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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金南式)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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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0-12-08 11:39 조회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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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金南式)
1617년(광해군 9)∼1681년(숙종 7). 조선 후기 충신이다. 자는 군언(君彦), 호는 의촌(義村)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전라북도 고창(高敞) 백양리(白羊里) 출신이다.
지평(持平)을 지낸 김여성(金汝聲)의 아들로,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아들인 광산 김씨(光山金氏) 시조(始祖) 김흥광(金興光)의 26세손이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진격하였다. 청주(淸州)에 이르러 화의(和義)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라북도 정읍(井邑) 고부(古阜) 계령산(桂嶺山)에 은거하였다. 그곳에서 옥산정사(玉山精舍: 1661년 창건)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말년을 보냈다.
평생 청(淸)의 연호를 쓰지 않고 명의 연호인 숭정(崇禎)만 사용하여 ‘숭정처사(崇禎處士)’라 불리었다.
아들인 김이성(金履成)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1699년(숙종 25)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었다가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면서 은둔하였다.
사후(死後)에 고을 유림들이 전라북도 정읍(井邑) 소성면(所聲面) 애당리(艾堂里) 모촌 옥산서원(玉山書院)에 배향하였다. 1828년(순조 28)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고,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졌다. 정려문인 광산김씨삼강문(光山金氏三綱門)은 옥산서원 내에 있으며, 김남식과 김이성을 포함하여 7명의 광산 김씨(光山金氏) 효자와 열녀의 정려 현판이 걸려 있다. 묘역에는 이재(?齋) 황윤석(黃胤錫)이 찬한 묘표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소주지
정읍군지
해동삼강록
왕내창의록
우양지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 학국학 중앙연구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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