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廟宇, 祠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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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13-11-24 14:29 조회6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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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廟宇와 祠宇 ]
或者의 주장이 ‘平章祠라 했으니 선조할머니(先祖妣)를 봉안 할 수 없다. 선조비를 선조고와 함께 봉안하려면 平章祠라는 이름을 平章廟로 고쳐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는데 그 주장은 전적으로 바르지 않다.

廟宇와 祠宇는 신위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집으로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祠堂
士大夫家를 비롯한 일반 민가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집이다.
家廟라고도 하며, 王室의 것은 宗廟라 한다.
古禮에서는 사당을 종묘 또는 禮廟라고 하였는데, 祠堂이라는 호칭의 최초기록은 前漢書 循吏傳에 나온다.

- 西紀前 4年 漢 平帝/元始 4년 「祠堂」 一般士大夫 祭祀祖先的 建築物,稱為「祠」,俗稱「宗祠」或「祠堂」<前漢書第五十九[循吏傳] > -

이 후 朱子의 家禮에서 祠堂이라고 칭하여 이것이 일반적으로 通用되었으며 王室의 宗廟와 구별하게 되었다.

- 朱子曰 “祠堂이라고 하는 것은 程伊川선생이 제사 지낼 때는 影字(肖像畵)를 쓰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였으므로 影堂을 祠堂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다.”<朱子 家禮 卷第一[通禮] > -
[註]
* 伊川: 程頤1033~1107 의 號
* 朱子: 朱熹1130~1200 의 尊稱

그리하여 朱子 이후부터 家廟를 祠堂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祠堂역사는 ≪三國史記≫에 의하면, 서기전 24년(東明王 14) 고구려국왕모신묘(高句麗國王母神廟), 서기전 2년(溫祚王 17) 백제국모묘(百濟國母廟)를 건립하였고, 서기6년(南解王 3년)봄, 신라시조 혁거세의 묘(廟)를 세웠다고 하였으며, 서기 358년(奈勿王 3) 내물왕이 親祀하였다 했으며 서기 776년(惠恭王 12년)에 비로소 5廟를 정하고 13대 味鄒王을 金姓의 始祖로 하였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의 사당문화의 발상은 매우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사당제도가 유입되기는 삼국시대부터라고 하겠으나, 일반화 하기는 고려 말이며 조선 중기 이후에 와서 더욱 철저하게 실행되었다.

≪家禮≫에서는 사대부집에서 祠堂에 4代의 神主를 一列로 列享하여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사당의 구조는 北端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1架를 설치하고 4등분하여 龕室을 만들되 나무판으로 막아서 구분하고, 서쪽 제1감실에 高祖考妣, 다음이 曾祖考妣, 다음이 祖考妣 그리고 맨 끝인 동쪽에 考妣의 순으로 신주를 모신다. 만약에 감실 네 개를 만들었어도 曾祖에서 갈라진 小宗의 종가일 때에는 맨 서쪽의 감실을 하나 비워둔다. 그리고 祖에서 갈라진 소종일 때에는 서쪽의 두 개를, 그리고 考에서 갈라진 소종일 때에는 세 개를 비워 맨 동쪽에만 모시며, 새로 大宗을 이루었을 때라도 4대가 차지 않으면 위와 마찬가지로 한다.

그리고 傍親 가운데 후손이 없는 사람의 신주는 차례대로 해당 감실에 班祔하며, 從祖父母의 신주는 고조의 감실에, 仲叔父母의 신주는 증조의 감실에, 처와 아우와 제수의 신주는 祖의 감실에, 아들·며느리·조카·질부의 신주는 考의 감실에 각각 반부한다.
만약에 손자나 손부일 때에도 마찬가지로 1대를 걸러서 祖에게 반부하되 모두 各位의 동쪽 끝에 서쪽을 향하여 祔한다.

이 밖에 어린이의 제사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하였다. 즉, 어린이의 죽음을 殤이라 부르고 이를 또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1세에서 7세까지의 죽음을 無服之殤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다음 8세에서 11세까지를 下殤이라 하고 제사는 부모의 생전에 한하며, 12세에서 15세까지 中殤이라 하고 제사는 형제의 생전까지로 하며, 16세에서 19세까지를 長殤이라 하고 제사는 형제의 자녀대까지로 한다.

그리고 20세 이상의 성인 가운데 후손이 없이 죽었을 때에는 제사를 형제의 손자대까지 지내고, 庶子의 경우는 어려서 죽었든 성인이 되어 후손이 없이 죽었든 祖考妣에 반부한다. 庶母는 선당에 모시지 않고 아들이 私室에서 제사를 지내되 생전에 한한다.
사당은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지어야 하니 그 위치는 正寢 동쪽으로 하고, 사당이 있는 집은 宗子가 대대로 지켜야 하며, 부득이한 때를 제외하고는 헐지 않는다. 사당은 3칸에 5架로 하되 안에는 磚을 깔거나 나무판자로 마루를 깔고 그 위에 자리를 편다. 그리고 중간 도리 밑에 문을 만들어 中門이라 하고 칸마다 4문짝을 달아 分闔門이라 한다.
분합문 밖에 3級인 두 섬돌을 놓는데, 동쪽을 조계(阼階)라 하고 서쪽을 西階라 부른다. 사당의 向背는 앞을 남, 뒤를 북으로 보고, 만약 가세가 빈한하여 집터가 좁으면 다만 1칸만 세워도 된다.
사당 섬돌 아래에 터가 넓고 좁음에 따라 지붕을 올려 덮고 여러 집안 사람이 內外로 갈라 차례대로 서 있게 하는데, 이를 序立屋이라 한다.

사계 김장생(金長生)은 “서립옥의 제조는 사당 앞 처마와 지붕이 서로 맞닿아 마치 陵寢의 丁字閣과 같이하고 두 섬돌 사이에 향香卓을 놓아둔다.” 하였으나, 이재(李縡)는 이에 대하여 “향탁을 서립옥에 놓아두는 것은 넓이가 좁아 비가 들이치고 햇빛이 비치기 때문에 옳지 않을 뿐더러 서립옥을 정자각처럼 짓는다면 참람될 우려가 있으며 또 ≪가례≫의 本註로 보아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자손이 번성하여 몇백명에 이른다고 하면 긴 정자각으로 된 縱屋에 다 수용할 수 없으며 본주에 長短에 따른다 하지 않고 광廣狹에 따라 지붕을 올린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橫屋임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송시열(宋時烈)도 횡옥이 옳다 하였으며 만약 두 섬돌 사이에 향탁 놓을 일을 걱정한다면 횡옥의 가운데에 놓아도 두 섬돌 사이에 놓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반드시 두 섬돌 사이에 바로 놓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서립옥의 동쪽에 縱으로 서향하여 3칸의 廚庫를 짓되 북쪽에 있는 1칸에 遺書와 衣物을 보관하고, 가운데 1칸에 祭器를 보관하며 나머지 남쪽 1칸을 神廚로 삼아 祭需를 만들고 제사지낼 때 음식을 따뜻하게 덥히는 곳으로 사용한다.
만약 터가 좁아서 사당을 1칸만 짓게 되면 주고를 세울 수 없으니 사당 안 동쪽과 서쪽의 벽에 큰 궤(櫃)를 하나씩 만들어놓고 서쪽에 있는 궤에는 유서와 의물을, 동쪽에 있는 궤에는 제기를 각각 보관한다.
그리고 사당과 주고를 둘러 네모난 담을 쌓고 앞쪽에 外門을 낸다. 외문은 사당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사당의 중문과 마주보게 되며, 외문의 동쪽과 서쪽은 바로 담에 이어지게 한다.

사당 안에는 감실마다 탁자 위에 主櫝을 놓고 그 속에 신주를 모시며, 감실 밖에는 각각 작은 발을 내리고 그 발 밖의 사당 한가운데에 향탁을 놓고 향탁 위에는 동쪽에 香盒, 서쪽에 香爐를 놓아두며, 사당 밖 두 섬돌 사이에 둔 향탁 위에도 마찬가지로 향로와 향합을 놓아둔다.

감실 안에 놓아둔 탁자는 각각 座面紙, 즉 油紙로 덮어두며, 그 위 북쪽 끝에 좌료(坐褥)라는 작은 방석을 깔고 그 위에 주독을 놓으며, 班祔位는 각각 해당하는 祖位에 祔하는 것이 원칙이나 동쪽과 서쪽 끝에 서향 또는 동향하여 좌료 위에 모시기도 한다. 사당 안에 구비할 諸具는 다음과 같다.

① 감실,
② 대탁(大卓):각 감실 안에 놓고 북단에는 신주를 모시고,
동서단에는 부주(祔主)를 모시며 남단에는 제물을 진설한다.
③ 좌료:각위마다 둔다.
④ 좌면지:유지를 쓰며 각위마다 있다.
⑤ 식건(拭巾):행주로서 각위마다 둔다.
⑥ 발[簾]:각 위마다 감실 앞에 드리운다.
⑦ 자리:지의(地衣)이며 바닥에 편다.
⑧ 향안(香案):사당 안과 밖의 두 섬돌 사이에 놓아둔다.
⑨ 향합:사당 안과 밖에 각각 놓는다.
⑩ 향시(香匕):사당 안과 밖에 각각 준비한다.
⑪ 화저(火箸):사당 안과 밖에 각각 준비한다.

그리고 ≪禮書≫에는 없으나 촛대도 한 쌍을 最尊位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동서로 놓아두는 것이 통례이다.
사당에서 행하는 의식으로서는 신알례(晨謁禮)·출입고(出入告)·삭참(朔參)·망참(望參)·정조참(正朝參)·동지참(冬至參)·속절다례(俗節茶禮)·천신례(薦新禮)·유사고(有事告)가 있다.

그리고 不遷之位도 不祧廟가 있을 경우에는 가묘 이외에 따로 사당을 가묘 서쪽에 짓고 사당의 절차와 같이하며, 따로 별묘를 짓지 못할 때에는 가묘의 맨 서쪽 1칸을 나무판자로 막고 별묘의 형식을 갖춘다.
오늘날은 오래된 별묘는 그대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나 새로 신주를 조성하는 집안이 별로 없어서 사당은 특별한 경우에만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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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정몽주전에 처음으로 士庶로 하여금 주자가례를 모방하여 家廟를 세워 先祀를 받들게 하였다고 했지만 이 보다 앞서 家廟를 세워 제사를 지낸 사례가 鄭克溫墓誌銘(1215년), 崔文慶墓誌銘(1345년), 鄭仁祠堂記(1346년) 등에 나온다.
묘지명에 의하면 그들은 사후에 家廟에 奉祀되었다.

고려사 趙浚 傳에 의하면 趙浚이 이 시기에 상소문을 올려 이제부터는 朱子家禮에 의거 家廟에서 大夫以上은 3世를 제사지내고, 6품以上은 2世를 제사하고, 7품以下, 庶人은 다만 부모를 제사지내게 하자고 하였다. 드디어 恭讓王2년(1390년)에 大夫, 士庶人의 立廟 기타의 제사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었다. 士大夫의 家祭儀는 祠堂에서 4仲月에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3대를 제사한다고 하였다.
법령 細則에 ‘宗子가 제사하는 법을 준수해 나가는데 人情과 事勢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宗法에 구애되지 말고 현재의 族長이 神主를 받들고 祠堂(家廟)을 主管하고 나머지 嫡子, 衆子는 모두 그 집에서 함께 제사를 지낸다’ 라고 했다.
◎栗谷先生全書27권 祭儀鈔 祠堂圖에
曾祖考/曾祖妣, 祖考/祖妣, 考/妣. 봉안도가 있다.

◎沙溪全書 24권 家禮輯覽圖說 祠堂圖에
高祖考/高祖妣, 曾祖考/曾祖妣, 祖考/祖妣, 考/妣 를 祠堂에 奉安한다고 하였다.

澗松 趙任道(1585~1664)도 家廟를 祠堂이라 하였다
◎澗松先生文集卷之五 祝文
新建家廟。祭告土神文。
己未九月初三日。新建家廟於柰內。
維年月日。巴山人趙某敢昭告于土地氏之神。某避地移家。來占江皐。今方恢拓新基。
營立祠堂。伏惟明神。保佑呵護。驅除不祥。俾永無艱。謹以酒果脯醢祗薦于神。

屛谷 權渠는 祠堂에 5代祖考妣를 移安하였다.
◎屛谷先生續集卷之二 告由文
祠堂移安告由文 丙戌
顧惟不肖。承荷宗祀之重。固當死守基業。不可妄有移動。而喪禍以來。危悸增深。挈家奔竄。以圖保全。今至九載。尙無定處。使莫重祠宇。屢有 遷動。托非其所。不肖之罪。萬死難赦。又於昨冬。以邨患移寓內洞。賃得邨人空舍。姑爲留住。此亦非久計。前頭事有不可預定者。而所在旣稍間。不得朝夕瞻護。情理多有欠缺。又頹廢草舍。寄在邨閻中。實非久安之所。而舊基與所寓。不甚相遠。堂叔寓屋。又在其側。求之情理。亦似稍安。故略加補葺。方以今日擇吉移安。而顯五代祖考妣位。自庚辰不肖免喪之後。宜奉遷于最長之房。勢有所拘。旣不如禮。則今將姑安於西壁東向之位。以待後日。敢將事由。用伸虔告


*廟宇라고 해야 선조비를 봉안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바른 주장이 아니다.

[참고]
孔子를 봉안한 文廟(文宣王廟)와 關羽를 봉안한 서울崇仁洞의
東廟(東關王廟)와 望祭를 지냈던 서울지방의 뚝신묘(纛神廟)를 비롯하여 강원도 三陟지방의 東海廟, 평안북도 義州지방의 狎江廟, 함경북도 慶源지방의 豆滿江廟 등은 江神과 海神에 제사하던 廟로 배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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