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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이조참판(吏曹參判) 휘 호(諱 瑚)의 고찰(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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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孤巖/準一 작성일09-06-27 14:43 조회1,3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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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이조참판(吏曹參判) 휘 호(諱 瑚)의 고찰(考察)
孤巖/準一 2009-06-27 15:26:05, 조회 : 0, 추천 : 0

21世 김 호(金 瑚)(문숙공파/화평부원군파/寶城 入鄕祖)(1390 ~ 1452) 63歲
조선 전기의 문신. 字는 옥여(玉汝)이고, 호(號)는 삼모헌(三慕軒)이며, 휘(諱)는 호(瑚)요.보성 입향조 (寶城 入鄕祖)이다. 아버지는 성균관 좨주(成均館 祭酒 從3품)사무(師武)이며, 어머니는 숙인(淑人) 윤씨(尹氏)이다.
공(公)은 1390년(고려 공양왕2년 庚午生)출생 하고 1452년(이조 문종 2년 壬申卒)9월 27일 졸(卒)하니 향년 63세 이다.

1402년(태종 2) 13歲에 양촌(陽村) 권 근(權 近) 문하(門下)에서 배우니 권공(權公)은 지목(指目)하되 다른 날 대신(大臣)의 수완(手腕)이 있다 하고 말씀하되 세상을 울릴만한 재목(材木)이 때를 위하여 나왔다 했다. 1414년(태종 14 )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1416년(태종 16) 전생서 참봉(典牲署 參奉)을 하였고

1432년(세종 14)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동년(同年)에 홍문관 교리(弘文館 校理 正5품)와 성균관 사예(成均館 司藝 正4품), 1434년(세종 16)에 예문관 응교(藝文館 應敎 正4품),1435년(세종 17)에 장예원 판결사(掌隸院 判決事 從2품), 1437년(세종 19)에 이조,예조 참의(吏曹,禮曹 參議 正3품)와 승정원 도승지(承政院 都承旨 正3품)를 거쳐 이조참판(吏曹參判 從2품)에 승진되고 외직(外職)으로 청도군수(淸道郡守)와 함길도 안렴사(咸吉道 按廉使)를 보직(補職)받아 같이 성적(聲蹟)이 있었고 돌아오니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제수(除授)하니 사양(辭讓))하고 나가지 않았다.

공(公)이 어버이 섬기는 일절(一節)은 백행(百行)에 근원이 되었고 충성을 다하여 후손의 길을 열어줌은
유득 일가에 표준이 될뿐 아니라 또 시인(時人)으로 하여금 다 자랑을 하고 본받을만 했고 포은(圃隱)목은(牧隱) 두선생의 도(道)로 몸에 법을 삼고 우러러 스승으로 여겨 그 흥감(興感)함이 친히 배운것과 다름이 없었고 부사(父師)의 차례에 돈독하여 효도하고 공경하는 도(道)를 다함과 사숙(私淑)하여 강명(講明)함이 사람보다 다름을 가히 속이지 못하였고 조정(朝廷)에 선지 거의 이십년(二十年)에 언제나 제왕가(帝王家)의 역대선정( 歷代善政)을 아뢰고 힘쓰게 함이 정성스럽고 너그럽고 깊으니 간함을 좇아 어기지 않했으며

본디 모앙(慕仰)한자는 하은주삼왕(夏殷周三王)이라 그 풍화(風化)의 밝음을 장차 우리 동쪽에 만회(挽回)하려하여 하루 삼시로 임금께 아뢰어 임금에게 하우씨와 탕임금과 문왕(文王)을 바라고 항상 스스로 힘쓰는 말은 익(益)과 후직(后稷)의 꾀를 내가 장차 밝힐지며 이윤(伊尹)과 래주(萊朱)의 도움을 내가 장차 따를지며 크게 펼 계책을 내가 장차 진달(進達)하리라 하며 그 임금 보기를 삼성(三聖)처럼 여겨 밤낮으로 사모하고 사랑하니 모애(慕愛)하는 정성이 또 당세치정(當世治政)에 도움이 되었다.

공(公)의 시(詩)에 이른바 사람이 다 취했다 말라 내가 홀로 깬것만 못하네! 임금을 도운뒤에 뜻은 만생령(萬生靈)이 춤추게 함이라."막왈인개취무여아독성(莫曰人皆醉無如我獨醒)하니 찬양연후의도무만생령(贊襄然後意蹈舞萬生靈)이라" 보한제(保閒齋) 신숙주(申叔舟)가 일컸되 "김공(金公)의 마음을 보려하면 먼저 그 호(號) 삼모(三慕)의 뜻을 새겨보라 했으니
이를 참고해보면 그 충성하고 사랑하는 일념(一念)으로 우리 임금께 바라는것은 차라리 삼대(三代)를 배우다가 이르지 못할지언정 작은 이익과 가까운 공으로 구차히 한 때를 편히하여 서까래로 새는것을 막으려는 꾀를 하려하지 않음을 더욱 증험하리라. 또 말씀하되 국을 끓임에 간사한 입을 경계하여 기미를 먼저 알고 시작한다함은 이 어찌 전일에 좌천(左遷)을 말함인가 혹 이에 즐기지 아니함은 배척하는데 빠저 하여금 조정에 편안치 아니하여 그러함인가 알수 없도다."

배(配) 정부인(貞夫人) 충주박씨(忠州朴氏)는 아버지 세자익위사 익찬(世子翊衛司 翊贊 正6품) 희묵(喜默)의 여식(女息)으로 무육(無育)하였고 후배(後配) 정부인(貞夫人) 천안전씨(天安全氏)는 아버지 목사(牧使 正3품) 중영(仲英)의 여식(女息)으로써 4남 1녀를 낳았으니 남장(男長)은 자중(自中)이니 현감(縣監 從6품)이고,다음은 자용(自庸)이니 사헌부 집의(司憲府 執義 從3품)이고,다음은 자지(自知)니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正6품)이고, 다음은 자남(自南)이니 황해감사(黃海監司 從2품)이고, 여(女)는 군수(郡守 從4품) 완산(完山)이치우(李致愚)에게 출가(出嫁)했다.

공(公)의 묘(墓)는 보성군 보성읍 대야리(大野里) 山 69번지 선산(先山) 을좌(乙坐)이고 유갈(有碣)하니 홍문관 전한(弘文館 典翰 從3품) 탄수(灘수) 김 규(金 규)가 찬갈(撰碣)하고, 참판(參判 從2품) 심의신(沈宜臣)이 명(銘)하고, 판서(判書 正2품)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찬지(撰誌)하였으며, 매년(每年) 음(陰) 3월 12일에 보성군(寶城郡)보성읍(寶城邑)옥암리(玉岩里) 성곡(星谷) 추원재(追遠齋)에서 세일사(歲一祀)를 봉행(奉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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