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헌김공(胄萬)행장(聽軒金公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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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6-20 22:40 조회1,866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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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1806년 德村(梁得中)先生集 卷之十. 碑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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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만(金胄萬 1632∼1717 )
자는 太初, 호는 聽軒, 본관은 光山
28세 (문숙공파/화평부원군파/참봉공파/청헌공) 86歲.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아버지는 석성 현감(石城 縣監) 화준(華俊)이며,
어머니는 영인(令人) 울산 김씨(蔚山金氏)로 행 가선대부(行 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경수(景壽)의 딸이다.
도학(道學)이 박흡(博洽)하고 효행(孝行)이 순지(純至)하여
이 상공(李 相公) 숙(숙)이 천(薦)하여 익위사 세마(翊衛司 洗馬)에 제수(除授)되었다.
1711년(숙종 37)에 사미(賜米)를 받았으며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衷將軍 僉知中樞府事)요,
타계(他界) 17년 후인 1734년(영조 10)에 효행(孝行)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승지겸(承政院 左承旨兼)경연 참찬관(經筵 參贊官)에 증직(贈職)되었고,
부인(夫人) 숙인 김씨(淑人金氏)도 숙부인(淑夫人)으로 증직(贈職)되었다.
聽軒集(奎15765), 金胄萬(朝鮮)著.
2卷 2冊 筆寫本(後寫) 31.8×21.3cm.
金胄萬의 詩文集. 5대손 金孝源 등이 간행했으나 그 연대는 미상.
金胄萬의 자는 太初, 호는 聽軒, 본관은 光山, 季父 金華伯에게 수업.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孝行으로 이름이 나
≪輿地勝覽新增≫에 기록되었다. 관찰사에 의해 朝廷에 孝學으로 추천되어
賜米와 官職이 내려졌으나 사양했다. 1711년(肅宗 37) 通政大夫의 官品이 내렸으며
1734년(英祖 10) ??孝로 左承旨에 追贈되었다.
卷{1}:詩 66수, 書50편(與高象卿, 與金롱巖宅, 與閔老峯, 與李修撰翊, 與朴進士世彬, 與黃判書欽, 答韓監司聖佑, 與李相公尙眞 등), 銘 3편(貼枕銘, 六止堂銘, 八德扇銘), 序 3편(酬贈朴希曾序, 祭屛文幷序, 蓬山九老會序),
記 1편(竹陰堂記), 祝文 4편(遷葬時告廟文, 改題主告辭, 彌祭告辭, 移卜古阜時告辭), 祭文 9편(祭逸休亭 李??, 祭息營堂金又器, 祭롱巖金宅三, 祭鄭東賓震伯, 祭瀛海君高斗煌, 祭李萬燁 등), 行狀 1편(息營堂金公行狀).
卷{2}:金胄萬이 지은 家誡訓蒙頂針, 부록으로 金胄萬의 行狀과 碣銘.「家誡訓蒙頂針」은 자손들을 訓戒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내용은 訓蒙頂針 題辭, 內編(祭享儀節, 薦新物産, 俗節獻以時食, 茶禮儀節, 饌品定數), 外編(國恤儀節, 長幼體例, 待人要法, 處身要旨, 生理要訣, 登第處事, 居官雜儀, 謁聖興學, 笞杖刑獄, 收捧倉穀, 失物推尋, 待士接客)으로 되어있다. 內編은 家庭儀禮를 주로 다루었으며 外編은 대인관계, 관직생활, 학교, 형벌문제 등 주로 사회적인 儀禮와 활동 등을 주로 다루었다. 「蓬山九老會序」는 1704년 交友가 깊은 9노인이 모여 九老會를 만들 때 쓴것으로 羅汝張, 高晦仲, 金胄萬 등의 이름이 나온다. 본집은 17∼18세기의 儀禮와 사회활동 문제들을 연구하는데 가치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