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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呼稱)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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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3-07 22:19 조회1,3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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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考)는 《예기》 곡례(曲禮)에, “생전에는 부(父)라고 부르고, 사후에는 고(考)라고 부른다.”
하였는데, 《설문(說文)》에는, “고는 노(老)의 뜻이다.” 하고, 《석명(釋名)》에는, “고는 성(成)의 뜻이니, 성덕(成德)이 있음을 말한다.” 하였다.

* 비(?)는 《이아(爾雅)》의 주(註)에, “비(?)의 뜻이니, 고의 배필이다.” 하였다.

* 옹(翁)은 《광아(廣雅)》에, “옹은 아버지이다.” 하였다. 그리고 《사기》에는, “나의 아버지[吾翁]는 바로 너의 아버지[若翁]이다.” 하였다.

* 공(公)은 아버지이다. 《전국책(戰國策)》에 의하면, “진진(陳軫)이 장차 위(魏)나라에 가려고 하니, 그 아들 진응(陳應)이 아버지[公]의 행차를 만류하였다.” 하였다. 또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공이라고 한다.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 의하면, “그 자식을 안고 젖 먹이며 시아버지[公]와 더불어 무례하게 나란히 앉았다.” 하였다.

* 부군(府君)은 《문중자(文中子)》에 ‘동천부군지술(銅川府君之述)’이란 말이 있다.

* 대가(大哥)는 당나라 현종(玄宗)이 영왕(寧王)에게 준 서신에서 대가라고 일컬었다.

* 형형(兄兄)은 북제(北齊)의 남양왕(南陽王) 고작(高綽)이 아버지를 형형이라고 부르고,
적모(嫡母)를 가가(家家)라고 부르고, 유모(乳母)를 자자(??)라고 부르고,
아내를 매매(妹妹)라고 불렀다.

* 야(爺)는 고악부(古樂府)의 목란(木蘭) 시에, “책(冊)마다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 있다[卷卷有爺名]”는 말이 있다. 오(吳)나라 사람들은 아버지를 자(?)라 부르고, 또 파(?)라 불렀다. 형(荊) 땅의 방언에는 아버지를 다(?)라고 하였다. 《정자통(正字通)》에는, “의붓아비[假父]를 동(?)이라 한다.” 하였다.

* 모(母)는 《석명(釋名)》에는 덮어 주다[冒]의 뜻이라 하였고, 《증운(增韻)》에는 사모하다[慕]의 뜻이라 하였다. 그리고 《창힐편(蒼?篇)》에는, “그 가운데에 있는 두 점은 사람의 젖을 상징한 것이다.” 하였다.

* 태부인(太夫人)은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의 주(註)에 이르기를, “열후(列侯)의 처를 부인(夫人)이라 칭한다. 열후가 죽고 아들이 다시 열후가 되면 이에 태부인이라 일컬을 수 있다.” 하였다.

* 모(?)는 공작행(孔雀行)에서 읊기를, “열심히 공모를 봉양하네[勤心養公?]”라고 하였다.
공(公)은 아버지를 말하고, 모(?)는 어머니를 말한다. 강남(江南)에서는 어머니를 아언(阿?)이라 부른다. 그리고 《자전(字典)》에는, “세속에서 어머니를 낭(娘)이라 칭한다.” 하였고, 《운회(韻會)》에는, “낭(娘)은 양(孃)과 같다.” 하였다.
송나라 인종(仁宗)은 유씨(劉氏)를 대양양(大孃孃)이라 부르고, 양씨(楊氏)를 양양(孃孃)이라 불렀다. 촉(蜀) 땅 사람들은 어머니를 저(姐)라 부르고, 강인(羌人)은 저(?)라 부르는데, 저(?)는 저(姐)와 같다. 그리고 강동(江東) 사람들은 제(?)라 부르고, 초(楚)나라 사람들은 황(?)이라 부르고, 또 내(?)라 부르며, 제(齊)나라 사람들은 미(?)라 부르고, 강회(江淮) 사람들은 제(?)라 부르고, 회남(淮南) 사람들은 염(?)이라 부르고, 오(吳)나라 사람들은 미(?)라 부른다.

* 소자(所子)는 《한서(漢書)》의 주에, “형제의 아들을 길러서 자기의 아들로 삼는 것을 소자라 한다.” 하였다.

* 여(女)는 《박아(博雅)》에는, “여는 따르다[如]의 뜻이다.” 하였고, 《백호통(白虎通)》에는, “사람을 따른다는 뜻이니,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고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 때문에 여(女)라 한다.” 하였으며, 《석명(釋名)》에는, “서주(徐州)와 청주(靑州)에서는 딸을 오(?)라 하는데, 오는 거스르다[?]의 뜻이다. 딸이 갓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고 언짢아한다.” 하였다.

* 손(孫)은 자(子) 자와 계(系) 자로 이루어졌으니, 조상을 계승함을 말한다. 《이아》에는, “손은 공순하다[順]의 뜻이니, 조상에게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현손(玄孫)은 《이아》의 주에, “현(玄)은 친속(親屬) 관계가 희미함을 말한다.” 하였다.
현손의 아들을 내손(來孫)이라 한다. 《석명》에, “내손은 무복(無服)의 관계에 있으므로 그 뜻이 소원(疏遠)하니 내래(乃來)라고 부른다. 또는 이손(耳孫)이라고도 한다.” 하였고, 응소(應昭)의 주에, “이손은 증조와 고조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서 귀로만 들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내손의 아들을 곤손(昆孫)이라 하니, 곤(昆)은 후(後)의 뜻이다.
곤손의 아들을 잉손(仍孫)이라 하니, 잉(仍)은 거듭하다[重]의 뜻이다. 《석명》에, “예(禮)를 가지고 그대로 유지할 뿐, 은의(恩義)는 실로 없는 것이다.” 하였다.
잉손의 아들을 운손(雲孫)이라 한다. 《석명》에, “거리가 이미 멀어 떠다니는 구름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형(兄)은 구(口) 자와 인(?) 자로 이루어졌는데, 인(?)은 인(人)이다. 구(口)와 인(人)으로 글자가 이루어진 것은 아우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백호통》에, “형(兄)은 견주다[況]의 뜻이니, 아버지에 견주는 것이다. 강남과 강북에서는 형을 황이라 부른다.” 하였다.

* 제(弟)는 순종하다[順]의 뜻이니, 형에게 순종함을 말한다.

* 자(?)는 자문하다[咨]의 뜻이다. 먼저 태어났으므로 자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형(女兄)을 저(姐)라 하고, 여제(女弟)를 매(妹)라 한다.

* 중(仲)은 가운데[中]의 뜻이니, 지위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 숙(叔)은 젊다[少]의 뜻이니, 어린 사람에 대한 호칭이다.

* 계(季)는 계(癸)의 뜻이니, 갑을(甲乙)의 차서에 계(癸)가 끝에 있기 때문이다.

* 부(夫)는 부축하다[扶]의 뜻이니, 도(道)로써 부접(扶接)함을 말한다.
부인이 남편을 이천(移天)이라 하니, 집에 있으면 아버지가 하늘이되 시집가면 남편이 하늘이 됨을 말한다. 또는 소천(所天)이라고도 한다.

처(妻)는 제(齊)의 뜻이니, 남편과 더불어 동체(同體)이기 때문이다.
빈(嬪)은 부인(婦人)의 미칭(美稱)이니, 서로 손님처럼 공경함을 취한 것이다.
부(婦 아내)는 복(服)의 뜻이니, 남편을 복종해 섬긴다는 것이다. 또 아들의 처를 부(婦 며느리)라고 하는데, 시부모를 복종해 섬긴다는 것이다. 강남에서는 부를 구(?)라 부르고, 강인(羌人)은 발(?)이라 불렀다. 《자휘(字彙)》에는 부를 식(? 며느리)이라 하였다.

* 고(姑 고모)는 고(故)의 뜻이다. 곧 나에게 구고(久故)의 사람이 됨을 말하니, 아버지의 자매(?妹)이다. 또 남편의 어머니를 고(姑 시어머니)라고 한다. 《광운》에는, “고(姑)는 위(威)라고 말하는데, 무섭기 때문이다.” 하였다. 또 장(? 시부모)이라고도 한다. 안사고(顔師古)는, “존장(尊章)은 구고(舅姑)라는 말과 같다.” 하였다.

* 질(姪)은 바꾸다[迭]의 뜻이니, 바꾸어 가며 진어(進御)함을 말한다.

* 형제의 처들이 서로 사(? 위 동서)니 제(? 아래 동서)니 하고 부른다. 《이아》에, “같은 남편을 섬기는 여자들이 먼저 난 사람을 사(?)라 하고, 뒤에 난 사람을 제(?)라 한다.” 하였다.
형제의 처들이 서로 축리(?? 동서)라고 부른다.

* 수(嫂)는 《석명》에는, “수는 나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하고, 《의례(儀禮)》에는, “수는 존엄(尊嚴)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하였다. 또 구수(丘嫂)라고도 하는데, 구(丘)는 크다는 뜻이다.

* 장인(丈人)은 태산(泰山)에 장인봉(丈人峯)이 있으므로, 처(妻)의 아버지를 악장(岳丈)이라 부르고 처의 어머니를 태수(泰水)라 부른다.

* 생(甥)은 생(生) 자와 남(男) 자로 이루어졌으니, 여자가 출가하여 다른 남자의 배필이 되어 낳은 것이다.

* 서(壻)는 사(士) 자와 서(胥) 자로 이루어졌는데, 서는 재서(才? 재지(才智))가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임금의 사위를 공서(公壻)라 하고, 공주(公主)에게 장가든 자를 주서(主壻)라고 한다. 죽은 딸의 남편을 구서(丘壻)라고 하는데, 구는 공(空)의 뜻이다. 그리고 자매(姉妹)의 남편끼리는 요서(僚壻 동서(同壻))라 하고, 손서(孫壻)는 낭서(郞壻)라 한다. 비서(婢壻)는 여종과 간통한 외부인이고, 유서(游壻)는 창기(娼妓)의 지아비이다.
반자(半子)는 《당서(唐書)》 회골전(回?傳)에, “가한(可汗)이 상서하기를, ‘지금은 사위이니 반 자식입니다.’라고 했다.” 하였다.
포대(布代)는 《천중기(天中記)》에 이르기를, “데릴사위를 포대라고 한다. 풍포(馮布)라는 자가 재간(才幹)이 있었는데, 손씨(孫氏)에게 데릴사위로 들어가자 그의 장인이 번거로운 일만 있으면 풍포에게 대신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하였다.

* 모(母)는 적모(嫡母)이다.
첩(妾)은 접(接)의 뜻이다. 또는 방처(傍妻)라고도 하고 처첩(處妾)이라고도 하는데, 처첩은 동녀(童女)이다.

김공 경연(金公敬淵)이 소싯적에 꿈속에서 “푸른 적삼에 흰 말을 타고 소동루를 향하는데, 장수의 깃발 앞세우고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靑衫白馬小東樓 牙纛去時不復還]”라는 시구를 얻었다. 이 시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가 의주 부윤(義州府尹)에 제수되어 부임할 때 한 성루(城樓)를 보고, “이것이 무슨 누대인고?” 하고 우연히 물어보았더니, ‘소동문루(小東門樓)’라는 것이었다. 공은 깜짝 놀라며, “이것이 바로 소동루인가. 나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내 병이 나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맹자(孟子)》에서 말한 “대인이 할 일이 있다.[有大人之事]”는 구절의 ‘대인’은 지위를 가지고 말한 것이고, “그 심지(心志)를 잘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된다.[養其大者爲大人]”는 구절의 ‘대인’은 덕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주역》에서 말한 “대인을 만나 보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는 구절의 ‘대인’은 덕과 지위를 겸해서 말한 것이다.
지금 사람은 아버지를 대인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한서(漢書)》 소광전(疏廣傳)에, “소수(疏受)가 소광(疏廣)에게 말하기를, ‘대인의 의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였으니, 숙부도 대인이라 칭할 수 있고, 또 《후한서(後漢書)》 범방전(范滂傳)에, “범방이 그 어머니와 결별하면서 말하기를, ‘대인께서는 차마 못하는 사랑을 잘라 버리소서.’라고 했다.” 하였으니, 어머니도 대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자가 선생에 대해서 더러 선(先) 자든 생(生) 자든 그 어느 한 글자만을 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漢)나라 때 숙손통(叔孫通)이 여러 제자들과 함께 조정 의식을 만들었는데, 제생(諸生)들이 “숙손생(叔孫生)은 참으로 성인이시다.” 하였고, 《한서》 매복전(梅福傳)에 의하면, 매복이 “숙손선(叔孫先)은 충성치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안사고(顔師古)의 주(註)에, “선(先)은 선생(先生)과 같은 것이다.” 했다. 또 장석지전(張釋之傳)과 공수전(?遂傳)에는 왕생(王生)을 위하여 버선끈을 매어 주었느니 한 말이 있고, 또한 공경(公卿)들이 등선(鄧先)이니 장담선(張談先)이니 하고 자주 말들을 하였으니, 모두 이 뜻이다.

출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5권
벽려신지(??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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