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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현감(石城縣監) 휘 화준(諱 華俊)의 어사보연(御賜寶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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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孤巖/準一 작성일09-06-27 22:51 조회1,2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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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 휘(諱)는 화준(華俊)이고, 자(字)는 사원(士元)이며, 호(號)는 당계(棠溪)이니 문숙공파(文肅公派)에 화평부원군(化平府院君)의 후손(後孫)이다.

선조(宣祖) 35年(1602) 2월28일에 아버지 증 장악원 정 公( 贈 掌樂院 正, 諱:式南)과 어머니 숙인 평해오씨(淑人 平海吳氏)와의 사이에 차남(次男)으로 전남(全南)의 해남(海南) 해촌(海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성(天性)이 효우(孝友)하여 부모의 명(命)에 거스름이 없이 순종(順從)하였고 아침,저녁으로 문안(問安)드림이 성인(成人)과 같았다. 또한 유희(遊戱)하며 놀지않고 글 공부에 뜻을 두었으니 6세(歲) 때 형(兄) 화우(華佑)가 시(詩)를 읊는 소리를 듣고 오언시(五言詩)를 짓기도 하였다.

자라며 더욱 학문(學文)에 열중(熱中)하여 크게 성취(成就)하였으나 그 때에 나라가 혼미(昏迷) 하기에 과거(科擧)길에 나아가지 아니 했다. 그리고 부모봉양(父母奉養)에 전념(專念)하여 맛있는 음식(飮食)을 드리고 추위 때는 따뜻하게, 더위 때는 시원하게 하고 반드시 나아갈때 인사(人事)하고, 돌아와서 고(告)하며 항상(恒常) 편안(便安)하게 하였다.

인조(仁祖) 5年(1627) 5월 13일에 아버지가 졸(卒)하니 슬픔과 예(禮)로서 장사(葬事)하고 3年동안 시묘(侍墓)를 살았다. 3年 상(喪)을 마치고 상경(上京)하여 인조(仁祖) 11年(1633) 32歲에 생원 시(生員 試)에 합격(合格)하였으며 같은 해 문과(文科) 급제(及第)를 하였다. 승정원 주서(承政院 注書)로서 벼슬 길에 올라 있다가 한 때 휴가(休暇)중에 있었는데 인조(仁祖) 14年(1636)에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났다. 이 때 공(公)은 이 소식(消息)을 듣고 말을 타고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임금이 있는 곳에 달려가니 왕(王)이 공(公)을 보고 충절(忠節)과 문사(文詞)를 사랑하여 보연(寶硯=벼루)을 하사(下賜)하였다.

그 보연(寶硯)은 문중(門中) 취운재(聚雲齋)에 보존(保存)되어 있으니 돌 같기도 하고 옥(玉)같기도 하며 두드리면 소리가 나고 입으로 불면 물기가 생기며 그 문양(紋樣)은 포도 덩굴이 암석(巖石)사이에 난 것 같고 열매가 달렸으며 원숭이, 메뚜기, 개구리 형상(形象)이 극(極)히 교묘(巧妙)하게 섞여있는 문화재 급(文化財 級) 보물(寶物)이다.

곧 조봉대부(朝奉大夫)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 說書) 지제교 겸(知製敎 兼) 춘추관 편수관(春秋館 編修官)에 제수(除授) 되었으나 굴욕적(屈辱的)인 화의(和議)가 이루어 졌으므로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故鄕)에 돌아가 만년(晩年)을 시주(詩酒)로 달래고자 자호(自號)를 당계(棠溪)라 하였다. 이에 정승(政丞) 이경여(李敬輿)가 임금에 아뢰기를 "김모(金某)는 늙은 어머니를 봉양(奉養)하고자 하니 지방(地方) 원(員)으로 보냄이 어떠 할까요?" 라고 상언(上言)하여 석성 현감(石城 縣監)에 제수(除授)되었다.

국화(菊花)란 운자(韻字)로 시(詩)를 지으니 거관미각거관호(居官未覺居官好), 처세방지처세란(處世方知處世難), 정치풍상구월일(正値風霜九月日), 국화유여후인간(菊花留與後人看)이란 훌륭한 시(詩)를 남겼다.

편모(偏母)를 모실때 물고기를 낚시 질 하여 맛있는 음식을 드리고 형제간(兄弟間)에는 한 방에 거처(居處)하며 돈목(敦睦)하고 재산(財産)에 내것, 네것을 가리지 않았다. 그 후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취임(就任)하지 안했다. 인조(仁祖) 21年(1643) 어머니가 병(病)에 걸려 돌아가시자 심(甚)히 애통(哀痛)한 나머지 병(病)에 걸려 이듬해(1644) 12월 2일 43歲로 운명(殞命)하였다. 후(後) 에 영의정(領議政)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이 공(公)의 효행(孝行)을 천(薦)하여 나라에서는 효자(孝子)의 정려(旌閭)를 내렸다.

현손(玄孫) 용수(龍壽)가 가장(家狀)을 짓고 무장 현감(茂長 縣監) 윤인규(尹仁圭)가 행장(行狀)을 지었으며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행(行) 예조판서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禮曹判書 兼 五衛都摠府 都摠官) 이돈영(李敦榮)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으며 유고(遺稿)가 있다.

공(公)의 부인(夫人) 영인(令人) 울산 김씨(蔚山 金氏)는 아버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오천 경수(鰲川 景壽)의 따님으로써 선조(宣祖) 37年(1604) 2월 25일에 출생하고 숙종(肅宗) 6年(1680) 4월 23일에 졸(卒)하니 수(壽) 77歲 이었다.

공(公)의 묘(墓)는 전남 장성군 북이면 오월리 필동 후강(後岡) 해좌(亥坐)이고 부인(夫人) 영인(令人) 울산 김씨(蔚山 金氏)와 합장(合葬)하였으며 세일사(歲一祀)는 매년(每年) 음(陰) 9月 9日에 향사(享祀)한다.

공(公)의 자녀(子女)는 4男 2女를 두었는데 맏아들 주만(胄萬)은 효행(孝行)으로 증(贈)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承政院 左承旨 兼 經筵 參贊官)에 제수(除授)되고, 다음은 주항(胄恒)으로 학행(學行)이 명어세(名於世) 하였고, 다음은 주석(胄錫)으로 무사과(武司果)이고, 다음은 주관(胄寬)으로 무선전(武宣傳)이었으며 맏 딸은 진사(進士) 진천(鎭川) 송 심(宋 심=삼수변에 생각념)에게 출가(出嫁)하고, 다음은 승사랑(承仕郞) 황주(黃州) 변세노(邊世老)에게 출가(出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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