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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 와 화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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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2-04-22 16:38 조회6,8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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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宗親會)와 화수회(花樹會)

종친회 (宗親會)
성과 본이 같은 일가붙이끼리 모여서 하는 모꼬지.
- 모꼬지: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

* 종정시[宗正寺] - 고려시대 -
시행일시
1298년(1차), 1369년(2차)

폐지일시
1310년(1차), 1371년(2차)

고려시대 왕실의 보첩(譜牒 : 족보)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원래는 고려 초기 목종 때 전중성(殿中省)이 설치되어 이곳에서 왕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분담한 6국(局 : 尙食ㆍ尙醫ㆍ尙衣ㆍ尙舍ㆍ尙乘ㆍ尙?局)을 총괄하고 친속의 보첩에 관한 일을 주관하였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 들어와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고려는 빈번하게 관제개혁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전통적인 관제의 명칭이 소멸되었다. 전중성 또한 명칭이 몇 차례 바뀌게 되었다. 1298년 충선왕이 7개월간 왕위에 있으면서 종정시(宗正寺)로 개칭되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종부시(宗簿寺)에서 친속의 보첩만을 관장하게 하였다.

그 뒤 배원정책과 고려의 부흥을 꾀하면서 1356년(공민왕 5)과 1369년에 실시한 관제개혁에 의해 고려의 전통적인 구제도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전중성만은 복고되지 못하고 종정시로 개칭되었다.

직제는 판사(判事, 정3품) 1인, 경(卿, 종3품) 1인, 소경(少卿, 종4품) 1인, 승(丞, 종5품) 2인, 내급사(內給事, 종6품) 1인, 주부(注簿, 종7품) 1인이 있었다. 이속(吏屬)은 문종 때 정해졌는데 주사(主事)ㆍ영사(令史)ㆍ서령사(書令史)ㆍ기관(記官)이 각각 4인씩, 산사(算士) 1인이 있어 실무를 담당하였다.

1371년에 다시 종부시로 개칭되고, 이에 따른 직제개편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전중시(殿中寺)라 했으나, 1401년(태종 1) 종부시라 개칭되어『선원보첩(璿源譜牒)』을 편찬하고, 종실의 허물과 잘못을 규찰해 왕실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이바지하였다.
고려 후기 관청의 잦은 명칭 변경은 당시 원나라의 내정간섭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에 대응해 고려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고려 왕실의 노력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라 하겠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경국대전(經國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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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부시[宗簿寺] - 고려시대-
시행일시
1310년(1차), 1362년(2차), 1372년(3차)

폐지일시
1356년(1차), 1369년(2차)

고려시대 후기에 왕실ㆍ왕족의 보첩(譜牒)을 관장하던 관서.
고려 전기의 전중성(殿中省)이 전중시(殿中寺)ㆍ종정시(宗正寺)ㆍ전중감(殿中監)을 거쳐 1310년(충선왕 2)에 개칭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판사(判事, 정3품)ㆍ영(令, 종3품)ㆍ부령(副令, 종4품)ㆍ승(丞, 종5품)ㆍ주부(注簿, 종7품) 등이 설치되었다. 이후 1356년(공민왕 5)에 종정시로 개편되었다가 1362년에 다시 종부시로 환원되었으며, 1369년에 다시 한 번 종정시로 되었다가 1372년에 종부시로 고쳐져 여말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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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宗親府] -조선시대 -

조선시대 종실제군(宗室諸君)의 봉작(封爵)·승습(承襲)·관혼상제 등의 사무를 보던 관서이다. 조선 역대 제왕의 어보(御譜)와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선원제파(璿源諸派)의 인사 문제와 종친간의 분규같은 것을 의논하고 감독하였다.

종친부는 1430년(세종 12) 제군부(諸君府)를 고친 이름으로서 1864년(고종 1) 종부시(宗簿寺)를 합하여 사무를 인계 받았고, 1894년(고종 31)에 종정부(宗正府)에서 다시 종정원(宗正院)으로 개편되었다. 1905년에는 종부시로 개칭되었다가 1907년에 폐지되고, 사무는 규장각으로 옮겨졌다.

종친부에는 대군(大君)·왕자군·제군(諸君)·영종정경(領宗正卿)·판종정경(判宗正卿)·지종정경
(知宗正卿)·종정경·도정(都正)·정·부정·수(守)·부수·영(令)·부령·감(監) 등의 계층이 있었는데 어느 계층이고 정해진 인원은 없었다. 조관(朝官)으로 전첨(典籤)·전부(典簿)·주부(主簿)·직장(直長)·참봉(參奉) 등이 배치되었다.

이중 유사당상(有司堂上) 3인은 1품과 2품의 종반(宗班)으로 임명하는 데 종친관계 사무를 통솔하였다. 조선시대 종친을 우대하는 데는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차례인 소목(昭穆)으로 했으며, 대수(代數)가 다하면 그치고 녹(祿)과 품질(品秩)도 대를 내려갈수록 점차 줄어들었다. 숙종은 종실을 불러 연회를 베풀고 율시를 지어 현판을 만들어 걸게 하였다.

또한, 영조는 종친을 불러 활쏘기를 시험하고 역시 종친부에 현판을 써서 걸게 하였다. 종친부 건물은 원래 한성부 북부 관광방(觀光坊;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1981년 종로구 화동 1번지의 현 위치로 옮겼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옛 종친부의 관아건물 중 일부에 해당하는 중당(中堂) 63.45평과 왼쪽 익사(翼舍) 32.84평이 남아있으며, 국유로 관리되고 있다. 원래 중당의 오른쪽에도 왼쪽과 같은 익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당은 화강석을 다듬은 장대석(長臺石)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익 공계 양식의 겹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2중량(二重樑) 7량가(七樑架)이며 파련대공(波蓮臺工)에 팔작지붕이다. 익사는 중당보다 격을 낮추었고 규모가 작아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을 잡고 익공계 양식으로 공포(?包)를 짰다.

한편 종친부 옆에는 부마의 인사 문제를 관장하는 의빈부(儀賓府)가 있어 종실의 사무를 편하게 했으며, 다같이 종실과 외척 및 부마의 출입문인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가까이에 위치하였다.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참고문헌
世宗實錄
大典會通
漢京識略
서울六百年史-文化史籍篇-(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서울文化財大觀(서울특별시, 1987)
서울문화재(서울특별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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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시[宗簿寺] - 조선시대 -

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의 편찬과 종실의 잘못을 규탄하는 임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

왕실의 계보인 보첩을 관장하던 관서는 고려 목종 때 전중성(殿中省)으로부터 비롯되어 그 명칭의 변개가 심하였다.
조선시대의 종부시는 1392년(태조 1) 태조의 관제신정 때 전중시(殿中寺)로 출발하여, 1401년(태종 1)에 종부시로 개칭되었다. 그 뒤 한때는 재내제군부(在內諸君府)에 속하였다가, 1430년(세종 12)에 재내제군부가 종친부(宗親府)로 개칭되면서 다시 독립하였다.

종부시는 종친간의 친목을 꾀하고 비위를 규찰하며, 10년에 한 번씩『선원록』을 수찬하고 3년마다 종실보첩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 밖에 왕자·왕녀의 혼가(婚嫁) 때에는 이를 갖춰 준비하는 일도 주관하였다.

관원으로는 조선 초에는 판사 2인, 경 2인, 소경(少卿) 2인, 승(丞) 1인, 직장(直長) 2인을 두었다가 1439년에는 도제조 2인, 제조 2인, 주부 1인, 겸주부 1인이 더 설치되었으며, 1460년(세조 6)에는 판관과 겸주부가 혁파되고 판사는 정(正), 소윤은 첨정으로 개칭되었다. 이리하여『경국대전』에는 도제조 2인, 제조 2인, 정 1인, 첨정 1인, 주부 1인, 직장 1인으로 되어 있다. 도제조는 뒤에 대군과 왕자군에서만 임명되었으며, 아전으로는 서리(書吏) 10인과 조례(早隷) 20인이 있었다. 그리고 정·첨정·주부에게는 조례 각 1인을 배속하였다. 1864년(고종 1)에 종친부에 합속되었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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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회(花樹會)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친목을 위하여 이룬 모임이나 잔치.

화수회(花樹會)라 부르게된 연원(淵源)은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이 765년(代宗 永泰元年) 봄 좌습유(左拾遺)에 제수(除授)되어 섬서성 장안현(陝西省 長安縣)에 갔을 때,
원외랑(員外郞)으로 있는 어느 위씨(韋氏) 집안의 친족들이 꽃나무 밑에서 매번 술자리를 벌이고 단란한 모임을 갖는 것을 보고 ‘위 원외가 화수가(韋 員外家 花樹歌)’를 지어 찬양하였다.
후세에 친족 간의 모임을 ‘화수회(花樹會)’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韋員外家花樹歌 - 잠삼(岑參, 715-770) 詩 -

올해 꽃도 지난해와 같이 아름다운데/ 今年花似去年好/
지난해 왔던사람 올해엔 늙었구나/ 去年人到今年老/
이제 알았네 사람 늙는 거 꽃 같지 못함을/ 始知人老不如花/
아깝다 떨어진 꽃을 그대여 쓸지 마오/ 可惜落花君莫掃/
그대 집 형제들 당할 수 없나니/ 君家兄弟不可當/
열경에 어사 상서랑이네/ 列卿御史尙書郞/
퇴궐하면 꽃나무 아래에 언제나 손님들 모여/朝回花底恒會客/
꽃잎 가득한 옥항아리의 봄 술이 향기롭네/ 花撲玉缸春酒香/

▣위곡(韋曲)에 살았던 형제들의 우애를 노래한 시로 ‘花樹之樂’이란 사자성어가 전한다.

○ 화수(花樹)의 이해
한 성씨의 모임을 흔히 화수회(花樹會)라 하는데 나무를 구성하는 수(樹)는 성씨로 근(根)은 조상이며 지(枝)는 지파다.
엽(葉)과 꽃(花), 열매(實)는 지손(子孫)을 의미한다.

여기서 화수(花樹)는 박태기나무라는 자형수(紫荊樹)로 그 꽃이 자형화(紫荊花)인데 산앵두나무 꽃인 상예화(常?花)와 함께 고전에 형제의 우애에 대한 인용으로 많이 전한다.

화수(花樹)의 유래(始原)는 위(韋)씨 형제들의 우애(花樹之樂)를 노래한 잠삼(岑參, 715-770)의 시「위원외가화수가(韋員外家花樹歌)」와 함께 오균(吳均)의 『속제해기(續齊諧記)』전하는 전진(田眞)의 고사다.
※참고 : 《岑參集 卷4》/ 《近思錄 卷9 治法》/ 《晦峰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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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균(吳均 469~520)의『속제해기(續齊諧記)에 전하는
전진(田眞)의 고사

/장안의 전진형제 셋이 재산을 나누기로 의논하고 생활에 쓰는 재물은 모두 고르게 나누었으나 생각하니 집 앞의 한 그루 자형화(花樹)가 남아 같이 의논하여 셋으로 나누고자 하였는데, 다음날 자르고자 가니 그 나무가 곧 죽었다. 전진이 가서 보고 크게 놀라 아우들에게 말하길, “나무는 본래 같은 뿌리로 장차 나누고자 벤다는 것을 듣고 메말라 죽었으니, 이는 사람이 나무만도 못하다”라고 하였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다시 나무를 자르지 않자 나무가 그 소리에 응해 무성해졌다. 형제가 서로 감동하여 재물을 합치니 마침내 효문으로 삼았다. 전진의 벼슬은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京兆田眞兄弟三人共議分財, 生?皆平均惟堂前一株紫荊花 共議欲破三片 明日就截之其樹卽枯死 眞往見之大驚謂諸弟曰 樹本同株聞將分斫所以?? 是人不如木也 困悲不自勝不復解樹樹應聲榮茂. 兄弟相感合財寶 遂爲孝門 眞仕至太中大夫. 『속제해기(續齊諧記)』

▣위 고사는『속제해기(續齊諧記)』,『육조괴담(六朝怪談)』,『이십사효(二十四孝)』, 「익재(李齊賢)문집 효행록」, 「백사(李恒福)집」, 「송강(鄭澈)한시집」등에 전하며 자형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형수복생(荊樹復生)이란 사자성어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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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近思錄,

※『근사록(近思錄)
『근사록』은 주자학의 입문서이다.
이 책은 송(宋)나라 때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희(朱憙=朱子1130-1200) 가 친구인 여조겸(呂祖謙,
1137~1181)과 함께, 자신들의 선배인 '북송의 네 선생, 즉 주돈이(周敦?, 1017~1073), 정호(程顥, 1032~1085)ㆍ정이(程?, 1033~1107) 형제 그리고 장재(張載, 1020~1077)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분류 편찬한 '선집(選集)'이다. 주희는 그 앞에 붙인 짤막한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순희 을미년(1175년) 여름에 동래 여백공 - 여조겸 - 이 동양(東陽)을 떠나 내가 있는 한천정사(寒泉精舍)에 들러 열흘 동안 머물렀다. 그와 함께 주자(주돈이), 정자(정호, 정이), 장자(장재)의 글을 읽고, 그들의 학문이 끝없이 광대하며 굉박한 것을 감탄한 반면, 초학자들이 들어 갈 곳을 모르게 될까 걱정하였다. 그래서 학문의 큰 강령과 관련이 있으면서 일상생활에 절실한 것을 선택하여 이 책을 편찬하였다./

근사록에
/정자께서, “무릇 사람 사는 집 꼴은 모름지기 한 달에 한 번 모여야 하며 일가들의 만남과 더불어 옛사람들에게 ‘화수위가종회법’이 있었으니 취할 만하다”고 했다.

늘 겨레붙이들이 멀리서 오면 또 한 번 모이고 좋은 일과 언짢은 일,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이 있으면 또 서로 예를 행하여 골육의 정을 언제나 서로 나누어야 한다. 일가들이 날로 멀어지는 것은 단지 서로 보지 않아 정을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程子(程顥,程?형제)曰, 凡人家法, 須月爲一會, 以合族, 古人有花樹韋家宗會法, 可取也. 每有族人, 遠來, 亦一爲之, 吉凶嫁娶之類, 更須相與爲禮, 使骨肉之意, 常相通. 骨肉日?者, 只爲不相見, 情不相接爾.

※[화수위가종회법(花樹韋家宗會法)]
『근사록(近思錄)』권9「치법(治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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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서 종친(宗親)이라는 용례(用例)는 9.000건 이상이나 화수(花樹)라는 용례는 1건이다.


화수(花樹) 용례
조선왕조실록 고종 2권, 2년(1865 을축 / 청 동치(同治) 4년) 2월 20일(병술) 5번째기사
종친부의 건물을 중수하라고 명하다
전교하기를,
“내가 잠저(?邸)에 있을 때 이미 종친부(宗親府)가 황폐하고 무너졌다는 것을 듣고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다. 국조(國朝)에 융성했던 시절에야 어찌 이러하였겠는가? 본손(本孫)과 지손(支孫) 백대를 내려와 공족(公族)이 득실거렸을 것이다. 번성한 기상을 상상하면 붉은 옷을 입고 푸른 패옥을 찬 사람들이 찬란하게 자리를 메우고 화수(花樹)의 즐거움이 모두 이 종친부에서 있었을 것이니, 어찌 옥우(屋宇)를 수리하지 않고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겠는가? 내가 즉위한 후로 중건을 하려고 하였으나 겨를이 없었는데, 우리 대원군께서 빨리 수리하여 모두 옛 모습을 회복하였으니 웅장하고 미려한 아름다움이 옛날에 비해 낫다.

본궁(本宮)에 의대(衣?)를 봉진(封進)하는 것은 옛 규례를 이미 회복하였으며 《선원록(璿源錄)》의 편집도 완성되어가니, 이 종친부가 백사(百司)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로부터 자손들이 번성한다는 내용의 〈인지(麟趾)〉와 〈종사(?斯)〉의 시(詩)가 유독 주(周) 나라에서만의 아름다움은 아닐 것이다. 천만년을 국가와 함께 번창할 것이니, 이것이 내가 기원하는 심정이다. 종친부의 편액은 친히 써서 내리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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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재 각 성씨 종회 명칭 (가나다 순)

진주강씨대종회
진주강씨도봉종회
진주강씨박사공파대종회
진주강씨서울시종회
진주강씨은열공파대종회
진주강씨중앙종회
제령강씨종친회
서촉경씨종친회
수안계씨대종친회
횡성고씨종친회
현풍곽씨중앙화수회
담양국씨서울종친히
안동권씨중앙종친회
안동권씨마포종친회
안동권씨석주공파종회
안동권씨전서공파종중
김해김씨가락중앙종친회
김해김씨안경공파종회
가락김씨서울종친회
가락김씨구로종친회
가락김씨노원종친회
가락김씨도봉종친회
가락김씨시흥동종친회
가락김씨영등포종친회
강릉김씨재경화수회
경주김씨대종친회
경주김씨중앙종친회
경주김씨계림군파대종중

광산김씨대종회
광산김씨광성군종종
광산김씨전리판서공파종친회
광산김씨문숙공파서울종친회
광산김씨시중공파재경화수회

廣州김씨종친회
금능김씨종친회
김녕김씨서울종친회
김령김씨전국총종친회
나주김씨종친회
밀양김씨대종회
삼척김씨종친회
서흥김씨대종회서울화수회
선산김씨대종회
순천김씨중앙종친회
안동김씨대종회
안동김씨대종회
안동김씨문온공파대종회
안동김씨삼당공파종회
안동김씨서운관정공파종중회
연안김씨종회
울산김씨서울종친회
원주김씨중앙종친회
원주김씨감찰공파종친회
의성김씨종친회
의성김씨전서공파화수회
전주김씨중앙종친회
재경경주김씨부윤공파종친회
풍산김씨중앙종친회
해풍김씨대종회
고씨중앙종친회
구씨대종회
능성구씨대종회
능성구씨별좌공파종중
능성구씨서울시종회
담양국씨서울종친회
길씨대종회
금성나씨서울종친회
나주나씨중앙종친회
남궁씨종친회
함열남궁씨종친회
남씨대종회
의령남씨대종회
함열남궁씨종친회
광주노씨종친회
노씨화수회도봉지회
전국노씨중앙화친회
고흥류씨중앙종친회
문화류씨고양공파종중
문화류씨고양광파종중
문화류씨송암공파종친회
문화류씨전사령공파종친회
문화류씨좌상공파종친회
전주류씨전능군종친회
진주류씨대종회
전주리씨대동종약원
전주리씨완창대군종친회
전주리씨은평분원
전주리씨장의공파종종
마씨종친회중앙회
장흥마씨종친회
사천목씨종친회
남평문씨대조회
남평문씨대종회
남평문씨서울종친회
서촉명씨종친회
여흥민씨종친회
경주박씨대종친회
고령박씨대종회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
밀양박씨종친회
밀양박씨간성공파종친회
밀양박씨규정공파대종회
밀양박씨남극공파종회
밀양박씨사직공파대종회
반남박씨대종중
상주박씨화수회
순천박씨중앙종친회
음성박씨재종회
죽산박씨연흥군파종회
충주박씨종친회
온양방씨종친회
수원백씨휴암종중
하음봉씨중앙종친회
재경부씨종친회
대구달성서씨대종회
이천서씨대종회
안음서문씨종친회
창녕성씨대종회
경주손씨종친회
여산송씨서울종친회
은진송씨종친회
은진송씨충순위공파종친회
진천송씨대종회
고령신씨종친회
거창신씨종친회
평산신씨대종중
평산신씨사간공종중
평산신씨사강공파천성공종중
평산신씨영등포구화수회
평산신씨정언공파종중
평산신씨종친회
청송심씨대종회
청송심씨서서울종친회
풍산심씨양천파종친회
죽산안씨종친회
양씨중앙종친회
청주양씨대종회
순흥안씨종친회
순흥안씨찬성공파종친회
함종어씨문정공파종친회
함종어씨중앙종친회
한종어씨중앙종친회
영월엄씨중앙종친회
파주염씨대종친회
동복오씨대종회
해주오씨대동종친회
해주오씨종친회
개성왕씨중앙종친회
원주원씨종친회
강릉유씨종친회
기계유씨대종회
진주유씨대종회
남원윤씨참봉공오자동과파종친회
태평윤씨지족암공파종중
괴산음씨종친회
경주이씨대호군종회
경주이씨중앙화수회
고성이씨용헌공파종중
고성이씨용현공파종중
광주이씨광천군파문정종회
광주이씨광천군파종회
광주이씨광천군파총회
광주이씨목사공파우윤공계종회
광주이씨석탄공종회
덕수이씨춘당공파종회
성주이씨서울종친회
성주이씨종친회
안악이씨대종회
연안이씨부사공파전국대종회
연안이씨승자공파종중
연안이씨저현공파종중회
연안이씨전국대종회
영천이씨대종회
예안이씨이조판서공파종회
예안이씨종친회
용인이씨대종회
장수이씨종친회
재령이씨종친회
전주이씨수도권파종친회
전주이씨경영군파대종회
전주이씨근령군파종회
전주이씨남계공종중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계성군파종회
전주이씨대동종약원서울시지원
전주이씨덕양군파종중
전주이씨덕천군파종회
전주이씨봉산군파종중
전주이씨순평군선산부령종친회
전주이씨양녕대군파대종회
전주이씨완성군종회
전주이씨완원군파종중
전주이씨임명대군파오산군계종중
전주이씨장의공파종중
전주이씨종친회
전주이씨회산군파종회
진성이씨대종회
인천이씨대종회
장수이씨종친회
한산이씨대종회
한산이씨종친회
함안이씨종친회
함종이씨문정공파종친회
함평이씨함성군파종친회
함평이씨함평군파종친회
재형이씨종친회
전의이씨통제사공파화수회
함안이씨종친회
풍천임씨중앙종친회
풍천임씨감사공내신파종친회
풍천임씨중앙종친회
원주원씨서울종친회
원주원씨종친회
홍천용씨중앙종친회
옥천육씨종친회
파평윤씨대종회
파평윤씨소정공파종회
파평윤씨은평구종친회
칠원윤씨대종회
칠원윤씨서울종친회
해평윤씨종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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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문정공파중앙종회
남양홍씨종중회
남양홍씨중앙화수회
장수황씨종친회
풍산홍씨대종회
황씨중앙종친회

*서울소재 여러 성씨 종회 총 296개 중 화수회 명칭은 13개이며
일제가 강제로 이름붙인 게이죠((京城)에서 비롯된 在京을 사용하는 종회명칭은
강릉김씨 재경화수회와 광산김씨 시중공파 재경화수회 2개가 보인다.

참고:
광산김씨제주도종친회/ 광산김씨부산종친회/ 광산김씨전라북도종친회

○왕조시대가 아닌 현시점에서 종친회라는 명칭을 사용해도 하등 문제되지 않으므로
중국 고사에서 유래해서 유생들이 애용하던 화수회 명칭보다는 종친회(종회) 명칭이
정감이 더 있기 때문에 많은 종회명칭으로 널리 사용하고있는 것으로 여긴다. /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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