폐단이 없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하물며, 나라에 이익도 없이 원방의 백성에게 원한을 사고 그 폐단이 적지 않음에 있어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덕음(德音)을 베푸시어, 감히 내지를 칭탁하고 위로 황제의 총명을 흐리게 하며, 아래에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처녀를 데려오는 자와,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아내나 첩을 데려오는 자가 있다면 법령으로 명확히 금지하시어 그 후일의 기대까지도 근절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성조(聖朝)에서 똑같이 사랑하시는 감화를 밝히시고 외국에서 의를 사모하는 마음을 위로하시어, 원망을 없애고 화기를 이루어 만물을 육성하게 하시면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나이다." /
(高麗史節要 제 25권 忠肅王 元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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