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부원군 휘 맹권(孟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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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1-22 15:19 조회1,917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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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권(金孟權)에 대하여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광산. 호는 만취당(?翠堂). 보령 출신. 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한
사헌부감찰 중로(中老)이다. 일찍이 진사가 되고 문명이 높아 집현전학사로 뽑혔다.
세종의 신임을 받아 뒤에 단종이 된 왕세손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자,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
종신토록 과거를 보지 않았다.
그 뒤 1490년(성종 21) 직첩을 되돌려받았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東鶴誌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광산. 호는 만취당(?翠堂). 보령 출신. 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한
사헌부감찰 중로(中老)이다. 일찍이 진사가 되고 문명이 높아 집현전학사로 뽑혔다.
세종의 신임을 받아 뒤에 단종이 된 왕세손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자,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
종신토록 과거를 보지 않았다.
그 뒤 1490년(성종 21) 직첩을 되돌려받았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東鶴誌
댓글목록
김영모님의 댓글
김영모 작성일자랑스러운 세 아드님 통예공(휘 극신), 광성부원군(휘 극성), 군수공(휘 극양)을 있게한 훌륭하신 만취당 할아버님이십니다. 진사공의 증조이신 도만호공(휘 성우)께서 조선건국에 동참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마지막 충성을 다하시고 순국하신지 불과 얼마되지않은 상황에서 새로 건국한 조선초에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단종에 대한 충의를 마지막까지 지켰던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습니다. 평생을 고향 보령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며 자식을 키웠야했던 할아버님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매번 산소에 들를 때마다 진사공의 얼을 기리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