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공숙공(휘 良璥)의 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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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 작성일10-10-19 16:39 조회1,19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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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성봉님께서 공숙공님의 네이버 본관 자료를 어렵게 수정하셨습니다.
아직도 일부 싸이트엔 상주로 되어있습니다.

역사정보시스템의 인물을 정리하면서 많은 오류를 발견합니다.
원본을 옮겨 적을때 한자 해독에서 부터 오류는 시작되고, 동명이인을 분간하지 못하는 오류도 많고, 잘못된 기록을 필사하면서 다시 오류도 생기고........

논란이 되는 부분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실록의 기록이라고 완벽한 것 아니고,
족보의 기록이라고 정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더 정확한 기록이 나올때 현재의 기록을 수정할 수 있는 전향적인 마음이 필요하고
선조들의 잘못된 역사기록은 일가님들이 적극적으로 수정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역사정보시스템의 일부 선조님의 본관은 수정하였고, 일부는 요청중에 있습니다.


아래글은 역사인물 정리중에 《Wagner & 宋 朝鮮文科榜目》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김양경(金良璥) 의 가계(家系)에 관하여는 《國朝文科榜目》》(奎章閣 所藏, 寫 8冊本, 尹汲撰)를 비롯한 모든 방목(榜目)이 한결같이 다 그가 광산김씨(光山金氏)이며 부(父)는 효민(孝敏)이요 외조(外祖)는 박중유(朴仲游)라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관직(官職)이 “형판(刑判)”이며 시호(諡號)는 “공숙(恭肅)”이라는 기사(記事)도 모든 방목(榜目)에 동일(同一)하게 나오며,

그가 “양완형(良琬兄)”이라는 것도 《國朝文科榜目》》(奎章閣 所藏, 寫 8冊本, 尹汲撰),《國朝榜目》》(奎章閣 所藏, 寫 12冊本 즉, 國會圖書館 影印本) 및 《登科錄》》(일본 東洋文庫 所藏, 寫 13冊本)에서 똑같이 언급(言及)하고 있다. 《國朝榜目》(國立中央圖書館本 所藏, 寫 13冊本)에는 관련 기사(記事)가 없다.)

그런데 그는 사실 양완(良琬)의 형(兄)일 뿐만 아니라 양전(良琠)의 형(兄)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본관(本貫) 및 선계(先系)에 관한 문제는 나머지 두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이 된다. 아무튼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조(祖)와 증조(曾祖)는 누구이며 외조(外祖)는 어느 박씨(朴氏)이고 처부(妻父)는 또 어느 성씨(姓氏)의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겠는데, 《萬姓大同譜》의 광산김씨(光山金氏)편에는 그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朝鮮王朝實錄》(國史編纂委員會本)의 성종(成宗) 15年(1484) 6월(月) 병자일조(丙子日條)를 보면 그와 동명(同名)인 김량경(金良璥)이라는 사람의 졸년(卒年) 기사(記事)는 나오며 거기에, “자(字)는 자보(子寶)이며 본(本)이 상주(尙州)이고 정통임술(正統壬戌) (즉, 1442年 世宗 24)에 등제(登第)하였으며…시호(諡號)는 공숙(恭肅)”이라고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정통임술(正統壬戌)의 문과급제자라면 위의 김양경(金良璥) 바로 그 사람이다. (朝鮮時代의 문과급제자 중에 이 이름의 主人公은 이 사람 하나뿐이다.) 더구나 시호(諡號)가 같고 자(字)도 《國朝文科榜目》(奎章閣 所藏, 寫 8冊本, 尹汲撰)에 나오는 그것과 일치하니 일단은 우리의 문과급제자가 광산금(光山金)이 아니라 상주금(尙州金)일 가능성이 크다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문과급제자의 형제(兄弟)와 그의 선계(先系)가 상주김씨족보(尙州金氏族譜)에서 찾아져야 하겠는데, 불행(不幸)히도 아직은 찾지 못하였다.

《萬姓大同譜》에도 없고 《百氏通譜》(韓國精神文化硏究院 所藏, 推定 具羲書撰, 寫 46卷)에도 없으며 《氏族源流》(趙從耘(1607∼1683)撰, 保景文化社 影印本)에도 나오지 않는다.

한편 《安東權氏 成化譜》(1476年刊)의 2:19A를 보면 권씨(權氏)의 사위로 홍희정(洪希正)이 나오고, 그 홍희정(洪希正)의 사위로 《國朝文科榜目》등에 나오는 급제자의 外祖와 同名의 人인) 박중유(朴仲游)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와 그의 자녀(子女)의 기사(記事)는 다음과 같다.

박중유(朴仲游) (郡事)→여부 김효민(女夫 金孝敏) (縣令)→자 량경(子 良璥) (觀察使) 자 량완(子良琓) (郡守) 자 량전(子良琠) (佐郞)

원래 《安東權氏 成化譜》(1476年刊)에는 본관(本貫) 기사(記事)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위의 박중유(朴仲游)나 그의 사위인 김효민(金孝敏)이 어느 박씨(朴氏)요 어느 김씨(金氏)인지를 당장은 알 수 없으나, 한가지 분명(分明)한 것은 위의 기사(記事)는 우리의 급제자 및 그의 형제(兄弟)에 관한 《國朝文科榜目》(奎章閣 所藏, 寫 8冊本, 尹汲撰),《國朝榜目》(奎章閣 所藏, 寫 12冊本 즉, 國會圖書館 影印本)
,《國朝榜目》(國立中央圖書館本 所藏, 寫 13冊本) 및 《登科錄》(일본 東洋文庫 所藏, 寫 13冊本)
등에 나오는 그것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위 박중유(朴仲游)가 죽산박씨(竹山朴氏)라는 사실은 의외에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장인 홍희정(洪希正)이 남양홍씨(南陽洪氏)라는 사실은 후기(後期)에 발간된 권씨족보(權氏族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고 (權氏의 이름은 儼으로, 有名한 傅의 孫子이다.)

이번에는 그 남양홍씨보(南陽洪氏譜)를 통(通)해서 박(朴)이 죽산인(竹山人)이라는 것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또 박중유(朴仲游)의 사위 김효민(金孝敏)도 나오는데 (金의 子女 記事는 생략이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김(金)이 광산김씨(光山金氏)이며 현령(縣令)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위 박중유(朴仲游)의 이름은 《氏族源流》(趙從耘(1607∼1683)撰, 保景文化社 影印本)의 죽산박씨(竹山朴氏)편에서도 바로 찾아 진다 (p. 159). 이 기사(記事)에 의(依)하면 그는 벼슬이 “군사(郡事)”였으며 “좌윤(左尹) 남양인(南陽人) 홍희정(洪希正)”의 사위인데 아들이 없고 딸 하나만 있었으며 현령(縣令)을 지내는 “광산인(光山人) 김효민(金孝敏)”이 곧 그 일녀서(一女壻)로 밝혀져 있다.

그리고 그 김효민(金孝敏)의 자녀(子女)로 3자(子) 3여(女)가 수록되어 있는데 3자(子)에 관한 기사(記事)를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김양경(金良璥): 세종(世宗) 24年 임술문과(壬戌文科) (刑判書 恭肅公), 김양완(金良琬): 세조(世祖) 3年 정축문과(丁丑文科) (郡守), 김양전(金良琠): 세조(世祖) 8年 임오문과(壬午文科) (刑正郞)

위 3인(人) 중 맨 처음의 김양경(金良璥)이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급제자 바로 그 사람이며 또 그의 두 동생도 앞에서 소개한 문과(文科) 김량완(金良琬)(01052) 과 문과(文科) 김량전(金良琠)(01167) 그 사람이라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결국 김양경(金良璥)은, 이제까지의 조사 결과에 의(依)하면, 비록 실록(實錄)에 나오는 동명인(同名人)의 졸년(卒年) 기사(記事)에 “상주인(尙州人)”으로 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일기는 하나, 일단은 광산김씨(光山金氏)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氏族源流》(趙從耘(1607∼1683)撰, 保景文化社 影印本)의 광산김씨(光山金氏)편에서 더욱 확실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 책의 p. 202에 나오는 기사(記事)를 보면 거기에 김효민(金孝敏)과 그의 자손(子孫)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의 세 아들의 이름과 그들의 과거(科擧) 및 관직(官職) 기사(記事)는 《國朝文科榜目》(奎章閣 所藏, 寫 8冊本, 尹汲撰)등 모든 방목(榜目) 내의 기사(記事)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김효민(金孝敏)이 죽산인(竹山人) 박중유(朴仲游)의 사위이며 그 박중유(朴仲游)는 남양인(南陽人) 홍희정(洪希正)의 사위라는 사실도 위에서 본 방목(榜目) 내지 몇몇 족보에서 발견되는 사실과 일치한다. 다만 한가지, 《氏族源流》(趙從耘(1607∼1683)撰, 保景文化社 影印本)의 찬자는 위 김효민(金孝敏)의 부(父)나 조(祖) 등 선대(先代)는 모르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여기에서는 김양경(金良璥)를 광산김씨(光山金氏)로서 정리하였다.

자료출처 : 《Wagner & 宋 朝鮮文科榜目》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요즘 고생이 많습니다.
정암님께서 메일로 보내준 2건의  엑셀파일은 php파일로 변환해서 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진모님의 댓글

정진모 작성일

관향과 출신지(거주시)의 혼재로 인한 착오가 아닐까 합니다. 실록의 사관이 상주에 살았던 광산김씨를 상주사람이다라고 머리에 입력받아 본관을 상주로 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광김족보에서 김효민의 주변의 일가들의 묘소가 상주인지 확이하여 상주이면 상주에 살았던 광산김씨가 확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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