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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황후와 춘천 청평산 문수사 시장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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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1-06-24 14:02 조회1,07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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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황후(泰定皇后)와 춘천 청평산(淸平山) 문수사시장경비(文殊寺施藏經碑)

충속공(諱 深)의 따님 元나라 태정제(泰定帝)의 황후(皇后) 김달마실리(金達麻實利)가 1327년(충숙왕 14년) 불경(佛經)과 함께 돈 1만 꾸러미를 청평산(淸平山) 문수사(文殊寺)에 시주하면서 ‘황태자(皇太子)와 황자(皇子)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고, 각각 그들의 생신날을 택하여 중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며, 경(經)을 열독(閱讀)하게 하는 것을 매년의 행사로 하라’ 하시고, 또 ‘비석을 세워서 영구히 보이라’ 말씀하시어 그 내력을 기록한 비를 세웠는데 현재 그 비는 남아있지 않고 비의 내용이 <익제난고(益齋亂稿卷)>와 <동문선(東文選)>에 남아있다.


유원 고려국 청평산 문수사 시장경비(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施藏經碑)
1327년(忠肅王 14년)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지음(撰製)

태정(泰定) 4년 3월 경자일에, 첨의정승(僉議政丞) 신(臣) 흡(恰) 등이 중알자(中謁者)로 하여금 임금께 복명하기를, “원 나라 천자의 근신(近臣) 사도 강탑리(司徒 剛塔里)와 중정원사 홀독첩목아(中政院使 忽篤帖木兒)가 천자의 황후로부터 명령을 받고 사람을 보내와서, ‘중 성징(性澄)과 시인(寺人 사무를 맡은 환관) 윤견(允堅) 등이 진공(進供)한 불서(佛書) 한 벌을 청평산(淸平山) 문수사(文殊寺)에 바치고, 꿰미 돈 만금(萬金)을 시주하여 그 이식(利息)을 받아 쓰게 하되, 황태자의 황자(皇子)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고, 각각 그들의 생신날을 택하여 중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며, 경(經)을 열독(閱讀)하게 하는 것을 매년의 행사로 하라’ 하시고, 또 말하기를, ‘비석을 세워서 영구히 보이라’ 하였습니다. 신 등이 가만히 생각하오니, 불법이 중국에 들어와 시대에 따라 성하고 쇠하여 가면서 천여 년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조정에서는 그 도(道)가 무위(無爲 자연 그대로 두어 인공을 더하여 만들지 아니함)로 으뜸을 삼는 것이 성인의 다스림에 부합됨이 있으며, 널리 제도(濟度)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어진 정치에 도움됨이 있다고 하여 높임과 믿음이 가장 돈독합니다. 이제 이미 전거(傳車)로써 그 경(經)을 수 천리 밖 깊은 산중에 수송하고, 또 먹고 살 근본이 되도록 원금(元金)을 적립하여 그 무리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중들의 행복이올시다. 이름난 산과 복된 땅이 온 천하에 적지 않건만 우리 고을을 더럽다고 하지 않고 이에 축복의 처소를 두었으니, 이것은 다만 중들의 행복만이 아니고 또한 우리 고을의 행복입니다. 장차 대서특필하여 자랑하고 빛내기를 끝이 없게 하고자 합니다. 하물며 중궁(中宮)의 명령이 있었으니, 감히 공경하여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하건대 붓 잡는 자에게 시켜서 기록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에 신 모(某)에게 명하시었다. 그 명에 이르기를,

성하신 원 나라가 / 於皇有元
이미 대대로 어질게 세상을 다스리니 / 旣世以仁
따뜻한 봄 철맞은 비가 / 陽春時雨
구은의 만물을 화육하였다 / 亭毒九垠
이에 부처의 도가 / 乃眷金仙
무위로 가르침을 삼은 것을 돌보고 / 無爲爲敎
그의 나머지를 써서 / 用其土?
삶을 이롭게 하고 사나움을 금하여 / 利生禁暴
이것을 숭상하며 공경하여 / 是崇是敬
그 무리까지 후하게 대우하여 / 厚復其徒
부역도 시키지 않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으며 / 不?不賦
오로지 그 글을 익히게 하였네 / ?習其書
불경은 1천 상자 / 其書千函
호한하기가 연기의 바다 같건만 / 浩若烟海
묘함은 터럭을 분석하고 / 妙析毫釐
넓기는 천지를 덮네 / 廣包覆載
율은 계를 따라 성립되었고 / 律繇戒立
논은 정에서부터 일어났네 / 論自定興
경을 강연하고 / 維經之演
지혜로 밝히도다 / 維慧之明
저 흰 소 수레를 타고 / 路彼軒
양거(소승불교의 성문승을 비유함)보다 녹거(소승불교의 연각승(緣覺乘)을 비유함)보다도 우뚝 뛰어나네 / 卓乎羊鹿
그 향기 찌는 듯하니 / 載熏其香
온 숲이 담복이던가 / 一林??
천축에서 처음 모이니 / ??千竺
가섭과 아난이 있었고 / 曰葉與難
진단(지나)에 처음 전파해 오니 / ?播于震
등과 난이 있었도다 / 曰騰與蘭
양 나라에선 쭉정이만 씹더니 / 梁取其秕
우리는 곡식을 맛보았네 / 我?維?
당에서는 돌인 줄 짐작하더니 / ?石者唐
우리가 쪼갠 것은 옥이었네 / 我剖維玉
중 성징과 시인 윤견은 / 伊澄伊堅
옷은 다르나 마음은 같아서 / 服異心同
그들이 이미 법보(불법의 경전)를 서사하고 / 旣成法寶
완성함을 주상하니 / 以奏爾功
황후가 가상하게 여기어 / 天后?嘉
봉안할 땅을 선택하여 말하기를 / 載謀之地
삼한은 / 曰維三韓
선을 즐겨하고 신의가 두터우며 / 樂善敦義
지금의 임금은 / 維時維王
우리의 외손이니 / 我出我甥
축희보상할 / 祝釐報上
그의 정성을 믿는다 / 允也其誠
그 나라 동쪽에 / 于國之東
청평산 문수사가 있으니 / 之山之寺
길이 험하고 요원한 것을 꺼리지 말고 / 毋憚阻脩
우체를 통하여 싣고 가서 시주하라 하시고 / 置郵往施
내탕의 돈을 내주어 / 發?內帑
중들의 먹을 길을 열어 주게 하였네 / ?轉食輪
오래도록 계속하여 지킬 수 있도록 / 可繼以守
국왕과 신하에게 맡기어 부탁하네 / ?王?臣
국왕은 머리 조아려 절하면서 / 王拜稽首
천자만세 축수하시네 / 天子萬歲
천자와 국왕의 뜻을 같이 하시니 / 天后是偕
본과 지는 백세에 흥왕하리다 / 本支百世
제잠(한국을 일컬음)의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 ?岺石爛
접해(접역의 바다, 즉 한국의 바다)에 물이 말라 먼지가 날릴 때까지 / ?海塵飛
공과 덕이 모여서 / 維功德聚
이 비석은 이지러지지도 넘어지지도 않으리라 / 不騫不墮

하였다.



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施藏經碑
泰定四年三月庚子。僉議政丞臣恰等。令中謁者?復于王曰。天子之近臣。司徒剛塔里,中政院使。忽?篤帖木兒。受命天子之后?來。以僧性澄,寺人允?堅等。所進佛書一藏。歸諸淸平山文殊寺。施緡錢?萬。令取其息爲皇太子,皇子祈福。各取其誕辰。飯?僧閱經。歲以爲凡。且曰樹碑以示永久。臣等竊惟。?佛法入中國。隨世興替。且千餘歲。皇朝謂其道無?爲爲宗。有契于聖理。廣度爲心。有補于仁政。尊信?之尤篤。今旣以傳車輸其書。數千里窮山之中。又?立食本。以贍其徒。斯乃佛者之幸也。名山福地。在天下不爲少。不鄙弊邑。爰置祝釐之所。斯則非惟?佛者之幸。亦弊邑之幸也。將大書特書。誇耀無極。?中宮有旨。敢不祗承。請付執筆者以記。於是以?命臣某。其銘曰。
?於皇有元。旣世以仁。陽春時雨。亭毒九垠。乃眷金?仙。無爲爲敎。用其土?。利生禁暴。是崇是敬。厚復?其徒。不?不賦。?習其書。其書千函。浩若烟海。妙?析毫釐。廣包覆載。律繇戒立。論自定興。維經之演。?維慧之明。路彼?軒。卓乎羊鹿。載熏其香。一林???。??于竺。曰葉與難。?播于震。曰騰與蘭。梁取其秕。我?維穀。?石者唐。我剖維玉。伊澄伊堅。服?異心同。旣成法寶。以奏爾功。天后?嘉。載謀之地。?曰維三韓。樂善敦義。維時維王。我出我甥。祝釐報?上。允也其誠。于國之東。之山之寺。毋憚阻脩。置郵?往施。發緡內帑。?轉食輪。可繼以守。?王?臣。王?拜稽首。天子萬歲。天后是偕。本支百世。?岑石爛。??海塵飛。維功德聚。不騫不墮。
출전: 東文選卷之一百十八 碑銘 <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施藏經碑>
益齋亂稿卷第七 碑銘 <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施藏經碑>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문수사에 있던 절에 불서를 시주한 것을 기념하는 비.
비는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이제현(李齊賢)이 1327년(충숙왕 14)에 지은 비문이 『익재난고(益齋亂藁)』에 실려 전한다. .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비의 전면과 음기 탁본이 일부 실려 있으며, 이에 따르면 전면 글씨는 이군해(李君? 찬성사)가, 음기 글씨는 승려 성징(性澄)이 썼다.

신위(申緯 1769∼1845)의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에는 조선 순조 때 신명준(申命準)이 파편 5조각을 발견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비문의 내용은 원나라 황후의 명으로 불서 한 벌을 문수사에 보내고 금전을 시주하여 황자들의 탄신일에 반승을 시행하고 경전을 열독하게 하라는 사실을 기록하는 비를 세우게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원의 황실에서 고려 사원에 기복신앙으로 시주하였던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참고: 朝鮮總督府 編, 朝鮮金石總覽』上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46권 > 강원도(江原道)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
【佛宇】 문수사(文殊寺) 청평산(淸平山) 아래에 있다.

.○ 원(元) 나라의 태정황제(泰定皇帝)의 황후가 중 성징(性澄)과 윤견(允堅) 등이 바친 불경을 보내서 이 절에 수장(收藏)하였다. 이제현(李齊賢)이 왕명으로 비문을 지었다. 비문에 말하기를, “태정(泰定) 4년 3월 경자일(庚子日)에 첨의정승(僉議政丞) 신(臣) 흡(恰) 등이 중알자(中謁者)로 하여금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천자(天子)의 근신 사도(司徒) 강탑리(剛塔里)와 중정원사(中政院使) 홀독첩목아(忽篤帖木兒)가 천자의 황후에게서 명령을 받고 사자로 와서 중 성징과 시인(寺人 내시) 윤견 등이 바친 불서(佛書) 한 질을 청평산 문수사에 귀속시키고, 돈 만 꾸러미를 시주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이식(利息)을 취하여 황태자(皇太子)ㆍ황자(皇子)를 위하여 복을 빌며, 각각 그들의 탄신을 기하여 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경(經)을 열람하게 하는 것을 연중행사로 삼도록 했습니다. 또 비를 세워 영구히 뒷세상에 보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등은 가만히 생각하니 불법이 중국에 들어와서 세대(世代)를 따라 흥왕하기도 하고 쇠미하기도 한 것이 거의 천여 년입니다. 원 나라 조정에서는 그 도(道)가 무위(無爲)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 성인(聖人)의 정치에 부합되며 널리 제도(濟度)함을 마음으로 하는 것이 어진 정치에 도움됨이 있다고 하여, 존숭(尊崇)하고 신앙함이 더욱 돈독합니다. 이제 이미 역참(驛站)의 전거(傳車)로써 그 불서(佛書)를 수천 리 밖에 있는 깊은 산중까지 수송하고, 또 절을 유지할 재물을 세워서 그 무리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였습니다. 이 일은 곧 불도들의 행복입니다. 이름난 산과 복된 땅이 온 천하에 적지 않게 있건만 우리나라를 비루(鄙陋)하게 여기지 않고 여기에 황실(皇室)의 복을 비는 곳을 설치하였습니다. 이것은 오직 불도(佛徒)들만의 다행이 아니고, 또한 우리나라의 다행한 일입니다. 장차 대서특필하여 영원무궁하게 자랑하며 빛나게 해야 될 일입니다. 하물며 중궁(中宮)의 전지(傳旨)가 있으니 감히 공손히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집필자에게 부탁하여 기를 쓰게 하소서.’ 하였다. 이에 신 아무개에게 명(銘)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신 아무개는 명을 짓기를,

‘크도다, 이미 원(元) 나라의 어진 정치 대대로 내려왔네.
따뜻한 봄날 같고, 때에 알맞은 단비 같아서, 천하의 만물은 생성한다.
이에 금선(金仙) 무위(無爲)를 교화(敎化)로 한 것을 흠모하여 그 흙 부스러기와
지푸라기를 써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사나움을 금지할 제 이것을 존숭하고 공경하네.
그 무리들을 후하게 복호(復戶)하여 부역(賦役)도 시키지 않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으면서
그 불서(佛書)만을 오로지 공부하게 하네. 그 불서가 천 상자도 넘어서 방대하기가
안개 낀 바다 같도다.
그 글이 정미(精微)하기는 터럭 끝을 쪼듯 하고, 광대하기는 천지를 포함할 만하다.
율(律)은 계(戒)를 좇아 서고, 논(論)은 정(定)으로부터 일어난다.
불경을 연수(演修)함은 지혜의 밝아짐이로다.
크도다, 저 규헌(?軒)이여.
높도다, 양거(羊車)ㆍ녹거(鹿車)에 훈훈한 그 향기,
담복화(?蔔花 치자꽃) 가득한 숲 같구나.
처음 천축(天竺) 땅에서 모은 이는 섭(葉 가섭(迦葉))과 난(難 아난타(阿難陀))이었고,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파한 이는 등(騰)과 난(蘭)이었다.
양(梁) 나라에서는 그 쭉정이를 취하였고, 우리는 곡식을 맛보았네.
당(唐) 나라에서는 그것을 돌이라고 짐작하였으나, 우리는 그것을 옥으로 쪼개었네.
저 중 성징(性澄)과 시인(寺人) 윤견(允堅)은 입은 옷은 다르지만 마음은 서로 같아서
이미 불경(佛經)의 서사(書寫)를 성취하여 그 성공을 아뢰었다.

천자의 황후가 가상(嘉尙)하게 여기시고 그것을 간직할 땅을 계책하여 말하기를,

「삼한(三韓)은 선(善)을 좋아하고 의(義)를 돈독하게 지킨다.
고려의 지금 임금은 우리가 낳게 한 우리의 생질이다.
복(福)을 빌어 황실(皇室)에 보답할 그의 정성을 믿는다.
그 나라의 동쪽에 청평산이 있고 문수사가 있다.
길이 막히고 먼 것을 꺼리지 말고 역전(驛傳)을 통하여 가서 베풀지어다.
내탕고(內帑庫)의 돈꿰미를 끌어내어 그 무리들을 먹여 살리고,
이어서 지키도록 왕(王)과 신하들에게 부탁하라.」 하였다.

임금이 절하고 머리 조아리며 천자의 만세수(萬歲壽)를 송축했네.
천자와 황후가 함께 하고, 근본과 자손이 백대(百代)를 누리면서
제잠(?岑 우리나라의 별칭)에 기초가 뭉그러지고
접해(?海 우리나라의 별칭)에 물이 말라 티끌이 날릴지언정
이 공덕의 쌓임은 이지러지지 않고 떨어지지 않으리라’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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