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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 72현록 ( 杜門洞 七十二賢錄 ) 휘 승길(承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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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뜨앗 작성일10-02-17 17:15 조회1,27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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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 72현록 ( 杜門洞 七十二賢錄 )
▶광산김씨 19세 휘 승길(承吉)

광산김씨 19세 김승길(金承吉)(양간공파/전리판서공파/사은공)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절신, 호는 사은(沙隱), 아버지는 전리판서(典理判書) 인우(仁雨)이며 어머니는 일선부부인(一善府夫人) 선산김씨(善山金氏)로 화의군(和義君) 달상(達祥)의 딸이다.

벼슬이 함종현령(咸從縣令)이었으나 1374년(공민왕 24) 아버지 인우(仁雨)가 장사감무(長沙監務)로 좌천(左遷)되니 벼슬을 버리고 따라 나섰다.

평소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길재(吉再)와 더불어 도의로 사귀더니 정몽주의 죽음 소식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되 "나라가 위태로워도 구하지 못하니 이는 불충(不忠)이요, 친구가 죽어도 조문하지 못하니 이는 무신(無信)이라, 이러고서야 무슨 면목으로 천지간에 서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자취를 감추어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의생(曺義生), 임선미(林先味), 맹유(孟裕)등과 같이 불을 밟고 순절(殉節)했다고 전한다.

1751년(영조 28) 가을에 영조가 서도(西都: 현 개성)를 순시(巡視)할 때 그 절의를 추감(追感)하여 제사를 지내는 비(碑)를 세워 어제(御題)로 승국충신금언재특수기동표기절(勝國忠臣今焉在特竪其洞表其節: 고국충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특별히 그 마을에 비를 세워 그 절개를 표한다)라 하였다.

※ 전남 경현사(景賢祠), 유덕사(遺德祠), 화동서원(華東書院)에 배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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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동서원(華東書院) 祠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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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서원은 1796년 후손들이 광주 평장동에 사우를 건립하여 화동사(華東祠)라 하고 문안공(文安公) 諱 양감(良鑑) 선생을 봉향하다가 중간에 훼철되었다.

그후 1957년 호남유림들의 공론으로 현 위치에 다시 세워 사(祠)를 고쳐 서원이라 하고 문안공을 주벽으로 봉안(奉安)하였으며, 그 후손 전리판서공 인우(仁雨), 사은공(沙隱公) 승길(承吉), 매은공(梅隱公) 오행(五行) 3선생을 철향하였다. 

화동서원은 경내에 사우(祠宇) 5가3간, 신문(神門) 3가3간, 정모재(靖慕齋)5가5간, 진수당(進修堂)5가4간, 명성재(明誠齋)5가5간, 치경재(致敬齋)5가3간, 산앙문(山仰門)3가3간과 고직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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