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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비요 (喪禮備要 /1648년木版本, 2권 1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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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3-01-23 22:36 조회1,1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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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비요 (喪禮備要 /1648년木版本, 2권 1책)

심의경(申義慶1557~1648)이 단권(單卷)으로 지은 상례의 지침서인데 김장생(金長生1548∼1631)이 증보(增補)하고 속례(俗禮)도 첨부(添附)하여 사용에 편리하게 하였으며, 서문(序文)을 붙여 체제를 갖추었다.
그 뒤 김집(金集1574∼1656)이 1648년(인조 26)에 1권 2책으로 교정 간행하였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주로 하고, 그 밖의 고금제가(古今諸家)의 예설(禮說)을 참고로 하여 초상(初喪)에서 장제(葬祭)까지의 모든 의식(儀式)을 요령 있게 적어놓은 책이다.

16세기경까지 주희(朱熹)가 지은 《가례 家禮》가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계몽하기 위해 엮어낸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가례 家禮》중 상례(喪禮) 부분의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禮에 관한 여러 책과 학자들의 해석을 참고하여 초상(初喪)에서 장제(葬祭)에 이르는 모든 절차에 대하여 요령있게 설명한 예서(禮書)이다.

책머리에는 사당(祠堂)·신주(神主)·의금(衣衾)·쇠질(衰絰)·오복(五服)·상구(喪具)·발인(發靷)·성분(成墳)·입비(立碑)·수조(受弔)·진찬(進饌) 등의 도설(圖說)을 실었다.

권두에 1620년(광해군 12)에 쓴 김장생(金長生)의 서문과 1648년에 쓴 김집(金集)의 서문이 있고, 책끝에 1621년에 쓴 신흠(申欽)의 발문(跋文)이 있다.

《상례비요》는 상례에 대하여 여러 학자의 예설(禮設)을 발췌하여 정리하였기 때문에 참고하기 쉬우며,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은 김장생 父子가 증보·교정하였다는 점에서 명성(名聲)이 있었다.

그래서 이후의 상례는 물론 사례(四禮) 전체에 관한 예서(禮書)의 저본(底本)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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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비요 범례(喪禮備要 凡例)
1. 이 책이 비록 《가례(家禮)》를 본받아 저술한 것이기는 하나 간혹 어쩔 수 없이 보충해야 할 곳은 보충하였다. 이를테면 초종(初終)에서의 설치(楔齒)와 철족(綴足), 역복(易服)에서의 심의(深衣), 습(襲)에서의 모(冒) 및 설빙(設氷)과 소렴(小殮) 뒤의 질(絰)ㆍ대(帶) 따위는 모두 예경(禮經)에 나오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고쳐야 할 것은 고쳤다. 상주[孝子]가 출입할 적에 입는 묵최복(墨衰服)은 옛 제도도 아닌 데다 국속(國俗)에서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방립(方笠)과 생포(生布)로 만든 직령(直領)으로 대신하였으니, 풍속을 따른 것이다.
옮겨야 할 것은 옮겼다. 대상(大祥) 장(章)의 음주(飮酒)와 식육(食肉)을 담제(禫祭) 뒤로 옮기고 천주(遷主)와 복침(復寢)은 길제(吉祭) 뒤로 옮겼으니, 이는 실로 주자(朱子) 이후에 정리된 의론들이다.
길제는 결여된 부분을 보완하려는 것이고, 개장(改葬)은 변고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사당에 관한 의절(儀節)과 사시(四時)의 시제(時祭)와 묘제(墓祭)ㆍ기제(忌祭)는 비록 상례(喪禮)는 아니지만, 상례를 마치고 나면 바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함께 편말(篇末)에 붙였다.
이 밖의 의절과 예문 사이에도 첨가하거나 보완한 것이 많이 있으니, 이를테면 《의례(儀禮)》와 《가례》, 금제(今制)와 국제(國制)가 서로 다를 경우 우선 모두 실어 두어서 참고에 대비하였다.

2. 도설(圖說)은 일체 《가례》를 따르되 간혹 첨가하거나 개정한 부분도 있으니, 이는 열람하는 자가 자세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3. 모든 상구(喪具)는 필요한 수량을 간략하게 적었으니, 간혹 맞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그다지 동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자로 이해하기 어려운 명목(名目)은 바로 속명(俗名)을 써서 창졸간에 알아보기 쉽도록 하였다.

4. 《가례》의 본문은 모두 한 줄로 쓰고, 첨가해 넣은 것은 모두 두 줄로 썼으며, 더러는 올리고 낮추는 것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인용한 여러 설(說)은 모두 책 이름을 제시하였고, 나의 설은 ‘나[愚]’라는 글자와 ‘살피건대[按]’라는 글자를 써서 구별하였다.

구본(舊本)에는 도설이 편수(篇首)에 실려 있으나, 이는 《가례집람(家禮輯覽)》에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는 거듭 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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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초종(初終)
초종의 제구(諸具)
새 옷 : 환자에게 입히는 데 쓴다.
새 솜 : 숨이 끊어졌는지를 살피는 데 쓴다.
이불 : 솜이불로 하는데, 시신을 덮는 데 쓴다. 나중에 대렴(大殮)할 때에 또 그대로 쓴다.
웃옷 : 사(士) 이상은 공복(公服)이나 심의(深衣)를 쓰고, 서인(庶人) 역시 심의를 쓰나 심의가 없을 경우 직령의(直領衣)를 쓴다. 부인은 대수(大袖)를 쓰는데, 대수는 곧 원삼(圓衫)이며, 세속에서는 더러 장옷도 쓴다. 죽은 사람이 입던 옷은 고복(皐復)을 하고 나서 시신을 덮는 데 쓰며, 목욕을 시키고 나면 버리고 염습(殮襲)에는 쓰지 않는다.
각사(角柶) : 뿔로 만드는데, 길이는 6치이며, 멍에처럼 구부정하게 구부려서 한가운데가 입속에 들어가고 양쪽 끝이 위로 쳐들어지게 만드니, 치아의 버팀목으로 쓰는 것이다. 구준(丘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에 의하면, 젓가락을 쓴다.
궤(几) : 양쪽 머리에 발이 달린 것으로 하는데, 발을 묶는 데 쓰는 것이다.
시자(侍者) : 내외의 심부름꾼이다.

병세가 위중하면 거처를 정침(正寢)으로 옮긴다.
병세가 위중하면 거처를 정침으로 옮기고, 안팎이 안정을 기하며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데, 남자는 여자의 손에서 숨을 거두지 않고 여자는 남자의 손에서 숨을 거두지 않는다. -《가례의절》에 “정침이란 곧 지금의 정청(正廳)인데, 거처를 정침으로 옮긴다는 것은 가장만 그렇게 하고 그 나머지 사람은 각자 거처하던 방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환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가를 물어보아서 하는 말이 있으면 받아 적어 둔다.” 하였다. 《의례(儀禮)》 사상기(士喪記)에, “북쪽 창문 밑에다 머리가 동쪽으로 가도록 눕히고, 안팎을 청소하고 평상시 입던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힌 다음, 모시는 사람 넷이 둘러앉아서 몸을 붙잡고 솜을 코 끝에 댄다.” 하였고, 그 소(疏)에 “솜은 지금의 새 솜인데, 가볍게 움직이므로 입과 코 위에 올려놓아서 숨결을 살핀다.” 하였다. ○ 살피건대, 고례(古禮)에 침상을 치우는 절차가 있으니, 《가례》 부주(附註) 및 《가례의절》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평상시에 침상을 쓰지 않으므로 이 절차는 시행할 곳이 없다.

숨이 끊어지고 나면 곧 곡(哭)을 한다. -《가례의절》에 의하면, 시신을 이불로 덮고 남녀가 곡을 하며 가슴을 친다.

복(復)을 한다.
시자(侍者) 한 사람이 -어떤 이는 내상(內喪)에는 여시(女侍)를 쓰는 것이 옳다고 한다.- 죽은 사람이 입던 웃옷을,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허리 부분을 잡은 다음, 앞 처마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지붕 한복판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혼령을 부르는데, 옷을 흔들며 ‘아무개는 돌아오소서.’ 하고 세 번 외친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이 이르기를 “남자는 이름을 부르고 여자는 자(字) 또는 관봉(官封)을 부르거나, 평상시 부르던 호칭대로 부르기도 한다.” 하였다.- 마치고 나서는 옷을 거두어 들고 내려와서 시신 위에 덮고 남녀가 곡을 하며 가슴을 치는데, 그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의례》 사상례(士喪禮)에 “앞 처마 동쪽으로 올라가 지붕 한복판에 서서 혼령을 부르는데, 목청을 길게 뽑아 ‘아무개는 돌아오소서.’ 한다. 그러고 나서 옷을 앞으로 내리면 광주리로 옷을 받은 다음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그 옷으로 시신을 덮는다. 고복(皐復)을 한 사람은 뒤 처마 서쪽으로 내려온다.” 하였다.

【사상례】 설치(楔齒)를 하고, -각사(角柶)를 쓴다. 《가례의절》에 “나무젓가락을 입 안에 가로로 물려서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하여야 반함(飯含)을 할 수 있다.” 하였다.- 철족(綴足)을 한다. -궤(几)를 쓴다. 주(註)에 “신을 신길 적에 신이 비뚤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상주(喪主)를 세운다.
주인이란 맏아들을 말하는데, 맏아들이 없으면 맏손자가 승중(承重)하여 궤전(饋奠)을 받들되, 손님을 맞는 데 있어서는 같이 살고 있는 친족 중 촌수가 가깝고 항렬이 높은 이가 주상(主喪)이 된다. -《예기(禮記)》 분상(奔喪)에 “상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아버지가 주상이 된다.” 하였고, 그 소에 “《예기》 복문(服問)을 살펴보니 ‘임금이 주상이 되는 대상은 적처(嫡妻)ㆍ태자(太子)ㆍ적부(嫡婦)의 초상이다.’라고만 말하고 서부(庶婦)에 대해 주상이 된다는 말은 없다. 이 말과 같다면 서부의 초상에도 주상이 되는 것이니, 이는 복문의 말과 어긋나게 된다. 복문의 말은 명사(命士) 이상으로서 부자(父子)가 다른 집에서 거처하는 경우에 서자(庶子)들이 각자 친상에 주상이 된다는 것이고, 지금 여기의 말은 바로 같은 집에서 사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예기》 상복소기(喪服小記)에 “망인(亡人)을 위해 대공복(大功服)을 입을 사람이 그 초상에 주상이 되었을 경우, 삼년상을 치를 처자가 있다면 반드시 소상ㆍ대상 때까지 주상 노릇을 해야 하고, 망인이 친구인 경우는 재우(再虞)와 부사(祔祀)의 제사 때까지만 주상 노릇을 해도 충분하다.” 하였다. ○ 《예기》 잡기(雜記)에 “고모나 자매가 죽었을 때 남편이 죽고 그의 형제도 없을 경우 남편의 먼 친족이 주상이 되고 친정 쪽의 친족은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주상이 되지 않는다.” 하였다.

주부(主婦)를 세운다.
주부는 죽은 사람의 아내를 말하는데, 아내가 없을 경우 주상자의 아내가 해당된다.

호상(護喪)을 세운다.
자제(子弟) 중 예법을 잘 알고 일을 잘 주선하는 사람을 호상으로 삼아서 초상에 관한 모든 일을 지시받는다.

사서(司書)와 사화(司貨)를 세운다.
자제 또는 이복(吏僕)으로 삼는다.
역복(易服)의 제구
심의(深衣) : 《의례상복도식(儀禮喪服圖式)》에 “성복(成服) 때까지 바꾸지 않고 입는데, 없으면 직령의(直領衣)를 입는다.” 하였다. ○ 여자들은 흰 장옷을 사용한다.
이에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
아내ㆍ아들ㆍ며느리ㆍ첩은 모두 갓과 웃옷을 벗고 머리를 풀고, -살피건대, 머리를 푸는 것은 옛 법이 아니고 《개원례(開元禮)》에서 시작된 것이다.- 남자는 웃옷의 앞자락을 걷어 올려 띠에 꽂고, -《의례(儀禮)》 사상기(士喪記)의 주에 “심의를 입는다.” 하였고, 《예기》 상대기(喪大記)의 주에 “심의의 앞자락을 걷어 올려 띠에 꽂는다.” 하였다.- 맨발을 한다. -《예기》 문상(問喪)의 주에 “신을 신지 않고 맨발을 하는 것이다.” 하였다.- 나머지 복친(服親)들도 모두 화려한 수식을 제거하며, 남의 양자로 나간 아들과 시집간 딸은 모두 머리를 풀거나 맨발을 하지 않는다. -살피건대, 아버지가 맏아들의 삼년상을 당한 경우도 똑같다.- 모든 아들은 3일을 먹지 않고, 1년ㆍ9개월의 복친은 세 끼를 먹지 않고, 5개월ㆍ3개월의 복친은 두 끼를 먹지 않는다. 친척과 이웃 사람들이 죽을 쑤어서 먹게 하는데, 웃어른이 강권하면 조금은 먹어도 좋다. -《예기》 문상에 “3일 동안 불을 때지 않는다.” 하였다. ○ 화려한 수식이란 울긋불긋하게 수놓은 비단과 금ㆍ옥ㆍ진주ㆍ비취 따위를 말한다.

관(棺)을 만드는 제구
목공(木工)
칠장(漆匠)
송판(松板) : 흰 부분이 없이 다 붉은 것이 상품이다. 두께는 2치 반이나 3치로 하되 영조척(營造尺)을 쓴다. 길이와 너비를 적절히 맞춘다.
임(衽) : 곧 소요(小腰)인데 속칭 은정(銀釘)이라 한다. 8개를 쓰는데, 관의 위아래를 봉합하는 데 쓰는 것이다. 그 제도는 길이 3치나 2치 8푼, 너비 2치 6푼, 두께 2치 2푼이나 2치의 소나무를, 중앙에서 양쪽으로 8, 9푼씩 톱으로 켜고 한가운데 8푼만 남겨두어서 고정시킨 다음, 네 모서리에서 비스듬히 쪼아 들어가 켠 양쪽을 깎아버리고 중간 8푼 부분에 이르게 되면 양쪽 끝은 크고 한가운데는 작아진다.
○ 더러는 쇠못을 쓰기도 하는데, 길이 5치의 못 20개를 관 위아래 및 네 모서리에 박는다.

송진[松脂] : 1근(斤)가량. 관 속의 봉합하는 곳에 칠하는 것인데, 만약 관의 안팎에 다 칠하려면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
소나무 검댕[松煙] : 1되가량. 관에 칠하는 것이다.
술[酒] : 소나무 검댕을 반죽하는 것인데, 풀을 쓰기도 한다.
진옻[全漆] : 7, 8홉. 밀가루를 반죽하여 관을 봉합하는 곳에 바르는 것인데, 옻을 입힌 관에다 또 칠포(漆布)를 쓰려면 2되가량이 필요하다.
검정색 천[黑繒] : 명주나 무명을 쓰고 포백척(布帛尺)으로 12자짜리인데, 폭이 좁은 것일 경우 18, 9자이다. 모두 종이를 배접하여 쓰는데, 천이 없을 경우 두꺼운 백지 7, 8장이면 된다. 관 속의 사방과 뚜껑을 바르는 것이다.
녹색 비단[綠綾] : 1, 2자. 관 속의 네 모서리를 바르는 것이다. 《예기》 상대기에 “대부(大夫)는 관의 내부를 바르는 데 검정색과 녹색 비단을 쓰고 사(士)는 녹색을 쓰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 주에 “대부는 네 면은 검정색, 네 모서리는 녹색을 쓰고 사는 모두 검정색을 쓴다.” 하였다.
칠성판(七星板) : 먼저 나무틀을 관 바닥 크기로 짠 다음, 그 안에 5푼 두께의 소나무판자를 놓고 판자 위에 7개의 구멍을 북두칠성처럼 뚫어서 검은 천이나 종이로 그 윗면을 싸 바른다. ○ 더러는 판자 한쪽만을 써서 위의 제도와 같이 하기도 한다.

관(棺)을 만든다.
호상(護喪)이 목수에게 나무를 골라 관을 짜도록 하는데, 그 제도는 머리쪽은 크고 발쪽은 작게 한다. -높이와 너비와 길이는 소렴한 것에 의거하여 정하되, 대렴에서 옷을 8, 9벌 쓴다면 사방과 높이를 각각 3푼가량의 여분을 두고, 10여 벌을 쓴다면 5, 6푼의 여분을 둔다. 이 이상도 이렇게 계산해 나간다. 이불은 수치에 넣지 않는다. 높이는 칠성판과 요 및 석회의 두께를 제외하고 말하는 것이다. 지판(地板) 및 양쪽 두판(頭板)을 봉합하는 곳에는 옻을 밀가루와 버무려 메우고, 또 지판의 좌우에 각기 은정이나 쇠못을 두 개씩 걸며, 천판(天板)을 봉합하는 곳에는 옻과 은정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대렴 때에 쓴다. 송진을 납촉(蠟燭)과 버무려 관 속의 봉합한 곳에 칠하고 소나무 검댕이나 옻을 관 바깥에 칠한다. 더러는 송진을 가루로 만들어 안팎에 고루 바른 다음 쇠붙이로 지져 나뭇결을 따라 스며들게 하고 검정색 천이나 종이로 그 안의 사방과 천판을 바르기도 한다. 대부의 경우는 따로 녹색 비단을 네 모서리에 붙인다.

◆ 부고(訃告) 서식(書式) -《가례의절》에 나온다.

아무개의 친척인 아무개가 아무 달 아무 날에 질병에 걸려, 불행하게도 아무 달 아무 날에 세상을 버렸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부고합니다.
연호 월 일 호상 아무개가 아무개 님 좌전(座前)에 올림. -친척인 경우는 아무개의 친척인 아무개라고 쓴다.

살피건대, 《가례의절》에 의하면, 유사(有司)가 부고를 대신 쓰고 애자(哀子) 아무개로 일컫는데, 이것은 호상이 부고를 발송하는 《가례》의 본뜻이 아닐 성싶기에 지금 위와 같이 고쳐 쓴다.

친척과 요우(僚友)들에게 부고한다.
호상과 사서(司書)가 부고를 발송하되, 만약 호상과 사서가 없으면 주인 스스로 친척에게만 부고하고 요우에게는 하지 않는다. 이 밖의 모든 서신은 정지하고, 서신으로 조문을 해온 이가 있을 경우 모두 졸곡(卒哭) 뒤에 답한다.

[주D-001]개원례(開元禮) : 당(唐)나라의 소추(蕭樞)등이 칙명을 받들어 지은, 개원 연간의 예제(禮制)를 기록한 책으로, 모두 158권이다. ‘개원’은 당 나라 현종(玄宗) 때의 연호이다.
[주D-002]예기 상대기(喪大記)의 주 : ‘급임(扱衽)’ 조에 대한 원(元)나라의 진호(陳澔)의 주이다.
[주D-003]예기 문상(問喪)의 주 : ‘도선(徒跣)’ 조에 대한 진호의 주이다.


습(襲)
시신을 옮기는 제구(諸具)
휘장[幃] : 흰 베를 이어서 만들거나 병풍을 쓰는데, 시신을 가리는 것이다.
평상[牀] : 시신을 옮겨다 올려놓기 위한 것인데, 없으면 문짝을 쓰기도 한다.
돗자리[席]
베개[枕]
이불[衾] : 죽을 때 덮던 것을 그대로 쓰는데, 소렴 때에는 걷어 두었다가 대렴 때에 쓴다.

집사자(執事者)가 휘장과 평상을 설치한 다음 시신을 옮기고 구덩이를 판다.
집사자가 휘장으로 시신 눕힌 곳을 가리면 시자(侍者)가 평상을 시신 앞에 세로로 설치하고, -《의례》 사상기(士喪記)에 의하면, 창문 바로 밑이다.- 대자리[簀]를 깐 다음, 거적을 걷어내고 자리를 펴고 베개를 놓아서 시신을 그 위로 옮기되, 머리는 남쪽으로 두고 이불을 덮는다. -더운 계절에는 이불 네 가장자리를 오무려 들여서 틈새가 없도록 하여 파리의 침입을 막는다.- 외지고 깨끗한 곳에 구덩이를 판다.

목욕의 제구
가마솥[釜] : 혹 대정(大鼎)도 괜찮다. 목욕물을 데우는 데 쓴다.
동이[盆] : 두 개. 쌀뜨물 및 물을 담는 것이다.
쌀뜨물[潘] : 쌀을 씻은 물인데, 머리를 감기는 데 쓴다. 대부(大夫)는 피[稷] 뜨물, 사(士)는 수수[粱] 뜨물을 쓴다. 살피건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임금의 초상에는 향 끓인 물을 쓰게 되어 있는데, 지금은 사서인(士庶人)의 집에서 간혹 쓰니, 참람한 행위이다.
목건(沐巾) : 한 개.
욕건(浴巾) : 두 개. 모두 베 1자로 만드는데, 상체와 하체에 각기 한 개씩 쓴다.
빗[櫛] : 한 개.
끈[組] : 검정색 비단이나 깁으로 만드는데, 머리를 묶는 데 쓴다.
비녀[笄] : 뽕나무로 만드는데, 길이는 4치이며, 묶은 머리를 고정시키는 데 쓴다. 양쪽 끝은 넓고 한가운데는 좁게 만들며, 남녀가 똑같이 쓴다. -《의례》 사상례(士喪禮)에 나온다.
작은 주머니[小囊] : 다섯 개. 물들인 명주로 만드는데, 네 개는 손과 발의 좌우를 각각 써서 표시하여, 손톱과 발톱을 담는 것이고, 하나는 머리카락을 담는 것이다.
명의(明衣) : 《의례》 사상기에 “명의의 상(裳)은 삼베를 쓰되, 소매는 온폭으로 달아서 길이가 무릎까지 내려가도록 하고, 상(裳)의 앞뒤에는 주름을 잡지 않으며, 길이는 발등[觳] -주에 ‘각(觳)은 발등이다.’ 하였다.- 까지 내려가도록 한다.” 하였다. 목욕을 시킨 뒤 입히는 것인데, 홑옷을 쓰기도 한다.
구덩이[坎] : 《의례》 사상기에 “너비는 1자, 길이[輪] -윤(輪)은 세로이다.- 는 2자, 깊이는 3자이며, 파낸 흙은 남쪽에 쌓아둔다.” 하였다. 수건[巾]ㆍ빗[櫛]ㆍ설치(楔齒) 및 목욕한 물을 묻기 위한 것이다.

설빙(設氷)의 제구
얼음[氷] : 여름에 쓴다. 《예기》 상대기(喪大記)에 “대부는 대야를 설치하여 얼음을 담고 사는 얼음을 쓰지 않는다.” 하고, 그 주(註)에 “사는 질대야에 물을 담아 쓴다.” 하였다. 《의례》 사상례의 소(疏)에 “사가 얼음을 쓰는 경우는 하사받은 경우이다.” 하였다.
대야[槃] : 동이를 쓰기도 하는데, 얼음이나 물을 담는 것이다.
평상[牀] : 민간에 있는 살평상[箭平牀]을 쓰는데, 시신을 옮겨다 올려놓기 위한 것이다.

습(襲)의 제구
평상[牀]
거적[薦]
요[褥]
돗자리[席]
베개[枕]
대대(大帶) : 너비 4치의 흰 깁으로 양쪽 가장자리를 감쳐서 쓰는데, 길이는 허리를 한 바퀴 돌려 앞에서 맺고 다시 한 바퀴 돌려 두 귀를 만든 다음, 그 나머지를 아래로 늘어뜨려 신(紳)을 삼을 정도이다. 신의 길이는 아래로 상(裳)과 가지런하도록 하며, 검정색 깁으로 신의 양쪽 가장자리와 아랫단에 선을 두르는데, 안팎이 각각 반 치이다. 대부의 경우는 두 귀에도 선을 두르고 다시 너비 3푼의 오색 천끈으로 띠를 맺은 곳에 매다는데, 길이는 신과 가지런하도록 한다. 없을 경우 평소에 띠던 띠를 쓴다. ○ 부인의 대대(大帶)는 상고(詳考)해 보아야 한다.
심의(深衣) : 옷감은 희고 고운 삼베를 쓰고 자[尺]는 손가락 자[指尺]를 쓴다. -가운뎃손가락 가운데 마디를 한 치로 삼는다.- 상의는 전부 4폭에 길이는 2자 2치인데, 옆구리를 지나서 아래로 상(裳)에 연결된다. 그 제도는 삼베 2폭을 한가운데를 접어서 아래로 드리우면 앞과 뒤를 합쳐서 4폭이 되는데, 지금 직령삼(直領衫)과 같고, 단지 겨드랑이 밑을 트지 않았을 뿐이다. 그 아래로 옆구리를 지나서 상에 연결되는 곳에 와서는 대략의 둘레가 7자 2치가 되는데, 1폭마다 상 3폭에 연결된다.
상(裳) : 12폭을 서로 엇갈리게 갈라 윗부분을 상의에 다는데, 길이는 복사뼈에 이르도록 한다. 그 제도는 6폭의 삼베를 폭마다 2폭으로 가르되, 한 끝은 넓고 한 끝은 좁게 갈라서 좁은 끝의 너비가 넓은 끝 너비의 절반이 되도록 한다. 삼베를 엇갈리게 가를 적에는 넓은 끝은 1자 4치를 잡고 좁은 끝은 8치를 잡은 다음 각기 양쪽의 솔기 1치를 제하고 나면 법도대로 된다. 이때 좁은 끝이 위로 향하도록 하여 꿰매어 나가서 상의에 붙이면 상의에 붙은 곳은 대략의 둘레가 7자 2치가 되고, 상(裳) 3폭마다 상의 1폭에 달리게 된다. 또 그 아랫단 복사뼈에 닿는 곳은 대략의 둘레가 1길[丈] 4자 4치가 된다.
원몌(圓袂) : 삼베 2폭을 각기 한가운데를 접어서 상의의 길이와 똑같게 마른 다음, 가장자리를 잘라 내지 않은 채 상의의 좌우에 달고 그 아랫부분을 봉합하여 소매를 삼는데, 밑동의 너비는 상의의 길이와 같고, 점차 둥그스름하게 줄여 소맷부리에까지 이르면 그 지름이 1자 2치가 된다.
방령(方領) : 두 깃 자락을 서로 여미어 옷섶[衽]이 겨드랑이 밑에 있게 하면 두 깃이 만나는 곳은 저절로 네모가 된다. 《예기보주(禮記補註)》에 “상의의 두 어깨 위를 각기 3치씩 잘라 들여서 뒤집어 접은 다음 잘라 내고 다시 별도의 삼베 한쪽을 가지고 목 뒤쪽에서 앞쪽으로 접어 내려와서 좌우로 접어 잘라낸 곳에다 붙여 꿰매면 안팎 감이 각각 2치가 되니, 《예기》에 이른바 깃[袷] 2치가 바로 이것이다.” 하였다.
검은 가선[黑緣] : 검은 깁을 쓰는데, 깃의 안팎에 2치씩 댄다. 《주자대전(朱子大全)》에는 1치 반으로 되어 있다. 소맷부리와 상(裳)의 가장자리는 안팎으로 각기 1치 반씩을 대는데, 소맷부리는 삼베의 겉에다 이 너비의 가선을 따로 댄다. 구준(丘濬)이 이르기를 “살피건대, 《예기》 옥조(玉藻)에는 깃은 2치, 가선은 1치 반으로 되어 있으나, 지금 《가례》에는 깃의 치수를 말하지 않고 단지 깃 가선의 너비가 2치라는 것만 말하였다. 지금 고례(古禮)와 같이 삼베를 너비는 2치, 길이는 상의의 몸체와 맞추어 깃을 삼고 1치 반의 가선을 그 위에 댄다면 한 가지 옷에 대한 거의 완전한 제도가 될 것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의례》 사상례의 ‘습 세 벌[襲三稱]’의 주에 홑옷과 겹옷을 다 갖춘 것을 벌이라 한다고 하였고, 《예기》 상대기(喪大記)에는 상의에 상(裳)을 꼭 갖추어야만 벌이라 하고, 포(袍)에는 반드시 껴입는 겉옷이 있지, 그것만을 홑으로 드러내어 입지 않는다고 하였다. 검은 상의에 분홍빛 상(裳)인 작변복(爵弁服)과 흰 베로 만든 상의에 흰색 상(裳)인 피변복(皮弁服)과 검은 상의와 상(裳)에 붉은 가선을 두른 단의(褖衣) 이 세 가지 옷은 치대(緇帶)를 같이 쓰니, 지금 심의(深衣)와 공복(公服)에 같이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심의가 없으면 직령의(直領衣)를 쓴다. ○ 살피건대, 《예기》 잡기(雜記)에 남자의 상(喪)에 여자의 옷으로 염습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여자의 상(喪)에도 남자의 옷으로 염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여자의 상에는 원삼(圓衫)이나 몽두의(蒙頭衣) 또는 장옷을 쓴다.
답호(褡 ) : 한 벌. 단령(團領)에 받쳐 입히는 것이다.
과두(裹肚) : 한 벌. 배를 싸는 것이다.
포오(袍襖) : 솜을 넣는다. ○ 여자의 상에는 상(裳)에도 같이 쓴다.
한삼(汗衫) : 한 벌. 명주나 무명을 쓴다.
고의(袴衣) : 한 벌. 솜을 넣으며, 명주나 무명을 쓴다.
단고의(單袴衣) : 한 벌. 무명이나 삼베를 쓴다.
늑백(勒帛) : 두 개. 발목에서 무릎까지 묶기 위한 것이다.
버선[襪] : 두 켤레. 솜을 넣는다.
망건(網巾) : 한 개. 검정색 깁으로 만든다.
복건(幅巾) : 한 개. 검정색의 깁이나 명주를 쓰는데, 길이는 6자이다. -손가락자이다. 아래도 같다.- 《예기보주(禮記補註)》에 “너비는 1자 4치라고 하였는데, 어떤 이는 온폭을 쓴다고도 한다.” 하였다. 《주자대전》에 “어느 한쪽을 바늘로 찔러 건액(巾額)을 삼아 가운데를 접어서 금을 그어 표시를 해 두고 곧바로 접었던 것을 쫙 편 다음, 먼저 오른쪽으로 접었던 것을 가지고 그 왼쪽에서 손가락으로 조금 들어 올려 오른쪽으로 접어 두고, 다시 왼쪽으로 접었던 것을 가지고 그 오른쪽에서 손가락으로 조금 들어 올려 왼쪽으로 접는다. 그리고 두 끝을 맞대고 실로 꿰맨 다음 그 속을 비워서 작은 가로 깃[橫㡇子]을 만들고, 다시 뒤집어서 되돌려 접은 뒤에 깃 왼쪽에서 너댓 치 사이를 비스듬히 꿰매되 왼쪽으로 둥글게 구부려 내려가서 마침내 왼쪽을 따라 두 가닥의 끝에 이르게 하고, 또 뒤집어서 꿰매다 남은 깁을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 다음, 깃을 이마 앞에 놓이게 하여 감싼다. 또 양쪽 살쩍에 이르러서는 각기 띠 하나씩을 다는데, 너비는 2치이고 길이는 2자로, 머리를 감싸는 것이다.” 하였다. 《예기보주》에 “복건의 깃은 최복(衰服) 상(裳)의 깃과는 다르니, 복건의 깃은 이음매가 속으로 들어가고 최복 상의 깃은 이음매가 겉으로 나온다.” 하였다. ○ 살피건대,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갓도 씌우지 않고 비녀도 꽂지 않은 채 명주로 머리를 싸기만 하였는데, 이것을 엄(掩)이라 하니, 《가례》의 복건은 엄에 갈음하는 것이다. 남자의 상에 복건을 쓴다면 여자의 상에는 예전대로 엄을 쓰는 것이 옳을 성싶다. 《의례》 사상례에 “엄은 누인 명주를 쓰는데, 너비는 온폭, 길이는 5자이며, 그 끝을 쪼갠다.” 하였는데, 그 주에는 “턱밑을 묶고 나서 또 목 한가운데를 돌려 동여매는 것이다.” 하였고, 그 소(疏)에는 “엄은 지금의 복두(幞頭)와 같은데, 다만 뒤쪽의 두 가닥으로 턱밑을 묶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하였다. -복두의 제도는 아래의 분상(奔喪) 조의 사각건(四脚巾) 주에 보인다.
멱목(幎目) : 한 개. 검정색 비단[帛]이나 명주를 쓰는데, 사방 1자 2치이다. 붉은색의 안감을 대고 솜을 넣어 채운 다음 네 귀퉁이에 끈을 달아 만드니, 얼굴을 덮는 데 쓰는 것이다.
충이(充耳) : 두 개. 새 솜을 쓰는데, 모양은 대추씨처럼 만드니, 귀를 막기 위한 것이다.
악수(握手) : 두 개. 검정색 비단이나 명주를 쓰는데, 길이는 1자 2치이고 너비는 5치 3푼이다. 길이에서 중앙 4치를 취하여 양쪽에서 1치씩 마름질하여 넣어 너비를 줄인 다음, 붉은색의 안감을 대고 솜을 넣어서 채운 다음 양끝 아래쪽 모서리에 각기 끈을 달아 만드니, 손을 싸기 위한 것이다.
신[屨] : 두 켤레. 검정색 명주에다 종이를 붙여서 만드는데, 길이 2자 남짓한 두 개의 흰 띠나 끈을 신 뒤축에다 가로로 묶고, 또 신 머리에다 천끈으로 신코를 만드니, 신끈을 걸어서 신기기 위한 것이다. ○ 만약 여자의 상이고 평소에 신던 꽃신이 있다면 그대로 쓴다.
모(冒) : 명주를 쓰는데, 검정색 7자 남짓, 붉은색 7자가 든다. 《의례》 사상례의 주에 “모(冒)란 시신을 씌우는 것이다. 그 제도는 자루와 같으며, 위쪽을 질(質), 아래쪽을 쇄(殺)라 하는데, 씌울 적에는 먼저 쇄로 발을 씌워 올라가서 나중에 질로 머리를 씌워 내려온다. 위는 검정색, 아래는 붉은색으로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였다. 《예기》 상대기(喪大記)에 “임금은 비단으로 만든 모(冒)와 도끼 무늬를 수놓은 쇄(殺)에 철방(綴旁)이 7개이고, 대부(大夫)는 검은 모와 도끼 무늬를 수놓은 쇄에 철방이 5개이고, 사(士)는 검은 모와 붉은 쇄에 철방이 3개이다. 질의 길이는 손과 가지런히 하고 쇄는 3자이다.” 하였다. 구준은 이르기를 “모의 제도는 한쪽 머리와 한쪽 가장자리만 봉합하고 나머지 한쪽 가장자리는 봉합하지 않으며, 또 봉합하지 않은 가장자리에 아래위로 띠 세 개를 달아 묶게 되어 있는데, 지금 사람들은 옛 제도를 알지 못하고서 그만 두 개의 자루처럼 꿰맨 다음에, 옷을 입히고 이불을 씌워 염을 한 위에다 뒤집어씌우니, 잘못된 것이다.” 하였다.
횃불[燎] : 밤에 뜰에 설치하였다가 이튿날 아침에 끈다. -《의례》 사상례에 나온다.
반함(飯含)의 제구
구슬[珠] : 세 개. 살피건대, 예전에는 임금만 구슬을 썼으나, 오늘날 풍속은 사(士)와 서인(庶人)이 통용하는데, 《가례의절》과 《국조오례의》에서도 이를 허용하였으니, 금ㆍ옥ㆍ엽전ㆍ조개껍질[貝] 모두가 가능하다.
상자[箱] : 구슬을 담는 것이다.
쌀[米] : 두 되. 깨끗한 물로 씻어서 정갈하게 장만한다.
사발[椀] : 쌀을 담는 것이다.
멱건(幎巾) : 삼베를 쓰는데, 사방 2자로 만들며, 얼굴을 덮는 것이다. 《의례》 사상례의 주에는 “반함할 때 떨어지는 쌀을 받는 데에 쓰는 것이다.” 하였다.
숟가락[匙] : 쌀을 뜨는 것이다.
세숫대야[盥盆]
수건[帨巾] : 상주가 손을 씻기 위한 것이다.

제전(祭奠)의 제구
탁자(卓子)
포해(脯醢) : 《예기》 단궁(檀弓)에서 이른 바 ‘찬장에 남겨둔 음식’인데, 이것이 없으면 무엇이든 있는 대로 쓴다. 《의례》 사상기에 “길사(吉事)에 쓰는 그릇을 쓴다.” 하였는데, 그 소(疏)에 “차마 생시와 달리할 수 없기 때문에 바꾸지 않는다. 소렴의 제전 때 가서는 바꾼다.” 하였다.
술[酒]
술잔[盞] : 잔대를 갖춘다.
초[燭] : 촛대를 갖춘다.
상보[巾] : 전물(奠物)을 덮는 것이다.
축(祝) : 친척이 한다.

영위(靈位)를 설치하는 제구
휘장[帷] : 마루 안에 설치하여 내외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짚자리[藁席]
거적[薦]
돗자리[席]

습의(襲衣)를 벌여 놓는다.
탁자를 마루 앞 동쪽 벽 밑에 벌여 놓되, 옷깃을 서쪽으로 두고 남쪽을 위로 한다. -《의례》 사상례에 “수의(壽衣)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진열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다시 돌려 진열하지 않는다.[不綪]” 하였다.[그 주에 “‘綪’은 쟁(綪)으로 읽으며 방향을 돌린다는 뜻이다.” 하였다.] 복건(幅巾) 한 개, 충이(充耳) 두 개 -망건(網巾) 한 개-, 멱목(幎目) -한 개-, 악수(握手) -두 개-, 심의(深衣) 한 벌 -단령(團領) 또는 답호(褡 )나 직령의(直領衣). 여자의 상(喪)인 경우 원삼(圓衫)이나 몽두의(蒙頭衣) 또는 장옷-, 대대(大帶) 한 개 -더러는 평상시에 띠던 것으로 한다.-, 한삼(汗衫) -한 벌-, 과두(裏肚) -한 벌-, 도포[袍]와 장옷[襖]은 있는 대로 많이도 쓰고 적게도 쓴다. 바지[袴] -한 벌. 홑바지도 한 벌-, 늑백(勒帛) -두 개-, 버선[襪] -두 켤레-, 신[屨] 두 켤레 -모(冒) 한 개- 이다.
목욕과 반함의 제구를 벌여 놓는다.
탁자를 마루 앞 서쪽 벽 밑에 벌여 놓되, 남쪽을 위로 한다. -구슬[珠] 세 개, 또는 금ㆍ옥ㆍ엽전ㆍ조개껍질[貝]을 상자에 담아서 탁자 남단에 올려놓는다.- 쌀 두 되를 사발에 담는다. -《의례》 사상례에 “축(祝)이 마루에서 쌀을 씻되 남면하며 사발을 사용한다. 그리고 쌀을 대(敦)에 담아 조개껍질의 북쪽에 올려놓는다.” 하였다.- 빗[櫛] 한 개 -끈[組] 한 개, 비녀[笄] 한 개, 주머니[囊] 다섯 개-, 목건(沐巾) 한 개, 욕건(浴巾) 두 개 -명의(明衣) 한 벌- 이다. ○ 서쪽 담 밑에 가마솥을 걸고 쌀뜨물과 물을 끓이고, 또 동이 두 개를 갖다 놓아서 목욕할 때 쓸 쌀뜨물과 물을 담을 것에 대비한다.

이에 목욕을 시킨다.
시자(侍者)가 끓인 물을 가지고 들어가면, -쌀뜨물과 물을 각각 동이에 담는다.- 주인 이하가 모두 휘장 밖으로 나와서 북쪽을 향한다. -곡(哭)을 한다.- 병중(病中)에 입었던 옷과 고복(皐復)에 쓴 옷을 모두 벗기고, -《예기》 상대기의 주에 “병중에 입었던 새 옷과 고복에 썼던 옷을 벗기고 목욕할 것을 기다린다.” 하였다.- 머리를 감기고, -쌀뜨물로 감긴다.- 빗질을 한 다음, 수건으로 말리고 머리카락을 모아 상투를 쫒는다. -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은 다음 비녀를 지른다. 여자의 상에도 끈과 비녀를 쓰며, 떨어진 머리카락은 주머니에 담는다.- 이불을 떠들고 목욕을 시킨 다음, -물로 한다. 《의례》 사상기에 “모상(母喪)인 경우는 내어자(內御者)가 목욕을 시킨다.” 하였다.- 수건으로 닦고, -상체와 하체를 합쳐서 하나의 수건을 쓴다.- 손톱과 발톱을 깎는다. -좌우의 손톱과 발톱을 각각 주머니에 담아 두었다가 대렴 때에 관 속에 넣는다. ○ 명의를 입히고 다시 이불을 덮는다.- 목욕을 하고 남은 물은 수건 및 빗과 함께 구덩이에 묻는다. -《의례》 사상례에 “주인이 들어가서 제 위치에 선다.” 하였다.
【사상례】 얼음을 갖다 놓는다. -《예기》 상대기의 주에 “목욕을 시키고 난 뒤 습과 염을 하기 전의 일이다.” 하였다. 《의례》 사상례의 소에 “먼저 얼음 대야를 들여놓고 나서 그 위에다 평상을 설치한 다음[先納氷槃乃設牀於其上袒] -단(袒)은 단(單)이다.- 대자리만 깔고 돗자리는 치운다. 그러고 나서는 시신을 옮겨 모시어 얼음의 찬 기운을 쐬도록 한다.” 하였다. ○ 사(士)는 물을 쓴다.

습을 한다.
시자가 휘장 밖에 염습할 평상을 따로 설치하고 거적ㆍ돗자리ㆍ요ㆍ베개를 벌여 놓은 다음, 먼저 대대(大帶)ㆍ심의 -심의 대신 쓰는 공복(公服)이나 직령의(直領衣) 및 여자의 상에 쓰는 옷은 모두 ‘습의 제구’에 보인다.-ㆍ도포ㆍ장옷ㆍ한삼(汗衫)ㆍ바지ㆍ버선ㆍ늑백(勒帛)ㆍ과두(裹肚) 따위를 그 위에 올려놓는다. 드디어 들고 들어가서 목욕 평상의 서쪽에 놓고 시신을 그 위로 옮겨놓는데, -옷을 입히되 섶이 모두 오른쪽으로 여며지도록 한다.- 다만 복건(幅巾)ㆍ심의ㆍ신[屨]은 착용시키지 않는다. -이불을 덮고 시자가 목욕 평상을 치운다. ○ 만약 두 팔이 뒤틀려 소매를 꿸 수 없을 경우, 시신을 염습할 평상 위로 옮길 적에 시신의 허리가 바로 옷깃 위에 놓이도록 한 다음, 시신을 같이 위로 들어올려 차츰차츰 내려놓으면서 손을 소매 속에 넣거나, 아니면 두 사람이 옷깃을 같이 잡고 시신의 하부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손을 소매 속에 넣기도 한다. ○ 살피건대, 퇴계(退溪) 이 선생(李先生)이 말하기를 “복중(服中)에 죽은 자는, 습에는 소복(素服)과 흑건(黑巾)ㆍ흑대(黑帶)를 쓰고, 소렴에는 정복(正服)을 쓰되 역시 소복도 쓰고, 그 밖에는 길복(吉服)을 이것저것 쓰며, 대렴과 입관(入棺) 때에는 상복 한 벌과 길복 한 벌을 좌우에 마주 보게 넣어 둔다면, 복을 다 입고 나서는 길복으로 갈아입는 의미가 있어서 지하에서 영원히 흉복(凶服)을 입고 있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한 사람의 몸에 길복과 흉복을 함께 쓴다는 것은 길복도 아니고 흉복도 아니어서 온당하지 않을 성싶은데, 미처 퇴계 선생께 직접 질문해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기묘 제유(己卯諸儒)들이 의정(議定)한 대로, 상중에 죽은 자는 습과 염에는 모두 길복을 쓰고 상복은 영상(靈牀)에 진열해 놓았다가 장사를 마치고 나서 철거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시상(尸牀)을 옮겨다 마루 한가운데에 놓는다.
손아랫사람이거나 어린아이의 경우는 각기 방 한가운데에 놓는다. 이 밖에도 재당(在堂)이라고 말한 경우에는 이와 같다. -아내의 상인 경우는 조금 서쪽으로 비켜서 바로 한가운데는 피한다. 《주자대전》에 나온다.

이에 전물(奠物)을 진설한다.
집사자(執事者)가 탁자에 포해(脯醢)를 차려 들고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축(祝)이 손을 씻은 다음 술잔을 씻고 술을 쳐서 시신의 동쪽 어깨 부위 앞에 갖다 놓고 상보를 씌운다. -만약 날이 어두울 경우 먼저 촛불을 켜서 제물을 비추고 상보를 다 씌운 뒤에 다시 촛불을 끈다. 모든 제전(祭奠)이 똑같다.

주인 이하가 제 위치에 가서 곡을 한다.
주인은 시상(尸牀) 동쪽 전물 북쪽에 앉고, 삼년복을 입어야 할 여러 아들들은 그 아래에 앉되, 모두 짚자리를 깔고 앉는다. 동성(同姓)의 기공친(朞功親) 이하는 각기 복(服)의 차례에 따라 그 뒤에 앉되 모두 서쪽을 향하고 남쪽을 상좌로 하며, 높은 항렬의 사람들은 장유(長幼)의 차례에 따라 시상 동쪽의 북쪽 벽 밑에 앉되 남쪽을 향하고 서쪽을 상좌로 하여 거적자리를 깔고 앉는다. 맏며느리 및 여러 며느리와 딸들은 시상 서쪽에 앉되 짚자리를 깔고 앉는다. 동성의 부녀자들은 복의 차례에 따라 그 뒤에 앉되 모두 동쪽을 향하고 남쪽을 상좌로 하며, 높은 항렬의 사람들은 장유의 차례에 따라 시상 서쪽의 북쪽 벽 밑에 앉되 남쪽을 향하고 동쪽을 상좌로 하며, 거적자리를 깔고 앉는다. 첩과 여종은 부녀자의 뒤에 서되, 별도로 휘장을 쳐서 -마루 한가운데에 친다.- 안과 밖을 가린다. 이성(異姓) 친척들 중 남자는 휘장 밖 동쪽에 앉되 북쪽을 향하여 서쪽을 상좌로 하고, 부녀자는 휘장 밖 서쪽에 앉되 북쪽을 향하여 동쪽을 상좌로 하며, 모두 돗자리를 깔고 앉고 복의 차례에 따라 줄을 짓는다. 복이 없는 자는 뒤에 앉는다. ○ 내상(內喪)인 경우는 동성의 남자는 항렬이 높건 낮건 모두 휘장 밖 동쪽에 앉되 북쪽을 향하여 서쪽을 상좌로 하고, 이성의 남자는 휘장 밖 서쪽에 앉되 북쪽을 향하여 동쪽을 상좌로 한다. -《가례의절》에 “이 이후로 제 위치에 나아가 곡을 할 경우에는 다 이 의절(儀節)과 같이 한다.” 하였다.- ○ 삼년복의 경우 밤에는 시신 옆에서 잠을 자되, 짚자리를 깔고 흙덩이를 베는데, 허약하거나 병든 사람은 왕골자리를 깔아도 된다. 기년복 이하는 가까이에서 잠을 자되 남녀가 방을 달리하며, 외친(外親)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이에 반함(飯含)을 한다.
주인은 아주 슬피 운 다음 왼쪽 어깨를 벗어 -살피건대, 《의례》 근례(覲禮)의 소에 “예사(禮事)에서 왼쪽 어깨를 벗는 것은 길사와 흉사를 따지지 않으니, 예에서는 모두 왼쪽 어깨를 벗는다.” 하였다.- 그 소매를 앞에서 허리 오른쪽에 꽂고, 손을 씻고 상자를 들고 들어가면 시자(侍者) 한 사람이 쌀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들고 뒤를 따른다. -《의례》 사상례에 “축(祝)이 조개껍질을 받아 시신의 서쪽에 놓아둔다.” 하고, 또 “쌀을 받아 조개껍질의 북쪽에 놓아둔다.” 하였는데, 그 소에 “시신의 동쪽에 나아가서 받아 가지고 시신의 남쪽으로 지나가서 시신의 서쪽에 놓아두니, 입에 넣는 것은 발치를 지나가게 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축은 주인의 오른쪽에 서서 반함하는 일을 돕는다.” 하였다.- 베개를 치우고 멱건(幎巾)으로 얼굴을 덮은 다음, -《의례》 사상례에 “입에 물렸던 나무젓가락도 치운다.” 하였다.- 주인은 시신 동쪽으로 나아가서 발치를 지나 서쪽으로 가서 시상(尸牀) 위에 동쪽을 향하고 앉아 멱건을 걷고 숟가락으로 쌀을 떠서 -《의례》 사상례에 “왼손으로 쌀을 뜬다.” 하였다.- 시신의 입 오른쪽에 넣고, 아울러 구슬 한 개도 넣는다. 또 입 왼쪽과 중앙에도 이와 같이 넣는다. 주인은 벗었던 왼쪽 소매를 다시 꿰어 입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의례》 사상기에 “축이 반함하고 남은 물건들을 치운다.” 하였다.

시자가 습을 마치면 이불을 덮는다.
-시자가 처음과 같이 베개를 놓은 다음, 멱건을 벗기고 먼저 망건을 씌운다.- 복건을 씌우고, -그 띠를 복건 바깥으로 내어 목 뒤로 돌려서 서로 묶어 드리운다.- 귀를 막고 멱목(幎目)을 씌운 다음, -그 끈을 뒤로 보내어 묶는다.- 신을 신긴다. -그 끈을 신코에 꿰어 발등에다 묶고, 남은 끈으로 또 두 발을 합쳐 묶어서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에 심의를 입히고, -옷자락을 오른쪽으로 여민다.- 대대(大帶)를 매고 악수(握手)를 씌운 다음, -먼저 오른손을 누(樓) 가운데에 올려놓고 한 끝으로 손등을 덮고 그 끈으로 팔목을 한 바퀴 돌려 감고 나서 끈을 다시 위로 뽑아낸 다음, 또 다른 한 끝을 포개 놓고 그 끈을 손 바깥쪽으로 가게 하여 가운뎃손가락에 건 다음, 또 되돌려서 위로 감고서 남은 끈을 아래로 보내어 앞서 팔목을 묶었던 끈과 함께 손바닥 뒤 손마디 중간 부위에서 묶는다. 왼손도 이와 마찬가지로 한다.- 이에 이불을 덮는다. -만약 모(冒)를 씌운다면 먼저 쇄(殺)로 발을 씌워 올라간 다음, 질(質)로 머리를 씌워 내려와서 그 띠를 묶는다. ○ 설치(楔齒)와 멱건(幎巾)은 함께 구덩이에 묻는다. ○ 밤에는 뜰 한가운데에 횃불을 설치한다.
영좌(靈座)의 제구
횃대[椸]
수건[帕]
유의(遺衣)
의자(椅子)
좌요[坐褥]
탁자(卓子)
향로(香爐)
향합(香盒) : 향을 갖춘다.
술잔[盞] : 잔대를 갖춘다.
주전자[注]
술[酒]
과실[果]
빗[櫛]
세숫대야[盥盆]
수건[帨巾]

혼백(魂帛)의 제구
흰 명주[白絹] : 더러는 모시 3, 4자를 쓰기도 한다. 혼백을 만드는 제도는 두 가지가 있는데, 명주를 그냥 묶기도 하고 동심결(同心結)을 하기도 한다. 《가례의절》에 “명주를 묶는 제도는 명주 1필(匹)을 양쪽 끝에서 마주 말아 들여서 묶는 것이고, 동심결의 제도는 명주를 길게 접어 서로 맞꿰어 묶은 다음 위로 머리를 내고 옆으로 두 귀를 내고 나서 그 나머지를 아래로 드리워 두 발을 만들어 마치 사람 모양과 같이 하는 것인데, 두 방법 다 좋다.” 하였다.
상자[箱] : 혼백을 담기 위한 것이다.
수건[帕] : 흰 삼베로 만드는데, 혼백을 덮는 것이다.

명정(銘旌)의 제구
대나무 장대[竹杠] : 한 개. 명정을 다는 것이다. 세속에서 장대 꼭대기에 나무로 봉황의 머리를 조각하여 달기도 하는데, 물감을 칠하고 입에 구슬을 물리고 술[流蘇]을 드리운다.
받침대[跗] : 장대의 받침대인데, 그 제도는 일산 받침대와 같다.
분(粉) : 명정을 쓰기 위한 것이다.
녹각교(鹿角膠) : 분에 타는 것이다.
붉은색 비단[絳帛] : 너비는 온폭, 길이는 3품 이상은 9자, 5품 이상은 8자, 6품 이하는 7자이며, -예기척(禮器尺)으로 만든다.- 위아래로 축(軸)이 있고 실끈으로 매단다. ○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시켜 큰 글씨로 ‘아무 벼슬 아무 공의 구(柩)’라고 쓰는데, 벼슬이 없을 경우 생시에 부르던 대로 쓴다. ○ 부인은 남편으로 인하여 봉호(封號)가 있으면 ‘아무 봉호 부인 아무 관향 아무씨의 구’라고 쓰고 봉호가 없으면 ‘유인(孺人)’이라고 쓴다. ○ 무릇 부인의 봉호는 남편의 실직(實職)을 따라 쓴다.
관계(官階)의 칭호(稱號) -국제(國制)-
정1품 :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이다. 정승[議政]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라 일컫는다. ○ 종친(宗親)은 현록대부(顯祿大夫)와 흥록대부(興祿大夫)이다. ○ 의빈(儀賓)은 수록대부(綏祿大夫)와 성록대부(成祿大夫)이다. ○ 종친과 대군(大君)의 아내는 부부인(府夫人)이다.
종1품 : 숭록대부와 숭정대부(崇政大夫)이다. ○ 종친은 소덕대부(昭德大夫)와 가덕대부(嘉德大夫)이다. ○ 의빈은 광덕대부(光德大夫)와 숭덕대부(崇德大夫)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정경부인(貞敬夫人)이다. ○ 종친의 아내는 군부인(郡夫人)이다.
정2품 : 정헌대부(正憲大夫)와 자헌대부(資憲大夫)이다. ○ 종친은 숭헌대부(崇憲大夫)와 승헌대부(承憲大夫)이다. ○ 의빈은 봉헌대부(奉憲大夫)와 통헌대부(通憲大夫)이다.
종2품 : 가의대부(嘉義大夫)와 가선대부(嘉善大夫)이다. ○ 종친은 중의대부(中義大夫)와 정의대부(正義大夫)이다. ○ 의빈은 자의대부(資義大夫)와 순의대부(順義大夫)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정부인(貞夫人)이다. ○ 종친의 아내는 현부인(縣夫人)이다.
정3품 :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절충장군(折衝將軍)이다. ○ 종친은 명선대부(明善大夫)이다. ○ 의빈은 봉순대부(奉順大夫)이다. ○ 문무관의 아내는 숙부인(淑夫人)이다. ○ 종친의 아내는 신부인(愼夫人)이다.
정3품 : 통훈대부(通訓大夫)와 어모장군(禦侮將軍)이다. ○ 종친은 창선대부(彰善大夫)이다. ○ 의빈은 정순대부(正順大夫)이다.
종3품 : 중직대부(中直大夫)ㆍ중훈대부(中訓大夫)와 건공장군(建功將軍)ㆍ보공장군(保功將軍)이다. ○ 종친은 보신대부(保信大夫)와 자신대부(資信大夫)이다. ○ 의빈은 명신대부(明信大夫)와 돈신대부(敦信大夫)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숙인(淑人)이다. ○ 종친의 아내는 신인(愼人)이다.
정4품 : 봉정대부(奉正大夫)ㆍ봉렬대부(奉列大夫)와 진위장군(振威將軍)ㆍ소위장군(昭威將軍)이다. ○ 종친은 선휘대부(宣徽大夫)와 광휘대부(廣徽大夫)이다.
종4품 : 조산대부(朝散大夫)ㆍ조봉대부(朝奉大夫)와 정략장군(定略將軍)ㆍ선략장군(宣略將軍)이다. ○ 종친은 봉성대부(奉成大夫)와 광성대부(光成大夫)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영인(令人)이다. ○ 종친의 아내는 혜인(惠人)이다.
정5품 : 통덕랑(通德郞)ㆍ통선랑(通善郞)과 과의교위(果毅校尉)ㆍ충의교위(忠毅校尉)이다. ○ 종친은 통직랑(通直郞)과 병직랑(秉直郞)이다.
종5품 : 봉직랑(奉直郞)ㆍ봉훈랑(奉訓郞)과 현신교위(顯信校尉)ㆍ창신교위(彰信校尉)이다. ○ 종친은 근절랑(謹節郞)과 신절랑(愼節郞)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공인(恭人)이다. ○ 종친의 아내는 온인(溫人)이다.
정6품 : 승의랑(承議郞)ㆍ승훈랑(承訓郞)과 돈용교위(敦勇校尉)ㆍ진용교위(進勇校尉)이다. ○ 종친은 집순랑(執順郞)과 종순랑(從順郞)이고, 그 아내는 순인(順人)이다.
종6품 : 선교랑(宣郞)ㆍ선무랑(宣務郞)과 여절교위(勵節校尉)ㆍ병절교위(秉節校尉)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의인(宜人)이다.
정7품 : 무공랑(務功郞)과 적순부위(迪順副尉)이다.
종7품 : 계공랑(啓功郞)과 분순부위(奮順副尉)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안인(安人)이다.
정8품 : 통사랑(通仕郞)과 승의부위(承義副尉)이다.
종8품 : 승사랑(承仕郞)과 수의부위(修義副尉)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단인(端人)이다.
정9품 : 종사랑(從仕郞)과 효력부위(效力副尉)이다.
종9품 : 장사랑(將仕郞)과 전력부위(展力副尉)이다. ○ 이상 문무관의 아내는 유인(孺人)이다.

영좌(靈座)를 설치하고 혼백을 모신다.
시신의 남쪽에 횃대를 설치하여 수건으로 덮고 교의를 횃대 앞에 놓은 다음, -《가례의절》에 “교의 위에 좌요[坐褥]를 깔고, 좌요 위에 유의(遺衣)를 놓고, 유의 위에 혼백을 놓고, 교의 앞에 탁자를 놓는다.” 하였다.- 향로와 향합, 술잔과 주전자, 그리고 술과 과일을 탁자 위에 차려 놓는다. 시자가 아침저녁으로 빗과 세면 도구 따위의 봉양하는 도구를 생시와 똑같이 갖다 놓는다.

명정(銘旌)을 세운다. -축(祝)이 받침대를 설치한다.
영좌의 오른쪽에 기대어 세운다.

불사(佛事)를 하지 않으며, 친구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이때부터 들어가서 곡할 수 있다.
주인이 아직 성복(成服)하기 전에 와서 곡하는 자는 심의(深衣)를 입는다. -《가례의절》에 “담색(淡色)으로 입는다.” 하였다. ○ 《가례의절》에 “주인이 나와서 예를 받을 경우, 조문자는 시신 앞에 가서 곡하고 다시 영좌 앞으로 나아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한 다음, 울음을 그치고 주인을 향하여 치사(致辭)하기를 ‘아무개는 어쩌다가 일어나지 못하셨습니까?’ 한다. 주인은 맨발로 옷자락을 추어올려 띠에 꽂은 채 가슴을 치며 서쪽 계단 밑에 서서 손님을 향하여 곡과 절만 하고 답사(答辭)는 하지 않는다. 조문자는 답배(答拜)를 하고 주인과 마주 서서 슬피 곡을 한다. 예가 끝나면 조문자는 곡하며 밖으로 나오고 주인은 곡하며 안으로 들어가며, 호상(護喪)이 문밖까지 나와서 조문객을 전송한다. 이는 대개 《가례(家禮)》와 《예기》 상대기(喪大記)에 근거한 것이다. 주인이 나와서 예를 받지 않을 경우에는 조문자는 문 안으로 들어가서 시신을 바라보고 곡한 다음 울음을 그치고, 호상이 나와 접견하면 조문자가 치사하기를 ‘삼가 듣자니 아무개가 일어나지 못하셨다기에 와서 위로를 드리는 바입니다.’ 하고 두 번 절한다. 호상은 답배를 하고 답사하기를 ‘고(孤) 아무개는 이처럼 흉화(凶禍)를 당하여 특별한 위문을 받으니, 슬프고 고마운 심정 견딜 수 없습니다만, 아직 성복을 하지 않아서 감히 나와 뵙지 못하고 아무개를 시켜 절하는 바입니다.’ 하고는 이어서 두 번 절한다. 조문자가 답배를 하고 물러나면 호상이 문밖까지 나와서 전송한다. 이는 대개 《서의(書儀)》와 후종례(厚終禮)에 근거한 것이다. 지금 두 의절을 다 남겨두어서 초상이 났을 때 존친(尊親)에게는 전자의 의절을 쓰도록 하고 소원(疏遠)한 사람에게는 후자의 의절을 쓰도록 하는 바이다.” 하였다.

[주D-001]의례 사상례의 소(疏) : ‘사유빙(士有氷)’ 조에 대한 가공언(賈公彦)의 소이다.
[주D-002]의례 사상례의 주 : ‘모치질(冒緇質)’ 조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이다.
[주D-003]의례 사상례의 주 : ‘설건(設巾)’ 조에 대한 정현의 주이다.
[주D-004]예기 상대기의 주 : ‘거사의(去死衣)’ 조에 대한 정현의 주이다.
[주D-005]예기 상대기의 주 : ‘설이반조빙(設夷盤造氷)’ 조에 대한 진호(陳澔)의 주이다.
[주D-006]의례 사상례의 소 : ‘사유빙(士有氷)’ 조에 대한 가공언(賈公彦)의 소이다.
[주D-007]의례 근례(覲禮)의 소 : ‘우육단(右肉袒)’ 조에 대한 가공언의 소이다.


소렴(小殮)
소렴의 제구(諸具)
평상[牀]
거적[薦]
돗자리[席]
요[褥]
베개[枕]
병풍[屛]
고운 삼베[細布] : 포백척(布帛尺)으로 20자가량이다. 잿물에 바랜 삼베나 고운 무명베를 쓰는데, 묶는 데 쓰는 것이다. 살피건대, 우리나라는 베의 폭이 너무 좁아서 반드시 반 폭을 더 붙여서 꿰매어 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고 보면 30자가량이 든다. ○ 가로로 놓는 3폭은 그 길이를 각각 4자나 3자 남짓으로 하고, 세로로 놓는 1폭은 그 길이를 10자나 9자가량으로 하는데, 시신의 장단(長短)과 비척(肥瘠)에 따라 마련한다. 폭마다 양쪽 끝을 쪼개어 세 쪽을 만들되, 가로 폭은 한가운데 8치 남짓을 쪼개지 않은 채 남겨두고 세로 폭은 3분의 2를 쪼개지 않은 채 남겨두어서, 가로 폭은 몸을 감싸서 마주 당겨 묶기에 넉넉하도록 하고 세로 폭은 머리에서 발까지를 덮어씌워 몸 한가운데에서 잡아당겨 묶기에 넉넉하도록 한다.
이불[衾] : 두 채. 한 채는 겹이불로 소렴에 쓰는 것이고, 한 채는 이금(侇衾)으로 시신을 덮는 데 쓰는 것이다. 《의례》 사상례(士喪禮)에 “거죽은 검고 안은 붉으며, 이불깃은 없다.[緇衾赬裏無紞]” 하였는데, 그 주에 “이불깃은 이불의 위아래의 표시이다. 염의(殮衣)는 어쩌다 뒤바뀔 수도 있지만, 이불은 위아래의 구별이 없는 것이 좋다. 무릇 이불의 제도는 모두 5폭이다.” 하였다. 《의례》 사상례의 소(疏)에 “이금의 질(質)과 쇄(殺)를 마르는 방법은 모(冒)와 같으니, 위쪽은 검은색으로 하고 아래쪽은 붉은색으로 하여 연결한 다음에 쓴다.” 하였고, 또 “이금이란 본래 시신을 덮고 관을 덮는 것으로, 입관 때에는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사를 지내려고 계빈(啓殯)할 적에도 관을 덮는 데 쓴다.” 하였다. 또 “조묘(朝廟) 및 입광(入壙)할 때 비록 이금을 쓴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또 걷어 치운다는 문구도 없다. 관을 덮는다는 말만 하였으니, 관과 함께 입광하는 일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가례》의 이른바 ‘구의(柩衣)’가 바로 이금이다.
산의(散衣) : 곧 잡옷ㆍ도포ㆍ장옷 따위이다.
상의(上衣) : 단령(團領)ㆍ직령(直領) 따위이다. ○ 《의례》 사상례에 “옷이 19벌이다.” 하였다. ○ 《예기》 상대기(喪大記)에 “열채(列采)가 아니면 -간색(間色)이다.- 쓰지 못하고, 갈포와 모시는 쓰지 못한다. -여름철에도 도포[袍]를 쓴다.-” 하였다.

환질(環絰)의 제구
백포건(白布巾) : 제도는 세속의 효건(孝巾)과 같은데, 소렴 때에 쓴다.
환질(環絰) : 삼 1고(股)로 꼬아서 만드는데, 크기는 시질(緦絰)과 같으며, 백포건 위에 쓰는 것이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소렴 때의 환질은 공(公)ㆍ대부(大夫)ㆍ사(士)가 마찬가지이다.” 하고, 그 소에 “어버이가 처음 죽으면 효자가 갓을 벗으므로, 소렴 때에 가서 수식(首飾)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사는 위모(委貌)를, 대부 이상은 소변(素弁)을 쓰는 것이니, 귀천에 관계없이 다 환질을 쓸 수 있다.” 하였다. 습(襲)할 때는 환질을 벗었다가 계빈(啓殯) 때에 백포건과 함께 다시 써서 졸곡(卒哭) 때까지 간다. 살피건대, 예(禮)에 대렴에도 환질이 있다. 구준(丘濬)이 말하기를 “제가(諸家)의 예설을 상고해 보니 수질(首絰) 밑에는 반드시 건모(巾帽)가 있다. 따라서 그것으로 수질을 받쳐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모와 작변(爵弁)의 제도는 지금 남아 있지 않으니, 마땅히 백포를 사용하여 세속에서 만들어 쓰는 효건이나 소모(小帽)처럼 만들어야만 예법의 본뜻에 맞을 듯하다.” 하였다. ○ 내가 살피건대, 고례(古禮)에 환질은 소렴 때에 썼다가 습할 때에 가서 벗는데, 《가례의절》에는 빙시(憑尸)한 후에 벗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마땅히 예경(禮經)을 바른 것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만 오늘날의 예에 소렴 때까지도 머리를 풀게 되어 있으니, 고례를 따르고 싶다면 마땅히 상투를 쫒고 건과 수질을 쓰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리고 《의례》와 《예기》에 모두 ‘자최(齊衰)에 환질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 없고, 단지 구준(丘濬)의 《가례의절》에 ‘참최(斬衰)를 입는 자만이 쓴다’고 하였으니, 의심스러운 일이다.

제전(祭奠)의 제구
탁자(卓子) : 두 개.
술잔[盞] : 잔대를 갖춘다.
주전자[注]
조건(罩巾) : 대나무를 쪼개어 만드는데, 명주나 삼베 수건을 씌운 것이다.
초[燭] : 촛대를 갖춘다.
세숫대야[盥盆] : 두 개. 한 개는 받침대가 있는 것으로 축(祝)이 손을 씻는 것이고, 한 개는 받침대가 없는 것으로 집사(執事)가 손을 씻는 것이다.
수건[帨巾] : 두 개.
설거지 대야[潔滌盆] : 한 개. 잔을 씻는 것이다.
새 행주[新拭巾] : 한 개. 잔ㆍ제찬ㆍ주과(酒果)ㆍ포해(脯醢) 따위를 닦는 데에 쓴다. ○ 《의례》 사상기에 “제전에는 채색하지 않은 소기(素器)를 쓴다.” 하였는데, 유씨(劉氏)가 말하기를 “영좌(靈座) 앞에는 금ㆍ은으로 된 술그릇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기를 쓴다.” 하였다.

괄발(括髮)ㆍ문(免)ㆍ좌(髽)의 제구
삼끈[麻繩] : 참최에 남자의 머리와 부인의 머리를 묶는 데 쓰는 것이다.
포두수(布頭 ) :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는 것이다. 《의례상복도식(儀禮喪服圖式)》에 의하면 부인은 6새[升]의 삼베로 머리끈을 만들며, 양쪽 끝을 묶은 다음 결발(結髮)한 뒤로 나오게 하여 드리우는 끈의 길이는 6치인데, 기년(朞年)과 대공(大功)에는 8치이고, 소공(小功)과 시마(緦麻)에는 1자이다. 《서의(書儀)》에 의하면, 괄발(括髮)이란 먼저 삼끈으로 상투를 쫒은 다음, 또 삼베로 두수(頭 )를 만들어 묶는다. 자최(齊衰) 이하는 모두 문(免)으로 묶는데, 삼베를 찢거나 명주를 감쳐서 만들며, 너비는 1치이다. 부인의 좌(髽)도 가느다란 삼끈으로 만들며, 자최 이하는 역시 삼베나 명주로 만드는데, 모두 초두(幓頭 머리를 묶는 수건)의 제도와 같다. ○ 살피건대, 《가례》는 《서의》에 바탕하여 남자의 참최에도 삼베로 두수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免) : 삼베를 찢거나 명주를 감쳐서 너비 1치로 만드는데, 자최 이하 5세조를 함께하는 복인들이 상투를 감싸 묶는 것이다. 좌(髽)도 마찬가지이다. ○ 괄발(括髮)ㆍ문(免)ㆍ좌(髽)는 성복할 때에 가서 제거한다.
죽잠(竹簪) : 부인이 머리를 고정시키는 것으로, 모상(母喪)의 경우 개암나무로 만든다. 《가례의절》에 의하면 길이는 5, 6치이다. 살피건대, 고례(古禮)에는 성복에도 썼으니, 《가례》와는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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