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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선생의 의례문해(疑禮問解)...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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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3-01-27 01:48 조회8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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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주자어류(朱子語類)》를 보면 “서자의 장자가 죽었을 경우에도 삼년복을 입는다.[庶子之長子死 亦服三年]”고 되어 있습니다. 이 예를 역시 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는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지 못하는 것입니까? 《상례비요(喪禮備要)》에 이르기를,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지 못하는 데에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설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송준길-
[답] 예경 및 제유(諸儒)가 논한 바를 가지고 주자가 말한 다른 설들과 참조해서 보면, 《주자어류》에서 말한 이 조항은 분명히 기록한 자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역(亦)’ 자는 ‘불(不)’ 자의 오자가 아니겠는가. 잘은 모르겠네.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는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지 못한다는 것과 삼년복을 입지 않는 데에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소가(疏家)의 설에 상세하게 나와 있네.
○ 《의례》 상복의 전(傳)에 이르기를,
“자신이 서자일 경우에는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지 못하니, 할아버지를 이은 정체(正體)가 아니기 때문이다.[庶子不得爲長子三年 不繼祖也]”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후사가 된 다음에야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는다.”
하였으며, 이에 대한 소에 이르기를,
“경(經)에서 말한 ‘계조(繼祖)’는 바로 할아버지의 후사가 된 자이다. 그런데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아버지의 후사가 된 다음에야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는다.’고 하여 서로 같지 않은데, 서로 같지 않게 된 것은, 주(周)나라의 도에는 적자(適子)는 있어도 적손(適孫)은 없어 적손은 서손(庶孫)의 예(例)와 같아서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후사가 된 다음에야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현(鄭玄)은 처음에 의거하여 말한 것으로, 사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어 자신이 3세(世)가 되고 장자가 4세가 되어야만 삼년복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마융(馬融) 등은 5세가 되어야만 삼년복을 입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정현은 의(義)로써 미루어 나가 4세가 되면 되지 5세가 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한 것이다. 비록 승중(承重)을 하였더라도 삼년복을 입지 못하는 데에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정체이기는 하나 전중(傳重)하지 않았을 경우로, 적자가 폐질(廢疾)이 있어서 종묘(宗廟)의 주인 역할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두 번째는 전중하기는 하였으나 정체가 아닐 경우로, 서손(庶孫)이 후사가 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세 번째는 체(體)를 잇기는 하였으나 바르지 않은 경우로, 서자를 세워서 후사로 삼은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네 번째는 바르기는 하나 체를 잇지 않은 경우로, 적손을 세워서 후사로 삼은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하였다. 소에서 또 이르기를,
“다른 사람의 아들을 길러 후사로 삼은 경우에도 삼년복을 입지 못한다.”
하였다.
○ 《예기》 상복소기에 이르기를,
“서자는 장자를 위하여 참최복을 입지 못하는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은 정체가 아니기 때문이다.[庶子不爲長子斬 不繼祖與禰故也]”
하였다.
○ 《예기》 대전(大傳)에 이르기를,
“서자는 자신의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지 못하니, 할아버지를 이은 정체가 아니기 때문이다.[庶子不得爲長子三年 不繼祖也]”
하였다.
○ 《통전》에서 유울지(庾蔚之)가 말하기를,
“은혜로 볼 적에는 아버지가 중하고, 의리로 볼 적에는 할아버지가 중한바,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각각 하나씩의 중한 뜻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예를 제정함에 있어서는 할아버지의 복을 지친(至親)의 복으로 하였으며, 전(傳)에서는 똑같이 지존(至尊)이라고 하였다. 이미 중한 두 분의 뒤를 이었더라도 장자가 위에 대해서 정체(正體)가 되어 장차 종묘의 중함을 전해 받게 된 다음에야 장자를 위한 보복(報服)으로 참최복을 입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전(傳)과 기(記)에서는 모두 할아버지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다. 만약 아버지만을 이었을 경우에도 장자를 위하여 참최복을 입을 수 있다면 ‘불계조(不繼祖)’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례》 상복의 전 및 《예기》 대전에서는 모두 불계조라고 하여, 서자는 비록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더라도 할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았을 경우에는 장자를 위하여 참최복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혔다.”
하였다.
○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무릇 정체(正體)라는 것은 위에 있는 것이니, 하정(下正)은 오히려 서(庶)가 됨을 말한 것이다. 정체는 할아버지의 적손임을 이른 것이고, 하정은 아버지의 적자를 이른 것이다. 비록 아버지에게는 적자가 되었더라도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서손(庶孫)이 되므로, 아버지의 적자를 서(庶)가 된다고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어떤 사람이 주자에게 묻기를,
“주(周)나라의 제도에는 대종(大宗)의 예가 있어서 적통(嫡統)을 세워 후사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장자를 위해서 삼년복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종의 예가 폐해지고 적통을 세우는 법이 없어져서 아들이면 각자 후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즉 장자(長子)와 소자(少子)가 서로 다르지 않은바, 서자가 자신의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지 못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장자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는 것 역시 적서(嫡庶)를 가지고 논해서는 안 됩니다.”
하니, 주자가 답하기를,
“종법(宗法)은 비록 다시 세울 수 없으나, 복제(服制)는 마땅히 옛 예를 따라야 한다. 이것 역시 예를 아껴서 양을 보존해 두는 뜻이니, 망녕되이 고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였다.

상복도식에서 할아버지가 적손(嫡孫)을 위해서는 삼년복을 입는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문] 상복도식의 제복경중지의조(制服輕重之義條) 아래에 나오는 소주(小註)에 이르기를,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서는 대공복을 입는다. 만약 전중(傳重)한 경우에는 역시 삼년복을 입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소(注疏)에 나오는 여러 설과 합치되지 않은 듯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송준길-
[답] 위의 글에서 인용한 소(疏)에 나오는 설과 《의례》 상복의 부장기(不杖期)에 대한 소 및 《가례》에서 말한 뜻으로 추론해 보면, 양씨(楊氏)의 설이 잘못된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네.
○ 《의례》 상복의 부장기조에 이르기를,
“할아버지가 적손을 위해서 입는 복이다.[爲嫡孫]”
하였으며, 이에 대한 소에 이르기를,
“적자가 죽어서 적손이 승중(承重)하였을 경우에는 할아버지는 적손을 위하여 기년복을 입는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장자는 아버지를 위해서 참최복을 입으며, 아버지 역시 참최복을 입는다. 적손이 승중하였을 경우에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참최복을 입으나, 할아버지는 그를 위해 기년복을 입는다. 보복(報服)으로 참최복을 입지 않는 것은 부자간의 관계는 일체(一體)이나 할아버지는 손자에 대해서 본디 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것에 의거하여 본다면,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서 본디 대공복을 입으나, 전중을 하였기 때문에 가복(加服)하여 기년복을 입는 것이다. 주자의 《가례》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즉 양씨가 이른바 ‘역시 삼년복을 입는다.[亦三年]’고 한 것은 필시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후사가 된 바의 증조와 고조를 위해서는 승중복(承重服)을 입는다.
[문] 《가례》의 참최조(斬衰條)에는 단지 “다른 사람의 후사가 된 자가 후사가 된 바의 아버지를 위해서 입는 것이요, 후사가 된 바의 할아버지를 승중한 자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입는 것이다.”라고만 나오고, 증조와 고조에는 미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어떤 사람이 불행하여 다른 사람의 후사가 되어 증조와 고조를 승중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조처하여야 합니까? 양씨의 주에서도 이런 경우를 보충해 넣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다른 사람의 후사가 된 자는 후사가 된 바에 대해서는 자식과 같이 하는 법이니, 오복(五服)의 친족에 대해서는 모두 똑같이 복을 입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혹 나오기도 하고 나오지 않기도 하니, 혹 미루어 나가지 못하는 의리가 있는 것입니까? 상고하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자최삼년조(齊衰三年條)에 대해서 양씨가 주를 보충해 넣으면서 단지 ‘후사가 된 바의 처에 대해서는 자식과 같이 한다.’고만 하고, 후사가 된 바의 조모에 대해서 승중복을 입는 것은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후사가 된 바의 증조와 고조에 대한 복을 보충해 넣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미 본주에서 빠뜨렸는데 또 양씨가 주를 보충해 넣으면서도 빠뜨렸으니, 참으로 괴이합니다. -지사 신식-
[답] 《가례》의 참최조를 보면 “다른 사람의 후사가 된 자가 후사가 된 바의 아버지를 위해서 입는 것이요, 후사가 된 바의 할아버지를 승중한 자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입는 것이다.”라고 하였네. 이미 그의 아들이 되었으면 비록 증조와 고조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더라도 이것으로 미루어서 올라가야지, 무슨 의심할 것이 있겠는가. 증조와 고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복의 친족에 대해서는 모두 복이 있는 것이 마땅하네. 어찌 미루어 나가지 못하는 의리가 있겠는가.
승중한 손자의 아내가 조부모를 위하여 입는 복 및 현손(玄孫)으로서 승중한 손자의 아내와 증손으로서 승중한 손자의 아내가 입는 복
[문] 승중한 손자가 조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 그의 아내는 종복(從服)을 입어 삼년복을 입습니까? 혹자는 말하기를, “그의 어머니가 주부(主婦)가 되어 삼년복을 입으니, 그의 아내는 본복(本服)을 입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증손과 현손이 증조와 고조의 상에 승중하였을 경우,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어떤 복을 입어야 합니까? 혹자는 말하기를, “승중한 자의 아내가 종복을 입어 삼년복을 입으니, 어머니와 할머니는 각자 본복을 입어야 한다.” 하는데, 이 설 역시 어떻습니까? -강석기-
[답] 선유(先儒)들이 논해 놓은 바가 자못 많기에 아래에 상세하게 적어 놓았네.
○ 《통전》에 이르기를,
“진(晉)나라의 하순(賀循)이 이르기를, ‘그 남편이 조와 증조와 고조의 후사가 된 경우에는 그 아내는 종복을 입기를 시부모에 대해서와 같이 한다.’ -자최기년복을 입는다.- 하였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의례》 상복을 보면 “며느리는 시부모를 위하여 부장기(不杖期)를 입는다.”고 하였는데, 송조(宋朝)에 이르러서 비로소 가복(加服)을 입었으므로 하순이 ‘자최기년복을 입는다.’고 한 것이다.-
○ 《통전》에 이르기를,
“공호(孔瑚)가 우희(虞喜)에게 묻기를, ‘가령 현손이 후사가 되었을 경우에 현손의 아내는 종복을 입어 기년복을 입는데, 증손의 아내가 아직 살아 있으면서 겨우 시마복(緦麻服)만 입는다면, 가까운 자는 가벼운 복을 입고 먼 자는 중한 복을 입게 되는바, 정실(情實)에 있어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하니, 우희가 답하기를, ‘적자(嫡子)가 있는 경우에는 적손(嫡孫)이 없는 법이다. 또 만약 종자(宗子)의 어머니가 복을 입을 경우에는 종자의 아내는 복을 입지 않는 법이다. -살펴보건대, ‘종자의 어머니가 살아 있을 경우에는 종자의 아내를 위해서는 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의례》 상복의 전에 나오는 글이다.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종자의 어머니가 살아 있으면 종자의 아내를 위해서 복을 입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종자의 아내는 종자와 함께 종묘의 제사를 올리는 자이다. 그런데 어찌 부부간에 복을 달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종자는 비록 어머니가 살아 있더라도 마땅히 종자의 아내를 위해서 복을 입어야 하는 법이다. 동쪽에서는 희상(犠象)에 술을 따르고 서쪽에서는 뇌준(罍尊)에 술을 따르는 것은 모름지기 부부가 함께 하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모자간에 함께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바, 이것과 서로 같지 않으니 다시금 상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현손이 후사가 되었는데, 만약 그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다면, 현손의 아내는 오히려 서부(庶婦)가 되어 전중(傳重)할 수가 없다. 그러니 전중한 데 대한 복은 이치상 시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하였다.
○ 《통전》에 이르기를,
“송(宋)나라 유울지(庾蔚之)가 이르기를, ‘시아버지가 죽었을 경우에는 시어머니가 늙었으니, 이는 제사 지내는 일을 자부(子婦)에게 넘겨준 것이다. 할아버지의 복을 입는 데 이르러서는, 자연 시어머니가 적부(嫡婦)가 되니, 이른바 적부가 있으면 적손부(嫡孫婦)는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적통(嫡統)으로서 오직 한 분뿐이므로 자부가 아직 살아 있으면 손부 이하는 적부가 될 수 없어서 서부(庶婦)로서의 복을 입는 것이다. 손부 및 증손부와 현손부는 당연히 남편의 복을 따라 할아버지를 위해서는 한 등급을 낮추어 입어야 하므로 기년복(朞年服)을 입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하였다.
○ 《의례경전통해》 상복도식에 이르기를,
“본조(本朝) 건덕(乾德) 3년에 좌복야(左僕射) 위인포(魏仁浦) 등이 주의(奏議)를 올려 아뢰기를, ‘삼가 《예기》 내칙(內則)을 살펴보건대, 며느리가 시부모를 섬기는 것은 친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이 한다고 하였는바, 바로 시부모와 친부모는 똑같은 것입니다. 고례를 보면 기년복을 입는다는 설이 있는데, 비록 의리에 있어서는 상고할 수 있으나, 후당(後唐)의 유악(劉岳)이 지은 《신서의(新書儀)》를 보면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는 글이 있습니다. 이는 실로 예에 있어서 마땅한 것입니다. 대개 오복(五服)의 제도는 전 시대에서 보태거나 줄인 것이 이미 많습니다. 더구나 삼년상을 마치는 동안에는 궤연(几筵)이 그대로 남아 있는바, 어찌 남편은 거친 참최복을 입고 있는데 아내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슬픔과 즐거움을 같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상으로 따져 볼 적에 실로 지극한 다스림을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인이 남편을 위하여서는 삼년복을 입는데, 시부모에 대해서는 기년복만 입고 만다면, 이는 남편은 높이면서 시부모는 낮추는 것이 됩니다.’ 하였다. 그 뒤 정유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하여 한결같이 남편을 따라서 참최 삼년복과 자최 삼년복을 입도록 하였다.”
하였다.
○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옛날에는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해서는 자최기년복이 정복(正服)이었다. 지금 참최 삼년복을 입는 것은 남편을 따라서 입는 것이다.”
하였다. -《이굴(理窟)》에 나온다. 아래도 같다.-
○ 장자가 또 말하기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서는 자최 삼년복을 입는다. 적손이 할아버지와 증조와 고조의 후사가 되었을 경우에는 그 아내가 종복을 입는 것도 그와 같다.”
하였다.
○ 《가례》에 이르기를,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위해서는 참최 삼년복을 입고, 시어머니를 위해서는 자최 삼년복을 입으며, 남편이 승중(承重)하였으면 종복을 입는다.”
하였다. 《대명률(大明律)》과 본조(本朝)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같게 되어 있다.
○ 퇴계(退溪) 선생이 정도가(鄭道可)에게 답하기를,
“예경을 보면, 증손이 증조를 위하여 승중복(承重服)을 입을 경우에는 자기의 조모나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그 조모나 어머니가 승중복을 입고, 자기의 아내는 승중복을 입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였다.
○ 또 김이정(金而精)에게 답하기를,
“죽은 자의 아내가 이미 복을 입었으니, 그 어머니와 할머니는 복을 입어서는 안 될 듯합니다. 보내온 편지에서는 《가례》 소공조(小功條)에 나오는 ‘적손이나 증손, 현손으로서 마땅히 후계자가 되어야 할 자의 아내는, 그 시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복을 입지 않는다.’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이것은 그 시어머니가 당연히 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므로 그 며느리는 복을 입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였는데, 그대의 말이 그럴듯합니다. 이는 아마도 그 남편은 비록 중복(重服)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시어머니나 시할머니가 맏며느리가 입을 복을 입었으면 그 며느리는 복을 입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예법의 뜻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손자의 아내와 증손자의 아내도 함께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마도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손자의 아내와 증손자의 아내가 모두 살아 있으면 손자의 아내가 입어야 할 것 같으며, 두 아내 가운데 한 사람만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사람이 입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역시 아주 중대한 것이니, 경솔한 생각으로 가벼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였다.
○ 또 정도가에게 답하기를,
“부인이 남편의 조부모에 대해서는, 남편이 승중하였으면 남편을 따라서 종복을 입습니다. 지금 증손과 현손이 증조와 고조를 위해서 복을 입었으니 그 아내는 종복을 입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경우에는 아마도 이른바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시어머니가 늙었다.’는 것이어서 이미 주부(主婦)의 일을 며느리에게 넘겼을 것이니, 의심컨대 그럴 경우에는 복을 입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기》 상복소기에는 이르기를, ‘종복이면서 친속의 관계에 있을 경우에는 따를 사람이 죽었어도 상복을 입는다.[屬從者 所從雖沒也 服]’ 하였는데, 이에 대한 소에 이르기를, ‘속종(屬從)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아내가 남편을 따라서 남편의 친족에 대해서 복을 입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에 의거하면, 그 남편이 이미 죽었더라도 그 아내는 역시 복을 입어야 합니다. 대개 전중을 하였더라도 증손과 현손의 복에 이르러서는, 그 이상의 윗대가 죽었을 경우에는 복을 입지 않는 것은 더불어 복이 같아서입니다. 다시금 상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고례를 보면, 아내가 남편의 족속을 위하여 입는 상복은 모두 한 등급을 낮추어서 입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부모를 위해서도 기년복을 입는다. 그런데 송조(宋朝)에 이르러서 위인포(魏仁浦) 등이 주의(奏議)를 올림으로 인하여 비로소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해서 한결같이 남편을 따라서 참최 삼년복과 자최 삼년복을 입도록 하였으며, 승중(承重)한 자도 모두 똑같이 입도록 하였다. 《통전》에 나오는 여러 유신(儒臣)들은 모두 송대(宋代) 이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해서 기년복을 입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례(古禮)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승중한 손자의 아내는 시어머니가 살아 있을 경우 종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장횡거(張橫渠)의 《이굴(理窟)》과 주자의 《가례》 및 시왕(時王)의 제도에는 모두 “남편이 승중하였을 경우에는 아내는 종복을 입어 삼년복을 입는다.”고 하였으며, 다시 ‘시어머니가 살아 있으면 그렇게 입지 않는다.’는 설이 없다. 예율(禮律)이 아주 분명하니 지금 어찌 주자와 장자가 이미 정해 놓은 설을 버리고서 제가(諸家)들이 끌어대어 보충한 설을 따를 수 있겠는가. 더구나 위인포 등이 논한 바는 실로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아마도 여기저기서 끌어대어 인용하고 잘못 증명함으로써 대의(大義)를 어지럽혀서는 안 될 듯하다. 지난해에 시회(時晦) 정엽(鄭曄)이, 나만갑(羅萬甲)의 아내인 자신의 딸이 시할머니의 상을 당하였는데, 시어머니가 살아 있어서 삼년복을 입지 않게 하고자 하였다. 이에 내가 반복해서 논하여 끝내는 삼년복을 입게 하였다. 그리고 열지(說之) 박동열(朴東說)이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는데, 그의 형인 박동윤(朴東尹)의 며느리 역시 삼년복을 입지 않았다. 이에 내가 송조(宋朝)에서 가복(加服)한 뜻과 예율의 뜻을 가지고 말하자, 열지가 추복(追服)하게 하고자 했다고 한다. 현손이 승중한 것과 같은 경우에 이르러서는, 그 사이의 손자의 아내와 증손자의 아내의 복은 참으로 역시 의심스럽다. 퇴계가 앞뒤로 말한 세 가지의 설이 각각 달라서 어느 하나를 따를 수 없으니, 마땅히 예를 아는 자에게 질정해 보아야 한다.
○ 혹자가 말하기를, “현손으로서 승중하였을 경우에는 손자의 아내와 증손자의 아내 역시 모두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옳은 말인 듯하다. 대개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이미 조부나 증조부를 위해 승중하였으니, 그들의 아내 역시 종복을 입어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 남편이 죽은 뒤에 그 조모와 증조모가 죽었을 경우에는 그 아내는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이유로 중함을 며느리나 손자며느리에게 떠넘기고서 자신은 단지 본복(本服)만 입는다면, 이는 한 사람의 몸이면서도 자최복과 참최복의 상에 대해서 먼저는 중복(重服)을 입었는데 나중에는 경복(輕服)을 입는 것이다. 따라서 한갓 인정에 있어서 차마 하지 못할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남편이 비록 죽었더라도 전중(傳重)한 의리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해서는 마땅치 않을 듯하다. 설령 비록 지난날에 종복을 입는 아내가 아닐지라도 만약 세대를 잇고 전중을 하는 의리가 없었다면 중간의 대서(代序)가 끊겨 연속되지 않았을 것이니, 그 증손과 현손이 어찌 스스로 승중할 수 있었겠는가. 그 손자와 증손이 비록 이미 죽어서 복을 입지 않았더라도 오히려 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손자의 아내와 증손자의 아내가 모두 정통복(正統服)을 입은 다음에야 세대의 차서가 비로소 이어져서 전중한 것이 근본이 있게 된다. 퇴계 선생께서 인용한 “종복이면서 친속의 관계에 있을 경우에는 따를 바의 사람이 죽었어도 상복을 입는다.”고 한 것은 실로 정확하고도 분명한 증거가 있는 것이니, 아마도 다른 의론을 용납할 수 없을 듯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다시금 상세히 상고해 보아야 한다.

임금과 아버지를 잃어버리고서 죽었는지를 알지 못할 경우의 예
[문] 임금과 아버지를 잃어버리고서 종신토록 찾지 못하였을 경우에 변고(變故)에 대처하는 예를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송시열-
[답] 《통전》에서 이미 논하여 놓았으니, 상고해 볼 수 있을 것이네.
○ 《통전》에 이르기를,
“위(魏)나라 유덕(劉德)이 전경(田瓊)에게 묻기를, ‘임금과 아버지를 잃어버리고서 종신토록 찾지 못하였을 경우에 그 신하나 자식 된 자가 혼인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전경이 답하기를, ‘옛날에 허숙중(許叔重)이 이미 이런 가정을 해 놓고 의심하자, 정현(鄭玄)이 논박하여 이르기를, 「만약 종신토록 상복을 벗지 않는다면 이는 후사를 끊어지게 하는 것이다. 상복을 벗고서 혼인하는 것이 예를 어기는 것이기는 하나 권도(權道)를 따르는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하였다.
○ 《통전》에 또 이르기를,
“진(晉)나라의 서선유(徐宣瑜)가 이르기를, ‘정현이 이르기를, 「임금과 아버지가 죽었는데 신하나 자식으로 하여금 종신토록 심상(心喪)을 입게 하는 것은 아주 의혹스러운 것이다. 심상을 입는 것은 옳지만, 종신토록 입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였다.’ 하였으며, 순조(荀組)는 이르기를, ‘아버지의 나이가 수한(壽限) -중수(中壽)는 100세이다.- 에 미치면 상을 치르면서 복을 입고, 종묘를 세우는 등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이 어른 역할을 한다. 예에 있어서는 종신토록 상복을 입는 제도는 없는 법이다.’ 하였다.”
하였다.
○ 《통전》에 또 이르기를,
“환제(環濟)가 의논하기를, ‘《춘추(春秋)》의 의리에는 「아내를 맞아들여 어머니를 봉양하고, 후사를 이어서 종묘의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혼인하여 아내를 들이는 일은 허락해 줄 수 있으나 벼슬을 하는 것은 모름지기 시대가 맑아지기를 기다리게 해야 한다.’ 하였다.”
하였다.

적손(嫡孫)이 상중에 있다가 후사가 없이 죽었을 경우 서손(庶孫)이 대신 입는 복
[문] 적손이 지중(持重)을 하고 있다가 상중에 죽었는데 후사가 없어서 서손이 대신 복을 입는 것은 예에 있어서 어긋나지 않습니까? -송준길-
[답] 《통전》에 논해 놓은 것이 자못 상세하여 상고해 볼 수 있네. 다만 유울지(庾蔚之)가 이르기를, “아버지가 적자(嫡子)로서 상중에 있다가 죽었을 경우에는 손자가 전중(傳重)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분명하게 옛일을 인용하여 오늘날을 증험한 말일 것이네. 그러나 그 내력이 상세하지 않아 의심스러운바, 다시금 상세히 살펴보아야 하네. 상복도식에서 논한 바는 유울지의 설과 같지 않은데, 조상부사대복조(祖喪父死代服條)에 나오네. 그것을 준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네.
○ 《통전》에 이르기를,
“서막(徐邈)이 말하기를, ‘지금 보건대 여러 손자가 있으면서도 할아버지의 후사가 없다는 것은 전혀 예의 뜻이 아니다. 예경을 보면, 「종자(宗子)가 외국에 나가 있을 경우에는 서자(庶子)가 대신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으니, 이에 의거하여 한 손자를 섭주(攝主)가 되게 하면 될 것이다. 섭주의 경우에는 본복(本服)이 예전 그대로이다. 예경을 보면, 「대공복을 입어야 할 자가 다른 사람의 상을 주관할 경우에도 오히려 연제(練祭)와 상제(祥祭)를 지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더구나 여러 손자의 경우이겠는가. 만약 기년(朞年)이 되어서 이미 상복을 벗었다면 마땅히 소복(素服)을 입고서 제사에 임하며, 심상(心喪)을 입는 제도에 의거해 3년의 상기를 마치면 된다.’ 하였다.
송(宋)나라 강씨(江氏)가 하승천(何承天)에게 묻기를, ‘갑이란 사람의 아들이 먼저 죽고 갑이 나중에 죽어 갑의 적손(嫡孫)이 전중하였는데, 미처 중상(中祥 소상(小祥))이 되기 전에 적손이 또 죽었을 경우, 차손(次孫)이 있으니 이제 응당 그가 삼년복을 입어야 합니까?’ 하니, 하승천이 답하기를, ‘갑에게 이미 손자가 있으니 삼년복을 입는 자가 없게 할 수는 없다. 내 생각으로는 차손이 의당 지중(持重)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차손은 이보다 앞서 이미 자최복을 지어서 입었으니, 지금 바로 삼년복으로 바꾸어 입을 수 없는바, 중상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연복(練服)을 입고 악실(堊室)에 거처하여야 할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범선(范宣)에게 묻기를,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아들이 없고 작은아들은 아들이 있는바, 누구에게 전중하여야 할지 의심스럽다.」 하니, 범선이 답하기를, 「작은아들의 아들이 응당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 하였다. 이 역시 대략 의거할 만한 것이다.’ 하였다.
배송지(裴松之)가 하승천에게 답하기를, ‘예경을 보면, 「적자이면서 전중하지 않았거나 전중을 하였으나 적자가 아닐 경우에는 모두 가복(加服)을 입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적자를 둘이 되게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범선이 말한 차손(次孫)은 본디 삼년복을 입는 도리가 없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중상(中祥)에 응당 후사가 되어야 할 자처럼 중복(重服)을 입을 수는 없다. 차손이 상주가 되어 3년을 마치는 것은 마땅하지만 삼년복을 입을 수는 없다.’ 하였다.
하승천이 사마조(司馬操)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일에 대해 논하자, 사마조가 이르기를, ‘손자가 현재 살아 있는데도 소원한 친족을 데려다가 후계자로 삼는다는 것은 통하지 않는 의론이다. 이미 소원한 자를 세울 수 없다면 어찌 끝내 지중하는 자가 없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손자가 어찌 삼년복을 입을 수가 없겠는가. 적자이면서 전중하지 않았거나 전중을 하였으나 적자가 아닐 경우라는 것은 원래 존속친(尊屬親)이 비속친(卑屬親)을 위해 입는 복에 해당되는 것이니, 손자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입는 상복에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유울지가 말하기를, ‘적손이 죽어서 후계자로 삼을 자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 할아버지에게 여러 손자가 있을 경우 전중할 주인이 없어서는 안 되므로 차자의 아들이 거연히 지중을 하는 것은, 범선의 의론이 옳다. 적손이 이미 할아버지를 위한 상복을 입었다가 3년의 상기를 마치지 못하고 죽었다면 이것은 중한 의론이 이미 선 것이다. 반드시 이는 그 복을 마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가 적자가 되어 상중에 있다가 죽었을 경우에 손자가 전중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차손이 섭제(攝祭)하는 것은 서막이 답한 바와 같이 하고, 하승천과 사마조가 모두 「이어서 3년 동안 복을 입는다.」고 한 것은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하였다.”
하였다.

[주D-001]유악(劉岳) : 후당(後唐) 사람으로, 문장에 능하고 전례(典禮)에 밝아서 명제(明帝)의 명으로 《신서의(新書儀)》 1부를 지었다.
[주D-002]위인포(魏仁浦) : 후진(後晉)의 소사(小史)로 시작하여 후한(後漢)의 병방 주사(兵房主事)와 후주(後周)의 정승이 되었고, 송(宋)나라 초기에 우복야(右僕射)까지 되었다.
[주D-003]하승천(何承天) :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람으로, 성품이 강퍅하였고, 유사백가(儒史百家)의 서책에 통달하였으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주D-004]종종(宗從) : 같은 종족의 사람을 말하는데, 대부분 종조(從祖)나 백숙(伯叔)이나 형제(兄弟)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05]순백자(荀伯子) : 남조 송나라 사람으로, 진(晉)나라에서 벼슬하여 서광(徐廣)과 함께 국사(國史)를 찬수하였으며, 송나라에서는 동양 태수(東陽太守)를 지냈다. 문집(文集)이 있다.
[주D-006]병(丙) : 원문에는 ‘景’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병(丙) 자를 휘(諱)하여 쓴 것이므로 병으로 번역하였다. 이하도 같다.
[주D-007]침호(綅縞) : 침(綅)은 검은색의 날줄과 흰색의 씨줄로 짠 천을 말하고, 호(縞)는 흰색의 천을 말한다.
[주D-008]정체(正體) : 종통(宗統)을 이은 적장자(嫡長子)를 말한다.
[주D-009]전중(傳重) : 상제(喪祭)나 종묘(宗廟)의 중한 책임을 손자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종법(宗法)에 있어서 적서(嫡庶)의 구별이 아주 엄하여 적자(嫡子)가 죽었을 경우 다른 서자에게 종통을 전하지 않고 바로 손자에게 전하였는데, 이를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전중(傳重)이라 하고, 손자의 입장에서는 승중(承重)이라고 하였다.
[주D-010]유울지(庾蔚之) : 남조(南朝) 송(宋)나라 때의 사람으로, 《예론초(禮論鈔)》를 저술하였다.
[주D-011]예를 …… 뜻 : 자공(子貢)이 초하룻날 사당에 고유하면서 희생으로 바치는 양을 없애려고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사(賜)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를 아끼노라.” 하였는데, 이는 예가 비록 폐지되었더라도 희생을 바치는 형식이나마 남아 있으면 오히려 기억할 수 있어서 복고될 수 있거니와, 만약 그 형식마저 없애 버린다면 이 예가 마침내 없어질까 걱정하고 아깝게 여긴 것이다. 《論語 八佾》
[주D-012]하순(賀循) : 진(晉)나라 산음(山陰) 사람으로, 자가 언광(彦光)이다.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관직에 진출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후장(厚葬)을 좋아한 나머지 심지어 음양(陰陽)의 구기(拘忌)를 이유로 상을 치르지 않고 오래도록 방치해 두기까지 하였는데, 하순이 무강 영(武康令)으로 있으면서 이를 모두 금지한 결과 정교(政敎)가 크게 행해졌다. 그 뒤에 태자 태부(太子太傅)와 태상(太常)을 지냈다. 시호는 목공(穆公)이다. 《晉書 卷68 賀循傳》
[주D-013]우희(虞喜) : 진(晉)나라 여조(餘兆) 사람으로, 자가 중녕(仲寧)이다. 박학다식(博學多識)하고, 옛것을 좋아하였으므로, 조정에서 의심나는 예(禮)가 있을 경우에는 사신을 파견하여 자문하곤 하였다. 《안천론(安天論)》을 찬술하고 《효경(孝經)》을 해석하였으며 《모시(毛詩)》를 주석하고 《지림(志林)》 30권을 저술하였다.
[주D-014]본조(本朝) 건덕(乾德) 3년 : 건덕은 송(宋)나라 태조(太祖)의 연호로, 본조는 송나라를 가리킨다.
[주D-015]서막(徐邈) : 진(晉)나라 고막(姑幕) 사람으로, 휘장을 드리우고 글을 읽으면서 성읍(城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사안(謝安)이 천거하여 중서 사인(中書舍人)이 되었으며, 《오경훈의(五經訓義)》를 찬정하였다.
[주D-016]악실(堊室) : 상을 당하여 중문(中門) 밖의 추녀 밑에 흙벽돌로 만든 상막(喪幕)으로, 회칠한 채 아무 장식도 하지 않는다.
[주D-017]범선(范宣) : 진(晉)나라 사람으로, 자는 선자(宣子)이다. 젊어서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였는데, 여러 책들을 많이 읽어서 박식하였으며, 특히 예에 밝았다. 《예역논란(禮易論難)》을 저술하였다.


자최(齊衰)
아내가 남편의 계모(繼母)와 적모(嫡母)와 양모(養母)와 자모(慈母)를 위해서 입는 복은 남편의 복을 따라서 입는다.
[문] 아내가 남편의 계모와 적모와 양모와 자모를 위해서와 남편이 아내의 적모 등을 위해서 입는 복에 대해서는 예경에 분명한 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전(國典)의 횡간도(橫看圖)에도 빠뜨리고서 기록해 놓지 않았는데, 몹시 의심스럽습니다. -강석기-
[답] 계모와 적모는 생모(生母)와 차이가 없으므로 별도로 말해 놓지 않은 것이네. 그리고 양모와 자모 역시 남편을 따라서 복을 입는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네. 지난날에 의정(議政) 홍섬(洪暹)의 부인(夫人) 상에 정승 심수경(沈守慶)이 “서자의 아내는 적모에 대해서 복을 입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면서 복을 입지 못하게 하였네. 그러나 어찌 적모가 죽었는데 서자의 아내가 복을 입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적자(嫡子)를 위하여 입는 복은 압존(壓尊)되어 낮추는 법이 없다.
[문] 어머니가 장자를 위해서 자최 삼년복을 입는 것은 보복(報服)으로 입는 것입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입는 복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는 기년복을 입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장자(長子)를 위해서 입는 복은 남편이 살아 있어도 오히려 삼년복을 그대로 입으니, 과중한 점은 없습니까? 의심스럽습니다. -강석기-
[답] 《의례》의 소에서 상고해 볼 수 있네.
○ 《의례》 상복의 소에 이르기를,
“어머니가 장자를 위하여 입는 상복은 남편이 살아 있는가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두 삼년복을 입는다. 이것은 아들이 어머니를 위하여 입는 상복은 압강(壓降)되어 굽히는 의리가 있지만, 부모가 장자를 위하여 입는 상복의 경우는, 장자는 본디 선조(先祖)의 정체(正體)이므로 압존되어 강복한다는 의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해서 굽힐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수양아들이 입는 복
[문] 이른바 수양(收養)이라는 것은 바로 세 살이 되기 전에 거두어서 기른 자를 이르는 것입니까? 이미 장성하여 데려왔을 경우에는 수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까? 비록 아무런 혈통 관계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이미 거두어서 길렀으면 그 복은 역시 삼년복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까? -황종해-
[답] 이른바 수양이라는 것은 바로 세 살이 되기 전에 거두어서 기른 자를 이르네. 이미 장성한 자를 데려왔을 경우에는 수양이라고 할 수가 없네. 세 살이 되기 전에 거두어서 길렀을 경우에는 비록 아무런 혈통 관계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3년간 복을 입어야 하네. 《통전》에도 이에 대해 말해 놓았네. 중원(中原)의 각로(閣老)인 신시행(申時行)이 다른 사람의 손에 길러졌으므로 삼년상을 하였네.
족속(族屬)은 비록 은혜와 의리가 있더라도 가복(加服)을 입을 수 없다.
[문] 족속에게 은혜와 의리가 있을 경우에는 혹 가복을 입어 보답하는 것이, 모르겠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송준길-
[답] 장자(張子)의 《이굴(理窟)》에 상세하게 논해 놓았네.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헤아려서 심상을 입으면 될 것이네.
○ 장자가 말하기를,
“한퇴지(韓退之)가 어려서 고아가 되어 형수에 의해 길러졌으므로 형수를 위하여 복의 등급을 높여서 더 입었다. 대개 족속의 상에 대해서는 등급을 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형수의 손에 길러졌을 경우, 은혜가 있다는 이유로 가복을 입는다면, 이는 형을 대우하는 은혜가 지극히 박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없는데 형수에게서 길러지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길러지겠는가. 만약 족속의 친족을 위하여 상복을 입으면서 은혜가 있다 하여 등급을 더해 입는다면, 자기에게 은혜가 없는 자에 대해서는 복을 입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옛날에 어떤 선비가 어려서 형수의 손에 길러졌는데, 형수가 살아 있을 때 어머니처럼 섬겼으므로 죽어서 스스로 조처하여 자최복(齊衰服)을 입었다. 그러자 혹자가 선왕(先王)이 제정한 예가 아니라고 고해 주니, 그 말을 듣고는 마침내 그 상복을 벗었다. 그러고는 오직 심상만을 입었으며, 다시는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예에 맞다고 하였다.”
하였다.

[주D-001]계모(繼母)와 …… 자모(慈母) : 모(母)에는 팔모(八母)가 있는데, 첩의 아들이 아버지의 정처(正妻)를 일컫는 적모(嫡母), 아버지의 후처(後妻)인 계모(繼母), 생모는 아니면서 자신을 길러 준 자인 양모(養母), 서자(庶子)에게 어머니가 없을 경우 아버지가 아들이 없는 다른 첩에게 자기를 길러 주도록 명한 자인 자모(慈母), 친어머니가 아버지가 죽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재가한 자인 가모(嫁母), 아버지와 이혼하여 집을 나간 친어머니인 출모(出母), 아버지의 첩으로서 아들이 있는 자인 서모(庶母), 어려서 자신에게 젖을 먹여 준 자인 유모(乳母)이다.
[주D-002]신시행(申時行) : 명(明)나라 사람으로 《대명회전(大明會典)》을 편찬하였다.


부(附) 한꺼번에 상을 당하였을 경우
임금의 상과 아버지의 상을 한꺼번에 당하였을 경우
[문] 국휼(國恤) 중에 사상(私喪)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이유태-
[답] 예경을 보면 자못 이러한 경우의 예에 대해서 조처해 놓은 것이 있으나 옛날과 지금은 마땅함이 다르니, 오직 어떻게 잘 참작해서 준행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네.
○ 《예기》 증자문(曾子問)에 이르기를,
“증자가 묻기를, ‘임금이 훙(薨)하여 아직 설빈(設殯)하기 전에 신하가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 어떻게 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집에 돌아가 부모의 시신을 빈(殯)한 뒤에 군소(君所)로 돌아오며, 부모의 상은 은사(殷事)가 있을 때에만 집에 돌아가고 조석(朝夕)의 상식(上食)에는 가지 않는다. 그동안 대부(大夫)의 경우에는 실로(室老)가 조석전(朝夕奠) 등의 일을 섭행(攝行)하고, 사(士)의 경우에는 자손이 섭행한다.’ 하였다.[曾子問曰 君未殯而臣有父母之喪 則如之何 孔子曰 歸殯 反于君所 有殷事則歸 朝夕否 大夫室老行事 士則子孫行事]”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은성(殷盛)의 일’이란 삭망(朔望)의 전(奠)을 올리는 것과 천신(薦新)의 전을 올리는 것을 이른다. ‘실로(室老)’는 가상(家相) 가운데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다. 대부나 사가 임금이 있는 곳에서 은사(殷事)를 할 때나 조석으로 항상 임금이 있는 곳에 있을 경우, 친상(親喪)의 조석으로 올리는 전은 대부의 경우에는 실로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 행하게 하고, 사의 경우에는 자손으로 하여금 대신 행하게 한다.”
하였으며, 소주(小註)에 이르기를,
“노씨(盧氏)가 이르기를, ‘임금은 5일 있다가 빈(殯)을 한다. 그러므로 돌아가서 부모를 빈한 다음 다시 와서 임금을 빈할 수 있다. 만약 임금의 빈이 임박하였으면, 돌아가서 부모의 상에 곡하고 다시 와서 임금을 빈하며, 임금을 빈하는 것을 마치면 돌아가서 부모를 빈하는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 《예기》 증자문에 이르기를,
“증자가 묻기를, ‘임금이 훙하여 이미 설빈하였는데 신하가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조정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 상복을 입고 있으면서, 삭망이나 천신의 전(奠)과 같은 은사(殷事)가 있을 때에만 군소(君所)에 가고, 조석(朝夕)의 전을 올릴 때에는 가지 않는다.’ 하였다. 증자가 다시 묻기를, ‘이미 임금의 빈(殯)을 열었을 때에 신하에게 부모의 상이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집에 돌아가서 곡(哭)하고 다시 돌아와서 임금의 장행(葬行)을 보내야 한다.’ 하였다.[曾子問曰君薨旣殯 而臣有父母之喪 則如之何 孔子曰 歸居于家 有殷事則之君所 朝夕否 曰 君旣啓 而臣有父母之喪 則如之何 孔子曰 歸哭而反送君]”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은성(殷盛)의 일이 있을 경우에는 임금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고 조석으로 전을 올리는 데에는 가서 곡하지 않는 것이다. ‘계(啓)’는 계빈(啓殯)이다. ‘귀곡(歸哭)’은 어버이의 상에 곡하는 것이다. ‘반송군(反送君)’은 돌아와서 임금의 장사를 전송하는 것이다.”
하였다.
○ 《예기》 증자문에 이르기를,
“증자가 묻기를, ‘임금의 상에 이미 발인(發引)하였는데 부모의 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임금의 영구(靈柩)를 장지로 보내는 일을 계속 수행한다. 그리고 임금의 영구를 봉(封) -폄(窆)하는 것이다.- 한 뒤에 곧바로 돌아오고, 그 아들이 돌아가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하였다.[曾子問曰君之喪旣引 聞父母之喪 如之何 孔子曰 遂 旣封 窆 而歸 不俟子]”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수(遂)’는 임금의 상구를 전송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불사자(不俟子)’는 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먼저 돌아오는 것이다.”
하였다.
○ 《예기》 증자문에 이르기를,
“증자가 묻기를, ‘부모의 상에 이미 발인하여 장지로 가는 길에 올랐을 때 임금이 훙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어버이의 영구를 장지로 보내는 일을 계속 수행한다. 그리하여 하관(下棺)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임금의 상에 달려간다.’ 하였다.[曾子問曰父母之喪旣引及塗 聞君薨 如之何 孔子曰 遂 旣封 改服而往]”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잡기(雜記)에 이르기를, ‘영구를 따라 매장하러 갈 때와 끝내고 반곡(反哭)하기 위해 돌아올 때가 아니면 길에서 관을 벗고 문(免)을 하는 경우는 없다.[非從柩與反哭 無免於堩]’고 하였다. 이때에는 효자가 머리에 문을 하고 있다가 문을 제거하고 괄발(括髮)을 하고 맨발 차림을 하고 베로 된 심의(深衣)를 입고서 가며, 감히 사상(私喪)의 복으로 임금의 상에 가지 못하는 법이다.”
하였다.
○ 《예기》 증자문에 이르기를,
“증자가 묻기를, ‘대부나 사가 부모의 상복을 입고 있으나 곧 제상(除喪)하게 되었을 때 임금의 상을 당하면 부모의 상을 어떻게 제상해야 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임금의 상복을 자신의 몸에 입고 있으면 감히 사복(私服)을 입지 못하니, 어찌 부모의 상을 제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때가 지나도 제상하지 못하는 법이다. 임금의 상을 제상한 뒤에 부모를 위한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은 은제(殷祭)로 거행하는 것이 예이다.’ 하였다. 증자가 다시 묻기를, ‘부모의 상을 제상하지 않고 있다가 나머지 기간 동안 복을 입는 것은 괜찮습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선왕께서 예법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때가 지나간 뒤에는 제사 지내지 않는 것을 올바른 예로 정하였다.’ 하였다.[曾子問曰大夫士有私喪 可以除之矣 而有君服焉 其除之也如之何 孔子曰 有君喪服於身 不敢私服 又何除焉 於是乎有過時 而不除也 君之喪服除 而後殷祭 禮也 曾子曰 父母之喪不除可乎 孔子曰 先王制禮 過時不擧 禮也]”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임금의 상이 중하고 어버이의 상이 가벼운 것은 의(義)로써 은혜를 끊은 것이다. 임금의 상을 제복(除服)해야만 어버이를 위하여 소상(小祥)과 대상(大祥) 두 제사를 지내 효심(孝心)을 펼 수 있는데, 그 예가 크므로 ‘은(殷)’이라고 한 것이다. 가령 이달에 임금의 상을 제복하였으면 바로 다음 달에 어버이의 소상의 제사를 지내고, 또 그다음 달에 대상의 제사를 지낸다. 만약 친상(親喪)의 소상을 지낸 뒤에 바야흐로 임금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뒷날에 임금의 상을 제복한 뒤에야 어버이 상의 대상 제사를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제사를 주관하여야 하는 적자(適子)로서 관직에 있는 자의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서자(庶子)로서 관직에 있을 경우에는 임금의 상을 복상(服喪)하고 적자가 집에 있으면서 스스로 때에 의거하여 친상에 따른 예를 행하는 것이다. 뒷날에 서자가 비록 임금의 상을 제복하였더라도 뒤늦게 제사 지내는 법은 없는 것이다.”
하였다.

부모의 상을 한꺼번에 당하였을 경우에는 궤연(几筵)은 달리하고 중한 복을 입고 지낸다.
[문] 먼저 당한 상의 연제(練祭)를 지낸 뒤에 나중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궤연을 마땅히 한곳에 설치하여야 합니까? 그리고 상복은 어떤 상복을 항상 입고 있어야 합니까? -송준길-
[답] 예경에 분명하게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있으니, 상고해서 행하면 될 것이네.
○ 《예기》 증자문에 이르기를,
“증자(曾子)가 묻기를, ‘아버지의 상과 어머니의 상이 한꺼번에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빈궁(殯宮)을 열 때부터 장사를 지낼 때까지는 전을 올리지 않으며,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빈소로 가서 전을 올린 뒤 손님들에게 빈궁을 열겠다고 고한다.’ 하였다.[曾子問曰幷有喪 孔子曰 自啓及葬不奠 反葬 奠而後 辭於賓]”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어머니의 빈궁을 연 뒤로부터 장사 지내기 위해 상구(喪柩)를 내가려고 하기 전까지는 오직 어머니에게만 계빈(啓殯)에 따른 전을 올릴 뿐으로, 빈궁에서는 아버지를 위하여 설전(設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사 지낼 때까지는 전을 올리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이는 아버지에 대한 전을 올리지 않는 것을 이른 것이다. 어머니를 장사 지내고 돌아옴에 미쳐서는 곧바로 아버지의 빈궁에 설전하고 빈객에게 내일이 아버지의 빈궁을 열 날짜임을 고하는 것이다.”
하였다.
○ 《의례》 사우례(士虞禮)에 이르기를,
“남자는 남자 시동을 쓰고 여자는 여자 시동을 쓴다.[男男尸 女女尸]”
하였는데, 이에 대한 소에 이르기를,
“우제와 졸곡제에는 남자와 여자는 시동을 구별한다.”
하였다.
○ 《주례》 춘관종백(春官宗伯) 사궤연(司几筵)에 이르기를,
“돈(敦)마다 한 궤(几)를 쓴다.[每敦一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에 이르기를,
“비록 합장(合葬)하거나 동시에 빈소(殯所)에 있는 경우라도 모두 궤를 달리하여 체실(體實)을 같지 않게 한다. 묘(廟)에서 제사 지낼 적에는 궤를 같이하여 정기(精氣)가 합해지게 한다.”
하였다. -이상은 궤연을 달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 《예기》 상복소기에 이르기를,
“부모의 상을 함께 당하였을 경우에는 어머니를 먼저 장사 지내고 그 우제(虞祭)와 부제(祔祭)는 지내지 않고서 뒤에 장사 지내는 일을 마치기를 기다린다. 또 어머니를 먼저 장사 지낼 때에도 참최복을 입는다.[父母之喪偕先葬者不虞祔 待後事 其葬 服斬衰]”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어머니를 먼저 장사 지낼 때에도 참최복을 입는 것은 중한 상복을 따른 것으로, 아버지를 장사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변복(變服)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 상복소기에 또 이르기를,
“참최복의 갈질(葛絰)은 자최복의 마질(麻絰)과 같다. 같은 경우에는 모두 겸하여 입는다.[斬衰之葛與齊衰之麻同 皆兼服之]”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질을 줄여 가는 것은 모두 5분의 1씩 줄여 간다. 참최복의 상에 졸곡이 지난 뒤에 받는 갈질은 자최복의 상에 처음 죽었을 때 착용하는 마질과 크기가 같다. ‘겸하여 입는다.’는 것은, 중한 상에 거상하다가 가벼운 상을 만났을 경우에는 마질을 칙용하고 또 갈질을 착용하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 《예기》 간전(間傳)에 이르기를,
“참최의 상에 이미 우제와 졸곡을 지내고 나서 자최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가벼운 것은 감싸고 무거운 것은 특별히 남겨 둔다.[斬衰之喪旣虞卒哭 遭齊衰之喪 輕者包 重者特]”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낮은 것은 양쪽에 다 시행할 수 있으나, 존귀한 것은 두 가지로 해서는 안 된다.”
하였으며, 이에 대한 소에 이르기를,
“참최의 상을 수복(受服)할 때 자최의 초상(初喪)을 만났을 경우, 남자는 허리가 가벼우므로 자최의 요대(腰帶)를 착용하고서 이것으로 참최의 요대까지 겸하여 감싼다. 부인의 경우에는 머리가 가벼우므로 자최의 수질(首絰)을 착용하고서 참최의 수질까지 겸하여 감싼다. 그러므로 ‘가벼운 것은 감싼다.’고 한 것이다. 또 남자는 머리가 중하므로 참최의 수질을 특별히 남겨 두고, 부인은 허리가 중하므로 참최의 요대를 특별히 남겨 둔다. 이것이 무거운 것은 특별히 남겨 두는 것이다.”
하였다.
○ 《통전》에 이르기를, “두원개(杜元凱)가 운운하였다.”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적손조모상중모망조(嫡孫祖母喪中母亡條)에 나온다. ○ 이상은 지중복(持重服)이다.-

아버지의 상중에 어머니가 죽은 경우와 어머니의 상중에 아버지가 죽은 경우의 복
[문] 아버지가 죽어 아직 빈(殯)을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 그런 경우에도 아버지의 시신이 아직 그대로 있다는 이유로 삼년복을 입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상이 장차 1주년이 되어 가는데 아버지가 죽었을 경우 여전히 어머니를 위하여 삼년복을 다 입지 못하는 것입니까? -송준길-
[답] 선유(先儒)들의 설을 참고해서 짐작하여 조처할 수 있을 것이네.
○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졸하였으면 어머니를 위해서 입는다.[父卒則爲母]’라고 한 데 대한 소(疏)를 보면, 곧장 ‘아버지가 졸하고 어머니를 위해서 입는다.[父卒爲母]’고만 하면 충분할 것인데도 ‘즉(則)’ 자를 써서 말하였다. 이것은 아버지가 졸한 지 3년 이내에 어머니가 졸하였을 경우 그대로 기년복을 입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자 해서이다. 요컨대 아버지를 위한 상복을 벗은 뒤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라야 3년의 상기를 다 펼 수 있으므로, ‘즉(則)’ 자를 써서 그 뜻을 차이 나게 한 것이다.”
하였다.
○ 《통전》에 이르기를,
“유씨(庾氏)가 서광(徐廣)에게 묻기를, ‘어머니의 상에 이미 소상(小祥)을 지내고 나서 아버지가 죽었을 경우 어머니의 상이 13개월에 이르렀을 때에는 삼년복을 다 펴서 입어야 하는데, 오히려 압굴(壓屈)이 되어 상제(祥祭)를 지냅니까?’ 하니, 서광이 답하기를, ‘살펴보건대, 하순(賀循)이 이르기를, 「아버지가 죽어 빈(殯)을 하지 못하였는데 할아버지가 죽었을 경우에는 승중(承重)한 적손은 여전히 기년복을 입는다. 이것은 차마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와 다르게 할 수 없어서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를 위한 복을 입는 예를 적용하여 삼년상을 마칠 때까지 영연(靈筵)을 설치해 두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 《통전》에 이르기를,
“유울지(庾蔚之)가 말하기를, ‘제유(諸儒)들이 말한 설과 태시(太始) 연간의 제도에는 모두 「아버지가 죽어 아직 빈을 하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적손(嫡孫)은 감히 할아버지를 위하여 중한 복을 입지 못한다. 이는 차마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와 다르게 할 수 없어서이다.」 하였다. 그런데 더구나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날에 어머니가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어찌 아버지가 죽었다고 해서 변경시킬 수 있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 《통전》에 이르기를, “두원개가 운운하였다.” 하였다. -아래의 적손조모상중모망조(嫡孫祖母喪中母亡條)에 나온다. ○ 살펴보건대, 소(疏)에서 말한 설은 비록 이와 같지만, 정례(情禮)로 헤아려 보건대 끝내는 온당치 못한 바가 있다. 만약 아버지가 죽어 아직 빈을 하지 못하였는데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에는 차마 살아 계실 때와 다르게 할 수 없는바, 그래도 ‘아버지가 죽어 아직 빈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할아버지를 위해 기년복을 입는다.’는 설로써 미루어 나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년복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상이 장차 끝나게 되었는데 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도 아버지 상의 상기인 3년 이내라는 이유로 그대로 기년복을 입는 것이 과연 정리(情理)에 있어서 합당한 것이겠는가. 두원개의 설은 기년복을 입는다는 뜻이 없는 것 같다. 어떨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상을 장사 지내지 않았을 경우에는 참최복을 그대로 입은 채 일을 하여 어머니의 빈을 행한다.
[문]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을 함께 당하였을 경우에 어머니를 먼저 장사 지내되 반드시 참최복을 입고서 지내는 것은, 아버지를 장사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변복(變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빈을 비록 각각 설치하였더라도 아버지의 상을 장사 지내기 전에는 어머니를 위한 상복을 입고서 곡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황종해-
[답] 《예기》 상복소기의 설이 분명한바, 이제 그것을 어겨서는 안 되네.
○ 《예기》 상복소기에 이르기를,
“부모의 상을 함께 당하였을 경우에는 어머니를 먼저 장사 지내고 그 우제와 부제는 지내지 않고서 뒤에 장사 지내는 일을 마치기를 기다린다. 또 어머니를 먼저 장사 지낼 때에도 참최복을 입고 지낸다.[父母之喪偕 先葬者不虞祔 待後事 其葬 服斬衰]”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장사는 가벼운 상을 먼저 지내고 중한 상을 나중에 지낸다. ‘선장(先葬)’은 어머니를 장사 지내는 것이다. ‘우제와 부제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어머니를 위한 우제와 부제를 지내지 않는 것이다. 대개 어머니를 장사 지낸 다음 날에 곧바로 아버지를 장사 지내고, 아버지를 장사 지내기를 마치고서 아버지에 대한 우제와 부제를 지낸 뒤에 어머니를 위한 우제와 부제를 지낸다. 그러므로 ‘뒤에 장사 지내는 일을 마치기를 기다린다.’고 한 것이다. 제사는 중한 상을 먼저 지내고 가벼운 상을 나중에 지낸다. 어머니를 장사 지낼 때에도 참최복을 입는 것은 중한 상복을 따른 것으로, 아버지를 장사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변복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부모의 상을 함께 당하였을 경우에는 길을 가면서는 아버지의 상구가 앞서 가고 하관(下棺)할 적에는 어머니의 상구를 먼저 하관한다.
[문] 부모의 상을 한꺼번에 당하였을 경우, 길을 갈 때와 하관할 때에 장차 어느 분을 먼저 하고 어느 분을 나중에 해야 합니까? -송준길-
[답] 운운하였다. -아래의 발인급폄조(發引及窆條)에 나온다.-
아버지의 상중에 조부모가 죽었을 경우에는 대신 복을 입는다.
[문] 아버지의 상에 아직 빈을 하지 않았는데 조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어떤 복을 입어야 마땅합니까? -송준길-
[답] 《통전》을 보면, 아버지의 상에 아직 빈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할아버지를 위하여 기년복을 입는다고 되어 있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단지 기년복만을 입는다면 이는 상제(祥祭)와 담제(禫祭)가 없게 되는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싶네. 그렇지만 옛사람의 말이 이와 같으니 감히 경솔하게 의논하지는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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