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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 문무겸전(文武兼全)의 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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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1-04-23 10:14 조회9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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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겸전(文武兼全)이란 문식(文識)과 무략(武略)을 함께 갖추었다는 뜻 -

[ 고려시대 상장군(上將軍)/ 상호군(上護軍)]

상장군/상호군은 고려 시대 2군(二軍)? 6위(六衛)에 딸린 으뜸 장수이다

특히 이군(二軍)인 응양군(鷹揚軍)과 용호군(龍虎軍)의 상장군(上將軍)은
근장상장군(近仗上將軍)이라 칭하였다.

상장군(上將軍)은 고려 후기에 상호군(上護軍)으로 개칭되었다.

응양군 [ 鷹揚軍 ]
고려 시대 이군(二軍)의 하나. 육위(六衛)의 상위(上位)를 차지한 것으로
응양군은 1영(一領)으로 조직되며, 위로 상장군(上將軍)ㆍ대장군(大將軍) 각 1인이 있고
아래로 여러 군관(軍官)이 있음.
공양왕 때에 이르러 이군과 육위를 아울러 팔위(八衛)라 칭하게 됨에 따라 팔위의 하나로 됨.

응양군은 1영으로 되었으며, 군에는 상장군 1인을 두되 정3품으로 하고,
대장군은 1인으로 하되 종3품으로 하고, 영에는 장군 1인을 두되 정4품으로 하고
<공민왕이 장군을 고쳐 호군이라 하였는데 제위도 같다.>
중랑장은 2인으로 하되 정5품으로 하고, 낭장은 2인으로 하되 정6품으로 하고,
별장은 2인으로 하되 정7품으로 하고, 산원은 3인으로 하되 정8품으로 하고,
위는 20인으로 하되 정9품으로 하고, 대정은 40인으로 하였다.

<응양군ㆍ용호군 이군의 상장군ㆍ대장군은 근장상장군ㆍ근장대장군이라 칭하였고,
장군은 친종장군이라 칭하였으며, 중랑장 이하도 또한 근장이라 칭하였다.
또 응양군의 상장군으로 군부전서를 겸한 자를 반주라 칭하였다.>
鷹揚軍 一領 軍 置上將軍一人 正三品 大將軍 一人 從三品 領 置將軍一人 正四品<恭愍王 改將軍 爲護軍 諸衛同> 中郞將二人 正五品 郞將二人 正六品 別將二人 正七品 散員三人 正八品 尉二十人 正九品 隊正四十人<鷹揚龍虎二軍 上大將軍 稱近仗上大將軍 將軍 稱親從將軍 中郞將以下 亦稱近仗 又鷹揚軍上將軍 兼軍簿典書者 稱班主
[고려사 권제77, 지 31 백관 2 서반]

용호군 [ 龍虎軍 ]
고려 시대 이군(二軍)의 하나. 육위(六衛)의 상위를 차지한 것으로 용호군은
2영(領)으로 조직되며, 위로 상장군(上將軍)?대장군(大將軍) 각 1인이 있고,
아래로 여러 군관(軍官)이 있음. 공양왕 때에 이르러 이군과 육위를 아울러
팔위(八衛)라 칭하게 됨에 따라 팔위의 하나로 됨.

용호군은 2영으로 되었으며, 군에는 상장군 1인을 두되 정3품으로 하고,
대장군은 1인으로 하되 종3품으로 하였다. 매 영에는 장군 각 1인을 두되 정4품으로 하고,
중랑장은 각 2인으로 하되 정5품으로 하고, 낭장은 각 5인으로 하되 정6품으로 하고,
별장은 각 5인으로 하되 정7품으로 하고, 산원은 각 5인으로 하되 정8품으로 하고,
위는 각 20인으로 하되 정9품으로 하고, 대정은 각 40인으로 하였다.
<충선왕이 용호군을 고쳐 호분군이라 하였다가 뒤에 친어군으로 고치고
뒤에 다시 고쳐 용호군이라 하였다.>
龍虎軍二領 軍 置上將軍一人 正三品 大將軍一人 從三品 每領 置將軍各一人 正四品 中郞將各二人 正五品 郎將各五人 正六品 別將各五人 正七品 散員各五人 正八品 尉各二十人 正九品 隊正各四十人<忠宣王 改龍虎爲虎賁 後改親禦軍 後復改爲龍虎軍>
[고려사 권제77, 지 31 백관 2 서반]



고려조 상장군(上將軍)/ 상호군(上護軍)

11세 元義 上將軍 金元義 墓誌銘
13세 鍊 上將軍 洪奎 配 金氏墓誌銘
13세 周鼎 上將軍 金周鼎 墓誌銘
14세 之淑 上將軍 高麗史
14세 由祉(改 祉) 上護軍 趙延壽 墓誌銘
14세 台鉉 上護軍 金台鉉 墓誌銘
15세 深 上護軍 金深 墓誌銘
- 士元 上護軍 高麗史
15세 石堅 上護軍 高麗史
15세 光載 上護軍 金光載 墓誌銘
15세 承晉 上護軍 新增東國輿地勝覽,
15세 仲幹 上護軍 高麗史
- ? 上護軍 高麗史
16세 元命 上護軍 高麗史
- 天利 上護軍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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