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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공(沙村公) 김윤제(金允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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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5-31 21:46 조회2,2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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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총공(沙村公) 김윤제(金允悌 1501년 ∼1572년)은 광산인으로. 자는 공로(恭老), 호는 사촌(沙村)이다 .

증조부 김자침(金自沈)은 진사(進士)로 참의(參議)에 증직되었으며,
조부 김문손(金文孫)은 진사로 참판(參判)에 증직되었고,
아버지 김후(金?·金珝)는 진사에 합격하고 음직으로 정랑(正郞)과 현감(縣監),
조산대부(朝散大夫), 장예원사평(掌隸院司評)을 역임하였으며.
어머니는 여산김씨(礪山金氏)이다.

사촌공은 중종(中宗) 23년(1528)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等)에 합격하고,
중종(中宗) 26년(153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직강(直講),·홍문관교리(弘文館敎理), 전중어사 겸 춘추관 편수관(殿中御使 兼 春秋館 編修官)을 역임하였고,
남원판관(南原判官), 전주진영 병마절도사(全州鎭營 兵馬節度使), 부안군수(扶安郡守),
나주목사(羅州牧使)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으로 나갔다. 나주목사로 있을 때,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이 《주자대전(朱子大全)》에서 뽑아 엮은 《주자문록(朱子文錄)》
4책을, 간행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을 하였는데,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과
종질(從姪)인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고,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金德齡)과 김덕보(金德普) 형제는 종손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사촌공은 성산동으로 물러나, “환벽당(環碧堂)”이라는 정자를 짓고는 술잔을 들고 시를 읊으며
스스로 즐겼는데, 당시 호남의 이름난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단을 형성하였다.

사촌공(金允悌)이 교유한 사람들은 송순(宋純), 임억령(林億齡), 김인후(金麟厚), 소세양(蘇世讓),
양산보(梁山甫) 부자, 양응정(梁應鼎), 기대승, 김성원, 정철(鄭澈), 고경명(高敬命),
삼당시인으로 이름난 백광훈(白光勳)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호남사림으로 서로간의 정신적 유대감이 깊었으며,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을사사화(乙巳士禍)를 거치면서 시대의식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 蘇世讓의 陽谷集 卷 四 의

次李上舍綱韻 에

"謝扶安守金允悌惠蝦?及魚" 글귀가 보이고



* 임억령(林億齡) 의 석천시집(石川詩集) 卷 三

五言四韻 에 사촌공이 지은 아래 詩가 있다.

<次恭老韻>
- 金允悌 -

星山松石洞。衰老托殘生。賴有知心子。眞同喚友鶯。

天晴明鶴背。雨歇亂溪聲。日暮衣裳潤。凄迷霧入楹。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
司馬榜目
高峯集
陽谷集
石川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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