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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선생의 의례문해(疑禮問解)...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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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3-01-27 02:00 조회863회 댓글0건

본문

최(衰)와 부판(負版)과 벽령(辟領)을 제거한다.
[문] 연제를 지내고 나서 최와 부판과 벽령을 제거하는 것이 《의례》와 《예기》와 《의례경전통해》와 《통전》에는 보이지 않는데, 《가례》에서는 어디에 근거하여 변제(變除)하기를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까? -송시열-
[답] 주자가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서의(書儀)》를 인하여 나름대로 참작해서 정한 것이네. 이는 후대의 현인이 시대를 인하여 더하고 줄인 제도이네. 만약 고례를 따라서 한다면, 최와 부판과 벽령을 제거하지 않아도 안 될 것은 없네. 다만 이미 사마온공과 주자의 정정을 거친 것이니, 따라서 행하여도 역시 괜찮을 것이네.
어머니를 위하여 11개월이 지나서 연제를 지낼 경우에는 윤달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문] 예경을 보면, 달로써 헤아릴 경우에는 윤달을 헤아리고, 해로써 헤아릴 경우에는 비록 윤달이 있더라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를 위해 상복을 입을 경우에는 11개월이 되어서 연제를 지내니, 역시 달로써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만약 윤달이 있을 경우에는 윤달도 헤아리는 것이 마땅합니까? -송준길-
[답]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를 위해 상복을 입을 경우에는 비록 15개월이 지나서 상을 마치지만, 그러나 실은 삼년상의 체(體)를 갖추고 있는 것이네. 그러므로 11개월이 지나서 연제를 지내는 것은 실은 기년(期年)의 수에 해당되는 것이네. 그러니 달로써 헤아리는 것으로 보아 윤달도 계산에 넣어서는 안 되네.
남편이 아내를 위한 상을 치를 적에도 역시 11개월이 지나서 연제를 지낸다.
[문] 혹자가 이르기를, “11개월이 지나서 연복(練服)을 입는 제도는 바로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의 상을 치르는 예이다. 남편이 아내를 위한 상을 치를 적에는 이와 같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이 설 역시 근거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송준길-
[답] 혹자가 말한 설은 잘못되었네. 예경의 여러 설에서 상고해 볼 수가 있네.
○ 《예기》 잡기(雜記)에 이르기를,
“기년복의 상에는 11개월이 지나서 연제를 지내고, 13개월이 지나서 상제를 지내고, 15개월이 지나서 담제를 지낸다.[朞之喪 十一月而練 十三月而祥 十五月而禫]”
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씨(鄭氏)의 주에 이르기를,
“이것은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를 위해 상복을 입을 경우를 두고 이른 말이다. 아내를 위한 상복을 입을 적에도 역시 이와 같이 펼 수가 있다.”
하였으며, 이에 대한 소에 이르기를,
“남편이 아내를 위해 상복을 입을 경우의 연월(年月)과 담제와 지팡이를 짚는 것도 어머니를 위한 상과 같다.”
하였다. -《의례》 상복의 장기장(杖朞章) 및 위처장(爲妻章)의 주소(註疏)에 나온다.-

남편이 아내를 위한 상에서는 소상(小祥)의 날짜를 점친다.
[문] 아내를 위한 상에서는 11개월이 지나서 소상을 지내는데, 마땅히 날짜를 택하여 제사를 지내어야 합니다. 날짜를 택하는 예를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답] 《가례》를 보면, 대상과 소상은 초기(初忌)와 재기(再忌)의 날짜를 써서 제사 지내므로 날짜를 점치는 한 가지 의절(儀節)을 쓸 곳이 없고, 단지 담제를 지낼 적에만 날짜를 점치는 의절이 있네. 그런데 담제라는 것은 길제이네. 그러므로 먼저 상순(上旬)의 날짜로써 명하네. 남편이 아내를 위한 상일 경우에는, 소상은 11개월이 지나서 제사를 지내네. 그러니 제사 날짜를 점치는 것은 담제 때 날짜를 점치는 것과 같은 의절로써 점치되, 먼저 하순(下旬)의 날짜로써 명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네.
○ 《예기》 곡례(曲禮)에 이르기를,
“무릇 날짜를 점칠 때에는 열흘 밖의 날을 ‘먼 어느 날’이라고 하고, 열흘 안의 날을 ‘가까운 어느 날’이라고 한다. 상사에는 먼 날을 먼저 점치고, 길사에는 가까운 날을 먼저 점친다.[凡卜筮日旬之外曰遠某日 旬之內曰近某日 喪事先遠日 吉事先近日]”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이번 달 하순에 다음 달 상순을 점치는 것은 열흘 밖의 먼 어느 날이다. 상사(喪事)는 장사 및 소상과 대상의 두 상제(祥祭)를 이른다. 이는 슬픔을 빼앗는 뜻으로, 효자가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라 단지 부득이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먼 날로부터 점치기 시작하여 의당 급하게 하지 않음을 보임으로써 효심을 조금이나마 펴게 하려는 것이다. 길사(吉事)는 제사 및 관례(冠禮)와 혼례(昏禮) 따위를 이른다.”
하였다.

연제(練祭)와 상제(祥祭)와 담제(禫祭)를 지내려고 하다가 상을 당하였을 경우의 예
[문] 퇴계의 상제례문답(喪祭禮問答)을 보면, 누가 묻기를, “다른 사람의 후사(後嗣)가 된 자가 후사가 된 어머니의 상복을 입고 있던 중 복을 마치고서 장차 담제를 지내려고 하다가 또다시 후사가 된 어머니의 부모상을 당하였을 경우, 담제를 지낼 수가 있는 것입니까?” 하니, 퇴계가 말하기를, “어찌 길제를 지낼 수가 있겠는가. 복이 다하기를 기다려서 별도로 날짜를 택하여 다음 달에 지내는 것이 인정과 예문에 있어서 합당하다.” 하였습니다. 이 설이 어떻습니까? -이유태(李惟泰)-
[답] 외조(外祖)를 위한 상복은 바로 소공 오월(小功五月)이니, 반드시 다섯 달이 지나 복이 다한 뒤에 담제를 지낼 경우, 이는 3년에다가 5개월을 더하는 것이 되네. 그 뒤에 만약 기년복의 상이 있을 경우에는 1년을 또 더 연장시켜야 하며, 또 불행하여서 기년복의 상을 거듭해서 당하였을 경우에는 장차 4, 5년이 지나서도 탈복(脫服)하지 못하게 되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예경에 나오는 여러 설로 미루어 보면, 삼년상이 겹쳤을 경우에는 이미 졸곡이 되어 갈질(葛絰)로 바꿨으면 전상(前喪)의 연제와 상제를 지낼 수가 있다고 하였으며, 그 나머지 상에 대해서는 애당초 거론하지 않았네. 그러니 빈(殯)을 한 뒤에 연제와 상제를 지낼 수 있는 뜻을 이에 의거해서 알 수가 있네. 나의 생각으로는, 기년복 이하의 상에서부터는 이미 빈을 한 뒤에 날짜를 택하여 연제와 상제와 담제를 지낼 수 있고 반드시 복이 다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을 듯하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정(質正)해 볼 수 없는 것이 한스럽네.
○ 《예기》 잡기(雜記)에 이르기를,
“부모의 상중에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형제가 또 죽었을 경우에는 형제를 빈한 뒤에 제사를 지낸다. 같은 집에서 살 경우에는 비록 신첩이 죽었더라도 장사를 지낸 뒤에 제사를 지낸다.[父母之喪 將祭而昆弟死 旣殯而祭 如同宮 則雖臣妾 葬而後祭]”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는 것은 소상과 대상의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였다.
○ 또 이르기를,
“삼년상이 겹쳤을 경우에는 졸곡이 되어 갈질(葛絰)로 바꾼 뒤에 전상(前喪)의 연제나 상제의 제사를 지낸다.[三年之喪 則旣顈 其練祥皆行]”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전상과 후상(後喪)이 모두 삼년복을 입는 상일 경우에는, 그 후상을 이미 갈질로 받아 입은 뒤에는 전상의 연제와 상제를 지내는 예를 행할 수가 있다. ‘기경(旣顈)’이란 것은, 우제를 지낸 뒤 수복(受服)할 때 갈질로써 허리의 마질(麻絰)을 바꾸는 것이다. 경(顈)은 풀이름으로, 갈(葛)이 나지 않는 지방에서는 경으로 대신한다.”
하였다.

날짜가 지나서도 장사 지내지 못하였을 경우, 연제와 상제에 변제(變除)하는 절차
[문] 날짜가 지나서도 장사 지내지 못하였을 경우, 3년이 다 되는 날에 이르렀으면 그 복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그리고 연제와 상제 역시 어떻게 해야 마땅합니까? -이유태-
[답] 《예기》 및 《통전》의 여러 설에서 상고해 볼 수가 있네.
○ 《예기》 상복소기(喪服小記)에 이르기를,
“오래도록 장사 지내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상을 주관하는 자만 제상(除喪)하지 않고, 그 나머지 마(麻)로 달수를 마치는 자는 제상한다.[久而不葬者 惟主喪者不除 其餘以麻終月數者 除喪則已]”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상을 주관하는 자’는 아들이 부모에 대해서와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와 고손(孤孫)이 조부모에 대해서의 경우를 이른다. 장사를 지내지 못했으므로 최질(衰絰)을 벗지 못한다. ‘마로 달수를 마치는 자’는 기년복(朞年服) 이하 시마복(緦麻服)을 입는 친족까지이다. 주인이 장사를 지내지 못하여 갈옷으로 바꾸어 입지 못하므로 마복을 입고 있다가 달수가 차는 때에 이르면 제복하며, 주인이 장사를 마치기를 기다려서 제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복(喪服)은 반드시 잘 간수해 두어 장사 치를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였다.
○ 또 이르기를,
“형제의 상에 상복을 입는 경우에는 상기(喪期)가 다 되었으면 제상(除喪)한다. 그러나 매장할 때에는 또다시 상복을 입는다.[爲兄弟 旣除喪已 及其葬也 反服其服]”
하였다. -《개원례(開元禮)》에는 우제를 지내고서 제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또 이르기를,
“3년이 지난 뒤에 장사 지내는 경우에는 반드시 두 번의 제사를 지내는데, 그 제사는 사이를 두고 지내고 동시에 지내지 않으며, 제사를 지낸 뒤에 제상한다.[三年而後葬者必再祭其祭之間不同時 而除喪]”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효자가 무슨 사고 때문에 제때에 미쳐서 장사를 지내지 못하였을 경우, 중간에 연제(練祭)와 상제(祥祭)를 지낼 날짜가 되어도 시신을 넣은 상구(喪柩)가 아직 그대로 있어서 제복(除服)할 수가 없었다. 이제 뒤늦게 장사를 마치고서는 반드시 연제와 상제 두 제사를 지내야 하므로 ‘반드시 두 번의 제사를 지낸다.’고 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의 두 제사는 잇달아 두 차례에 걸쳐 거행하며, 같은 때에 한꺼번에 지내서는 안 되는바, 이달에 연제를 지냈을 경우에는 남자는 수질(首絰)을 제거하고 여자는 요대(腰帶)를 제거하며, 다음 달에 상제를 지내고서 최복(衰服)을 벗는 것이다.”
하였다.
○ 《개원례》에 이르기를,
“부모의 상에 1년이 지나서 장사 지낼 경우에는 장사 지낸 다음 달에 소상을 지내며, 그 대상은 2년 만에 지내는 예에 의거해서 지내고, 담제 역시 그와 같이 한다. 만약 2년이 지난 뒤에 장사 지내는 경우에는 장사를 지낸 다음 달에 연제를 지내고, 또 그다음 달에 대상을 지내며, 대상을 지내고는 곧바로 길제를 지내고 다시 담제를 지내지는 않는다. 2년이 되기 전에 장사 지내는 경우에는 25개월 만에 연제를 지내고, 26개월 만에 상제를 지내며, 27개월 만에 담제를 지낸다.”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한 달 만에 담제를 지내는 것은 27개월의 숫자를 끝마치기 때문이다.”
하였다.
○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동진(東晉)의 서영기(徐靈期)가 묻기를, ‘친상(親喪)을 오래도록 장사 지내지 못하였을 경우에 출가한 딸은 응당 상복을 벗어야 합니까?’ 하니, 장빙(張憑)이 답하기를, ‘예경에 이르기를, 「상을 당하여 오래도록 장사 지내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상을 주관하는 자는 제상(除喪)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주인은 제상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정적(正嫡)인 남자 한 사람에게만 홀로 시행할 길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중자(衆子)인 남자와 여자를 총괄해서 이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이미 출가한 딸에 대해서는 응당 제상해야 한다고 별도로 말해 놓은 분명한 글이 없다. 지금 논하는 자들은 이미 시집간 딸은 기년복을 입는 데 의거하여 논하였으므로 「의당 제상하는 예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정(情)을 인하고 뜻으로써 조처한다면, 유독 의심스러운 바가 있다. 딸은 다른 집으로 출가하였을 경우에 강복(降服)을 입어 기년복을 입는 제도를 따르게 하였으나, 거상(居喪)하는 예에 이르러서는 중한 복을 입는 자와 같게 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천성은 다 빼앗기가 어려운 것이고, 중한 근본을 갑자기 가볍게 할 수가 없어서이다. 그런데 하필 이미 강복을 입게 해 놓고서 모든 것을 기년복의 상과 같게끔 한단 말인가. 예라는 것은 인정을 따르는 것일 뿐이며, 예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중한 쪽을 따르는 법이다. 만약 최질(衰絰)을 벗고서 빈궁(殯宮)에 처하게 하고, 길복(吉服)을 입고서 관구(棺柩)를 대하게 한다면, 이는 효자가 편안하게 여기는 바가 아닐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 또 이르기를,
“진(晉)나라 두읍(杜挹)이 묻기를, ‘죽은 며느리를 아직 장사 지내지 못하였는데 내가 복을 입어 기년이 이미 다 지났으나, 상주가 될 사람이 없어서 제복할 수가 없다.’ 하니, 서막(徐邈)이 답하기를, ‘살펴보건대, 예경을 보면 「남편은 응당 제복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곧 아랫사람의 상에 대해서는 대부분 예를 다 갖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변복(變服)하는 것이 마땅하며, 장사를 지낼 때에 이르러서 다시 복을 입어도 불가할 이치가 없다.’ 하였다.”
하였다.
○ 또 이르기를,
“송(宋)나라 유울지(庾蔚之)가 이르기를, ‘《예기》 상복소기에 이르기를, 「형제의 상에 상복을 입는 경우에는 상기(喪期)가 다 되었으면 제상(除喪)한다. 그러나 장사 지낼 때에는 또다시 상복을 입는다.[爲兄弟 旣除喪 及其葬 反服其服]」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 여자자(女子子)와 다른 사람의 후사가 된 남자(男子)는 모두 그에 해당되는 복에 따라서 상복을 벗는데, 이는 다른 곳으로 가서 굴(屈)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소복(素服) 차림으로 심상(心喪)을 입으면서 장사를 지낼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다만 지금 세상에서는 아랫사람의 상에 대해서는 가볍게 보아, 처(妻)의 상에 있어서도 오히려 지팡이를 짚는 것과 담제를 지내는 절차를 삭제하였으며, 다시는 장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복하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의논하는 자들은 아랫사람의 장사를 지내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증상(烝嘗)을 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있다. 만약 일이 지체되어 복을 입을 기간이 지나갔더라도 역시 빈(殯)이 궁(宮)에 멈추어 있는데 음악을 사당에서 연주하는 일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길사(吉事)와 흉사(凶事)가 서로 침범하는 것은 마음에 있어서 차마 하지 못할 바이다.’ 하였다.”
하였다. -《통전》에 보인다.-

기년복을 입는 자의 연제를 지낸 뒤의 복색(服色)
[문] 기년복을 입은 자가 소상을 지내고서 제복(除服)한 뒤에는 곧바로 길복(吉服)을 착용합니까? -송준길-
[답] 제사를 지낸 뒤에는 소복(素服)으로 갈아입되 기일(忌日)에 입는 옷의 색깔과 같이 하며, 뒷날을 기다려서 비로소 길복을 입는 것이 옳네.
11개월이 되어서 입는 연복과 기년복의 중함
[문]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어머니의 상에 복상(服喪)할 경우 11개월이 지나서 연복을 입습니다. 아들은 연복을 입었는데 질손(姪孫)은 그대로 최질(衰絰)을 입으니, 어찌하여 중한 자는 가벼운 복을 입고 가벼운 자는 도리어 중한 복을 입습니까? -강석기-
[답] 3년의 상을 특별히 아버지를 위해서 굽힌 것이며, 상제와 담제의 제도는 베의 승수(升數)가 본래 기복(朞服)과는 현격하게 구별되네. 그런데 어찌 연제가 되어 변복(變服)하는 절차를 가지고 다시 도리어 가벼운 복을 입는다고 의심한단 말인가.
소상이 지난 뒤에도 상식(上食)을 올릴 적에는 곡을 한다.
[문] 《가례》를 보면 소상에 조석곡(朝夕哭)을 그치므로,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로 인해 상식을 올리면서 하는 곡을 폐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3년의 상기 안에 전(奠)을 올리면서 곡을 하지 않는 것은, 자식 된 자가 애통해하고 사모하면서 상을 마치는 도리가 아닙니다. -강석기-
[답] 소상이 지난 뒤에는 비록 조석으로 곡하는 것을 그만두기는 하지만, 상식을 올릴 때에 이르러서는 곡읍(哭泣)하는 절차가 있는 것이 마땅하네. 퇴계가 곡을 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따라서는 안 될 듯하네. 근래에 여러 선생들이 모두 ‘이미 제전(祭奠)이 있으니 곡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아마도 제대로 된 것인 듯하네.
소상이 지난 뒤에는 제복(除服)하지 않은 자들이 모여서 곡한다.
[문] 《가례》의 ‘소상이 지나서는 조석으로 곡하는 것을 그친다.[小祥 止朝夕哭]’고 한 부분의 주에 이르기를, “초하루와 보름에 아직 복을 벗지 못한 사람은 모여서 곡을 한다.” 하였는데, 그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우복(愚伏)은 말하기를, “평소에도 이에 대해서 의심을 두어 왔는데, 뒤에 《예기》 상대기(喪大記)를 상고해 보니, 거기에 이르기를, ‘대부나 사는 부모의 상에 있어 종자의 집에서 복상하다가 이미 연제를 지냈으면 본가로 돌아간다. 그리고 매달 초하루와 기일에는 종자의 집으로 가서 곡읍한다.[大夫士 父母之喪旣練而歸 朔日忌日則歸哭于宗室]’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종자의 집은 빈궁(殯宮)을 이른다.’ 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가례》의 이 조항은 의심할 바가 없다. 대개 고례가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운운하였습니다. -송준길-
[답] 정우복(鄭愚伏)의 설은 증거가 있는 것이네. 다만 태복(稅服)을 입는 것이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네.
소상이 지난 뒤에는 아침과 저녁에 전배(展拜)를 한다.
[문] 연제가 지난 뒤에는 비록 조석으로 곡하는 것을 그치기는 하지만, 아침과 저녁에 궤연(几筵)에 전배하는 것이 정례(情禮)에 있어서 합당할 듯합니다. 퇴계 선생께서도 역시 허락하였다고 하니, 준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송준길-
[답] 그렇게 해야 할 듯하네. 그러나 주자의 설로 본다면 3년의 상기 안에는 항상 곁에서 모시는 의리가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참배하는 것은 역시 어떨지 모르겠네. 다시금 상세히 알아보아야 하네.
추복(追服)을 입은 사람의 변제(變除)
[문] 친상(親喪)의 소식을 몇 달이 지난 뒤에 듣고서 비로소 분곡(奔哭)할 경우, 그 성복(成服)은 참으로 집에 있었던 형제들보다 뒤늦은바, 집에 있었던 형제들과 같은 때에 변제해서는 안 됩니다. 집에 있었던 형제들이 담제를 지낼 적에 추복을 입은 자도 그 제사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까? -강석기-
[답] 변제하는 절차에 대해서는 주자가 이미 정해 놓은 정론이 있네. 지난번에 정자(正字) 황석(黃奭)이 유배되어 순천(順天)에 있으면서 이러한 따위의 예절에 대해서 물어 왔기에, 내가 역시 그런 내용으로 답하였네. 만약 형제가 담제를 지낼 경우에는 추복을 입은 사람은 길제에 참가해서는 안 되네.
○ 주자가 말하기를,
“친상에는 형제 가운데 먼저 상기(喪期)가 찬 자는 먼저 제복(除服)하고 뒤에 상기가 찬 자는 뒤에 제복하는데, 이는 외방(外方)에 있으면서 상을 들은 데 선후(先後)가 있어서이다.”
하였다.

[주D-001]연(練) : 가공한 베를 말한다.
[주D-002]최(衰) : 상복의 가슴 부위에 붙이는 네모난 베 조각을 말한다.
[주D-003]공최복(功衰服) : 삼년상을 당하여 소상(小祥)이 지난 뒤에 입는 참최복(斬衰服)을 말한다. 참최복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마포(麻布)의 승수(升數)가 대공복(大功服)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마포와 같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다.
[주D-004]증상(烝嘗) : 가을철과 겨울철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봄 제사는 향(享)이라 하고, 여름 제사는 약(禴)이라 하고, 가을 제사는 상(嘗)이라 하고, 겨울 제사는 증(烝)이라고 한다.
[주D-005]태복(稅服) : 죽은 지 한참 지난 뒤에 비로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그에 대한 상복을 입는 것을 말한다.


대상(大祥)
대상이 아직 지나지 않은 동안에는 찾아온 자를 잠깐 나가서 볼 수가 있다.
[문] 《가례》의 대상조(大祥條)에, ‘대상이 아직 지나지 않은 동안에는 찾아온 자를 잠깐 나가서 만나 볼 수 있다.’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유태-
[답] 지난해에 정도가(鄭道可)가 묻기를, “이 단락을 말해 놓은 뜻을 감히 알지 못하겠다.” 하기에, 내가 답하기를, “송(宋)나라 때의 속례(俗禮)에는 아직 대상이 지나지 않은 동안에도 이 복을 입고서 나가 다른 사람을 알현하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예를 아는 군자가 한 일이 아니다. 주자가 이 때문에 옮겨서 대상의 복으로 삼은 것이다.” 하자, 정도가가 말하기를, “말한 것이 올바른 뜻을 얻은 것 같다.” 하였네.
한꺼번에 상을 당한 자는 전상(前喪)의 대상을 지낼 때에는 그 복을 입고서 제사 지낸다.
[문] 한꺼번에 친상을 당한 경우에는 전상의 대상 제사를 지낼 적에 백립(白笠)과 백의(白衣)와 망건(網巾)과 백대(白帶)를 착용하며, 제사를 마친 뒤에는 도로 후상(後喪)의 최복(衰服)을 착용합니다. 그런데 길복(吉服)을 입었다가 곧바로 흉복(凶服)을 입는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바가 있습니다. 《예기》 잡기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 아직 상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 아버지의 상을 벗을 때에는 일단 제상(除喪)을 하는 데 따른 복을 입었다가 일을 마친 뒤에 도로 어머니를 위한 상복을 입는다.[有父之喪 如未沒喪而母死 其除父之喪也 服其除服 卒事 反喪服]” 하였습니다. 이른바 ‘제상을 하는 데 따른 복’이라는 것이, 《가례》에서 이른바 ‘장부는 참사(黲紗)로 만든 복두(幞頭)와 참포(黲布)로 만든 삼(衫)을 착용하고, 부인은 아황색(鵝黃色)과 청벽색(靑碧色)과 조백색(皁白色)으로 만든 옷과 신발을 착용하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이는 오늘날 세속에서 착용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더욱더 길한 복이 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강석기-
[답] 전상의 대상 제사를 지낼 적에는 그 상복을 입고 들어가서 곡한 뒤에 대상의 복을 입고서 제사 지내며, 제사를 마치고는 도로 후상(後喪)의 복을 입는 것이 옳네. 비록 시복(緦服)이나 공복(功服)의 가벼운 복을 입는 상에 대해서도 역시 중한 상복을 잠시 벗고서 그 복을 입는데, 더구나 이런 경우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리고 대상의 복은 본디 길복이 아니네. 그러니 또 어찌 의심을 해서야 되겠는가. 엄릉 방씨(嚴陵方氏)가 말하기를, “제상을 하는 데 따른 복을 입었다가 도로 상복을 입는 것은, 전상에 대해서 끝마침이 있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하였네.
대상 뒤에는 망건(網巾)을 착용한다.
[문] 대상이 지난 뒤에 착용하는 검은색의 망건은 소호(素縞)의 빛깔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포(白布)로 망건을 만들어 착용하는 것은 세속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데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또한 연제(練祭)를 지낼 적에는 누런색으로 속을 대고 옅은 붉은색으로 가선을 두르는 것으로 중의(中衣)의 꾸밈을 삼는데, 중의는 최복(衰服)을 입을 때 속에 입는 옷일 뿐이니 혐의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망건은 관 안에 쓰는 것이니, 비록 검은색으로 하더라도 이것과 서로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송준길-
[답] 검은색과 흰색의 거친 말총을 섞어서 만들어 쓰는 것이 어떻겠는가? 백포로 만들어 쓰는 것은 역시 고례가 아니네.
아버지를 계승한 종자(宗子)의 집에서는 상제(祥祭)를 지낸 뒤에 새 신주(神主)를 우선 사당의 동쪽 벽에 안치하였다가 길제(吉祭)를 지낸 뒤에 정위(正位)에 모신다.
[문] 제 선고(先考)께서는 실은 아버지를 계승한 종자인데, 최장방(最長房)으로서 고조(高祖)의 신주를 가묘(家廟)에서 받들었으며, 선비(先妣)의 신주를 동쪽 서(序)의 서쪽을 향하고 있는 자리에 안치해 두었습니다. 이제 선고의 상제(祥祭)를 지낸 뒤에 우선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 선비의 자리에 함께 안치하고, 담제(禫祭)를 지낸 뒤에도 오히려 전에 있던 곳에 도로 안치하였다가 협제(祫祭)를 지낼 때에 이르러서 자리를 배설할 경우에 자리를 변경하여서 남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안치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조천(祧遷)하는 신주와 새 신주를 모두 한 줄에 앉히기를 시제(時祭)를 지낼 때의 의절(儀節)과 같게 합니까? 아니면 협제를 지낼 때에도 오히려 서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안치하였다가 협제를 지낸 뒤에 세대(世代)가 바뀌는 신주를 조천해 낸 다음에 사당으로 돌아가서 비로소 남쪽을 바라보는 자리를 만들어서 차례대로 체천(遞遷)합니까? 구씨(丘氏)의 《가례의절》을 보면, “《가례》를 보면 시제를 지낼 때 이외에는 일찍이 협제를 지내지 않았고, 또 새 신주를 어느 곳에 배설하는지 모르겠다.”고 운운하였습니다. 그리고 체천하는 절차가 곧장 대상조(大祥條)의 아래에 있습니다. 이제 마땅히 어느 쪽을 따라야 합니까? 우복(愚伏)에게 물어보았더니, 답하기를, “전상(前喪)의 경우에는 계장(契丈)께서 종자로서 죽은 아내를 조묘(祖廟)에 합부(合祔)하여 동벽(東壁)의 서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안치한 것은 참으로 마땅한 것이네. 지금 이 상제의 경우에는 제사를 지내기 하루 전에 여러 위(位)에 옮기겠다고 고하고서 동쪽의 한 감(龕)을 비워 두어 새 신주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그다음 날에 대상의 제사가 끝나면 본감(本龕)의 남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새 신주를 봉안하고, 그다음에 선비를 따라 들이는 것이 예에 있어서 순할 것이네. 만약 주자께서 만년에 논한 바에 의거하여 협제를 지내기를 기다린 뒤에 사당에 들이고자 한다면, 역시 새 신주를 별도의 장소에 임시로 안치하거나, 혹은 궤연에 그대로 둔 채 끊이지 않게 받드는 것이 마땅하네.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의 자리에 합부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이는 존귀한 분으로 하여금 낮은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으로, 이런 예는 없을 듯하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천한 신주와 새 신주는 한 줄에 놓아도 서로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네. 그러나 다시금 사계장(沙溪丈)에게 물어서 행하게.” 하였습니다. 잘 참작해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송준길-
[답] 주자가 만년에 학자들에게 준 편지를 보면, 합부(合祔)하는 것과 조천(祧遷)하는 것은 두 가지의 일이네. 상제(祥祭)를 지내고 나서 궤연(几筵)을 철거하고 조묘(祖廟)에 합부하며, 협제를 지내기를 기다렸다가 조천하는데, 뜻을 쓴 것이 아주 면밀하여서 후세 사람들이 어길 수가 없을 것이네. 구씨가 운운한 것은 그 뜻을 잘 모르겠네. 자네 집의 경우로써 말을 한다면, 비록 종가(宗家)의 조묘에 나아가 합부할 수는 없지만, 우선 자네의 집에 있는 사당의 동쪽 서(序)에 안치하고서 협제를 지내기를 기다리는 것이 주자의 뜻을 잃지 않는 것일 듯하네. 이미 동쪽 서에 안치하였으면 부득불 선비(先妣)와 더불어 같은 곳에 안치해야 하는바, 이는 존귀한 분으로 하여금 낮은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세가 그러한 것이네. 정경임(鄭景任)이 주자의 초년에 논한 설을 따르고자 한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네. 그대로 궤연에 두거나 임시로 별도의 장소에 안치하게 한 데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예의 본뜻에 어그러지는 것이네. 그러니 아마도 따라서는 안 될 듯하네. 길제를 지낼 적에는 새 신주를 우선 합부하는 자리에 내갔다가 사당에 들인 뒤에 정감(正龕)에 봉안하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듯하네.
○ 주자가 이계선(李繼善)에게 답한 편지에서 운운하였다.
○ 양씨(楊氏)가 운운하였다.
이상의 두 설은 모두 《가례》의 대상조(大祥條)에 대한 부주(附註)에 나온다.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합부할 경우에는 조상에게 아울러 고한다.
[문] 만약 아버지가 먼저 죽어서 이미 사당에 들였는데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에는 단지 선고(先考)에게만 고하고서 합부하고 선조(先祖)에게는 아울러 고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일이 있을 경우에 조상에게 고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렇게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신주를 부묘(祔廟)하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데 고하지도 않고 갑(匣)에 넣는단 말입니까. 저의 망녕된 생각으로는 비록 어머니가 죽어 아버지에게 합부하면서 체천을 하지 않더라도, 선조에게 아울러 고하는 것은 그만두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준길-
[답] 선조에게 아울러 고하더라도 역시 무방하네.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상제(祥祭)를 지낸 뒤에 궤연을 철거한다.
[문]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경우, 13개월이 되어 대상(大祥)을 치른 뒤에도 혹 궤연을 철거하지 않은 채 3년 동안 그대로 상식(上食)을 올리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이 비록 고례가 아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거상(居喪)함에 있어서는 능히 예법을 말미암아서 하는 자가 드문데, 유독 이러한 따위의 일에 대해서만은 예에 따라서 하고자 한다면, 비단 인정에 있어서 온당치 못한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예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후한 쪽을 따른다는 것은 옛날에도 역시 그러한 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상제를 지낸 뒤에도 그대로 상식을 올리다가 재기(再忌) 때에 이르러서 철거하는 것이, 모르겠습니다만 어떻습니까? -강석기-
[답] 주자의 설에 의거해 보면, 노이빙(盧履氷)의 의논을 좋게 여기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다만 시왕(時王)의 제도를 감히 어길 수가 없었던 것일 뿐이네. 《가례》에서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는 어머니를 위해서 기년복을 입는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역시 이러한 뜻이네. 지금 우리나라의 제도에서는 이미 고례를 쓰고 있으니, 이는 바로 주자가 따르고자 하던 것이네. 그러니 다시 의심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 세속에서 혹 상제를 지낸 뒤에도 궤연을 철거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네. 그리고 혹 그대로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있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의 후사로 간 자가 본생친(本生親)을 위하여 삼년복을 입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더욱더 놀라운 것이네. 이것은 모두 예경(禮經)의 죄인인바, 효자의 지극한 정에 있어서는 어찌 정이 다할 때가 있겠는가마는, 선왕께서 제정한 예를 감히 지나쳐서 할 수는 없는 것이네.
○ 《의례》 상복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 어머니를 위해서는 기년복을 입는다.[父在爲母朞]”
하였으며, 이에 대한 전에 이르기를,
“어째서 기년복을 입는가? 지극히 존귀한 분이 계실 경우에는 사존을 감히 다 펼 수 없어서이다.[何以朞也至尊在 不敢伸其私尊也]”
하였다.
○ 노이빙(盧履氷)이 말하기를,
“예경을 보면,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 어머니를 위해서는 기년(朞年) 동안 상복을 입은 다음 영좌(靈座)를 제거하고 3년 동안 심상(心喪)을 입는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조부모가 살아 계신데 자손의 아내가 죽었을 경우, 하방(下房)의 궤연 역시 재주년(再周年) 동안 설치해 두는데, 이것은 아주 형편없는 짓이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노이빙의 의논이 옳다. 다만 지금의 조제(條制)가 이와 같은바, 감히 어길 수 없을 뿐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당(唐)나라 무후(武后)가 표문(表文)을 올려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도 어머니를 위해서 삼년복을 다 입게 하기를 청하였는데, 송조(宋朝)에서는 당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쓰면서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 또 말하기를,
“상례(喪禮)는 모름지기 《의례》를 따르는 것으로 정식(正式)을 삼아야 한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 어머니를 위해서 기년복을 입는 것은, 이는 어머니에 대해서 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귀함이 아버지에게 있으므로 다시 존귀함이 어머니에게 있게 할 수가 없어서이다.”
하였다.
○ 우리나라의 제도에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 어머니를 위해서는 11개월이 지나서 연제(練祭)를 지내고, 13개월이 지나서 상제(祥祭)를 지내며, 15개월이 지나서 담제(禫祭)를 지낸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 상제를 지낸 뒤에도 상식(上食)을 올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문] 앞서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 13개월이 지나서 상제를 지낸 뒤에는 궤연을 철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가르침을 받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퇴계집(退溪集)》을 보니, 김이정(金而精 김취려(金就礪))이 묻기를, “심상(心喪) 중에 있는 사람이 조석(朝夕)으로 제사를 지낼 적에 입는 복에 대해,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은 ‘옥색(玉色)의 단령(團領)을 입는 것은 온당치 못하니, 백포의(白布衣)를 착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데,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예경의 뜻에 합치되는 것입니까?” 하니, 퇴계가 답하기를, “옥색의 옷을 입는 것은 과연 온당치 못하니, 백포의를 입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심상 중에 있는 사람은 상제를 지낸 뒤에는 제사를 철거하니, 조석으로 제사를 지낼 적에 입는 옷에 대해서는 참으로 논하는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런데 퇴계 역시 백포의를 입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3년이 다하도록 상식을 올리는 것도 역시 근거할 만한 예문이 있는 것입니까? -강석기-
[답] 상제를 지낸 뒤에는 부묘(祔廟)한다는 것이 예에 분명하게 나와 있는 글이 있으니, 조석으로 제사를 지낼 적에 입는 옷에 대해서는 논할 바가 아니네. 퇴계가 아마도 세속에서 하는 것을 따라서 말한 것일 뿐인 듯하네.
담제를 지내기 전에 서소(書疏)에 쓰는 칭호
[문] 담제를 지내기 전에 서소에서 쓰는 칭호는 어떻게 합니까?
[답] 운운하였다. -위의 부제조(祔祭條)에 나온다.-
상복은 불태우거나 파묻지 않는다.
[문] 모든 상복은 이미 제복(除服)한 뒤에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송준길-
[답] 장자(張子)의 설에서 상고해 볼 수 있네.
○ 장횡거(張橫渠)가 이르기를,
“제기(祭器)와 제복(祭服)은 일찍이 귀신에 대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감히 다른 용도로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불태우거나 파묻는 예가 있다. 최질(衰絰)이나 상관(喪冠)이나 상구(喪屨)에 이르러서는 뜯어서 없앤다는 글이 보이지 않는데, 오직 지팡이에 대해서만은 궁벽진 곳에 버린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궁벽진 곳에 버린 것은 언젠가는 누군가가 함부로 쓰게 되는 상황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러니 어찌 즉시 불태우거나 파묻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일찍이 ‘상복은 죽은 자를 위하여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을 표하기 위하여 입는 것이므로, 상복을 공경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예기》 단궁(檀弓)에 이르기를, ‘자최의 상복 차림으로는 기대어 앉지 않으며, 대공복 차림으로는 근로(勤勞)하는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齊衰不以邊坐大功不以服勤]’ 하였는데, 이는 모두가 슬픔이 속에 있음을 위주로 하여 말한 것이지, 상복을 공경하여 말한 것이 아니다. 상복을 뜯어 없애는 것은 반드시 제복(除服)하는 날에 하는데, 뜯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혹 묘지기에게 주어도 된다. 대개 옛날 사람들은 흉사(凶事)를 싫어하지 않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혐의스럽게 여긴다. 그러니 집에 남겨 두는 것은 인정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느니만 못하다. 불태우거나 파묻는 것도 역시 상복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였다.

대상(大祥)을 지낸 뒤에는 윤달을 헤아린다.
[문] 대상을 지낸 뒤에는 윤달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어떻습니까? -송준길-
[답] 선유(先儒)들의 설에 의거해서 보면, 대상과 소상은 해[年]로써 헤아리니, 윤달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마땅하네. 담제의 경우에는 본디 상제(祥祭)를 지낸 달 가운데에 들어 있고, 비록 정씨(鄭氏)가 말한 ‘한 달을 뛰어넘는다.’는 설을 따르더라도, 이는 오히려 달[月]로써 헤아린 것이네. 그런즉 담제를 지낼 때 윤달을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네. 《가례》에서 이른바 윤달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초상(初喪) 때부터 이때에 이르기까지를 통틀어서 말한 것이지, 반드시 상제를 지낸 뒤만을 두고 이른 것은 아니네. 장자(張子)의 설이 분명한 듯하네.
○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달로써 헤아릴 경우에는 윤달을 헤아리고, 해로써 헤아릴 경우에는 윤달은 헤아리지 않는다.”
하였다.
○ 장자가 말하기를,
“삼년상에서는 담제를 지낼 때 윤달 역시 달수에 넣어서 헤아린다.”
하였다.


[주D-001]최장방(最長房) : 최고 어른의 방이란 뜻으로, 한집 안에 여러 사람이 살 경우에 그 가운데 최고 어른이 사는 방을 말한다. 옛날에 사당(祠堂)에 만약 친진(親盡)이 된 신주가 있어 체천(遞遷)해야 하는데 족인(族人) 가운데 친진이 되지 않은 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 가운데 가장 어른의 방으로 신주를 옮겨서 제사 지내었다.
[주D-002]협제(祫祭) : 협향(祫享)과 같은 말로, 고대에 천자나 제후가 멀고 가까운 조상의 신주(神主)를 태조묘(太祖廟)에 함께 모아 놓고서 지내던 대합제(大合祭)를 말한다. 이 협제는 대사(大祀)이므로 대부나 사의 경우에는 사사로이 거행하지 못하고 임금에게 물어서 허락을 받아야만 지낼 수가 있었다.
[주D-003]계장(契丈) : 친구들 간에 칭하는 경칭(敬稱)으로, 여기서는 송준길의 아버지인 송이창(宋爾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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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전서(沙溪全書)제41권

의례문해(疑禮問解)-7
담(禫)
담제(禫祭)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문] 상례에는 담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담제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마땅히 담제를 지내야 하는 것은 몇 가지가 있습니까? -이유태(李惟泰)-
[답] 《예기(禮記)》 및 주자(朱子)의 설에서 상고해 볼 수가 있네.
○ 《예기》 상복소기(喪服小記)에 이르기를,
“부모와 아내와 장자를 위해서는 담제를 지내고 제복(除服)한다.[爲父母妻長子禫]”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마땅히 담제가 있어야 하는 상에는 이 네 가지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도 역시 담제를 지내며, 자모(慈母)의 상에 아버지가 안 계실 경우에도 역시 담제를 지낸다.”
하였다.
○ 상복소기에 또 이르기를,
“종자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경우에도 아내를 위하여 담제를 지낸다.[宗子母在爲妻禫]”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는 적자(嫡子)가 아내를 위하여 지팡이를 짚지 못한다. 지팡이를 짚지 못하면 담제를 지내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살아 계실 경우에는 아내를 위하여 지팡이를 짚을 수가 있으며, 또 담제를 지낼 수가 있다. 종자가 아닌 경우에는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담제를 지내지 못한다.”
하였다.
○ 상복소기에 또 이르기를,
“서자는 아버지의 곁에서 살 경우, 어머니를 위하여 담제를 지내지 못한다.[庶子在父之室則爲其母不禫]”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이것은 명(命)을 받지 못한 사(士)로서 부자(父子)가 같은 집에 사는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하였다.
○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하순(賀循)이 이르기를, ‘출모(出母)를 위해서는 장기(杖期)로 하며, 담제를 지낸다.’ 하였다.”
하였다.
○ 《예기》 단궁(檀弓)의 주에 이르기를,
“출모를 위해서는 담제가 없다.”
하였다.
○ 어떤 사람이 주자에게 묻기를,
“여자의 경우 이미 출가하였으면 부모를 위하여 담제를 지냅니까?”
하니, 주자가 답하기를,
“예경에서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경우에 어머니를 위해서는 담제를 지낸다.’고 한 것은, 단지 남자를 위주로 하여 말한 것이다.”
하였다.

아내의 상중에 아버지가 죽었을 경우, 그 아들은 담제를 지내지 못한다.
[문] 처(妻)의 상을 당한 자가 연제(練祭)와 상제(祥祭)를 아직 지내지 않았는데 참최(斬衰)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 아내의 연제를 지낼 때를 당해서는 마땅히 기복(期服)을 입어야 하고, 상제를 지낼 때에도 역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상제를 지낼 때 연복(練服)으로 바꾸어 입은 뒤에는 어떤 복을 입고 상례를 마치는 것이 마땅합니까? 담제의 경우에는 중한 상복이 몸에 있다는 이유로 참으로 제사를 폐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그 아들은 이미 13개월이 되어서 상제를 지내고 연복을 벗고 상관(祥冠)을 쓰고 있으니, 15개월이 되어서 담제를 지낼 때를 당해서는 그 아버지가 제사를 주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도 역시 어머니를 위한 담제를 폐하여야 합니까? 아니면 스스로 그 제사를 섭행(攝行)하고서 복을 벗어야 합니까? 그리고 이 아들은 현재 할아버지를 위한 기년복(朞年服)을 입고 있는데, 이제 만약 기년복을 벗고 곧바로 담복(禫服)을 입는다는 것은, 의리에 있어서 근거할 바가 없습니다. 가령 어머니를 위한 담제를 폐하고서 할아버지를 위한 상을 이루고자 할 경우, 어머니를 위한 상복(祥服)을 벗는 것은 어느 때에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정홍명(鄭弘溟)-
[답] 아버지의 상에 이미 졸곡을 마친 뒤에는 바야흐로 아내를 위한 두 상제(祥祭)를 행하는 데, 포의(布衣)와 효건(孝巾) 차림으로 제사를 지내며, 담제의 경우에는 지낼 수가 없네. 그러나 그 아들은 아버지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상복(祥服)을 입고 있을 수가 없으니, 담제를 지낼 날짜에 이르러서 단지 위(位)를 설치하고 곡을 한 다음에 복을 벗을 뿐이네. 그 아버지의 경우에는 참최복의 상을 다 마친 뒤에는 때가 지나간 뒤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예법에 의거하여 다시 제사 지내지 않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네. 이러한 따위의 예는 바로 억측하여 만들어 낸 설로서 근거가 없는 것이니, 감히 올바른 예라고 하지는 못하겠네.
적손(嫡孫)이 할아버지의 상을 위한 담제를 지낼 때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의 예
[문] 승중(承重)한 손자가 장차 할아버지를 위한 담제를 지내려고 할 적에 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경우, 어머니의 상을 마치기를 기다린 뒤에 담제를 지내는 것이 마땅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 숙부(叔父)들은 어느 때에 탈복(脫服)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송준길(宋浚吉)-
[답] 상중에는 담제를 지낼 수가 없으며, 때가 지나서 뒤늦게 제사를 지내어서도 안 되네. 제부(諸父)들의 경우에는 어찌 적손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를 설치하고서 제복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네.
후사(後嗣)가 된 바의 어버이 상중에는 본친(本親)의 담제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문] 후사가 된 바의 어버이를 위한 상중에 소생(所生) 어버이의 담제를 만났을 경우, 제사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까? 소생의 집에 다른 형제가 없을 경우에는 부인(婦人)이 제사를 행합니까? 그리고 축사(祝辭)는 어떻게 합니까? 부인이 제사를 주관할 수 없을 경우에는 후사로 나간 자가 비록 최질(衰絰)을 걸치고 있는 중이라도 오히려 지낼 수가 있는 것입니까? 부인 가운데 담제를 지내는 것이 마땅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담제도 역시 지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모르겠습니만, 어떻습니까? -강석기(姜碩期)-
[답] 담제는 길제(吉祭)이네. 몸에 중한 상복을 입고 있을 때는 참여해서는 안 되네. 그대의 집과 같은 경우에는, 큰며느리가 비록 살아 있기는 하지만 집에 있지 않고, 그대는 복(服)이 이미 다하였으며, 또한 제복(除服)할 만한 다른 형제도 없으니, 그런 경우에는 담제를 설행하지 않는 것이 옳을 듯하네.
부모의 상중에는 할머니를 위한 담제(禫祭)와 길제(吉祭)를 지내서는 안 된다.
[문] 할머니의 소상(小祥)을 지내기 전에 참의(參議) 숙부(叔父)께서 세상을 뜨셨는데, 숙부의 장자인 후여(厚輿)가 승중(承重)하여 대신 상을 주관하였습니다. 이제 할머니의 담제를 지낼 날짜가 머지않았는데, 숙부의 상이 아직 3년의 상기(喪期) 안에 있습니다. 이 경우 담제의 제사를 지낼 때 승중한 자가 어떤 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마땅합니까? 그리고 담제 뒤에는 길제를 지내고 부묘(祔廟)를 행하는 것이 예법인데, 참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길제를 행하는 것이 예에 있어서 어떻습니까? -이경여(李敬輿)-
[답] 아버지의 상중에는 할머니의 담제에 참여해서는 안 되며, 여러 숙부들이 사유를 고하고서 행하면 될 것이네. 길제는 지내서는 안 되네. 그러니 아버지의 상을 마친 뒤에 지내는 것이 마땅하네. 그리고 승중한 손자는 아버지의 상은 비록 마쳤더라도 할머니를 위한 담제를 뒤늦게 지내는 것은 마땅하지 않네. 대개 때가 지나간 다음에는 담제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주자의 설에 나와 있네. -위에 나오는 송준길에게 답한 조항과 이 조항은 같지 않은 듯한바, 마땅히 참고해서 보아야 한다.-
한꺼번에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전상(前喪)의 담제는 때가 지나간 뒤에는 제사 지내지 않는다.
[문] 한꺼번에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는 대상과 소상은 그에 따른 복을 입고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전상의 담제와 같은 것은 후상(後喪)을 제복하기 전에는 지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끝내 전상의 담제를 폐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강석기-
[답] 담제는 길제로, 상중에 지내서는 안 되는바, 이 역시 ‘흉한 때에는 길례를 차마 치르지 못한다’는 뜻이네. 주자의 설에 의거해서 보면 뒤늦게 지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역시 분명하네.
○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이르기를,
“묻기를, ‘《예기》 상복소기에 「삼 년의 상기를 마친 뒤에 장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반드시 두 번 제사를 지낸다.」 하였는데, 정씨(鄭氏)의 주에 이르기를, 「연제와 상제만 지내며 담제는 지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하니, 주자가 답하기를, ‘보기는 의당 그와 같이 보아야 한다.’ 하였다.”
하였다.

담제의 복색(服色)
[문] 담제를 지낼 적에 변복(變服)하는 절차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석기-
[답] 지금 혹자의 말 가운데에는 ‘담제 때에는 곡읍(哭泣)하는 절차가 있으니 갑작스럽게 완전히 길한 복식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네. 세속에서는 혹 그 말을 써서 소복(素服) 차림을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자도 있네. 그러나 《예기》 잡기(雜記)와 간전(間傳)의 글로써 본다면, 상제 때에는 조금 길한 복을 착용하였다가 제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도로 조금 흉한 복을 착용하네. 그리고 담제 때에는 완전히 길한 복을 착용하였다가 제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조금 길한 복을 착용하네. 그렇게 하였다가 길제(吉祭)에 이르러서는 평상시에 착용하던 물품을 패용하지 않는 것이 없네. 그러니 혹자의 ‘담제 때에는 갑작스럽게 완전히 길한 복식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설은 따라서는 안 되네. 그리고 퇴계(退溪)가 답한 바는 전후가 같지 않아서 어떤 복색을 착용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 마땅할지 모르겠네.
○ 《예기》 잡기의 주에 이르기를,
“담제를 지낼 때에는 현관(玄冠)에 황상(黃裳) 차림을 하고, 담제를 마치고서는 조복(朝服)에 침관(綅冠) 차림을 하고, 한 달을 뛰어넘어 길제를 지낼 때에는 현관에 조복 차림을 하고, 길제를 마치고 난 뒤에는 현단(玄端)을 입고 거처한다.”
하였다.
○ 《예기》 간전의 진씨(陳氏) 주에 이르기를,
“담제를 지낼 때에는 현관에 조복 차림을 하고, 제사를 마치면 머리에는 섬관(纖冠)을 착용하고 몸에는 소단(素端)과 황상을 착용한다. 길제를 지낼 때에 이르러서는 평상시에 착용하던 물품을 패용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다.
○ 퇴계가 김숙부(金肅夫) -김우옹(金宇顒)이다.- 의 물음에 답하여 이르기를,
“이제 만약 ‘오히려 곡읍(哭泣)이 있다.’는 글 때문에 완전히 길한 옷을 착용하는 것이 온편치 않다고 여긴다면, 단지 구씨(丘氏)의 설에 의거하여 소복(素服) 차림을 하고서 제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지사(知事) 신숙정(申叔正)이 말하기를, “구씨가 말한 ‘소복’은 아마도 흰색의 의복이 아닌 듯하다. 중국 사람들은 무늬가 없는 옷을 가지고 소복이라고 하는데, 모든 국기(國忌) 및 흉례(凶禮)에서는 모두 푸른색의 소복을 착용하고, 부자(附子)를 제거하는데, 속례(俗禮)에서도 모두 그렇게 하며, 조상(弔喪)을 할 때에도 역시 이에 의거하여 행한다. 《가례의절》에서 말한 ‘소복’은 혹 이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였다.-
또 정도가(鄭道可) -정구(鄭逑)이다.- 의 물음에 답하면서 이르기를,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 복을 진설하고 복을 바꾸어 입는 절차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담복을 벗는 것이 어느 때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며, 길복을 착용하는 것이 어느 날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혹자가 말하기를, “호(縞)에 대해서 이미 말하기를, ‘검은색의 씨줄에 흰색의 날줄로 짠 것이다.’라고 하고, 섬(纖)에 대해서 또 말하기를, ‘검은색의 씨줄에 흰색의 날줄로 짠 것이다.’라고 하고, 침(綅)에 대해서는 또 말하기를, ‘검은색의 씨줄에 흰색의 날줄로 짠 것이다.’라고 하여, 세 글자가 모두 똑같은 색인바, 이것은 몹시 의심스럽다. 《운회(韻會)》를 상고해 보면, ‘침(綅)은 흰색의 씨줄에 검은색의 날줄로 짠 것으로, 통용해서 섬(纖)이라고 쓰기도 한다.’ 하였다.” 하였다. 일찍이 듣건대 “정송강(鄭松江)이 중국에서 이른바 참(黲)이라는 것을 구해 왔는데, 마치 오늘날에 이른바 반수색(半水色)과 같았으며, 이른바 호(縞)라는 것은 바로 흰색의 날줄에 검은색의 씨줄로 짠 것이었다.”고 하는바, 역시 의심스럽다. 그리고 고서(古書)에서 무릇 호(縞)라고 말한 것은 모두 흰색이다. 《시전(詩傳)》 소관(素冠)의 주에서는 비록 검은색의 날줄에 흰색의 씨줄로 짠 것이 호(縞)라고 훈독하기는 하였으나, 출기동문(出其東門)의 주에서는 “호(縞)는 흰색이다.” 하였고, 공씨(孔氏)는 말하기를, “호는 얇은 비단이다. 물들이지 않았으므로 색이 희다.” 하였으며, 《예기》 증자문(曾子問)의 ‘포심의호총(布深衣縞總)’의 주에서는 “호는 생백견(生白絹)이다.” 하였고, 잡기의 “장사를 지낼 때 사(史)는 연관을 착용한다.[葬時史練冠]”고 한 부분의 주에 이르기를, “호관(縞冠)이다.” 하였으며, 《운회》와 《이아(爾雅)》에서는 “호(縞)는 호(皓)이다.” 하였으며, 《문선(文選)》의 설부(雪賦)에서는 “만 이랑이 다 희다.[萬頃同縞]” 하였으며, 한고조기(漢高祖紀)에서는 “병사들이 모두 호소(縞素)를 입었다.” 하였다. 그리고 《의례도(儀禮圖)》에서는 “담제를 지낸 뒤에는 침관(祲冠)을 착용한다. 담제를 지낸 뒤에 관의 색깔이 이와 같은즉 담제를 지내기 전에는 반드시 더욱 흉할 것이다.” 하였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볼 때에 우리나라의 제도와 구씨의 《가례의절》에서 상복(祥服)에 순백색을 쓴 것은 근거한 바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금 상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담제를 지낼 적에는 길복(吉服)을 입고 거애(擧哀)한다.
[문] 《가례》 보주(補註)에 나오는 석량 왕씨(石梁王氏)의 설을 보면 담제에는 의당 길복으로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담제 때에도 역시 거애하는 절차가 있으니, 길복을 착용하고 거애하는 것은 혹 온당치 못한 듯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습니까? -강석기-
[답] 담제는 길제이니 길복을 착용하지 않아서는 안 되네. 삼년상이 끝나도 효자는 비통하고 슬픈 마음이 있으니, 비록 길복을 착용하고 곡읍하더라도 정례(情禮)에 있어서 어그러지지는 않을 듯하네.
담제를 지낸 뒤에는 조금 길한 관(冠)을 착용하고, 길제를 지낸 뒤에는 순전히 길한 관과 복을 착용한다.
[문] 담제를 지낼 적에는 예에 의거하여 길복을 착용하고, 제사를 마치고는 거친 초립(草笠)을 착용하여 옛날에 침관(綅冠)을 착용하던 것을 모방하며, 길제를 지낼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순전히 길한 복을 착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황종해(黃宗海)-
[답] 담제를 지낸 뒤에는 거친 흑립(黑笠)을 착용하였다가 길제를 지낼 때에 이르러서 길한 의관(衣冠)을 착용하는 것이 무방하네.
담제를 지낸 뒤의 복색(服色) 및 길제를 지낸 뒤의 복침(復寢)
[문] 일찍이 듣건대, 도헌(都憲) 신경진(辛慶晉)이 길제를 지낸 뒤에 비로소 순전히 길한 복을 착용하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고 하는데, 예의 뜻이 그러한 것입니까? 우복(愚伏)은 말하기를, “《예기》 간전(間傳)에 이르기를, ‘담제를 지냈으면 섬(纖)을 입는다.[禫而纖]’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검은색으로 날줄을 삼고 흰색으로 씨줄을 삼아 짠 것을 섬이라고 한다.’ 하였다. 대개 길제를 지내기 전에는 담제를 비록 마쳤더라도 오히려 섬관(纖冠)에 소단(素端)과 황상(黃裳)을 착용한다. 그러니 신군(辛君)이 행한 것은 예를 제정한 뜻을 잘 얻었다고 할 만하다. 오직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은, 예경에 반드시 길제를 지내기를 기다려서 먹는다는 글이 없다.”고 운운하였습니다. 담제를 마치고 섬관에 소단을 착용한다면 대(帶)는 역시 흰색의 대를 착용합니까? 그리고 《예기》 상대기(喪大記)에 이르기를, “길제를 지내고 나서는 평상시의 침실로 돌아간다.[吉祭而復寢]” 하였으니, 술을 마시고 고기를 마시는 것은 마땅히 이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는 의외로 담제조의 아래에 있습니다. 이것은 어째서입니까? -송준길-
[답] 담제를 지낸 뒤에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은 예에 있어서 합당하네. 정침(正寢)으로 돌아가는 것은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것보다 중하므로 길제를 지낸 뒤에 있는 것이네. 담제를 지낸 뒤에는 비록 소단(素端)을 착용하기는 하나, 백대(白帶)를 착용하는 것은 지나친 듯하네.
담제를 지낸 뒤에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다.
[문] 호백량(胡伯量)이 주자에게 묻기를, “근래에는 상제(祥祭)를 단지 재기(再忌) 때에만 지내는데, 비록 의복을 바꾸어 입지 않을 수는 없으나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한 절차만은 달을 넘겨서 하는 것으로 절도를 삼고 싶습니다.” 하니, 주자가 답하기를, “달을 넘겨서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퇴계가 말하기를, “주자께서는 왕숙(王肅)의 설이 예경의 본뜻을 얻은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가례》에서 대상(大祥) 뒤에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게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퇴계의 설은 주자의 ‘달을 넘겨서 하는 것이 옳다.’는 뜻과 어긋나는 듯합니다. -강석기-
[답] 살펴보건대, 주자가 비록 왕숙의 설 -중월(中月)을 상월(祥月)의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을 옳은 것으로 보았으나, 《가례》에서는 정씨(鄭氏)의 설 -중월을 한 달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았다.- 을 썼네. 《가례》에서 비록 ‘대상을 지낸 뒤에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다.’고 하였으나, 호백량에게 답하면서는 또 ‘달을 넘겨서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네. 이는 각자 나름대로 그 뜻이 있는 것이네. 《가례》에서 ‘대상을 지낸 뒤에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다.’고 한 것은, 본디 《예기》 상대기(喪大記) -상대기에 이르기를, ‘상제를 지내고서는 고기를 먹는다.[祥而食肉]’ 하였다.- 에서 나온 것으로, 《예기》 간전(間傳) -간전에 이르기를, ‘담제를 지낸 뒤에는 예주를 마신다. 처음에 술을 마시는 자는 먼저 예주를 마신다. 처음에 고기를 먹는 자는 먼저 건육을 먹는다.[禫而飮醴酒始飮酒者 先飮醴酒 始食肉者 先食乾肉]’ 하였다.- 의 설과는 같지가 않네. 그러니 이는 대개 별도로 한 설을 만든 것이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상제(祥祭)를 반드시 10일이 지난 뒤에 지내었네. 그러므로 오히려 이날에 고기를 먹어도 괜찮았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상제를 재기(再忌)의 날짜에 지내니, 이 한 가지 의절은 결단코 행해서는 안 되네. 이것은 《가례》를 미처 재차 수정하지 못한 부분이네. 세상 사람들이 혹 상제를 지내는 날에 고기를 먹으면서 말하기를, ‘《가례》를 준행하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실로 풍교(風敎)를 해치는 것이네. 그러니 마땅히 《예기》 간전 및 사마온공(司馬溫公)과 구씨(丘氏)의 설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네. 내가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답하면서 “예경을 보면, 5개월복과 3개월복의 상에는 장사를 지낼 때가 가까워 오면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기년복과 9개월복의 상에는 이미 장사를 지내고 나면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삼년복의 상에는 상제를 지내고 나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신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상대기에 상세하게 나온다.- 상복이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은 오복(五服)이 모두 그런 것으로, 대개 고례가 그런 것이네. 《가례》의 대상조(大祥條)에 나오는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신다.’는 글은 실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네. 그러나 역시 반드시 재기가 되는 날에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라고 한 것은 아니네. 이는 ‘달을 넘겨서 하는 것이 옳다.’고 한 가르침으로 보면 잘 알 수가 있네. 그리고 《소학(小學)》은 바로 주자가 완성해 놓은 책인데, 거기에서는 사마공(司馬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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