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최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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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1-11-06 11:26 조회1,93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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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澤甫 萬? 墓誌銘
金君澤甫名萬?。系出湖南之光州。家舊衣纓族。而後世淪微。其上祖與父業醫。君少孤而貧。嗣爲醫學。而意不?去之。遂結惡少年狗屠爲事。得甘旨以養母。然君性?放不?。嗜酒使氣。往往搏擊人。至被傷者衆。鄕里患之。嘗游屠中。人有諷之者曰。子義士也。?日被逮。愼勿累我。君卽感悟泣涕謝其徒。折節讀書。能日誦數千言。布衣韋帶。雍容爲處士之行。余年十八。遇君於三淸精舍。身長八尺。美鬚?。談論??。知其爲賢豪間人也。君一見余歡甚。呼與爲友。托以忘年之契。時君文詞大進。已杰然有聲。而世之人知與不知。未嘗以文人目之。必曰俠士。盖其少日氣習猶未盡除。而發於言議歌?者。亦多有燕趙感慨之音也。君旣浮游四十餘年。其?益甚。環堵蕭然。妻子饑寒。而見人有急。赴之惟恐後。與人交。不問淸濁。意之所可。則雖賤汚愈益敬。以是愛慕者甚衆。旣老。築室白蓮峯下。自號嵐谷居士。手自蒔圃種柳。日婆娑其下以自適。有以壺酒相就者。留與飮極歡。醉則散髮松林。搏?而歌。飮酒至數斗不醉。輒用大椀下之。轟轟若鯨吸。觀者壯之。一日疾暴卒。君生於顯宗庚子六月十一日。終於今上乙卯二月二日。壽七十六。是年三月?二日。權葬某山負乙之原。曾祖諱寧富。副司果。祖諱逸民。考諱時禎。?醫司三品職。?淑人海州吳氏。僉正尙敏之女。配礪山宋氏。長興庫主簿時柱之女。生一男隣玉。武科折衝。隣玉生三男。命新,孝新,克新。曾孫一人。命新出也。君爲詩?澹古雅。多得之漢魏六朝者。三淵先生與柳下翁?加稱賞。以爲不易得。嗚呼。君之志氣才調。求之古人。爲石延年,陳季常者流。而君旣無意干世。世亦無知君者。然後之覽其詩者。亦可以想其人也。銘曰。
方山之冠。?卿之酒。酒乎歌乎。白蓮之右。以是爲銘。其朽不朽。
출전: 정내교(鄭來僑 1681~1759) 浣巖集
*휘 만최는 1660에 출생하여 1735년에 졸하였다.
묘지에 의하면 아들 隣玉이 武科에 급제하여 折衝을 지냈다.
계보
父 時禎(醫司=3품), 祖 逸民(醫司 3품), 曾祖 寧富(副司果), 高祖 順環(훈도), 玄祖 世長
<참고자료>
김만최(金萬最)
자: 택보(澤甫)
호: 남곡거사(嵐谷居士)
시·시조인
조선 후기 여항시인(閭巷詩人). 자는 택보(澤甫)이고, 호는 남곡거사(嵐谷居士)이다.
본래 사대부 집안이었으나 후세에 몰락하여 조부와 부친이 의술(醫術)을 업으로 삼았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집안이 가난하여 의술을 배웠으나 뜻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모친을 봉양하였다. 성격이 활달하여 얽매이지 않는데다가 술을 좋아하여 종종 사람을 상하게 하자 향리(鄕里) 사람들이 근심하였다.
어른이 되어 각성하고 글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하루에 수천 언을 외우자 이로부터 문사(文詞)가 날로 이루어져 명성을 얻었다. 40여 년을 떠돌아 다녀서 궁핍함이 심하였으나 남의 급한 사정을 보면 먼저 도왔고, 남과 사귈 때는 자신의 뜻에 맞으면 비록 미천한 자라도 공경하여 애모(愛慕)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년에 백련봉(白蓮峯) 아래에 집을 짓고서, 손수 온갖 화초와 버드나무를 심어두고 그 아래서 유유자적하는 한편 여항인들을 가르쳤는데 배우는 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나이 76세에 세상을 떠났다.
시에는 연조풍(燕趙風)의 감개한 음조가 많았으며, 충담고아(沖澹古雅)해서 한(漢)·위(魏)·육조(六朝)풍의 아취(雅趣)를 지니고 있어 삼연(三淵) 김창립(金昌立)·창랑(滄浪) 홍세태(洪世泰)가 칭찬하며 상을 내린 일이 있다.
[참고문헌]
硏經齋全集
逸士遺事
金君澤甫名萬?。系出湖南之光州。家舊衣纓族。而後世淪微。其上祖與父業醫。君少孤而貧。嗣爲醫學。而意不?去之。遂結惡少年狗屠爲事。得甘旨以養母。然君性?放不?。嗜酒使氣。往往搏擊人。至被傷者衆。鄕里患之。嘗游屠中。人有諷之者曰。子義士也。?日被逮。愼勿累我。君卽感悟泣涕謝其徒。折節讀書。能日誦數千言。布衣韋帶。雍容爲處士之行。余年十八。遇君於三淸精舍。身長八尺。美鬚?。談論??。知其爲賢豪間人也。君一見余歡甚。呼與爲友。托以忘年之契。時君文詞大進。已杰然有聲。而世之人知與不知。未嘗以文人目之。必曰俠士。盖其少日氣習猶未盡除。而發於言議歌?者。亦多有燕趙感慨之音也。君旣浮游四十餘年。其?益甚。環堵蕭然。妻子饑寒。而見人有急。赴之惟恐後。與人交。不問淸濁。意之所可。則雖賤汚愈益敬。以是愛慕者甚衆。旣老。築室白蓮峯下。自號嵐谷居士。手自蒔圃種柳。日婆娑其下以自適。有以壺酒相就者。留與飮極歡。醉則散髮松林。搏?而歌。飮酒至數斗不醉。輒用大椀下之。轟轟若鯨吸。觀者壯之。一日疾暴卒。君生於顯宗庚子六月十一日。終於今上乙卯二月二日。壽七十六。是年三月?二日。權葬某山負乙之原。曾祖諱寧富。副司果。祖諱逸民。考諱時禎。?醫司三品職。?淑人海州吳氏。僉正尙敏之女。配礪山宋氏。長興庫主簿時柱之女。生一男隣玉。武科折衝。隣玉生三男。命新,孝新,克新。曾孫一人。命新出也。君爲詩?澹古雅。多得之漢魏六朝者。三淵先生與柳下翁?加稱賞。以爲不易得。嗚呼。君之志氣才調。求之古人。爲石延年,陳季常者流。而君旣無意干世。世亦無知君者。然後之覽其詩者。亦可以想其人也。銘曰。
方山之冠。?卿之酒。酒乎歌乎。白蓮之右。以是爲銘。其朽不朽。
출전: 정내교(鄭來僑 1681~1759) 浣巖集
*휘 만최는 1660에 출생하여 1735년에 졸하였다.
묘지에 의하면 아들 隣玉이 武科에 급제하여 折衝을 지냈다.
계보
父 時禎(醫司=3품), 祖 逸民(醫司 3품), 曾祖 寧富(副司果), 高祖 順環(훈도), 玄祖 世長
<참고자료>
김만최(金萬最)
자: 택보(澤甫)
호: 남곡거사(嵐谷居士)
시·시조인
조선 후기 여항시인(閭巷詩人). 자는 택보(澤甫)이고, 호는 남곡거사(嵐谷居士)이다.
본래 사대부 집안이었으나 후세에 몰락하여 조부와 부친이 의술(醫術)을 업으로 삼았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집안이 가난하여 의술을 배웠으나 뜻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모친을 봉양하였다. 성격이 활달하여 얽매이지 않는데다가 술을 좋아하여 종종 사람을 상하게 하자 향리(鄕里) 사람들이 근심하였다.
어른이 되어 각성하고 글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하루에 수천 언을 외우자 이로부터 문사(文詞)가 날로 이루어져 명성을 얻었다. 40여 년을 떠돌아 다녀서 궁핍함이 심하였으나 남의 급한 사정을 보면 먼저 도왔고, 남과 사귈 때는 자신의 뜻에 맞으면 비록 미천한 자라도 공경하여 애모(愛慕)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년에 백련봉(白蓮峯) 아래에 집을 짓고서, 손수 온갖 화초와 버드나무를 심어두고 그 아래서 유유자적하는 한편 여항인들을 가르쳤는데 배우는 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나이 76세에 세상을 떠났다.
시에는 연조풍(燕趙風)의 감개한 음조가 많았으며, 충담고아(沖澹古雅)해서 한(漢)·위(魏)·육조(六朝)풍의 아취(雅趣)를 지니고 있어 삼연(三淵) 김창립(金昌立)·창랑(滄浪) 홍세태(洪世泰)가 칭찬하며 상을 내린 일이 있다.
[참고문헌]
硏經齋全集
逸士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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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봉 작성일
휘 만최 父, 祖 의과 급제기록
(父) 김시정(金時禎)
[의과] 현종(顯宗) 1년(166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본관: 광산(光山)
[이력사항]
관직: 훈도(訓導)
[가족사항]
[부]
성명 : 김일민(金逸民)
관직 : 정(正)
전공 : 의과(醫科)
[조부]
성명 : 김녕부(金寧富)
[증조부]
성명 : 김순환(金順環)
[외조부]
성명 : 윤덕수(尹德秀)
본관 : 영천(永川)
[처부]
성명 : 오상민(吳尙敏)
본관 : 해주(海州)
관직 : 훈도(訓導)
관직 : 정(正)
전공 : 의과(醫科)
(祖) 김일민(金逸民)
[의과] 인조(仁祖) 13년(1635) 을해(乙亥) 증광시(增廣試)
본관: 광산(光山)
관직: 정(正)
[부]
성명 : 김녕부(金寧富)
[조부]
성명 : 김순환(金順環)
[증조부]
성명 : 김세장(金世長)
[외조부]
성명 : 장태백(張太白)
본관 : 단양(丹陽)
[처부]
성명 : 윤덕수(尹德秀)
본관 : 영천(永川)
[출전]
《조선시대잡과합격자총람(朝鮮時代雜科合格者總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