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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 김씨(通川金氏) 족보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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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김 작성일09-03-09 12:40 조회2,35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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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 일원에 세워진 뿌리공원에는 통천 김씨(通川金氏) 후손들이 세운 ‘통천 김씨의 유래비’가 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기록된 중랑장공외가호구입안(中郞將公外家戶口立案)을 근거로 1701년에 발간된 통천 김씨 족보 초간본에 통천 김씨의 시조는 마의태자(麻衣太子)의 아들 통천군 교(較)로 기록된다. 묘는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동봉곡(洞鳳谷)에 모셔 있고, 사당은 통천군 통천읍 감담면(甘棠面) 내동(內洞)에 모셔 있다. 후손들은 강원도 통천 일대에 세거하면서 이청(以淸)은 시중, 위(渭)는 정승에 올랐다고 기록되지만, 역사적 시련으로 선계(先系)를 정확히 고증할 수 없어 고려말 광정대부 판도판서 문한학사(匡靖大夫版圖判書文翰學士) 원등(遠登)을 중시조로 모셔 계대한다. 중시조 이후 3세손 진산교도(珍山敎導) 여산(如山)의 후손을 진산공파, 군수(郡守) 중령(仲齡)의 후손을 군수공파, 전직(殿直) 중복(仲福)의 후손을 전직공파로 분파하여 오늘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후손들이 관직을 따라 통천에서 전라도 완산(完山)으로 이주한 후 전직공파 9세손 빙(憑)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무고로 연루된 뒤 후손들이 흩어지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군수공파의 많은 젊은이들이 의병으로 출정하여 전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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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 김씨의 유래비’에 기록된 것처럼 통천 김씨(通川金氏)의 시조는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첫째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ㆍ金鎰)의 아들인 김교(金較)다. 그는 고려 제4대 광종(光宗ㆍ재위 949~975) 때 나라에 공을 세워 통주군(通州君)에 봉해졌으며, 통주(通州)는 통천(通川)의 옛 지명이므로 후손들은 관향(貫鄕)을 통천(通川)으로 삼게 되었다.

그후 시중((侍中) 김이청(金以淸)의 아들 김위(金渭)가 정난공신(定難功臣)으로 태사시중(太師侍中)에 올랐으나, 여러 대의 세계(世系)를 실전(失傳)하여 고려 말에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오른 김원등(金遠登)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계대(系代)를 잇고 있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는 김빙(金憑ㆍ1549~1590)을 통천 김씨(通川金氏)의 시조(始祖)로 기록하고 있는데, ‘통천 김씨의 유래비’에 기록된 전직공파(殿直公派) 9세손 빙(憑)을 말한다. 그는 조선 선조(宣祖)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형조좌랑(刑曹佐郞)에 이르렀으나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대관(臺官) 백유함(白惟咸)의 무고를 받아 기축옥사(己丑獄事)에서 죽음을 당했다. 김시양(金時讓)의 ‘부계기문(?溪記聞)’과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의하면 김빙(金憑)은 바람병으로 차가운 날 바람을 쏘이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역모를 하다가 자결한 정여립(鄭汝立)의 시체를 찢을 때 백관이 둘러서서 보게 되었는데, 그는 정여립(鄭汝立)과 좋은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마침 날이 차서 눈물이 흘러 나오므로 수건으로 자주 닦았다. 전부터 사이가 나빴던 백유함(白惟咸)이 이를 보고 말하기를 “빙(憑)이 여립의 죽은 것을 보고 슬퍼서 울었다” 하며 죄를 얽어서 죽였다고 한다.

통천 김씨(通川金氏) 최초의 족보는 숙종(肅宗) 27년(1701년) 발간된 ‘신사보(辛巳譜)’인데, 통천군(通川君) 김교(金較) 이후부터 중시조인 김원등(金遠登) 이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어 아래와 같이 계대(系代)를 편성하였다. 이후 철종(哲宗) 12년(1861년) ‘신유보(辛酉譜)’와 1913년의 ‘계축보(癸丑譜)’ 및 1956년의 ‘병신보(丙申譜)’까지는 동일한 계대(系代)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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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사보(辛巳譜)’에 기록된 시중((侍中) 김이청(金以淸)의 아들 김위(金渭)는 안산 김씨(安山金氏) 족보에 일세조(一世祖)로 올라있는 인물이다. 안산 김씨(安山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의 후손인 김긍필(金肯弼)을 시조(始祖)로 하며, 그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고려조에서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오른 충익공(忠翊功) 위(渭)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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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 김씨(通川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첫째 아들의 후손이고, 안산 김씨(安山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의 후손이라 엄연히 계통이 다른데, 안산 김씨(安山金氏) 일세조(一世祖) 김위(金渭)가 통천 김씨(通川金氏) 족보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통천 김씨(通川金氏)는 1970년 ‘경술보(庚戌譜)’ 수보시(修譜時)에 아래와 같이 계대(系代)를 편성하였는데, 정난공신(靖難功臣) 김위(金渭)와 중시조(中始祖) 김원등(金遠登) 사이에 7위(位)를 추가하였다. 그런데 그 7위(位) 중에는 안산 김씨(安山金氏) 일세조(一世祖)인 김위(金渭)의 아들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김원상(金元祥)과 광산 김씨(光山金氏) 9세로 간의대부(諫議大夫)와 비서감(秘書監)을 역임한 광중(光中)과 10세 체(?)를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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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씨(光山金氏) 시조(始祖) 김흥광(金興光)은 ‘정유보(丁酉譜)’에 의하면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및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경순왕((敬順王)의 첫째 아들의 후손인 통천 김씨(通川金氏)와는 계통이 다르다.

이렇게 잘못 기록된 통천 김씨(通川金氏) ‘경술보(庚戌譜)’는 1988년의 ‘무진보(戊辰譜)’와 2003년의 ‘계미보(癸未譜)’ 수보시(修譜時)까지 유지되어, ‘신라김씨이천넌사(新羅金氏二千年史)’와 ‘한국족보대전(韓國族譜大典)’, ‘한국인의 족보(韓國人의族譜)’ 등에서도 그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통천 김씨(通川金氏)는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1,040가구로 4,128명,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는 1,548가구로 4,98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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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성봉
2009-03-09 15:53 지난 2006년 12월 17 일에  올렸던 글을 전재합니다.


통천김씨 족보( 通川金氏 族譜)의 오류(誤謬)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통천김씨(通川金氏)는
系代를 알 수 없는 김빙(金憑  1549 -1590)을 始祖로 기록하고 있는데 김빙이 무고로 죽임을 당한 기록은
정약용(丁若鏞)의 <동남소사(東南小史)>, 김시양(金時讓)의 <부계기문(부溪記聞)>,
안방준(安邦俊)의 <혼정록(混定錄)>,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등의 문헌에 보인다.

통천김씨의 초간보(初刊譜)는 1701년(肅宗27)의 신사보(辛巳譜)인데
통천군(通川君) 김교(金)較 이후부터 판도판서 김원등(金遠登) 이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어

경순왕-(子)鎰- (子)較- - -(諱)以淸- (子)渭 라 하고 章을 바꾸어

(1世) 中祖 諱 遠登- (2世) 浩- (3世) 如山/ 中齡/ 中福으로 하였으며
1861년(哲宗12)의 辛酉譜와 1913년의 癸丑譜 및 1956년의 丙申譜 까지는
위와  同一한 系代로 편성했으나

1970년의 경술보(庚戌譜) 수보시(修譜時)에
敬順王 - 鎰(麻衣太子)- 較 - 昱 - 以淸 - 渭 - 元祥 - 守雄 - 光中 - 체 - 守剛 - 子廷 - 漆守 - 遠登 으로
편성하였으니 고려사 열전 김광중傳에 김광중의 관향(貫鄕) 기록이 없음을 착안하여 그 아드님 체 까지
통천김씨로 등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이는 경술보 수보당시 <金義元墓誌銘>과 <光山金氏族譜>
등을 살펴보지 못한 당시 임원들인 金允錫, 金世昌, 金哲旭, 金聖萬, 金炳玉)의 큰 실수였던 것인데

그 뒤 1988년의 무진보(戊辰譜)와  2003년의 계미보(癸未譜) 수보시(修譜時)에도 정정(訂正)하지않고
위 경술보와 同一하게 계대편성(系代編成)을 하고있어 이 그릇된 족보를 근거로 하여
<新羅金氏二千年史>와 <韓國族譜大典>,<韓國人의 族譜>, <韓國人의 姓譜> 등에도
光金 先代祖인 諱 광중과 그 아드님 諱 체가 通川金氏로 등재(登載)되어 있으니
광김 대종중에서는 통천김씨측에 시정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 그릇된점을
바로 잡아야 할것이다.  / 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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