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洗馬)와 선마(洗馬)를 바르게 알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孤巖/準一 작성일12-02-17 09:29 조회1,472회 댓글2건관련링크
본문
일상용어(日常用語) 중에서 말과 글자의 쓰임에 그릇된 점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선마(洗馬)는 고려(高麗)때 동궁(東宮)에 속한 종(從) 5품(品)이며, 조선(朝鮮)때는 정(正) 9품(品)의 관직(官職)인데,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선마(洗馬)의 벼슬이름이 세마(洗馬)로 잘못전하여 현재는 세마(洗馬)로 굳어져 가고 있어 선마(洗馬)로 바르게 잡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실학자(實學者)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先生)의 아언각비(雅言覺非)와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소(檀國大學校 東洋學
硏究所)에서 편집(編輯)하고 발행(發行)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살펴보면 분명(分明)하게 벼슬이름으로는 선마(洗馬)로 쓰는 것으로 기록(記錄)되어있습니다.
아언각비(雅言覺非)
洗馬者 古先馬之官也。洗當音銑、今讀之如字、誤矣。韓非子云「越王句踐、爲吳王洗馬、淮南子云「爲吳兵先馬走、」洗馬卽先馬、荀子云「天子出門、諸侯先馬、」漢書百官表「太子太傅少傅屬官、有先馬、張晏云「先馬員十六人、」先或作洗。顧亭林云「洗馬者馬前引導之人。
太史公牛馬走、或曰牛當作先。旣非僕御之賤、掌馬洗浴、無是理也。
洗馬 : 선마(洗馬 ?先馬라고도 함. 벼슬 이름. 옛날 태자궁(太子宮)의 속관. 행열(行列)의 전구(前驅)가 되고 또는 석전(釋奠)의 예(禮)에 태자(太子)를 보좌하는 맡아 봄)란 옛날 선마(先馬)의 벼슬이다.
선(洗)자의 음은 선(銑)으로 함이 마땅한데 지금「세」자처럼 읽는 것은 잘못이다.
한 비자(韓非子?책이름. 二十권. 한비(韓非)가 지은 것으로 그 내용은 주로 형벌(刑罰)에 관한 것이다)에 이르기를
『원나라 임금(월왕越王) 구 천(句 踐)이 오나라 임금(오왕 吳王)의 선마(洗馬)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회남자(淮男子 ?책이름. 二十一권. 전한 前漢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지은 책. 후한(後漢)의 고유(高誘)가 주(注)를 냄)에 이르기를 「오나라 군사의 선마(先馬)가 되어 달였다.」고 하였는데, 선마(洗馬)는 곧 선마(先馬)이다.」
순자(荀子 ?책이름. 주(周)나라 순황(荀況)이 지음. 十二권. 공자의 가르침을 밝히고 예의(禮儀)를 숭상하고 학문(學問)을 권하는 것을 주로 함)에 이르기를
『천자(天子)가 문을 나서면 제후(諸侯)는 선마(先馬)가 된다.』라고 하였다.
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이르기를
『태자(太子)는 태부(太傅)? 소부(少傅)가 있고, 속관(屬官)으로 선마(先馬)가 있다.』고 하였다.
〈장 안(張 晏)이 이르기를 「선마(先馬)의 정원(定員)은 十六명 이다.
선(先)은 혹은 선(洗)이라고도 쓴다.」라고 하였다〉
고 정림(顧 亭林)이 이르기를
「선마(洗馬)란 말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을 말 한다」라고 하였다.
〈태사공(太史公)은 「우마(牛馬)가 달린 다」고 썼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우(牛)」자는 마땅히 「선(先)」자로 써야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선마(洗馬)는 임금님의 말 타는 것을 시중하는 천인이 아니니, 말을 깨끗이 씻어주는 일을 관장하는 것은 곧 다스릴 리가 없는 것이다.
漢韓大辭典
-檀國大學校 東洋學 硏究所- (1999년)
15~2권 “先”
P 49 ⇒ 先은 洗와 통용.
P 52 ⇒〔先馬 선마〕
임금이나 태자(太子)가 행차할 때 앞에서 선도함. 또는 그 관리.
洗馬. 前馬. ≪荀子,正論≫諸候持輪·挾輿·先馬. <楊倞注> 先馬, 導馬也. ≪漢書, 百官公卿表 上≫太子太傅· 少傅, 古官. 屬官有太子門大夫· 庶子· 先馬· 舍人. <顔師古注> 如淳曰, 前驅也. 國語曰, 旬踐親爲夫差先馬. 先或作洗也.
≪先馬走 선마주≫ 임금의 행차 앞에서 선도를 하는 군졸(軍卒). ⇒先馬. 淮南子, 道應訓≫ 越王句踐 ·······親執戈爲吳兵先馬走. <高誘注> 先馬走, 先馬前而走也.
15~8권 “洗”
P 343 ⇒ 洗는 先과 통용.
P 344 ⇒〔洗馬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건필하세요.
성봉님의 댓글
성봉 작성일
[중국역대직명사전(中國歷代職官詞典)]
洗馬 : 읽는 소리(讀音)는 선마 이다.
관직명으로 진시황 때 (처음)설치하였다.
한나라 때도 역시 선마라 하였다.
태자 출행시 선도하므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녹봉은 6백석으로 균등하였다.
동한(東漢) 때 16人이었으며, 진(晉)나라 때 8人으로 감축했고, (군사)지도와 호적까지 겸하여 관장하였다.
남제(南齊) 때는 겨우 1人을 두었다.
양(梁)나라에 이르러 전경국의 선마(洗馬)라 이름하고 문한(文翰)을 관장하였다.
직무도 한(漢)나라의 선마와 같지는 안 했다.
관원 수는 8人이었다.
(선마는)갑족(甲族)에서 재능 있는 자를 뽑아 임무를 맡겼다.
진(陣)나라도 같았다.
북제(北齊) 때는 전경방 선마(洗馬) 2人이 있었다.
수(隨)나라 때는 사경국 선마(洗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唐)나라 때도 같았다.
한 때는 사경대부(司經大夫)라 고쳐 부르기도 하였다.
명(明)나라 때와 청(淸)나라 때 역시 사경국 선마(洗馬)로 하였다.
첨사부(詹事府)에 속했으며 종 5품관이었다.
녹봉은 한림관(翰林官)과 엇비슷하였다.
[中國歷代職官詞典]
洗馬: 讀音 先馬
官名。秦始置。漢時亦作先馬。太子出行時為前導,故名。秩比六百石。東漢時員額十六人。晉減為八人,兼掌圖籍。南朝齊只設一人。當梁名典經局洗馬,掌文翰,職務與漢先馬不同,員額八人,取甲族有才名者任之。陳同。北齊有典經坊洗馬二人。隋改名司經局洗馬。唐同,一度改稱司經大夫。明、清亦有司經局洗馬,屬於詹事府,為從五品官,實僅為翰林官遷轉階轉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