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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공 휘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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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2-06 12:02 조회1,4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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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공(首山公)의 휘자를 보첩에 자진(子進)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국조방목 > 등의 문과급제 기록에
김숭조(金崇祖), 김숭수(金崇壽), 김기(金紀), 김약(金約) 의 선조를
모두 김진(金進)으로 기록되어 있다.

首山公의 諱는 그의 손자인 숭조(崇祖) 와 숭수(崇壽), 그리고 그의 증손자인 기(紀 )와 약(約)이 문과에 응시할 때 관아에 제출했던 기록대로 "進"으로 기록해야 맞다.
살피건데 1600 년대에 4間으로 된 "평장동세승(平章洞世乘)"을 필사본으로 만들 때 기록자가

(앞장에) <- - 子 宗衍 - 子 伯鈞 - 子 進>이라 기록하고 (줄을 바꾸어)다음장을 기록하면서
<進 - 子 衷孫 - 子 崇祖 - 子 紀> 기록해야 할것을 기록자가 착각해서

<子進- 子 衷孫 - 子 宗祖 - 子 紀 >로 바르지 않게 기록했던 것을 정묘대보를 수보할 때
衷孫의 子 崇祖를 宗祖라고 기록한 것만 정정(訂正)하고 "子進(進의 誤記)"을 정정하지 않고
그대로 편찬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족보기록에 김진(金進)이아닌 김자진(金子進)으로 기록되되어 있다.


18세기 말에 서유린(1738 - 1802)이 수산공의 <墓碑陰記>를 찬 할 때 정묘대보의 기록대로
관작을 "司正"이라 하고 諱字도 子進으로 기록하였다.

1600년대의 "평장동세승"과 조종운의 "씨족원류" 및 1715년의 "을미보"에는
수산공의 휘자가 <進>으로 기록되어 있다.

* "평장동세승"에는 수산공의 관작이 현재의 족보기록인 <禁衛司正>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詞評"으로 기록되어 있다.

* 서유린(徐有隣)이 찬술한 수산공 묘비에는 두문동 72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위에서 언급했드시 수산공의 후손들 4人이 모두 문과에 응시하면서 수산공의 휘자를 "進"이라고
관아에 제출했던 것으로 보아 수산공의 휘자는" 子進"이 아니고 "進이 맞다고 여긴다.

"충렬록"에 기록되어 있는 "自進" 혹은 "子進" 과의 동일인(同一人) 여부는 연구과제라 하겠다.

* 400여년 이후의 후손들이 선조의 이름을 개명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당해 종중에서는
수산공의 휘자를 "進"으로 환원하여 바르게 기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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