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우군 총제 김첨의 졸기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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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산인 작성일09-03-01 22:36 조회2,0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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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군 총제(右軍摠制) 김첨(金瞻)이 졸(卒)하였다. 김첨의 자(字)는 자구(子具)이요, 옛 이름은 구이(九二)인데, 광주(光州) 사람으로서 자혜부 윤(慈惠府尹) 김회조(金懷祖)의 아들이었다.
10세에 속문(屬文)에 능하였고, 장성하게 되자 경사(經史)·제자(諸子)에 두루 통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육통증(肉通證)’이라 하였다.
병진년의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역임하여 친어군(親禦軍) 호군(護軍)·예문 응교(藝文應敎)에 이르렀다.
임신년 여름에 정몽주(鄭夢周)를 아첨하여 섬겼다고 하여 유배되었다가, 기묘년에 발탁되어 봉상 소경(奉常少卿)이 되어 몇해 동안에 갑자기 화요(華要)의 직임에 옮겨져, 드디어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겸 예조 전서(禮曹典書)에 제수되었다.
갑신년 여름에 여직(女直)의 유민(遺民) 동경(?景)·왕가인(王可仁) 등이 우리나라 함주(咸州) 이북이 옛날 요(遼)나라·금(金)나라의 땅이라고 황제(皇帝)에게 아뢰어, 황제가 칙서(勅書)를 내려 10처 인민(十處人民)을 수색하게 하였다.
임금이 김첨을 보내어 계품(啓稟)하여 그대로 본국(本國)에 속하게 허락하여 달라고 빌었다.
김첨이 경사(京師)에 이르니, 동경 등이 오히려 아둔하고 어리석어 예부(禮部)에 호소하므로, 김첨이 예부에 고(告)하기를, “만약 요(遼)나라·금(金)나라 지리지(地理志)를 상고하면, 허실(虛實)은 저절로 밝혀질 것입니다.”하였다.
예부관(禮部官)이 옳게 여겨, 이에 두 나라의 지리지를 상고하니 과연 10처 지명(十處地名)이 없었으므로, 갖추 사실대로 아뢰었다. 황제가 김첨에게 이르기를, “조선(朝鮮)의 땅도 또한 짐(朕)의 법도 안에 있는데, 짐이 무엇 때문에 다투겠는가? 이제 청(請)한 것을 허락하겠다.”하니, 김첨이 고두(叩頭)하여 사례(謝禮)하였다. 이날 봉천문(奉天門)에서 시연(侍宴)할 때 김첨이 구호(口號)로 말하였다.
황제의 의장(儀仗)을 몸소 보니 일표(日表)가 밝은데,
배신(陪臣)을 은혜로 대우하니 영광(榮光)이 갑절일세,
영서(靈犀)는 못가에 있어 신기한 서기(瑞氣)를 보이고,
순상(馴象)이 문전에 당하여 어지러운 행렬을 금하네.
만세의 옥잔으로 수주(壽酒)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구성(九成)의 소악(韶樂)은 즐거운 성음(聲音)을 연주하네,
하정(下情)이 상달(上達)되어 백성은 유감이 없고,
일시동인(一視同仁)하시니 태평(太平) 세월 누리네.”
태감(太監) 황엄(黃儼)이 이를 아뢰고 나와서 김첨에게, “그대의 시(詩)에 황제가 깊이 찬탄하였다.”하였다. 사신이 돌아오니, 임금이 크게 기뻐하여 전지(田地) 50결(結)을 내려 주고, 첨서승추부사(僉書承樞府事)로 전직하였다가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고쳤다.
김첨이 본래 민씨(閔氏)에 당부(黨附)하였는데, 민씨가 죄를 얻게 되자, 김첨도 또한 벼슬에서 쫓겨나서 몸을 마쳤다.
김첨은 전고(典故)를 잘 알고 음률(音律)에 자못 밝아서 의례(儀禮)를 상정(詳定)하는 데 김첨이 반드시 참여하였고, 또 왕지(王旨)를 받들어 아악(雅樂)을 교정(校正)하였다.
그러나, 그 학문이 순수하지 못하고 잡되어 불씨(佛氏)를 좋아하고 도교(道敎)를 받들어, 일찍이 상서(上書)하여 문묘 석전(文廟釋奠)에 소[牛]를 희생(犧牲)하는 것을 없애자고 청하였다가 유사(有司)에게 탄핵을 당하니, 사림(士林)에서 이를 비웃었다.
졸(卒)할 때 나이가 65세였고, 아들이 하나이니, 김자경(金資敬)이었다.
【원전】 2 집 220 면
【분류】 *인물(人物) / *외교-명(明) / *사상-불교(佛敎) / *예술-음악(音樂)
[주D-001]속문(屬文) : 문장을 얽어서 지음.
[주D-002]함주(咸州) : 함흥(咸興).
[주D-003]10처 인민(十處人民) : 《태종실록(太宗實錄)》 제7권을 보면 10처(處) 인원(人員)은 삼산(參散) 등 10처(處)로, 계관(溪關:縣城) 만호(萬戶) 영마합(寗馬合)·삼산(參散:北靑) 천호(千戶)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독로올(禿魯兀:端川) 천호 동삼합(?參合)·동아로(?阿蘆)·홍긍(洪肯:洪原) 천호 왕올난(王兀難)·합란(哈蘭:咸興) 천호 주답실마(朱踏失馬)·대신(大伸:海洋泰神) 천호 고난(高難)·도부실리(都夫失里:海洋) 천호 김화실첩목(金火失帖木)·해동(海童) 천호 동 귀동(董貴洞)·아사(阿沙:利原) 천호 주인홀(朱引忽)·알합(斡合:明川立岩) 천호 유설렬(劉薛烈)·아도가(阿都歌) 천호 최교납(崔咬納)·최완자(崔完者)임.
[주D-004]경사(京師) : 명나라 서울.
[주D-005]일표(日表) : 제왕(帝王)의 의표(依表).
[주D-006]영서(靈犀) : 영묘한 코뿔소. 그 뿔은 가운데 구멍이 있어서 양쪽으로 서로 통하는데, 이는 백성과 황제 사이에 의사가 서로 소통하고 투합(投合)함을 비유한 것임.
[주D-007]순상(馴象) : 길들인 코끼리.
[주D-008]소악(韶樂) : 우순(虞舜)의 음악.
10세에 속문(屬文)에 능하였고, 장성하게 되자 경사(經史)·제자(諸子)에 두루 통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육통증(肉通證)’이라 하였다.
병진년의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역임하여 친어군(親禦軍) 호군(護軍)·예문 응교(藝文應敎)에 이르렀다.
임신년 여름에 정몽주(鄭夢周)를 아첨하여 섬겼다고 하여 유배되었다가, 기묘년에 발탁되어 봉상 소경(奉常少卿)이 되어 몇해 동안에 갑자기 화요(華要)의 직임에 옮겨져, 드디어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겸 예조 전서(禮曹典書)에 제수되었다.
갑신년 여름에 여직(女直)의 유민(遺民) 동경(?景)·왕가인(王可仁) 등이 우리나라 함주(咸州) 이북이 옛날 요(遼)나라·금(金)나라의 땅이라고 황제(皇帝)에게 아뢰어, 황제가 칙서(勅書)를 내려 10처 인민(十處人民)을 수색하게 하였다.
임금이 김첨을 보내어 계품(啓稟)하여 그대로 본국(本國)에 속하게 허락하여 달라고 빌었다.
김첨이 경사(京師)에 이르니, 동경 등이 오히려 아둔하고 어리석어 예부(禮部)에 호소하므로, 김첨이 예부에 고(告)하기를, “만약 요(遼)나라·금(金)나라 지리지(地理志)를 상고하면, 허실(虛實)은 저절로 밝혀질 것입니다.”하였다.
예부관(禮部官)이 옳게 여겨, 이에 두 나라의 지리지를 상고하니 과연 10처 지명(十處地名)이 없었으므로, 갖추 사실대로 아뢰었다. 황제가 김첨에게 이르기를, “조선(朝鮮)의 땅도 또한 짐(朕)의 법도 안에 있는데, 짐이 무엇 때문에 다투겠는가? 이제 청(請)한 것을 허락하겠다.”하니, 김첨이 고두(叩頭)하여 사례(謝禮)하였다. 이날 봉천문(奉天門)에서 시연(侍宴)할 때 김첨이 구호(口號)로 말하였다.
황제의 의장(儀仗)을 몸소 보니 일표(日表)가 밝은데,
배신(陪臣)을 은혜로 대우하니 영광(榮光)이 갑절일세,
영서(靈犀)는 못가에 있어 신기한 서기(瑞氣)를 보이고,
순상(馴象)이 문전에 당하여 어지러운 행렬을 금하네.
만세의 옥잔으로 수주(壽酒)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구성(九成)의 소악(韶樂)은 즐거운 성음(聲音)을 연주하네,
하정(下情)이 상달(上達)되어 백성은 유감이 없고,
일시동인(一視同仁)하시니 태평(太平) 세월 누리네.”
태감(太監) 황엄(黃儼)이 이를 아뢰고 나와서 김첨에게, “그대의 시(詩)에 황제가 깊이 찬탄하였다.”하였다. 사신이 돌아오니, 임금이 크게 기뻐하여 전지(田地) 50결(結)을 내려 주고, 첨서승추부사(僉書承樞府事)로 전직하였다가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고쳤다.
김첨이 본래 민씨(閔氏)에 당부(黨附)하였는데, 민씨가 죄를 얻게 되자, 김첨도 또한 벼슬에서 쫓겨나서 몸을 마쳤다.
김첨은 전고(典故)를 잘 알고 음률(音律)에 자못 밝아서 의례(儀禮)를 상정(詳定)하는 데 김첨이 반드시 참여하였고, 또 왕지(王旨)를 받들어 아악(雅樂)을 교정(校正)하였다.
그러나, 그 학문이 순수하지 못하고 잡되어 불씨(佛氏)를 좋아하고 도교(道敎)를 받들어, 일찍이 상서(上書)하여 문묘 석전(文廟釋奠)에 소[牛]를 희생(犧牲)하는 것을 없애자고 청하였다가 유사(有司)에게 탄핵을 당하니, 사림(士林)에서 이를 비웃었다.
졸(卒)할 때 나이가 65세였고, 아들이 하나이니, 김자경(金資敬)이었다.
【원전】 2 집 220 면
【분류】 *인물(人物) / *외교-명(明) / *사상-불교(佛敎) / *예술-음악(音樂)
[주D-001]속문(屬文) : 문장을 얽어서 지음.
[주D-002]함주(咸州) : 함흥(咸興).
[주D-003]10처 인민(十處人民) : 《태종실록(太宗實錄)》 제7권을 보면 10처(處) 인원(人員)은 삼산(參散) 등 10처(處)로, 계관(溪關:縣城) 만호(萬戶) 영마합(寗馬合)·삼산(參散:北靑) 천호(千戶)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독로올(禿魯兀:端川) 천호 동삼합(?參合)·동아로(?阿蘆)·홍긍(洪肯:洪原) 천호 왕올난(王兀難)·합란(哈蘭:咸興) 천호 주답실마(朱踏失馬)·대신(大伸:海洋泰神) 천호 고난(高難)·도부실리(都夫失里:海洋) 천호 김화실첩목(金火失帖木)·해동(海童) 천호 동 귀동(董貴洞)·아사(阿沙:利原) 천호 주인홀(朱引忽)·알합(斡合:明川立岩) 천호 유설렬(劉薛烈)·아도가(阿都歌) 천호 최교납(崔咬納)·최완자(崔完者)임.
[주D-004]경사(京師) : 명나라 서울.
[주D-005]일표(日表) : 제왕(帝王)의 의표(依表).
[주D-006]영서(靈犀) : 영묘한 코뿔소. 그 뿔은 가운데 구멍이 있어서 양쪽으로 서로 통하는데, 이는 백성과 황제 사이에 의사가 서로 소통하고 투합(投合)함을 비유한 것임.
[주D-007]순상(馴象) : 길들인 코끼리.
[주D-008]소악(韶樂) : 우순(虞舜)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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