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김윤제 선생의 생애와 후학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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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펌글 작성일09-07-14 16:14 조회2,0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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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소개
- 본문요약 -
사촌의 생애
沙村 金允悌의 생애는 종8세손 金致浩가 쓴 ?沙村公墓碣銘?과 ?光州金氏世譜?를 바탕으로
제가들의 문집을 참고로 작성하였다.
金允悌(1501-1572)의 자는 恭老이며 호는 沙村으로 光州人이다. 高祖 有章은 진사를 하였다. 曾祖 自沈은 진사를 하였으며 參議에 증직되었다. 조부 文孫은 진사를 하였고 參判에 증직되었다. 부친 珝는 진사를 하였으며 음직으로 正郞과 縣監을 역임하였다. 모친 淑夫人은 礪山 金氏로 弘治 辛酉(1501)년에 石底村에서 공을 나았는데 지금의 忠孝里이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수학하였는데 明敏하여 일반인과 다른 자품이 있었으며 文藝를 일찍 성취하였다. 嘉靖 戊子(1528)에 進士에 합격하였고, 辛卯(1531)에 文科에 급제하였다. 숙부 ?과 더불어 나란히 입조하니 당세의 聲望이 무거웠다. 直講?弘文館敎理?殿中御使兼春秋館編修官을 역임하였고 지방 수령으로서의 능력이 있어 全州鎭營 兵馬節度使, 扶安郡守, 羅州牧使 등 13개 고을에 원님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
부안군수로 있을 적에 사촌이 새우젓과 생선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고맙다고 사례하는 시가 陽谷 蘇世讓 蘇世讓(1486-1562)은 본관 진주(晉州)로 자는 彦謙 호는 陽谷?退齋?退休堂으로 시호는
文靖이다. 1545년(인종 1) 尹任 일파의 탄핵으로 사직, 명종
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로 윤임
등이 몰락하자 재기용되어 左贊成을 지내다가 사직, 益山에 은퇴했다. 문명이 높고 律詩에 뛰어났으며, 글씨는 松雪體를 잘 썼다. 익산 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陽谷文集?이 있다.
의 문집에 보인다. 蘇世讓, ?陽谷集? 권4, ?謝扶安守金 允悌 惠蝦?及魚? 제2수. 제1수는“紫蝦顔色勝桃花, 政値秋園摘露茄. 此味只憂兒輩覺, 憑君休向北人誇.”이다.
이 시는 소세양이 益山에 은퇴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일로 보여진다.
가을비가 열흘 넘겨 땅에 꽃들 썩어가니
반찬 올린 오이 가지 오래도록 물렸는데
대소쿠리 성한 생선 멀리서 보내주니
처자식을 바라보며 내 홀로 자랑하오.
秋雨經旬土蝕花, 盤饌久厭?瓜茄.
筠籠遠惠莘莘尾, 却對妻?獨自誇.
蘇世讓, ?陽谷集? 권4, ?謝扶安守金 允悌 惠蝦?及魚?
가을비가 열흘이 넘게 내.. -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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