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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공전(文肅公傳) 見麗史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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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현 작성일07-01-02 00:21 조회1,4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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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周鼎은 光山人 이라 少好學 하야 沈厚寡言 하고 不妄交遊 러니以蔭 으로調富城慰 하다時 에 蒙兵 이大至 하야
김주정 광산인 소호학 침후과언 불망교유 이음 조부성위 시 몽병 대지

國家驚擾 周鼎 이 措置得宜하야 威惠幷著 하니 一方 이 稱之 라 巡問使韓就薦之 하야 權知都兵錄事 하고 元宗五年 에
국가경요 주정 조치득의 위혜병저 일방 칭지 순문사한취천지 권지도병록사 원종오년

擢魁科 하야 補海陽府錄事 하고 加典籤海陽公 金俊 이 器重之 하야 屬內侍入政房 하고 累遷至吏部侍郞 이러니
탁괴과 보해양부록사 가전첨해양공 김준 기중지 속내시입정방 누천지이부시랑

忠烈元年 에 拜大府卿左司儀大夫 하고 明年 에 上書하야 請究理廉使守令勤怠 와 貢賦輕重 과 鄕吏附勢逃役等 하니
충렬원년 배대부경좌사의대부 명년 상서 청구리염사수령근태 공부경중 향리부세도역등

王 이 納之 라가 爲 左右所沮 하야 事竟不行 하다 四年 에 王 이 如元 할새 周鼎 이 爲行從都監使 하야 建白本國達魯花赤 과
왕 납지 위 좌우소저 사경불행 사년 왕 여원 주정 위행종도감사 건백본국달로화적

王京留守軍 과 合浦鎭守軍 과 黃鳳鹽白四州軍 에 供億 이 繁重 하야 民不堪命 하고 且金方慶 이 有大功於朝 늘어
왕경유수군 합포진수근 황봉염백사주군 공억 번중 민불감명 차김방경 유대공어조

被誣遠流 하니 請奏于帝 라한 대 王 이 入朝奏帝 러니 皆允 커늘 王 이 益重之 하고 還國 하야 授左副丞旨하다 舊制 에
피무원류 청주우제 왕 입조주제 개윤 왕 익중지 환국 수좌부승지 구제

凡國家事를 宰樞會議 하야 丞宣稟旨而行 이러니 周鼎 이 言今宰樞甚多 하야 謀政無主 하니 宜別置必도赤 하야 委以機務 하고
범국가사 재추회의 승선품지이행 주정 언금재추심다 모정무주 의별치필도적 위이기무

又內僚 는不可皆令啓事 니 請擇人 하야 爲申聞色 하고 罷基餘 라하고 廉承益李之? 로 諷王 하야 遂置必? 赤申聞色 하니
우내요 불가개령개사 청택인 위신문색 파기여 영렴승익이저 풍왕 수치필도 적신문색

令周鼎及參文學士朴恒 과 密直副使薛公儉 과 左承旨李尊庇 와 判禮賓事廉丞益 과 大將軍印公秀趙仁規 와 秘書尹鄭興 과
령주정급참문학사박항 밀직부사설공검 좌승지이존비 판례빈사염승익 대장군인공수조인규 비서윤정흥

左內侍將軍李之지 寶文署侍制郭預 와 大府少尹安집 과 千牛衛錄事李子芬 과 詹事府錄事尹文玉 과 太常府錄事鄭玄 이
내시장군이지지 보문서시제곽예 대부소윤안집 천우위록사이자분 첨사부록사윤문옥 태상부록사정현

繼爲必도赤 하고內僚郞將鄭丞伍 金義光 姜碩 李恕 河汭 爲申聞色 하야 常會禁中 하야 參決機務 하니 侍號別廳 이라
계위필도적 내요랑장정승오 김의광 강석 이서 하예 위신문색 상회금중 참결기무 시호별청

宰樞以非祖宗舊制 라하야人多機議 러니 時 에 大府 以內僚 口傳及內侍院傳請 으로 財用 이 彈竭 하야 有注簿私假貸 라도
재추이비조종구제 인다기의 시 대부 이내요 구전급내시원전청 재용 탄갈 유주부사가대

猶不能支 하고 至剃 髮爲僧 이어늘 周鼎 이 以爲祗侯尹諧舊爲內侍 하니 必能樽節傳請 이며 且大將 軍金子廷 과
유불능지 지체 발위승 주정 이위지후윤해구위내시 필능준절전청 차대장 군김자정

將軍車得珪 는 內僚之首 로 可抑군竪 口傳之弊 라하고請王 하야 爲別監與監察 하야 別監 이 雜考大府歲入 하야
장군차득규 내요지수 가억군수 구전지폐 청왕 위별감여감찰 별감 잡고내부세입

以減基費 러니 後 예 口傳 이 愈多 하고 傳請 이 愈繁 하며 內僚爭援 하야 例求爲各司別坐 하야 莫之能禁 하고 郎將崔宋 이
이감기비 후 구전 유다 전청 유번 내요쟁원 예구위각사별좌 막지능금 낭장최송

彦 賴公主乳? 하야 爲牽龍行首 어늘 周鼎 이 以郎將金禧 로 代之 하고 禧兄儀 와 及曺淳 이 亦以郎將 으로爲行首 하니
언 뢰공주유온 위노룡행수 주정 이낭장김희 대지 희형의 급조순 역이낭장 위행수

皆周鼎姻아 라侍號一門三行首 라하고 周鼎 이 嘗以女 로 嫁大將軍尹秀子 러니 秀 適遭舅服 이라 周鼎 이 請王 하야
개주정인아 시호일문삼행수 주정 상이여 가대장군윤수자 수 적조구복 주정 청왕

公除丞旨 러니 趙仁規 謂非禮 라하고 不奏 어늘 周鼎 이 因內僚 하야 得請 하니 人 이 非之 하고 又爲鷹坊都監使 하야
공제승지 조인규 위비례 불주 주정 인내요 득청 인 비지 우위응방도감사

以鷹犬 으로 媚王 하야 頗張權勢 하고 語人曰有王命 이라 不獲已耳 라하더라 元將 이 征日本 할새 王 이 以周鼎 으로
이응견 미왕 파장권세 어인왈유왕명 불획이이 원장 정일본 왕 이주정

有將略이라하야 拜萬戶 하다 上書中書省 하야 請賜虎頭牌 하야 內授昭勇大將軍右副都統 하야 賜虎頭金牌及印 하고
유장략 배만호 상서중서성 청사호두패 내수소용대장군우부도통 사호두금패급인

尋同知密直司事 러니 及征日本 에 至大明浦 하니 忽大風 이 覆舟 하야 官軍 이 多溺死 어늘 周鼎 이 以計 로 拯活 이 甚衆 하고
심동지밀직사사 급정일본 지대명포 홀대풍 복주 간군 다익사 주정 이계 증활 심중

十年 에 知都僉議事 하다 王 이 嘗宴群臣 할새 周鼎 이 上籌退 에 公主 呼謂曰卿子深 이 逼妻縊死 하니 父不能 懲子耶 아
십년 지도첨의사 왕 상연군신 주정 상수퇴 공주 호위왈경자심 핍처액사 부불능 징자야

對曰虎且不食基子 니다 公主不悅 이어늘 周鼎 이 退 하야 支이睡 러니 公主使人責曰卿 이 醉耶 아 睡耶 아 曰臣無睡 니다
대왈호차불식기자 공주불열 주정 퇴 지이수 공주사인책왈경 취야 수야 왈신무수

公主大怒 하야 命曳出 하고 明日 에 罷職 하야 俄貶淸州牧使 하고 奪虎頭牌 하야 賜朴之亮 이러니 未畿 에 召還 하야 復
공주대노 명예출 명일 파직 아폄청주목사 탈호두패 사박지량 미기 소환 부

賜牌 하고 十六年 에 卒 하니諡 文肅 이라하다 娶章德縣司戶張得球之女 하야 生一男 하니 曰深 이오
사패 십육년 졸 시 문숙 취장덕현사호장득구지녀 생일남 왈심

娶贊成事金璉之女 하야 生一男流 하니 古名珂 라
취찬성사김연지녀 생일남유 고명가

[역문]
金周鼎은 光州人이다. 젊어서 學問을 좋아하며 침착하여 말이 적고 交遊를 함부로 하지 않았다.
蔭職으로 富城尉에 뽑히니 그대에 蒙古兵이 크게 쳐 들어와서 국가가 소란 하였는데 周鼎이 적당히 措置하여 위풍과 덕혜가 아울러 나타나니 一國이 칭찬하였다.

巡間使 韓就가 천거하여 權知都兵馬錄事가 되고 元宗五年에 장원급제하여 海陽府錄事에 補하고 典籤(전첨)에 加하니 海陽公 金俊이 材器를 重하게 여겨 內侍에 부탁하여 政事堂에 들게 하고 자주 옮겨 使部侍郞에 이르며 忠烈王 元年에 大府卿 左司議大夫에 拜하고 명년에 글을 올려 廉使守令의 勤怠와 貢賦의 경중과 官史의 附勢逃役하는 等事를 다스리기를 請하니 왕이 받아 들였으나 左右의 沮止로 일이 마침내 施行되지 못하였다.

四年에 왕이 元에 갈제 周鼎이 行從都監使가 되어 建議하되 本國 達魯花赤과 王京留守軍 合浦鎭守軍 黃鳳鹽白 四州屯田軍의 供物이 繁重하여 백성들이 감당하기 어렵고 또는 金方慶의 조정에 大功이 있는데 誣告로 邊方의 流配 되었으니 請컨대 황제께 奏上하소서 왕이 조정에 들어가 황제께 奏上하니 황제께서 모두 允許하시므로 왕이 더욱 重하게 여기고 還國하여 左副承旨를 除授하였다.

舊制에 모든 國家事를 宰樞가 회의하여 稟旨를 받들어서 行하더니 周鼎이 말하기를 이제 宰樞가 너무 많아서 政事를 꾀하는데 주장이 없으니 마땅히 따로 必도赤을 두어 機務을 맏기고 또한 內僚는 다같이 政事를 奏上 할수없으니 請컨대 사람을 선택하여 申聞色을 삼을 것이라고 周鼎과 參文學士 朴恒 密直副使 薛公儉 ,左丞旨 李尊庇 ,判禮賓事 廉丞益, 大將軍 印公秀 趙仁規, 秘書尹鄭興, 內侍將軍 李之지, 寶文署侍制 郭預, 大府少 尹安집, 千牛衛錄事 李子芬, 詹事府錄事 尹文玉 太常府錄事 鄭玄, 이어서 必도赤이 되고 內僚郎將 鄭丞伍 金義光 姜碩 李恕 河汭 爲申聞色 되어 항상 禁中에 모여 機務을 결단하니 當時에 別廳이라 부르고 宰樞가 祖政의 舊制가 아니라하여 사람들이 많이 비빙하였다.

그때에 大府가 內僚口傳과 內侍院 傳請으로 財用이 枯渴되어 注簿가 사사로 假貸 하더라도 오히려 지탱할 수 없어 머리를 깍고 중이 되는 者도 있으니 周鼎이 생각하기를 祗侯 尹諧가 예전에 內侍가 되었으니 반드시 조절하여 傳請할것이요. 대장군 金子廷과 將軍 車得珪는 內僚의 우두머리니 可히 무더리 口傳에 폐단을 억제할것이라 하고 왕께 請하여 別監과 監察을 삼고 別監이 大府歲入을 고찰하여 그 비용을 경감하더니 後에 口傳이 더욱 많고 傳請이 더욱 번잡하여 內僚가 서로 다투어 各司別座가 되기를 求하여 能히 禁할 수 없고 郎將 崔宗彦이 公主乳母에게 부탁하여 노龍 行首가 되니 周鼎이 郎將 金禧로 대체하고 禧의 兄 儀와 曺淳이 또한 郎將으로 行首가 되니 모두 周鼎의 姻아 이라 당시의 一門三行首라고 불렀다.

周鼎이 일찍이 딸을 大將軍 尹秀의 아들에게 출가시켰더니 마침 外叔의 服을 입었는데 周鼎이 왕께 請하여 承旨에게 除授커져하거늘 趙仁規가 禮가 아니라 하고 奏請하지 않더니 周鼎이 內僚로 인하여 請을 얻으니 사람들이 시비하고 鷹坊도監使가 되어 鷹犬으로 왕께 아첨하여 권세를 부리고 사람더러 말하기를 王命이기에 하는수 없다 하였다

원나라가 장차 일본을 정벌할 때 왕이 株鼎으로 將略이 있다하여 萬戶를 삼고 中書省에 上書 하여 虎頭牌를 주도록 請하니 이에 昭勇大將軍 右副都總을 除授하여 虎頭牌와 印을 下賜하고 곧 同知密直司事를 삼았다.

그런데 일본을 치려고 大明浦에 이르니 大風이 문득 일어나 배를 엎질러 官軍이 많이 익사 하는순간 周鼎이 計策으로 많이 건지어 살렸다 十年에 知都僉議事가 되다.

왕이 일찍이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周鼎이 上籌하고 물러나거늘 公主가 불러서 이르되 卿의 아들 深이 妻를 학대하여 縊死케 하였으니 아비가 자식을 징계하지 못하느냐?대답하되 범도 제자식을 먹지 않습니다 하니 公主가 못마땅이 여기고 周鼎이 물러가 턱을 받치고 자울고 있으니 公主가 사람을 시켜 責하기를 卿이 醉했느냐?자우느냐?대답하되 臣은 자지 않습니다하니 공주가 크게 怒하여 끌어내게 하고 다음날 罷職을 하여 청주목사로 보내고 虎頭牌을 빼앗아 朴之亮에게 주었다가 未久에 召還하여 다시 다시 虎頭牌을 돌려 주었다

十六年에 卒하니 諡는 文肅이요 配位는 章德縣司虎 張得球의 女로 一男을 낳의니 深이요 繼配는 贊成事 金璉의 女로 一男을 낳의니 流요 古名은 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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