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급제한 김호(金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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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6-27 12:20 조회2,165회 댓글7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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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년에 문과에 급제한 휘 호(瑚)는 2종의 방목에 본관을 미상이라 하였으나
1종의 방목에 경산(慶山)으로 기록되어 이를 근거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의 기록에
휘 호(瑚)의 본관을 경산(慶山)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바르지 않다.
경산김씨보(慶山金氏譜)를 검토한 즉 문과에 급제한 김호(金瑚)는 없었다.
살피건대
전한(典翰) 김규(金? 1522~1565)가 찬(撰)한 김호의 묘갈명(墓碣銘)과
이조참판 심의신(沈宜臣)이 찬(撰)한 김호의 비명(碑銘)을 참고하고,
공조판서 최익현(崔益鉉)이 찬(撰)한 김호의 묘지명(墓誌銘)에 기록된
휘 瑚께서 급제한 급제년도=世宗14년, 과방=式年試, 관직=司藝의 기록이
방목내용과 일치(一致)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한
1종의 문과방목 본관기록 경산(慶山)은 필사(筆寫)과정에서 사오(寫誤)한 것이
명백하다고 여긴다.
* 본관이 光山(光州)인데 문과방목에 바르지 못하게 기록된 例
1721년 문과급제한 김동준(金東俊) 義城人
1723년 문과급제한 김백호(金白虎) 光陵人
1870년 문과급제한 김영목(金永穆) 全州人
댓글목록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작고한 전북대 송준호 교수와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는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명단(문과방목)을 30년동안 다 수집해놓고도
자료의 불완전성을 염려해 공개하지 못하다가
2001년에 와그너교수가, 2003년에 송준호교수가 각각 작고했었다.
* 송준호교수 아들인 전주대 송만오교수가 2008년도에 위 책을 펴낸
<補註 朝鮮文科榜目>에는 아래의 기록이 있다.
>>세종 14년 壬子式 / 00585 전호(全瑚)
▣ 00585 전호(全瑚)
▷ 00585 전호(全瑚) (1432 世宗 14年 壬子式年 32/33)
【전자】 생원(生員)
【직력】 사예(司藝)
【본관】 경산(慶山)
【기타】 선계(先系)
【자료】 MTP NL .
【선계(先系)】
☞ 모든 방목(榜目)에 김씨(金氏)로 나오며 본관(本貫) 기사(記事)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MK에서만 “경산인(慶山人)”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MK는 또 “경산전씨운(慶山全氏云)”이라고 주(註)를 달고 있어 전씨(全氏)로 나오는 문헌(文獻)도 있었음을 말하여 주고 있다. 실지로 SSW에서는 경산전씨(慶山全氏)편에 Cand를 싣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그가 세종(世宗) 14年(1432) 임자문과(壬子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냈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있으며 부조(父祖)나 후손(後孫)에 관한 기사(記事)가 전무(全無)하다. Cand의 이름도 방목(榜目)에 따라 호(瑚)로 나오기도 하고 기(期)로 나오기도 한다.
한편, 광산김씨족보(光山金氏族譜)를 보면 Cand가 호(瑚)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거기에 “공양왕(恭讓王, 1390) 경오생(庚午生) 권양촌문인(權陽村門人) 태종(太宗, 1414) 갑오사마(甲午司馬) 세종(世宗, 1432) 임자문과(壬子文科) 교리응교(校理應敎)… 도승지리조참판(都承旨吏曹判) 외보함길도안찰사(外補咸吉道按察使), 임오졸(壬午卒) 묘재보성(墓在 寶城)”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족보(族譜)에 따른다면 Cand는 정종(定宗) 때 성균제주(成均祭酒)를 지낸 사무(師武)의 아들이요 전한(典翰) 질(質)의 손자(孫子)이며, 간()의 증손(曾孫)이다.
또 외조(外祖)는 “윤○○(尹○○)”이요 처부(妻父)는 충주인(忠州人) 박희묵(朴喜默)과 천안인(天安人) 전중영(全仲英)이다. <<
* 기호설명
MTP NL
萬姓大同譜에 해당 氏族은 있으나 해당 文科及第者가 없다는 뜻.
MK
《國朝文科榜目》(奎章閣 所藏, 寫 8冊本, 尹汲撰)
SSW
《氏族源流》(趙從耘(1607∼1683)撰, 保景文化社 影印本)
* 본문 아래로부터 셋째줄 <간()의 증손(曾孫)이다>는
휘 간(諱 簡)이 諱 瑚의 손자(孫子) 이니 오류임.
孤巖/準一님의 댓글
孤巖/準一 작성일
성봉님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드릴말씀이 있어요.
님께서 문과급제한 김호(金瑚)의 기고문 붙임 글에서 간(簡)의 를 간(簡)이 로 수정 해주시고 증손을 손으로 수정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휘 호(諱 瑚)께서는 18世 이시고 휘 간(諱 簡)께서는 16世 이시기에 諱 瑚의 손자(孫子)입니다.
끝으로 성봉님 건승을 기원하옵고 행복하세요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안녕하세요.
본인의 붙인글 중 " >>~ <<" 안에 있는 글은 본인 글이 아닙니다.
故 송준호교수와 와그너교수가 수집했던 자료를
송준호교수의 子 송만오교수가 작년(2008년)에 펴낸
책 내용에 있는 자료를 전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수정할 수 없으니 고암께서
바르지않은 내용을 지적, 붙임글을 남기시지요.
孤巖/準一님의 댓글
孤巖/準一 작성일
21世 이조참판 휘 호(諱 瑚)에 대하여
故 송준호교수와 와그너교수가 수집했던 자료를 송준호교수의 子 송만오교수가 작년(2008年)에 펴낸 자료에 휘 호(諱 瑚)가 간()의 증손(曾孫)이다. 했는데 광산김씨 족보를 보면 휘 호(諱 瑚)는 시조(諱 興光)의 21世 이고, 휘 간(諱 簡)은 시조의 23世 이므로 휘 간(諱 簡)은 휘 호(諱 瑚)의 손자(孫子)입니다.
그러므로 간()의 증손(曾孫)이다. 라는 것은 오기(誤記)이므로 삭제(削除)해야 합니다.
21世 이조참판 휘 호(諱 瑚)께서는 本人의 18世(代)祖 이시고
23世 참봉공 휘 간(諱 簡)께서는 本人의 16世(代)祖 입니다.
김씨네님의 댓글
김씨네 작성일
간(簡))의 증손(曾孫)이다. 라는 것은 성봉님의 주장이 아니고
故 송준호교수와 와그너교수가 수집했던 자료를 子 송만오교수가
작년(2008年)에 펴낸 자료를 인용한 문구이기에 오류 시정은
송만오 교수에게 요구하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전말을 모르는 분들은 성봉님께서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는것 처럼 비춰질수 있으나
인용문구를 맘대로 변질 시킬수는 없으며 굳이 바로 잡고져 한다면
고암 준일님께서 휘 간(諱 簡)은 휘 호(諱 瑚)의 손자(孫子)이므로
故 송준호교수와 와그너교수의 자료는 오류다라고 뎃글을 하나 달면 간단할걸로 생각됩니다.
孤巖/準一님의 댓글
孤巖/準一 작성일
23世 휘 간(諱 簡)은 21世 휘 호(諱 瑚)의 孫子입니다.
그런데 故 송준호교수와 와그너교수의 자료에 " 휘 호(諱 瑚)는 휘 간()의 曾孫이다" 라는 오기(誤記)가 있어
後孫으로써 오류(誤謬)를 바르게 알려 드립니다.
송만오님의 댓글
송만오 작성일
전주대의 송만오입니다. 저의 아버님께서 작업하신 문과방목 내용에서 여러 어르신들께서 지적하신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참고로 제가 지난해에 출간한 문과백서는 문과방목과는 다른 성격의 책입니다. 문과백서는 조선시대 과거제 운영의 면을 다른 책이며, 따라서 급제자에 관한 사항은 매우 소략합니다. 문과백서 서문에서도 그 사정을 말씀드린 바 있는데, 문과급제자 개개인 또는 그 집안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와그너 송 문과방목에서 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위 방목은 현재 제가 추가 보완작업 중이며 늦어도 2011년 말까지는 출판할 계획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의 집안을 다루다 보면 외외로 본관이 분명치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본관이 다르게 적혀 있는 분들이 많다는 말씀인데, 그런 분들이 나올 때마다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제 아버님께서도 역시 그러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나름대로 어떤 자료를 기준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데(저나 제 아버님께서는 MK라고 불리는 규장각 소장 문과방목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틀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김씨, 이씨 박씨의 경우 그러한 예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때마다 상세한 주석을 달아 본관처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와그너 송 방목 상에 나와 있는 내용 중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점이 발견되면 제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수정에 반영하겠습니다. 참고로 제 이메일은 songcop@hanmail.net이며 제 휴대폰은 011 680 5268입니다. 다시 한 번 제 아버님의 작업에 갚은 관심을 가져 주신 점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