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참판공 휘 태정(泰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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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2-16 20:05 조회1,45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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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조참판공 휘 태정( 1541~ 1588) 사실(事實)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의례(儀禮)와 예학(禮學)에 해박한 식견을 갖춘 학자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형언(亨彦). 호는 성암(松巖)이다
공은 판도판서공(휘 允藏)의 7세손인 안산군수(安山郡守)공 휘 백간(伯幹)과 정부인 전주이씨(貞夫人 全州李氏-明原君 女-) 사이에 맏아들로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영민하여 학구에 잠심해 일찌기 문학이 성취하여 1561년(명종16)에 진사과 3등으로 합격한 후,1569년(宣祖 2)에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3위로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사간원 정원(司諫院 正言), 제주목사(濟州牧使), 전라도관찰사(全羅道監司), 형조참판(刑曹參判)겸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엮임하였다.

공은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朴氏 -仁宗 妃-)가 승하함에 조정공의가 복제문제로 예설이 논의되었는데, 공이 기년제(朞年制)률 주장하였으나, 공론이 대세에 몰려 채택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사류들은 공의 주장을 정론이라 하였다.
예학(禮學)에 해박한 식견으로 의례(儀禮)에 대한 문답한 사실이 퇴계문집에 등재되었다.

공은 모든 사리의 변별력이 남달라 당시 鄭汝立의 허명으로 세상을 문란케 하여 모반하였올 때,
공에게 접근해 왔으나, 예리한 판단으로 거절하였다. 그 후 鄭汝立의 역모사건으로 己丑옥사가
일어나자, 당시 공의 선견지명에 모두 탄복하였다.

공은 부친인 군수공(휘 伯幹)께서 編著한 사송유취(詞訟類聚)를 1585년 (宣祖18年)에
전주(全州)에서 간행(刊行)하였다.

공의 배 정부인(貞夫人) 성주이씨(星州李氏)는 임진난 중에 순절하였고,
슬하에 자녀는 두지 못하였다. 묘소는 보령의 馬山 임좌에 있다.

* 世系

周鼎(文肅公) - 流(侍中) - 允藏(版圖判書) - 成雨(都萬戶) - 南浩(護軍)
- 仲老(監察)- 孟權(光山府院君) - 克愼(通禮) - 文瑞 (縣令) - 伯幹(郡守)
- 泰廷(刑曹參判).

선조실록(宣祖實錄) 기록
宣祖 15卷, 14年(1581 辛巳 / 명 만력(萬曆) 9年) 1月 21日(丙戌) 1번째기사

직강 김태정을 제주 목사에 제수하였다.

○丙戌/有政。 直講 金泰廷 拜 濟州 牧使。

태백산사본 8책 15권 2장 B면
영인본 21책 370면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기록
김태정(金泰廷) 자형언(字亨?) 광주인(光州人)군수백간자( 郡守伯幹子) 우상극성종증손(右相克成從曾孫) 신유진사(辛酉進士) 기사문과(己巳文科) 관찰사(觀察使)
어퇴계문하(游退溪李滉門下) 유답문예서(有答問禮書)

* 국조인물지: 안종화(安鐘和) 회찬(會纂)
1909년 간행
3권 3책
한국정신문화원소장
청구기호 B9C 2


[문과급제 기록]
선조(宣祖) 2년 (1569) 기사(己巳)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3위

[인적사항]
字 : 형언(亨彦)
생년 : 신축(辛丑)1541
합격연령: 29
본관 : 광주(光州)

[이력사항]
전력 : 진사(進士)
관직 : 참판(參判)
타과 : 명종(明宗) 16년(1561) 신유(辛酉) 진사시(進士試)

[가족사항]
부 : 김백간(金伯幹)
조부 : 김문서(金文瑞)
증조부 : 김극신(金克愼)
외조부 : 이호(李顥) 明原君
처부 : 이원(李愿)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성암유고(省菴遺稿) 기록
省菴先生遺稿卷之一
七言排律

次張給事太平樓韻。送濟州牧 金泰廷。六十韻。
吾君高義薄秋穹。餘事旁穿六藝通。筆壓鍾王推墨妙。詩參曹謝擅詞宗。胸藏禮樂三千字。志在關河百二重。隱霧生斑成斐豹。空拳絶?格飛熊。魁梧九尺風神逈。叱?千人氣象雄。國學早觀皮弁服。天門旋荷紫泥封。初簪董筆趨丹陛。俄佩魚符出白龍。袖裏靑萍光射斗。眉間紫電氣凌虹。臨戎鳶?眞吾志。勒石燕然豈雋功。只擬將身爲鎖?。須敎紀績載?鐘。從容樽俎三杯後。領略山川萬里中。鳧?幾年朝?冕。?冠當日糾官工。每聞忠義爲偏勇。切忌矜盈守益沖。久際風雲圖海運。肯將夷險哭途窮。觀周自展桑弧願。巡塞恭承眷注隆。韶頀聞來忘肉味。狐狸擊去慰民?。眼看文物幽襟豁。志憤姦贓怒髮衝。上國想應稱使美。西關那復有師凶。高名已?長城望。僉擧還孚聖簡同。浩渺洪濤浮一島。微茫歸路隔千峯。丹心只有酬恩血。白髮寧爲惜別容。汀柳?寒微展綠。野桃媚日欲生紅。將軍行色風??。故舊深情酒凹豊。爲邑寧拘循吏軌。化民須繼古人?。人心觀感盂中水。德敎流行草上風。莫以易心輕快斷。休因俗例學??。政先推別崇仁讓。績考幽明??茸。禮義自能恬欲浪。詩書方始剪心蓬。移風?學中都化。來遠行看大宛?。況此一區黑子地。俯臨千丈馮夷宮。血牙武士威難制。蹙?窮民令不從。幾抱愁嘆怨?楚。欲遺身世走??。溟波久作煩寃窟。橘柚渾爲怨苦叢。田畝少收民力懈。桑麻不暢女工?。啼飢罕遇三旬食。蓋體唯存百結絨。産業只知資牧?。室廬元不具窓?。珠亡從古誅求峻。乳復如今責望崇。遙憶陰崖回日暖。方知黍谷發春融。懷柔寧憚窮晨夜。寬猛還應法夏冬。山虎自馴歌白?。村?不吠舞黃童。孤?剩沐恩波闊。吏椽爭瞻秀氣鍾。竭力祗知酬主眷。勞心端不負民傭。彈琴摩撫歡安堵。緩帶優游謹?戎。利械寧須東貊?。峙糧無待蜀山銅。關防有截??壯。倉?無虧桂玉充。豈有邊功偏事武。早知兵力本於農。知君自奮垂天翼。顧我還憐失侶鴻。晝掩孤齋春寂寞。月昏深院雨冥?。孤心耿耿三更北。歸思滔滔百折東。羈宦半生成老醜。故園千里夢??。愁來只使邀君話。別後誰憑吐我胸。驛路梅花須寄我。屋樑明月?逢公。山尖陟覺愁腸割。江闊飜添別恨洪。人去人來頭已白。眞非眞是耳全聾。凌雲自惜空投筆。流水誰知只短桐。相信自能明肺腎。暫離何必怨穹?。南鱗北羽吟偏苦。渭水江雲望更濃。岐路??歸意促。斜陽催棹祖筵空。行塵坐惜山河阻。佇立難堪?髮?。安得迎君春未暮。淺斟新釀樂時雍。

省菴先生遺稿卷之一
七言絶句

哭 金同知 泰廷
斯人奄忽至於斯。天意茫茫未可知。相識到今餘幾許。楊山太守淚偏垂。


*성암 김효원(省菴 金孝元 1532∼1590)
조선시대의 문신. 자는 인백(仁白), 호는 성암(省庵). 본관은 선산(善山). 동인(東人)의 중심 인물.문과에 급제한 후 영남(嶺南)에 내려가 이황(李滉)· 조식(曹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선조 즉위 후 새로이 등용한 사림파(士林派)의 대표적인 인물로 선조의 특명으로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내다 병으로 죽었다. 저서로 《성암집(省庵集)》이 있다.

이식(李植)의 택당집(澤堂集)
澤堂先生別集卷之八
行狀
左參贊 尹公 (承吉)行狀 과

윤휴(尹?)의 백호집(白湖集)
白湖先生文集卷之二十
諡狀
左參贊 贈領議政 尹公(承吉)諡狀 과

정염(丁焰)의 만헌집(晩軒集) 에도 휘 태정(泰廷)에 관한 句節이 보인다.

평장동세승(平章洞世乘 -필사본-) 기록
아 ! 임진난 전(壬辰亂 前) 서울에 사시는 김태정(金泰廷)께서 전라감사(全羅監司=관찰사)가
되었을때 순행(巡行)하여 광주(光州)에 이르러 즉일(卽日)로 평장동대회(平章洞大會)에
참예(參詣)함에 족인(族人)들이 연회(宴會)를 크게 열었는데 여기서 족보첩(族譜帖)을
뽑아보시고는
'전세(前世)에 상공(相公)의 산소(山所)가 모두 장단(長湍)에 계시다고 상기(詳記)되어 있었다'
하시며 (族帖을)세밀(細密)히 베껴 써서 가시었었다. 그 후 경기감사(京畿監司)가 즉보(卽報)한
보고서(報告書)에 본주(本州=京畿)의 김씨족(金氏族)이 이르기를
'장단(長湍)의 산소(山所)가 파 해쳐저 지석(誌石)이 나타났는데
즉 상공(相公=金深)의 행장(行狀)이 점점소상( 漸漸昭詳)하였으므로 하나하나 가토(加土)하였다.' 운운(云云)함으로 최종적(最終的)으로 문중(門中)의 한 사람(一人)으로 하여금 가서 찾아보게 하였던 바 과연 무덤이 작일(昨日)에 만들어진 것과 같이 새롭게 되어 있었다.
김태정 보(金泰廷 甫=尊待 稱號)께서
년 전(年 前)에 갖었던 성심(誠心)이 지금에 이르러 세상(世上)이 놀랄 지경이로구나.

원문
"噫 壬辰亂前 居京金泰廷, 爲全羅監司時 巡到光州
卽詣平章洞 大會姓族 大開族會之宴取見族帖 曰 前世 相公之墓山 皆在於長湍
詳書 細騰書而去 其後 又 京畿監司 卽爲報書 於本州姓族云
長湍墓山 掘見誌石卽 相公行狀 次次昭昭 因爲一一加土也云云 最後 門中一人
爲往尋見則 果然塚墓之新新 如昨日 金泰廷,甫 有誠於先歲 至今聳動於斯世矣."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晩軒集
定齋集
省庵集
澤堂集
白湖集
平章洞世乘

댓글목록

김영모님의 댓글

김영모 작성일

보령일가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운 선조의 행적을 접하니 새삼 감개무량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소중한 자료를 일일이 찾아 올려주시는 성봉 일가님의 그 정성에 다시한번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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