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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수형 명당 (광산김씨 김자진의 묘) 자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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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화당 작성일11-11-09 10:30 조회4,026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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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수형 명당 (광산김씨 김자진의 묘) 자투리
http://blog.naver.com/kone9491/130082882321

광산김씨 문숙공의 6세손 김자진의 묘. 중국 명풍이 잡았다는 연화부수형(연화형) 명당이다.

고려 중엽, 광산김씨 문숙공의 6세손 김자진(金子進)이 금위사정(禁衛司正) 벼슬을 지내고 낙향해 나주 공산 땅에서 살고 있었다. 김자진은 아들 3형제를 두었다. 맏아들 김충손(金衷孫)은 장성 황룡, 둘째 김신손(金愼孫)은 나주 세지, 셋째 김종손(金終孫)은 장성 삼계로 이거해 살게 됐다. 이들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명문의 기틀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은 김자진의 묘가 대명당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김자진의 묘소는 나주 공산면 상방리에 있다. 이 지역은 야산과 들판이 펼쳐진 곳이다. 그래서 주룡은 잠룡(潛龍ㆍ땅 속으로 지나는 용)과 평강룡(平岡龍ㆍ언덕처럼 낮은 산능선)의 연맥으로 숨 가쁘게 행룡을 거듭하다가 금성체의 작은 혈성을 만들어 놓았다. 내용(來龍)이 방향을 틀며 솟아올랐다가 느슨하게 꿈틀대며 내려와 혈을 맺었다.

부드러운 능선과 봉긋이 솟은 봉우리들이 혈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혈의 방위가 북향에 가깝지만(乾亥) 주위의 산들이 높지 않고,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어 큰 흠이 되지 않는다. 청룡과 백호도 가깝게 감아주고 있다. 물길도 혈을 가까이 감고 면궁수(眠弓水ㆍ활처럼 굽어 흐른 물)로 흐른다. 혈 주변의 물들이 모인 지당수(池堂水)가 빠져나가는 수구도 백보전란(百步轉欄)하여 길한 물이 되고 속발도 기약해 준다.

이 형국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다.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을 말한다. 혈을 둘러싸고 있는 사면의 산봉우리들은 연꽃잎이고, 혈성(穴星)은 화심이 된다. 혈은 꽃의 화심(花心)에 있다. 이런 형국을 연화형(蓮花形)이라고도 한다. 연화 명당은 귀인(貴人), 현인군자(賢人君子), 학자, 사업가 등 다방면으로 출중한 인물을 배출한다.

이 묏자리는 중국인 명풍수가 잡았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집안에 중국인 머슴이 살았다. 그 머슴은 몰래 잡아놓은 묏자리에 계란을 묻어놓았고, 그 계란에서 병아리가 깨어났다. 명당임을 확인하고 자기 부모 유해를 가지려 중국으로 갔다.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머슴이 자꾸 다니던 산을 찾아가보니, 치표(置標ㆍ묏자리를 미리 잡아 표시해둔 것)를 해놓았는데 대명당이었다. 갑자기 김자진이 죽게 되자 바로 그 자리에 묘를 섰다. 중국에서 돌아온 머슴은 어쩔 수 없이 그 무덤 위에 부모 묘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자리에 묘 3기가 있다. 그 명풍의 부모와 자신의 묘가 아닌가 싶다.

장성 황룡의 입향조는 김자진의 큰아들 김충손이다. 그 후손인 황룡의 광산김씨가 타 문중보다 더 번창했고 인물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이 집안은 명당을 많이 갖고 있다. 입향조의 증손 김경우(金景愚)의 묘가 대표적인 명당이다. 이 묘는 장성군 동화면 면소재지에 있다. 바로 길가에 숭모사(崇慕祠)는 문숙공파 (文肅公派), 파조(派祖)인 문숙공 주정(周鼎)과, 장자 충숙공 심(深), 차자 시중공 유(流), 3부자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이 건물의 좌측을 약간 오르면 그 묘소가 나온다.

혈의 주산이 목성체로 수려하게 빼어났다. 주산이 아름다우면 그 주변의 산세나 수세 등도 그를 닮기 마련이다. 그 봉우리에서 용맥이 잔잔하게 용틀림하며 내려와서 기부포전(肌附鋪氈)한 혈을 맺었다. 이처럼 두툼하게 살이 찐 용맥과 혈장에서 좋은 혈을 맺을 수 있다.

좌우의 청룡과 백호가 함(陷)한 곳이 없고 다정하게 감싸주고 있다. 외청룡이 나지막하면서도 여유롭게 겹쳐있고, 외백호인 동구산 자락이 혈 앞까지 뻗어내려 감아준다. 그 끝자락에 동그랗게 솟은 봉우리가 단아하다. 안산과 조산도 모두 순하고 수려하다. 그래서 혈은 밝고 편안하며 아늑하다. 형국은 학체(鶴體)로 보인다.

그런데 묘들이 도장(倒藏)됐다. 아래에 김경우, 가운데는 손자 김우급(金友伋), 위에는 아들 김대성(金大成)의 묘가 배열됐다. 이렇게 도장된 것은 광산김씨의 세도를 얄밉게 여기던 '박주부'라는 지관이 '광산김씨의 세도를 꺾겠다'는 마음보로 심술을 부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묘를 쓴 후 오히려 집안이 더 잘 됐다고 한다.

혈의 용은 좌선룡(左旋龍)이고, 물은 혈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흐르며, 수구는 손사(巽巳ㆍ南南東方) 방위가 된다. 88향법으로 정양향(正養向)이 되어 최고 길향이 된다. 만약 조금만 좌측으로 틀어 남향(丙午)이 되었다면 흉화의 살(殺)인 살인대황천(殺人大黃泉)을 범할 뻔 했다.

황룡마을은 120 호의 큰 마을로 광산김씨들만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 집안은 초중등학교 교장들이 20명이 넘은 때가 있었다. 교원 출신이 많기로 유명한 마을이다. 그 배경에는 집안의 김영하(金瑛廈)라는 어른, 그분의 시혜(施惠)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일제 때 조병옥 박사가 옥고를 치룬 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족을 계속 도와주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문교사회국장(현 교육감)을 지냈다. 김문수(故 군수), 김홍수(故 교육장), 김신석(전 교장ㆍ서양화가) 3형제가 아들이고, 국회의원 김효석 씨가 조카가 된다. 그리고 김광식(故 장성병원장), 김흥식(전 장성군수), 김황식(감사원장), 김필식(동신대 이사장) 4남매도 한 집안 사람들이다.

이 원고 작성에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신 김용득(金容得ㆍ전 광주교육연수원장ㆍ69) 씨에게 감사드린다.
정통풍수지리 연구가

[출처] 연화부수형 명당 (광산김씨 김자진의 묘)|작성자 고샅길
http://blog.naver.com/kone9491?Redirect=Log&logNo=130082882321

댓글목록

정화당님의 댓글

정화당 작성일

이곳의 홈페이지의 매력은?
역시 전자족보 답게 계보도가 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조금만 기다리시면 한층 버젼업된 계보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화당님의 댓글

정화당 작성일

인터넷에서 나의 계보도를 찾아보고 위치로 묘소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인터넷의 큰 매력아니겠습니까? 
기대가 큽니다.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올 년말까지 수정,보완작업 완료하고 내년부턴 족보편집프로그램에 도전할려구 합니다.
물론 맨땅에 헤딩하기겠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나서 않되 포기하는건 후회가 없지만 걍 포기한다면 후회가 남을것 같아서요
예전 족보 프로그램개발때처럼 도전하다보면 뭔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족보 편집프로그램은 족보프로그램과 연동해서 하나의 족보 책자를 원하는
 형식으로 원하는 자손록부터 출력하는 프로그램이죠
가능성은 희박하고 무모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go go  !!

정화당님의 댓글

정화당 작성일

아! 대단하십니다.
누구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한 손안에 전자족보를 기대합니다.^^
조상의 묘를 인터넷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니????
빠르게 접근하지 못하는 전자족보는 사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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