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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속명(金續命) 진 시무 서(陳 時務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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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2-05-15 10:03 조회7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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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속명(金續命) 진 시무 서(陳時務書)

“원수(元首)가 밝으시면 신하가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할 것이요, 원수가 변변치 않으면 신하가 게을하여 만사가 어그러질 것이다.” 는 말이 있습니다. 전하(殿下)께서는 기품이 침중하시고 춘추가 한창이시니, 위에 오르신지 날이 오래므로 국사를 잘 아시나, 슬기가 뛰어났으므로 남을 많이 믿지 않고, 다만 때로는 환관과 승려 잡류의 말을 믿어 비록 대신이라도 한 일을 의론하거나, 또는 한 말을 내어도 반드시 임금의 뜻을 맞추어 그대로 시행하였으므로 아첨이 유행되고 바른 말의 길이 끊겼으니, 이것은 덕정(德政)에 있어서 가장 실책이었습니다. 땅이란 신하의 도입니다. 이제 상벌이 밝지 못하므로, 대소 관원이 게을리하여 공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며, 또 군사의 공로로서 백정(白丁)이 갑자기 경상(卿相)의 지위에 오르고 노예가 조반(朝班)에 처하여 신하의 도가 문란해져 지진의 재앙을 초래하였으니, 청컨대, 이제부터 상벌을 믿음 있게 하고 명기(名器)를 무겁게 하옵소서.
옛날에는 군인을 뽑아서 농토를 주었으므로, 군사들이 모두 먹을 것이 넉넉하여 멀리 출정하기를 꺼리지 않더니, 요즈음에는 세력있는 호족(豪族)들이 수천 수백 결(結)을 겸병하여 일찍이 한 이랑도 군인에게 혜택이 미치지 않다가, 급기야 징발을 당해서 출정할 무렵에 모두들 온 몸이 풀어질 뿐인데, 하물며 적개심(敵愾心)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다시금 군을 뽑는데 있어서 농토를 주던 법을 회복하여 주옵소서.
좌우와 전후에 있는 사람이 모두 올바른 이라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부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형을 당한 나머지의 환시와 함께 전하께서 날마다 서로 친압하여 야비하고 황당한 말만을 즐겨 듣기에, 밤이 오래도록 취침하지 않다가 대낮이 된 뒤에 일어나 대신을 소원히 하니, 아름다운 꾀와 충성스러운 의론이 심어들 길이 없고, 겨울철에 우뢰와 지진이 일어났으니 그 허물은 실로 이런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삼전(三殿)의 환시는 각기 10명만 머물러 두고는, 그 나머지는 모두 태거(汰去)시키고 올바른 사람과 단아한 선비로 하여금 늘 곁에 모시고 있게 하옵소서.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경사(經史)에 실려 있는데, 불서(佛書)로써 정치를 이룩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불법을 믿으므로 뭇 까까중이 이로부터 간알(干謁)하여 사사로운 청을 이룩하니, 원컨대 이제부터 중들이 금중(禁中)에 드나드는 것을 끊으시고 다시금 경연(經筵)을 열어 날마다 다스리는 도를 물으며, 늘 성현의 글을 읽으시고 이단의 설로서 혼잡을 일으키지 말게 하옵소서.
계집의 간알이란 위정자에게 커다란 방해가 되는 것인데, 이제 침선(針線)을 맡은 처녀가 내료(內寮)에 있는 여자로서 역시 옹주(翁主)와 택주(宅主)로 봉한 자가 있어서, 그 참람함이 분에 넘쳐 존비의 체면에 커다란 손상이 되오니, 이제부터 종실과 훈척 이외에는 봉작(封爵)을 허하지 말 것이요, 이미 봉작된 자도 삭탈하여 주옵소서.
시골의 잘 되고 못 되는 것도 수령에게 달린 것이니, 이제 비록 대성(臺省)이나 6조에서 보증하여 추천한 자라도 모두들 얼굴과 인정에 따랐으므로, 그 천거된 자로서 심지어는 글자도 모르는 자가 있으니, 원컨대, 이제부터 친히 이끌어 보시고 명(名)과 실(實)을 따져서 들어 쓰시되, 그 자격이 아닌 자가 있었을 시는 반드시 추천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옵소서. 전(傳)에 이르기를, “범죄를 용서 없는 나라는 그 정치가 반드시 화평하다.” 하였으니, 대체 가래추를 기른 자는 아름다운 곡식을 해치는 법이요, 간사한 자에게 혜택을 입히는 자는 양민을 해치는 것이며, 수재와 한해를 불러 이르는 것은 죄인을 자주 사함에 있는 것이니, 원컨대 이제부터 죄있는 자를 함부로 놓아 주어서 간악한 자의 악습을 조장시키지 마옵소서.
[주]
주의(奏議) : 신하가 임금에게 바치는 하나의 문체(文體) 이름이다.
그 내용은 대체로 시사(時事)를 논하여 경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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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陳時務書[金續命]
元首明哉。股肱良哉。庶事康哉。元首叢?哉。股肱?惰哉。萬事墮哉。殿下氣??重。春秋鼎盛。卽位日?久。借두001?國事。智出萬全。多不信人。宦官僧徒雜類?之言。有時信聽。雖大臣議一事出一言。必候上旨。?承順施行。以故?諛成風。直言路絶。此德政之最?失者也。地者臣道也。今賞罰不明。故大小之臣。怠?弛曠官。又因軍功。白丁驟拜卿相。?隷濫處朝班。?臣道淆亂。以致地震。請自今信賞必罰。重惜名器。古者選軍。給之土田。故兵皆足食。不憚征役。近豪?勢兼幷。至千百結。曾無一畝及於軍夫。及其徵發?赴敵之際。率皆解體。?望敵愾乎。請復選軍給田?之法。左右前後皆正人也。君誰與爲不正。刑餘陰?類。殿下日與相狎。樂聞鄙俚無稽之言。夜分不寢。?日中乃興。?遠大臣。嘉謀?議。無自而入。冬雷地?震。咎實在玆。自今三殿宦者。各留十人。餘悉汰去。?正人端士。常令侍側。治國之道。布在經史。未聞以?佛書致治者也。殿下過信佛法。群?緣此。干謁濟?私。願自今斷絶緇流。出入禁?。復開經筵。日訪治道。常觀聖賢之書。勿雜異端之說。女謁爲政之大?害。今針線娘子內寮之女。亦有封翁主宅主者。僭?擬踰分。殊失尊卑之體。自今除宗室勳舊外。勿許?封爵。已封者請奪之。田里休戚。在於守令。今雖有?臺省政曹保擧之令。皆徇面情。其所薦擧。至有不?識字者。願自今臨軒引見。核其名實。擧非其人。必?罰擧主。傳曰無赦之國。其政必平。養??者。害嘉?。惠姦究者。賊良民。感召水旱。在於數赦。願自今?毋赦有罪。以長姦惡。
[주] 借 : 備

東文選卷之五十二 奏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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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속명(金續命)

시호 충간(忠簡)
생년 (미상)
졸년 1386(우왕 12)
본관 광산(光山)

부: 김인연(金仁沇) 찬성사, 諡 敬烈公
조부: 김지숙(金之淑) 첨의중찬, 諡 光節公
증조: 김련(金鍊) 참지정사, 상장군. 諡 匡靖公
외조: 설지충(薛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淳昌人

공신호 신축호종이등공신(辛丑扈從二等功臣)
단성규의보리공신(湍誠揆義輔理功臣)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찬성사 경렬공 김인연(金仁沇),
조부는 첨의중찬(僉議中贊) 광절공 김지숙(金之淑).
증조는 금자광록대부 참지정사 상장군 판삼사사 광정공 김연(金鍊),
고조는 조청대부 흥위위 대장군 김평(金坪),
현조는 평장사, 상장군, 경간공(景簡公) 김원의(金元義).
6대조는 수사공(守司空), 좌복야(左僕射) 김위(金位)이다.

공민왕 초에 감찰집의(監察執義)가 되어 감찰대부(監察大夫) 원의(元?)와 감찰지평(監察持平) 홍원로(洪元老)와 함께 부정을 규탄하고 법을 집행하며 새로 임명되는 관리도 허물이 있으면 서경(署經)을 거부했으므로 나인과 환자(宦者)들의 미움을 사 파면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어 좌부대언(左副代言)이 되었다.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복주(福州: 지금 安東)로 피난할 때 호종한 공으로 신축호종이등공신(辛丑扈從二等功臣)에 녹훈되고 감찰대부에 제수되었다가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다.

1364년에 서북면체찰사(西北面體察使)에서 다시 경상도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어 진해현에 침입한 왜구 3천여 명을 물리쳤다.
그 공로로 1365년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제수되고 단성규의보리공신(湍誠揆義輔理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그해 다시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다.

1367년에 평양도도순문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나, 찬성사(贊成事) 최영(崔瑩)의 경상?전라?양광도도순문사의 보직이 불가함을 논하다가 파면되었으나, 우왕 초에 삼사우사(三司右使)에 복직되었다.
명덕태후(明德太后: 忠肅王妃)의 인척으로서 궁중의 일을 도맡았으며, 또 성품이 청렴하고 강직하여 거리낌 없이 말을 함으로써 주위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하였다.

때마침 반야(般若)의 사건이 일어나 이를 변론하는 자리에서 왕에 대해 불경한 말을 했다고 하여 이인임(李仁任) 등의 탄핵을 받아 처형될 뻔하였으나, 명덕태후의 구원으로 감형되어 1386년(우왕 12)에 문의현(文義縣: 충청북도 淸原郡에 있던 옛 지명)으로 귀양가서 죽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 충숙왕비 명덕태후(충혜왕, 공민왕 母后)
김속명의 증조부인 金鍊의 外孫 즉 아버지의 고종4촌 누이.

참고:
高麗史/ 高麗史節要, 金元義墓誌銘, 洪奎 配 金氏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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