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자료

김성은(金性?, 1765-1830)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부 작성일11-11-21 15:22 조회1,135회 댓글3건

본문

ac1.gif 김성은(金性?, 1765-1830)

조선후기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의 학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진력한 인물이 김성은이다. 김성은의 학덕과 효행은 고부에 정착한 광산김씨가가 기호사림계의 주류에 접근하는데 계제를 마련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ic022.gif 김성은의 행적은 크게 효행, 학행과 위선으로 구분 할 수 있다.金性?(1765-1830)은 김윤중의 셋째 아들로서 자가 聖淵이고 호는 引逸亭이다. 그는 어버이 섬김에 효성을 극진히 하였다. 부친의 상사에 送終의 절차를 엄격히 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는 대변의 맛을 보아 증세를 살피고, 병세가 위중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렸다고 한다. 부모의 상사에 6년 동안 여묘살이 하였다. 그는 가내의 가르침에 따라 형제간 우애와 가난한 이웃에 대한 구제에도 성실하였다.
 
ic022.gif 김성은은 13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季父 聲湖 金允明을 섬겼다. 부친상 후 ?齋 黃胤錫(1729-1791)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으며, 황윤석이 세상을 떠나자 심상 3년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 후 中洲 李直輔(1738-1811)와 剛齋 宋稚圭(1759-1838)문인이 되었다. 이직보는 그에게 친히 ‘引逸’이라 호를 지어주었다.

댓글목록

고부님의 댓글

고부 작성일

그는

고부님의 댓글

고부 작성일

글이 더 이상 올라 가질 않으니 허망합니다.
이번에는 댓글로 해보죠!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아마도 이미지 파일용량이 커서 제한에 걸렸나봅니다.
용량늘려놨습니다.

보학자료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